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도 그랬지만,
한국 사람이 진짜 없는건지,
이젠 완전 미국 뚱땡이처럼 보여서 한국인이라곤 전혀 상상도 안되는건지
수다 상대가 없다보니 글만 잡으면 삼천포다.
#만리포 삼천리-_-;;첫번째.
저 김남조 시인의 ‘나무’인지 ‘혼자’인지 ‘하늘’인지-_-;;(이건 ‘소재’로 분류되던거지 싶다-__-;;)를
아무튼 떠올리고보니,
‘국어’ 교과서에 ‘문종: 자유시, 서정시’ ‘형식: 몇열 몇행’등등으로 까맣게 채워가던 시절이 생각난다. 아니…난 고등학교때 지각하고 조퇴하고 나머지 시간엔 잠만잤던 관계로 재수시절 노량진 비린내를 맡으며 행복이란게 뭔지 처음 알아가던 시절, 일률적으로 전 과목을 사야했던 ‘국어(하)’ 쯤의 학원 문제집이 아니었는지.
서울시내 대학만큼 입학하기 어렵다는 대 **학원에 시험까지 쳐가며,
그 개같고 좃같은 비평준화 고등학교를 수업 일수 겨우 채워 졸업한 탓에
어이없는 대학에 원서를 넣고도 줄줄이 다 떨어져 부모님 넋을 상실하게 해드린것으로 족했는지
‘**년 전통’ 대학입시 학원엔 어찌 들어가고 보니 그 ‘국어’란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세 분이셨다.
그 중 한 분이 그러셨다.
이 비린내나는 노량진 콩나물 시루에 들어앉아,
너희는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아닌 재수-_-;;생이지만 스무살이라고.
자신의 영혼을 팔아서라도 스무살로 돌아 갈 수 있다면 기꺼이 그리하겠노라고.
88학번이라고 했었다. 2000년이었으니 서른 둘.
나 이제 한국 나이 스물 넷.
왜, 나 그 마음이 어떤건지 뼛속까지 이해되는 기분일까.
또 내 머리 위에서 아둥바둥거리는 나를 비웃듯 날아가버리는 2004년을 간절히 붙잡고싶다.
난 아직 스물 넷은 커녕 스물 둘에도 적응이 안됐다고.
조금만, 조금만…..연기하자고. 정말로 이럴 수는 없는거라고.
#쓰려고 했던 이야기가 점점 모호해진다. 삼천리 자전거는 잘도 간다. Wrong way두번째.-_-;;;
아뭏든 어떻게 대학이란것엘 들어가서 처음 레포트란걸 썼다.
국문과 철학과 필수 과목이었던 국어 및 작문…그러니까 줄창 글쓰는거만 하던 과목.
무조건 그 이름만으로 내가 우러르는 부류중 하나인 ‘시인’이신 그 젊은 교수님은
내가 “발가벗겨지는 기분”이라고 마지막에 코멘트를 달아놓았음에도,
그리고 자신도 “발표하라면 사양하겠죠?”라고 상냥한듯 코멘트를 되달아놓더니
끝내 그 참으로 개인적었던 글로 내게 그 수업의 첫 발표를 안기셨고,
그 이후 뭐가 어찌되었던 일인지,
고학번 선배들에게까지 내 치부같은 첫 레포트 쪼가리가 돌려지는 수모를 당해야했다.
제길, 예의없는것들-_-+++
요는,
그 발표문, 아니 레포트를 그대로 낭독하고 고개를 들자 싸그리 얼어있던,
그 결코 잊을 수 없던 강의실. 동기들.
그 침묵을 가히 감사하게도 깨주셨던 우리보다 일곱살이나 많던 우리 학번의 왕고 오빠,
스무살부터 5년간 바다에 청춘을 다 바치고 해군 중사로 제대했다던, 의 한마디.
“아, 아, 글도 좋고, 다 좋은데, 발표자는 너무 어려요. 어쩌다가 그런걸 벌써 깨달았어요!”
