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내 고양이에 대해 말하련
다. 고양이는 살아 있다. 그들은 하루에 알을 두 개씩 낳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종족 번식이 안 되니까. 대청소 한 번에 멸종 위기에 놓이니까. 후우 입김 한 번에도 날아가니까. 그럼에도 고양이들은 언제나 어느 구석에나 살아 있다.
아주 작다:
나는 그들에게 먹이를 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보이는 내가 언제나 살갗 껍질을 떨어뜨려 주니까. 고양이들은 살 비듬 한 알갱이 속에 아파트를 지을 만큼 작으니까.
겨우 살아 있다:
털면 털리고, 빨아들이면 먹히고, 잔기침 한 번에도 꼬리를 내린다. 내 고양이들은 어찌나 작은지, 대물 렌즈 위에 올려놓고 배율을 오백 배 천 배 올려도 그 앙증맞게 달싹거리는 입이 보일까 말까 한 놈은 그래도 큰 놈이다. 공기 속에 떠 있지만 언제나 먼지 가장자리에. 불면 불릴까 깃털이라도 스칠까 달달 떤다. 추위에 약한 것들, 나는 더운 여름날 문도 못 연다. 겨우 살아 있는 것들, 불쌍한 것들, 날 고양이 엄마라고 불러줘. 너무 작아 품에 안지도 못할 것들. 할 수 없어, 땀샘 구멍에라도 넣어 줘야 할 것들. 책 속의 행간 속으로 빨간 고양이가 살짝 비친다. 아이고 귀여운 것. 고양이는 어디에나 있다. 나의 뇌세포 한가운데. 하루에 알 두 개씩. 이불 속에 알 두 개씩. 빨간 눈 앙증맞은 울음 소리. 소파 뒤에 오글거리는 나의 고양이들. 학교 갔다 돌아오면 이불장 위 먼지 이불 덮고, 좋아라 가르릉거리는 고것들의 울음 소리.
그러나 요것들:
요 귀여운 것들. 생명의 불 꺼지면 삽시에 나 먹어치울 것들. 가죽 소파를 비 오는 한데에 내어놓게 하는 것들. 내 콧구멍 속에도 집을 짓는 것들. 내 코끼리마저 파먹어 치울 것들. 낮에는 안 보이는 별과 같은 것들.
<우리 시대의 시인, 시와 반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