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LDBmGj9xxpM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 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꾀어 있는 기억의 廢水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
최승자: 1952년 생
1971년 고대 중문과, '고대문화' 편집장을 지내는 중 블랙리스트에 올라 쫓겨남(이유 없음)
갈곳 없던 그는 '홍성사' 편집부에 들어간다.
정병규가 편집장으로 재직한 덕일 터다.
그 시절 홍성사는 대단한 출판사로 낙양의 지가를---
'우리 시대의 사랑'이 문학과 지성에 발표---
시집: '이 시대의 사랑'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등
<제1악장> Allegro con spirito. 먼저 축하의 양식이 첫머리에 나타난다.
<제2악장> Andante. 우미하고 온화한 가락이 축제를 축하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제3악장> Menuett. 무곡, 미뉴에트조가 사용되고 있다. 교향곡 속에 이 미뉴에트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당시의 관례인데, 특히 이 교향곡의 것은 길고 또 트리오가 대조적으로 중앙에 삽입되어 있다.
<제4악장> Presto. 축제의 클라이맥스를 나타내는 악상이 들뜬 기분을 흘러 넘치게 하면서 쾌활하게 급히 연주되고, 바이올린의 힘찬 화현은 극도의 소탈함과 떠들썩함을 유지하면서 마친다. 글출처: 웹사이트
모차르트의 음악성
여행 속에서 성장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여행을 하면서 음악을 배웠고 작곡을 했던 사람이다. 그의 작품 활동 시기는 하이든이 27세에 최초의 교향곡을 만든 데 반대 모차르트는 8세경부터 작곡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모차르트는 1791년에 세상을 떠났으나 하이든은 그 이후에도 18년이나 장수했다. 모차르트는 어려서부터 하이든을 존경했다. 하이든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그의 작품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죽은 후의 하이든의 작품들은 오히려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로부터 두 사람의 예술에 대한 소박한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서로 배울 점은 배운다는 태도는 우리도 배워야 할 것이다.
모차르트는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오늘날 그의 작품들에는 번호가 붙어 있는데, 이것은 오스트리아의 음악평론가 루트비히 쾨헬(1800-1877)이 모차르트의 생애와 작품을 연구하여 연대순으로 번호를 붙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차르트의 작품에는 쾨헬의 첫 글자인 K를 작품 번호의 맨앞에 붙이게 되었다.
모차르트는 대단히 빠른 속도로 작곡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때로 그는 두 곡을 동시에 작곡했다고 한다. 그러나 작곡에 대한 그의 이러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작품들은 하나의 선율에도 소홀함이 없이 훌륭할 따름이었다.
그의 생애는 신동으로의 칭송으로 시작해서 빈곤 속에서의 비참한 최후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들어 보면 슬픔이나 외로움 따위는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맑고 투명하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자주 베토벤의 음악과 비교되곤 한다. 확실히 베토벤의 음악에는 모든 것을 정복하고자 하는 힘이 흘러 넘친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음악은 작은 속삭임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려는 느낌을 받는다. 모차르트의 음악에는 맑게 펼쳐진 가을 하늘 같은 청명한 깊이가 담겨 있으며, 시골 마을에 핀 아름다운 꽃과 같은 부드러움이 있다.
사런 느낌은 그가 어릴 때 쓴 작품에서도 느껴진다. 말년의 작품에서는 형식이 극히 단순화되고 선율은 더욱더 아름답고 섬세해졌다. 모차르트는 선율의 작곡가임에 틀림없다. 그의 음악적 생명은 미묘한 선율의 변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하나의 선율이 사라지려다 다시 살아나고 살아나는 듯하다가 다시 없어져 간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는 미묘한 움직임을 느끼게 된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는 마지막까지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그리고 그가 남긴 음악은 이러한 인간적인 숙명을 아름답게 연주할 것이라 할 수 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인간의 생명이란 언젠가는 소멸되어 없어진다는 인생무상을 출발점으로 한다. 아니 이 세상에서 형태를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소멸되어 간다는 아름다운 슬픔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모차르트의 음악의 아름다움은 모든 것과의 이별에서 오는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여린 풀잎처럼 섬세한 생명에의 환희로 반짝이고 있다. 글출처: 웹사이트
---모차르트의 교향곡
9세 때부터 작곡하기 시작한 교향곡은 그 수가 50여 곡에 달한다. 작품 목록에 정식으로 자리잡은 41곡의 교향곡을 살펴보면 초기의 교향곡은 바로크 시대의 이탈리아 오페라 서곡이나 전고전 시대의 J. C. 바흐의 교향곡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점차 만하임 악파와 빈 고전파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빈에 정착하기 이전인 1773년 말부터 1774년 초에 작곡된 G단조(K.183)와 A장조(K.201)에는 질풍노도 양식의 강한 감정표현이 나타난다. 주제의 통일과 형식의 확장은 이미 고전양식에 숙달되었음을 보여 준다. <파리>교향곡(K.297)과 잘츠부르크에서 쓴 C장조(K.338)는 잦은 여행을 통해 얻은 성과로 보여지며 이후 빈에 정착하면서 작곡한 6개의 교향곡은 고전 교향곡의 걸작품들이다
세레나데로 작곡된 곡을 교향곡으로 전용(轉用)한 <하프너>교향곡(K.385), 느린 서주부가 1악장에 삽입되어 하이든적(的)이라는 평을 받는 <린츠>교향곡(K.425), 서주부가 있는 3악장의 <프라하>교향곡(K.504), 그리고 모차르트 최후의 3대 교향곡 Eb장조(K.543), G단조(K.550), C장조(주피터, K.551) 등이 이 6개의 교향곡에 해당된다. 1788년, 불과 40여일 만에 작곡된 마지막 3대 교향곡은 모차르트를 대표하는 교향곡일 뿐만 아니라 고전 시대 교향곡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백조의 노래'라는 별명이 붙은 제39번 Eb장조 K.543)는 전형적인 고전주의 형식으로 하이든의 영향이 짙게 나타난다.
우아하면서도 경쾌함이 있는 이 작품의 미뉴에트 악장은 특히 유명하다. 제40번 G단조(K.550)는 우울한 서정성이 긴장감을 유지하며 전개된다. 비극적 우아함으로 표현되는 페이소스(pathos)적인 감동은 낭만주의 음악을 예견케 한다. 제41번 C장조(K.551)는 <주피터>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교향곡이다. <주피터>라는 제목처럼 스케일이 크고 장려하다. 제1악장에 나타나는 목관악기의 대위선율과 제4악장의 푸가 기법은 이 작품을 화성 양식과 대위법 양식의 융합으로 이끌어 가는 모차르트의 독창적인 창작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하프너 교향곡>은 잘쯔부르크의 명문 하프너가의 의뢰를 받아 만든 것으로, 1782년 모차르트가 가장 다망한 해의 작품이다. 이때부터 모차르트는 가극 <후궁으로부터의 유괴> 작곡에 전념하고 있었고, 또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한 직후이어서 이 교향곡의 주문에는 엄밀히 말해 적극적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무튼 상대는 하프너 가문이라 거절치 못하고 마지못해 응한 것이 이 곡이었는데, 작곡이 진척됨에 따라서 모차르트도 끌려가다 시피 하여 2주일 동안 완성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반년 쯤 지나자 모차르트는 이 곡의 훌륭함에 스스로 놀라, 이런 걸작은 없다고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적기까지 했다. 글출처: 웹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