#나이가 들면서 알아지는게 있다. 내 룸메 감기걸려 아파 자는데도 아랑곳 않고 두들기는 배째라 세번째-_-;;;
젊은 여자들은 혼자 다니지 않는다.
여고생들은 화장실엘 가도 팔짱을 끼고 같이 들어갔다 같이 나오고,
내 주위에 많은 서른의 언니들은 “이제 혼자서도 여행을 할때”라며 떠나서는 하루 이틀만에 돌아온다.
“차는 타겠는데 어디 들어가서 밥은 혼자 못먹겠더라.”
춤 이전 영화에 미쳐있던 고교시절.
난 교복을 입고도 버젓이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 표를 ‘한장’만 끊었고,
(열 다섯살때도, 진짜로 스물 다섯을 바라보는 지금도 스물다섯같다는 소리를 들으니, 시간이 내 맘을 알아 안가시는건지-_-;;)
그 시절 지하철을 한 시간이나 타야했던 ‘코아 아트홀’이나 ‘동숭아트홀’에서 열리던
무슨무슨 영화제가 가고싶어, 의사 사인을 들이밀고 수업중에 유유히 빠져나와야했다.
물론, 다 아닌척했지만,
취미도 흥미도 특기도 오직 공부뿐이던 그 개같고 엿같던 여고의 아이들은
그런 나와 동행은 커녕 동정을 해줄 뿐이었다.
“기집애가”라는 말, 노이로제 걸릴만큼 달고 사는 우리 부모님이다.
그런 부모님 모두 허락하에 열 여덟 여름, 혼자서 생면부지의 땅 여수로 방학 내내 떠났다.
일가 친척이 모두 저 부산과 그 주변 출신이라 우리 가족 중 누구도 본 적 없던 곳이었다.
그 지랄같고 병신같던 여고, 전 학년 통틀어 방학도 없었다.
‘보충수업’과 말뿐인 ‘자율’학습으로 방학중엔 한 개의 도시락만 싸게하는 미덕을 보여주던 곳이었고, 난 창살마저 쳐있던 그 감옥에서의 첫 해 여름, 내 생에 처음으로 종합병원 응급실에 삼일을 내리 실려갔다.
3일째, 아무 이상도 없는데 이럴 리 없다며 찍은 CT.
결국 의사의 답은 ‘신경성 편두통’이었고,
한국의 고등학생이라는 타이틀은 그 돌팔이들의 의견을 타탕하게 해주었고,
학교 이외엔 죽음을 주마.라고 했던 내 부모님들은 사탕 하나를 그런식으로 쥐어주신것이었다.
어찌되었건,
그 이후, 매 년 그렇게 한 번씩 배낭 하나를 달랑 매고 첫차에, 막차에 몸을 실었었다.
서울을 뜰 여건이 안될땐 개목걸이같던 핸드폰을 던져버리고
삼청동 청와대 뒷길, 정동길, 평창동을 해멨고,
그 낯섬이,
연착에 연착을 거듭해도 목적지도, 기다릴 이에대한 걱정도 없음이 좋았던 전라선을 탔다.
대부분의 한국여자들이 잘 하지 못하는 ‘혼자되기’를 난 십대시절부터 이렇게 배웠다.
여행은 철저히 그것을 가르친다.
영화들은 능동적인 독서능력을 잃어가던 나에게 대안이되었었다.
너무 일찍 시작했나.
이미, 오랫동안 혼자여서, 이젠 누가 조금만 다가와도 다 귀찮아진다.
독백에, 이렇게 익숙해지고말았다.
이런 저런 나 사는 이야기를 그 시간 가장 활발히 들낙거리는 곳에 올리면,
사람들은 언제나 “참 멋지게 사는군요.” “역시 넌 재미나게 잘 사는구나.”라고 한다.
