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경중마방서(古鏡重磨方序) 2
중국의 제왕과 학자들이 남긴 70여종의 명(銘)과 잠(箴)과 찬(贊)을 퇴계(退溪)선생께서 모아서 애송(愛誦)하시던 일생의 좌우명(座右銘)들로 엮어진 책이다.
36. 진덕수(眞德秀)의 몽재명(蒙齋銘)
蒙齋銘 : 역의 몽괘를 음미하다
物盈兩間, 有萬其數.
하늘과 땅 사이에 만물이 가득차서 그 수가 만 가지나 되나니,
天理流行, 無處不具.
천리가 유행하여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구나.
維象之顯, 理寓于中,
현상으로 드러나고, 이(理)가 그 가운데 들어 있네.
反而求之, 皆功吾軀.
돌이켜 그것을 구하면 모두 내 몸에 간절한 것이로구나.
觀天之行, 其敢遑息.
하늘의 운행을 살펴보면 감히 쉴 겨를 이 있겠는가?
察地之勢, 亦厚于德.
땅의 지세도 살펴보면 또한 덕이 두텁구나.
天人一體, 物我一源.
하늘과 사람이 일체요, 만물과 나는(物 我)는 한 근원이다.
驗之義經, 厥旨昭然.
역경에서 증험해 보면 그 뜻이 환하네.
卦之有蒙, 內險外止.
괘에 몽괘(蒙卦)가 있는데, 내괘(內卦)는 감(坎)이고 외괘(外卦)는 간(艮)이라.
止莫如山, 險莫如水.
그침은 산만 같은 것이 없고, 험함은 물 만 같은 것이 없다.
曷不曰水, 而謂之泉.
어째서 '山下出水'이라 하지 않고, '山下出泉'이라 하였는가?
濫觴之初, 厥流涓涓.
처음 넘쳐흐를 때에는 졸졸졸 흐르고,
其生之微, 若未易達.
실오라기만큼 가늘어 쉽게 이르지 못할 것 같아서라네.
其行之果, 則不可遏.
그러나 그 흐름이 과감해지면, 막을수 가 없게 되나니
有崇玆山, 潤澤所鍾.
높아 서있는 이 산에는 물먹은 늪들이 모여 있으면서
維靜而正, 出乃不窮.
고요하고 바르게 흘러나와서 끊임이 없 구나.
始焉一勺, 終則萬里.
처음에는 한 숟갈이었으나, 마침내 만리 에 이르네.
問奚以然, 有本如是.
어찌하여 그런가 문는다면, 본원이 이와 같기 때문이라.
是以君子, 法取於斯.
그러므로 군자는 이에서 법을 취하여,
維義所在, 必勇于爲.
의가 있는 곳에서 반드시 용감하게 행 한다네.
維行有本, 繄德焉出.
행함에 근본이 있으면 아, 덕이 흘러 나 로는 구나.
是滋是培, 其體乃立.
이를 자양(滋養)하고 북돋우면, 그 체 (體)가 이내 세워 지나니.
靜而養源, 一心澄然.
고요히 본원을 기르면, 한 마음이 깨끗 해지리라.
動而敏行, 萬善畢陳.
움직여 민첩하게 행하면, 만 가지 선이 모두 베풀어지리라.
厚化川流, 初豈二致.
대덕(大德)과 소덕(小德)이 어찌 처 음부터 둘이었던가?
溥博淵泉, 其用不匱.
드넓은 연원이 되는 샘물은 그 작용이 다함이 없구나.
於惟簡肅, 宜有此孫.
훌륭한 간숙공에게 이런 자손이 있슴은 마땅하다네.
揭名齋扉, 目擊道存.
재실 문 위에 편액을 거니 도(道)가 있 음을 보겠구나.
養正於蒙, 奚必童稺.
어려서 바름을 기르는 것이, 어찌 반드 시 어릴 때뿐이겠는가?
終身由之, 作聖之地.
종신토록 이에 말미암이니, 성인이 되는 터전이로다.
(解說)
몽재명(蒙齋銘)은 '재실이름을 몽재라고 붙인데 대한 진서산의 명'이다.
