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산책>
로렌스의 ‘지혜의 일곱 기둥’-아랍반란 초기전투(하)
전쟁의 목적, 아랍 자유이지 터키군 몰살은 아니다
아랍 독립 위해 웨지 일대 부족 동참 속 로렌스, 인명 피해 수반 전투에 의문
깊은 사색 통해 전술 방법 등 깨닫고 사막 이용 기동성 등 아랍군 장점 살려
게릴라전·심리전으로 부전승 이끌어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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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로렌스와 파이살 왕자가 변화된 전략·전술과 아랍반란 대의의 확산을 통해 아랍 반란 초기전투의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알아본다.
아랍 반란 초기부터 핵심적인 전장이던 메디나 일대는 아랍군이 반드시 점령해야 할 성지였다. 메디나 전투에서 패하고 메카까지 터키군에게 점령당한다면 아랍독립전쟁의 씨앗마저 뽑혀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아랍군은 악전고투 끝에 요충지에 해당하는 라베그와 옌부를 지켜낸다. 터키군도 영국 해군의 지원을 받는 아랍군을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고 메디나를 중심으로 대규모 방어진지를 구축하는 등 지구전 태세로 전환한다
지혜의 일곱 기둥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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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전력을 정비한 아랍군은 대량 피해가 예상되는 메디나 공격을 뒤로 미루는 대신 메카를 비롯한 라베그·옌부 일대 방어 준비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파이살이 중심이 된 대규모 연합군을 편성해 북방의 주요 요충지인 웨지로 진격한다. 300㎞가 넘는 진격로 일대의 아랍 부족들은 하나같이 파이살 왕자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독립전쟁에 동참한다.
상대적으로 메디나 북방 일대에서 수세로 전환한 터키군은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항복하거나 도주한다. 아랍군이 웨지를 점령하고 난 이후 메디나의 터키군이 드디어 철수하려는 징후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자 영국군 사령부에서는 퇴각하는 터키군을 섬멸하도록 요청한다. 파이살 군은 출격 준비를 하고, 이를 위해 웨지 북부 지역의 모든 아랍 부족과 메디나 서남 지역까지 진출해 있던 압둘라 왕자에게 동참할 것을 부탁한다.
파이살 군의 작전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동안, 어떻게 된 일인지 압둘라 군은 두 달이나 넘게 꼼짝도 하지 않는다. 답답해진 파이살은 로렌스로 하여금 압둘라에게 가서 영문을 파악하게 한다.
로렌스는 해충의 공격을 받아가면서 몇백㎞의 황무지를 이동한 끝에 압둘라에게 파이살의 편지를 전하고는 고열로 쓰러져 열흘 동안 꼼짝 못하고 누워 앓게 된다. 로렌스는 이 기간에 아랍반란의 목적, 전쟁의 형태, 수행 방법 등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숙고하게 된다.
로렌스는 옥스퍼드 대학 시절 왕성한 호기심을 갖고 섭렵했던 병법의 대가들 즉 나폴레옹, 클라우제비츠, 몰트케, 조미니 등의 이론을 되새겨 봤지만, 그중 어느 하나도 현실에 맞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특히 수많은 인명 피해를 수반하는 치열한 전투가 바람직한 것인지에 의문을 갖게 됐고, 전쟁의 목적이 아랍의 자유를 얻기 위해 지역 내 터키군을 몰아내는 것이지 터키군의 몰살이 결코 아님을 명확하게 인식한다.
이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랍군의 장점, 즉 사막 지역에서의 특유의 기동성과 넓은 지역에 분포한 부족들의 적시적 활용에 적합한 게릴라전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심지어 심리전까지 구상한다. 작전 구상을 마친 로렌스는 병상에서 회복하자마자 압둘라에게 헤자즈 철도 공격을 권유하지만 압둘라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압둘라가 일부러 군사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척 행동하는 것이 파이살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라는 것을 간파한 로렌스는 압둘라 휘하의 한 부족장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철도 폭파를 결행해 적지 않은 전공을 세운 후 또다시 웨지로 복귀한다.
로렌스가 압둘라 군 지역에서 활약하는 동안 파이살 군 지역에서는 뉴컴 대령을 비롯한 영국군 폭파 전문가들이 철도 파괴 작전을 매우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아랍 반란의 대의가 빠르게 전파되고 있었다. 아라비아 지역에서 서열 4위에 해당하는 누리 샤알란은 북부 지역 부족의 생존을 위해 터키에 동조하고 있었는데, 파이살과의 과거 우정과 아랍 반란의 대의를 받아들여 파이살 군의 작전에 적어도 방해가 되지 않을 것임을 다짐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앞으로 다마스쿠스까지 진격하는 데 동맹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에서 위대한 전사 아우다 아부 타이가 파이살을 찾아와 충성을 맹세한 것은 굉장히 큰 소득이었다.
지금까지 아랍 반란 초기전투의 성공적인 반전과 로렌스의 전법 구상 등을 알아보았다. 로렌스는 깊은 사색을 통해 전쟁의 목적을 이해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전법을 구상해 냄으로써, 부전승이론의 부전이굴인지병(不戰而屈人之兵)을 이끌어냈다. 이를 통해 전쟁의 목적과 이를 구현하는 방법, 지휘관의 중요성을 깨달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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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병 기 교수 국민대 정치대학원
추억의 영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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