그러나,
영국오고 미국 시골에서 못놀았던 춤판에 잠시 꽂히다보니 화제가 자꾸 그리로 돌아가서
‘영국일기’가 아니라 ‘춤판에서 다시 썩기’정도가 되는거 같아 민망함에,
이젠 뜸하게 발걸음하는 그 동네 게시판에다 한 번 썼더니,
내 한참 썩다가 발 빼던 무렵 시작한 이들, 아예 얼굴도 모르는 뉴페이스들은 역시,
멋진, 생생하고 깊은, 버석거리는 고독이 묻어나는(놀랐음. 왕따인거 다 눈치채는구나ㅜㅜ)..이라는 답글을 줄줄이 다는 반면,
내가 어떻게, 푸릇푸릇해야할 스물, 그리고도 몇해 더를 퀘퀘한 지하 연습실에다 갖다 박은지 아는 올드 멤버들은,
“아직도, 거기서도 그러고 있냐. 일단 연애를 좀 먼저 하란 말이다.”란 송곳같은 댓글로 가을의 건조한 바람에 말라만 가는 내 심장을 쳐 올린다. 제길.
*세 시간동안 혼자 시트 깔아놓고 요가 동작에 키보드 두들겼더니,
2주 내내 프레쉬먼 젊음 불사르시고 몸져누으신 룸메 기침을 더 하신다.
졸라 미안하다.
첫댓글저 다 읽었어요. 호홋, 저는 고딩 때, 거진 매일 엎드려 자다 출석부 모서리로 머리 맞은 적도 있죠, 참나 엊그제 성적표 떼어서 살펴봤더니, 고1 때 다 양가양가양가.음악 미술 체육만 수수수 더군요 ㅋㅋㅋ. 그리고 고3 땐, 동네 서점 바닥에 쭈그리며 책 3권씩은 읽고 갔음. 서점알바생들이 "쟤 또 왔어"
요즘 고딩생활은 그렇게 하는군요..ㅋㅋㅋㅋ 근데 변하지 않은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밥먹으러 갈때도 친구랑 팔짱끼고 식당 의자에 앉을때까지도 팔짱을 끼고..ㅋㅋㅋㅋ 화장실 문 바로 앞에까지두 팔짱을 끼고 들어간다는거..ㅋㅋㅋㅋ(인내심이 필요했지만 그래두 다 읽었슴당..ㅋㅋㅋ)
저도 재밌게 다 읽었지요.별로 길게 느껴지지도 않는데요.님은 혼자이길 선택해서 그때부터 길을 떠나곤 하셨지요? 저처럼 선택하지 않아도 고딩때부터 혼자살게 되는 사람도 있답니다.고딩땐 하숙,대학때부터 혼자 살았지요.작년 여름 결혼할 때까지 친구들이 부모슬하 떠나 결혼해서 가정이루고 아이낳고 하는 거보면서
저는 주욱 혼자 살았습니다.사는 거 자체가 혼자니까 혼자되려고 길을 떠날 필요도 없었구요.아무도 간섭하지않고 그렇게 살면 좋을까요?자유로운 대신에 외로움이란 댓가를 치루는 게 좋다면요.제 사주중 생시에 천고가 있다더군요.시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운명이라 전 평생 외롭대요.주어진대로 사는 수밖에요...
사주라.. ㅎㅎ 전 사주는 안봤는데.. 한번은 친구들이랑 찜질방가서 얘기하다가.. [내 사주엔 외로울 '고'가 들었는가봐.. 이게 뭐다냐~] 뭐 이런 얘기를 했더니.. 옆에서 한 아주머니가.. 별소릴 다한다며 째리시더군요.. 제 나이 얘기했음.. 그 반응 안나왔을터인데.. ㅋㅋ
혼자 여행은 아직도 안해 봤지만 혼자 영화를 보거나 혼자 밥 먹는거는 처음이 어려운거 같아요...전 여태까지 혼자 영화 본거만 200개 정도 되는거 같아요. 가끔은 혼자일수 있는게 얼마나 좋은지....그런데 한국 사람들...특히 언니들이나 아는 여자또래 애들은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 함...ㅡㅡ;;혼자영화 보는게이상?