원래 몽(蒙)이란 주역의 몽괘에서 따온 글자로, 상괘(上卦)인 산을 뜻하는 간(艮)괘와, 하괘(下卦)인 물을 뜻하는 감(坎)괘로 구성되어 있다.
우뚝하게 솟은 큰 산의 품속에 근원을 둔 샘은 처음에는 미약하게 흘러 나오지만 계속 끊임없이 흘러 큰 내를 이루고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 여기서 산은 고요히 앉아 끊임없이 수행하여 덕을 길러가는 선비에 비유되고 있다.
마치 산이 우뚝 버티고 앉아 끊임없이 물을 안으로 안으로 머금어 마침내 때가 되면 그 물을 분출하여 거침없이 나아가 결국 성인의 경지인 바다에 이르듯이, 군자도 일이 없을 때는 끝없이 덕을 함양하여 고요히 머물다가 일단 의로운 일이 생기면 용처럼 일어나 과감하게 용맹정진하여 마침내 일을 이룬다.
근원이 깊은 샘은 마르지 않듯이 평소 산처럼 앉아 마음을 잘 수행하고 덕을 함양한 사람은 언제나 그 품이 넉넉하고 덕과 향기가 마를 날이 없다.
또한 한 집안의 흐름에서도 그 윗대 조상의 덕이 잘 쌓인 집안은 그 덕의 샘이 면면히 이어져 먼 후손에 이르러도 그 덕과 그 도의 흐름이 멈추지 않는다(積德之家 必有餘慶).
그리고 몽(蒙)은 아직 어린 학동으로 비록 지금은 모든 면에서 미약하지만 매일 매일 경(敬)의 자세로 마음속에 내재된 명덕(明德)을 밝히고 주변 생명들과 더불어 빛을 교류하면서 수행을 계속해가면 작은 샘이 큰 냇물을 이루듯이 덕이 쌓여 마침내 성현의 길에 이를 수가 있다.
그러므로 몽괘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동몽(童蒙)이란 뜻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수행은 어찌 어린 시절에만 국한될 것인가? 경(敬)의 자세로 ‘거인욕 존천리(去人欲 存天理)’해가는 수행의 길은 죽고 나서야 그만둘 종신지사(終身之事)가 아니던가?
37. 진덕수(眞德秀)의 경의재명(敬義齋銘)
敬義齋銘 : 경과 의를 함께 중시해야 한다
惟坤六二, 其德直方.
역(易)의 곤괘(坤卦) 두 번째 효(爻)는 그 덕이 곧(直)고 방정(方正)함을 뜻한다.
君子體之, 爲道有常.
군자는 이를 본받아 도를 행함에 떳떳함이 있다.
內而立心, 曰直是貴,
維敬則直, 不偏以陂,
안으로 마음을 세움을 세우는 데는 곧음이 중요하니, 오직 공경으로써 이를 곧게 행하되, 치우쳐 막히지 않게 하고,
外而制事, 曰方是宜,
愉義則方, 各當其施.
밖으로 행할 때는 방정함이 중요하니, 오직 의로써 이를 행한다.
曰敬伊何, 惟主乎一,
澟然自指, 神明在側.
공경함이란 어떤 것인가? 오직 하나의 천리(天理)를 받들어 마치 신명(神命)이 옆에 있는 듯, 두려운 마음으로 보존해 가는 것을 말한다.
曰義伊何, 惟理是循,
利害之私, 罔汨其眞.
의(義)란 무엇인가? 정당한 이(理)를 따름으로써 이해관계에 빠져드는 사사로움이 그 천진함을 가리지 않게 함이다.
靜而存養, 中則有主,
動而酬酌, 莫不中矩.
고요하게 마음의 천리를 보존하고 길러 가면 그 가운데 근본이 바로 서서 사물을 마주함에 도리에 맞지 않음이 없다.
大哉敬乎, 一心之方.
거룩하구나, 공경함이여! 한 마음의 곧음이 되고 지극하구나,
至哉義乎, 萬事之綱.
마땅한 의리여! 만 가지 일의 근본이 된다.
敬義夾持, 不二不忒,
表裏洞然, 上達天德.
