[경쾌하고 자유로운 삶의 방식, 미니 스커트]
1960년대는 젊음이 문화의 중심에 섰던 시대였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소비 주체로 등장하며, 그들의 감각과 욕망은 곧 새로운 규범이 되었다. 그들은 기성세대의 윤리나 복장 규범보다 ‘자유’와 ‘개성’을 중시했고, 이 정신은 런던의 거리에서 폭발했다. 이른바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이라 불린 킹스로드(King’s Road)와 카나비 스트리트(Carnaby Street)는 젊은이들의 성지였다. 음악, 미술, 영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탄생한 이 문화적 용광로 속에서, 한 패션 아이템이 시대를 뒤흔들었다.미니스커트였다.
미니스커트의 탄생에는 언제나 논쟁이 따른다. 누가 처음으로 ‘무릎 위 치마’를 만들었는가? 프랑스 디자이너 안드레 쿠레주(André Courrèges)는 1964년 파리 컬렉션에서 무릎 위로 올라간 A라인 드레스와 고고 부츠를 선보였다. 미래적 감각과 기하학적 실루엣으로 혁신을 일으킨 그는 “미니의 창시자”로 불리기도 한다. 한편 영국의 존 베이츠(John Bates)는 PVC 소재의 초단 미니를 통해 보다 급진적인 실험을 이어갔다.
그러나 ‘유행’으로 끌어올린 인물은 단연 메리 퀀트(Mary Quant)였다. 런던 킹스로드의 부티크 ‘바자(Bazaar)’를 운영하던 그는 “거리에서 태어난 옷”이라는 철학 아래 젊은 여성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반영했다. 손님이 “좀 더 짧게 해달라”고 하면 그는 곧장 길이를 잘라냈다. 그 결과 치맛단은 점점 올라갔고, 1965년 무렵에는 허벅지 중간까지 도달했다. 퀀트는 여기에 컬러 타이츠, 플랫 슈즈를 조합해 ‘활동적이고 경쾌한 젊음’을 표현했다. 그는 미국 백화점과의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미니를 대중 패션으로 확산시켰고, 세계 패션계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메리 퀀트는 자신이 타던 소형 자동차 ‘미니 쿠퍼(Mini Cooper)’에서 영감을 받아 ‘미니’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작은 차지만 빠르고 유쾌한, 젊은 세대의 감각에 꼭 맞는 상징이었다. 미니스커트는 ‘짧은 치마’라는 단순한 개념을 넘어 ‘경쾌하고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의미하게 되었고, 이 새로운 이름은 곧 전 세계 여성의 옷장을 점령했다.
퀀트가 미니의 상업적 성공을 이끌었다면, 그것을 세계적 아이콘으로 만든 인물은 모델 트위기(Twiggy)였다. 1966년 ‘올해의 얼굴’로 선정된 그는 소년 같은 체형, 짧은 숏컷, 그리고 커다란 눈망울로 기존의 여성미와는 전혀 다른 ‘뉴 페미닌(New Feminine)’을 제시했다. ‘보그(Vogue)’와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표지에 등장한 그의 사진은 미니의 상징 그 자체였다. 트위기의 이미지는 국경을 넘어 세계 여성들의 옷차림과 태도를 바꿔놓았다. 미니스커트는 이제 단순한 의상이 아니라 젊음과 해방의 얼굴이었다.
짧아진 치마는 곧바로 사회적 논쟁을 불러왔다. 1960년대 중반, 피임약의 보급과 여성 노동 참여 확대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강화시켰고, 미니스커트는 이런 시대 변화를 시각적으로 상징했다. 여성들은 더 이상 불편한 코르셋이나 길고 무거운 치마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다. 대신 자유롭게 걷고, 춤추며, 자신의 몸을 표현했다. 미니는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의미했다.
하지만 모든 이가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보수적 시선에서는 미니스커트가 '도덕적 해이의 상징'으로 비춰졌다. 런던 시내에서는 중년 남성들이 쇼윈도 속 미니 마네킹을 부수는 일도 있었고, 일부 교회에서는 “서구 문명의 타락”이라며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과 독일의 일부 학교에서는 ‘무릎 위 10cm 이상’을 금지하는 교칙이 생겼으며, 일본에서는 지하철 안의 몰래카메라 사건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미니스커트는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1960년대 말부터 등장한 초단 미니는 1970년대 들어 정부의 ‘단속 대상’이 되었다. 경찰이 거리에서 여성들의 치마 길이를 자로 재며 “무릎 위 20cm 이상은 불가”라고 단속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언론에서는 “서구 사조의 무분별한 모방”이라 비판했고, 일부 지방 도시에서는 극장 출입이 금지되기도 했다. 그러나 단속이 거셀수록, 미니는 오히려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주장하며 미니를 입었다.
이 같은 단속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났다. 인도에서는 1970년대 초 관광객의 미니스커트를 문제 삼는 종교 단체의 시위가 벌어졌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공공질서 위반’으로 체포된 여성들이 있었다.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미니 착용이 법적으로 금지되기도 했다. 미니스커트는 어느새 단순한 옷이 아니라 사회적 선언문이자 문화적 투쟁의 상징이 된 것이다.미니스커트는 1960년대를 상징하는 대표적 아이콘으로 남았다. 그것은 젊은 세대의 욕망, 자유, 그리고 자기결정권을 드러내는 도구였으며, 동시에 여성의 몸을 상품화한다는 비판을 함께 받았다. 그러나 그 모든 논란조차 미니의 문화적 위상을 더 강화시켰다. 미니스커트는 ‘발명가 없는 발명품’이자, 한 시대의 감각과 갈등을 그대로 입은 옷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