첫댓글 저 다 읽었어요. 호홋, 저는 고딩 때, 거진 매일 엎드려 자다 출석부 모서리로 머리 맞은 적도 있죠, 참나 엊그제 성적표 떼어서 살펴봤더니, 고1 때 다 양가양가양가.음악 미술 체육만 수수수 더군요 ㅋㅋㅋ. 그리고 고3 땐, 동네 서점 바닥에 쭈그리며 책 3권씩은 읽고 갔음. 서점알바생들이 "쟤 또 왔어"
요즘 고딩생활은 그렇게 하는군요..ㅋㅋㅋㅋ 근데 변하지 않은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밥먹으러 갈때도 친구랑 팔짱끼고 식당 의자에 앉을때까지도 팔짱을 끼고..ㅋㅋㅋㅋ 화장실 문 바로 앞에까지두 팔짱을 끼고 들어간다는거..ㅋㅋㅋㅋ(인내심이 필요했지만 그래두 다 읽었슴당..ㅋㅋㅋ)
hahaha.. going to toilet with friends. it's weird, i hate that!!! kkk. as my friends(male) say, am i a real guy(wlsWkTkdkdl~)???!!! lol
글을 너무 잘쓰세요.
국문과를 다니셨던 위력이 글에서 느껴집니다~~~
ㅋㅋ 제가다읽었지용~ 나는 혼자 잘노는구먼... 배고프면 혼자식당가서밥먹고.... (__* 아이들은 이런나를 XXX라고부르지요 ㅋ
저도 재밌게 다 읽었지요.별로 길게 느껴지지도 않는데요.님은 혼자이길 선택해서 그때부터 길을 떠나곤 하셨지요? 저처럼 선택하지 않아도 고딩때부터 혼자살게 되는 사람도 있답니다.고딩땐 하숙,대학때부터 혼자 살았지요.작년 여름 결혼할 때까지 친구들이 부모슬하 떠나 결혼해서 가정이루고 아이낳고 하는 거보면서
저는 주욱 혼자 살았습니다.사는 거 자체가 혼자니까 혼자되려고 길을 떠날 필요도 없었구요.아무도 간섭하지않고 그렇게 살면 좋을까요?자유로운 대신에 외로움이란 댓가를 치루는 게 좋다면요.제 사주중 생시에 천고가 있다더군요.시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운명이라 전 평생 외롭대요.주어진대로 사는 수밖에요...
사주라.. ㅎㅎ 전 사주는 안봤는데.. 한번은 친구들이랑 찜질방가서 얘기하다가.. [내 사주엔 외로울 '고'가 들었는가봐.. 이게 뭐다냐~] 뭐 이런 얘기를 했더니.. 옆에서 한 아주머니가.. 별소릴 다한다며 째리시더군요.. 제 나이 얘기했음.. 그 반응 안나왔을터인데.. ㅋㅋ
구..국문과였음 풋풋한 문학청년이었기라도 하게요-_-;;; 여하간, 이렇게 게시판에서라도 대화할 수 있게 해주시는 모든 님들 감사ㅜㅜ
^^~저도 다 읽엇어요~ 저도 아직 식당가서 혼자 밥 못먹고 혼자 영화못보거든요... 이런건 천천히 배워야겟네요~~
혼자 여행은 아직도 안해 봤지만 혼자 영화를 보거나 혼자 밥 먹는거는 처음이 어려운거 같아요...전 여태까지 혼자 영화 본거만 200개 정도 되는거 같아요. 가끔은 혼자일수 있는게 얼마나 좋은지....그런데 한국 사람들...특히 언니들이나 아는 여자또래 애들은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 함...ㅡㅡ;;혼자영화 보는게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