이 경(敬)과 의(義)는 서로 어긋나지 않으므로 둘을 함께 수행해 나가면 안과 밖이 훤히 통하여 마침내 위로 하늘의 덕에 도달하게 된다.
昔有哲王, 師保是詢,
丹書有訓, 西面以陳.
옛날 명철한 왕은 이 경(敬)과 의(義)를
스승으로 삼고 이를 단서(丹書)에 기록하여 소중한 자리에 보관하였다.
敬與怠分, 義與欲對,
一長一消, 禍福斯在.
경(敬)은 나태함과 대립되고, 의(義)는 사사로운 욕심과 대립되는데, 이 중 어느 쪽에 마음을 두느냐에 따라 화와 복이 뒤따른다.
怠心之萌, 闒焉沈昏,
欲心之熾, 蕩乎狂奔.
나태한 마음이 싹트면 용렬하여 어두운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사욕이 불타오르면 이(利)를 쫓아 미친 듯이 날뛴다.
惟此二端, 敗德之賊,
必壯乃猷, 如敵斯克.
이 나태함과 사욕이야말로 덕을 무너뜨리는 도적이니, 원대한 마음을
내어 마치 전쟁터에서 적을 무찌르듯 물리쳐야 한다.
怠欲歸泯, 敬義斯存,
直方以大, 協德于坤.
나태함과 사욕을 극복하고 나면 경과 의가 보존되어, 마음은 곧고 행동은 방정하여 곤괘의 덕에 합치될 수 있는 것이다.
一念小差, 視此齊扁,
嚴師在前, 永詔無倦.
문득 재실(齋室)의 편액(扁額)을 보니 엄한 스승이 서 있는 듯 가르침이 다할 날이 없구나.
(解說)
진덕수(眞德秀)는 남송(南宋)의 복건성 출신이다. 자는 경원이며 세상 사람들로 부터 서산선생(西山先生)이라 불리었다. 저서로 심경(心經)이 있다. 퇴계는 특히 이 책을 몹시 소중하게 여겼다.
선생이 거처(居處)하는 방문 위에 경의재(敬義齋)라는 편액(扁額)을 걸어 놓고 그 편액을 두고 명(銘)을 지은 것이다. 군자(君子)가 거하는 방의
이름은 '공경하고 의로운 곳 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체는 경(敬)과 의(義)이다. 경은 내면 수행에 중점을 두고 마음을 곧고 밝게 하여 항상 인욕과 천리(天理)의 갈림길에서 천리를 따르고자 하는 긴장된 다짐의 자세이다.
그리고 이 경의 실천방안은 '유정유일 윤집궐중(惟精惟一 允執厥中)'에 있다. 오로지 면밀히 살피고 살펴 그 천리(天理)를 잡아가는 데 있는 것이다. 한편 의(義)는 외면 행동에 중점을 두고 바깥 행동을 방정하고 단정하게 가꾸어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 경과 의는 어느 한 쪽도 수행에서 무시할 수 없다. 마치 새의 두 날개처럼 겸전쌍수(兼全雙修)해야만 한다. 남명 조식 선생은 '내명자 경(內明者敬)'이라는 글귀와 '와단자 의(外斷者義)'라는 글귀가 새겨진 검(義劍)을 몸에 차고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달고 다니면서 한 생각 한 행동을 철저히 단속해 갔다.
38. 장남헌의 경재명(敬齋銘)
敬齋銘 : 장식의 공경하라
天生斯人 良心卽存
聖愚曷異 敬肆是分
하늘이 인간을 낼 때 모두에게 양심(良心)을 부여했으니 어찌 성인(聖人)과 어리석은 자가 차이가 있겠는가? 다만 천리를 공경하는 경(敬)과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사(肆)의 구별이 있을 뿐이다.
事有萬變 統乎心君
一頹其綱 泯焉絲棼
일에는 천 가지 만 가지 변화가 있을지라도 마치 임금처럼 경(敬)으로 다스리면 한결같이 질서가 잡히고, 만약 이 경(敬)의 벼리를 놓아버리면 모든 질서가 무너져서 만 가지 일이 실타래처럼 얽히게 된다.
自昔先民 修己以敬
克持其身 順保常性
옛적부터 선인(先人)들은 이 경(敬)으로써 스스로를 닦아 그 몸을 다스리고 천리를 보존하여 떳떳한 본성을 지켰다.
敬匪有加 惟主乎是
履薄臨深 不昧厥理
경(敬)이란 무엇을 더 보태고 쌓아가는 것이 아니고 오직 바름(天理)을 주인처럼 받들어 마치 살얼음 위를 밟고 가듯 깊은 물가에 이른 듯 천리(天理)를 보존하는데 정성을 다 하는 것을 말한다.
事至理形 其應若響
而實卓然 不與俱往
우선 자신의 이(理)에 밝게 되면 바깥의 일마다 그 속에 들어 있는 이(理)가 훤히 드러나고 내외의 이(理)의 음향이 마치 메아리처럼 부합되고, 그 열매는 아주 뛰어나서 다른 것과 견줄 수가 없게 된다.
動靜不違 體用無忒
惟敬之功 協于天德
정동(靜動)과 체용(體用)에 관계없이 한 치도 어기거나 어긋남이 없으니 참으로 경의 위력은 하늘의 덕에 이른다 하겠다.
嗟爾君子 敬之敬之
用力之久 其惟自知
아, 군자들이여, 오로지 경하고 경하라.
오래 힘써 나아가면 어떻게 하는 것이 마땅한지 스스로 알게 되니,
勿憚其艱 而或怠遑
亦勿迫切 而以不常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고, 게으르거나 서두르지 말고, 여유 없이 조급하게 굴어 마땅함을 잃는 일도 없도록 하라.
毋忽事物 必精吾思
察其所發 以會于微
사물을 소홀히 넘기지 말고 반드시 정밀히 살피고 면밀히 생각하여 그 발(發)하는 바를 관찰하여 미묘함에 이르도록 하라.
忿慾之萌 則杜其源
有過斯改 見善則遷
노여움과 욕심이 일어나면 천리의 근원은 막혀버리니 잘못이 있으면 바로 고치고 착함을 보면 곧 실천하라.
是則天命 不遏于躬
이것이 곧 하늘의 명령이니 항상 몸에서 떠나지 않도록 하라.
魚躍鳶飛 仁在其中
於焉有得 學則不窮
知至而至 知終而終
물고기가 뛰고 솔개가 나는 그 속에 우주의 인(仁)이 들어 있으니 순간순간에 얻음이 있고 이를 통해 학문이 관통되면, 비로소 그쳐야 할 것을 스스로 알게 된다.
嗟爾君子 勉哉敬止
아, 군자들이여, 경과 지선(至善)의 자리에 머묾에 힘쓰라.
成己成物 匪曰二致
나를 닦는 일과 이웃을 위하는 일은 원래 둘이 아니다.
任重道遠 其端伊邇
군자의 책임은 무겁고, 수행의 길은 멀지만 그 단서는 바로 가까이 있는 경(敬)에서 비롯된다.
毫釐有差 繆則千里
이 경의 자세에서 털끝만큼이라도 벗어나면 수행은 하늘과 땅만큼의 간격으로 어그러지고 만다.
惟建安公 自力古義
我作銘詩 以諗同志.
건안공께서 스스로 옛날의 바른 도리에 힘쓰니, 이에 나 또한 명을 지어 뜻을 같이 하고자 한다.
(解說)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천리(天理)라는 양심을 하늘로부터 공평히 부여받았다. 그럼 무엇이 이같이 체적(体的)으로는 동등한 인간을, 어리석은 이, 현명한 이, 성스러운 이로 구별지어 가느냐? 바로 경(敬)이다.
경(敬)은 누구에게나 천성적으로 부여되어 있는 양심, 즉 천리를 보존하고 여기에 입각하여 행동하려는 스스로의 다짐을 말한다.
인간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하고, 수없이 많은 행동을 한다.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나고 한 행동 한 행동 일어날 때마다 자신의 육체가 부르는 욕망으로 떨어지지 않고 천지의 정당한 도리인 천리, 즉 양심의 소리를 듣고, 지키고, 키우고 이에 준하여 삶을 살고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엄숙한 다짐의 자세가 곧 경이다.
바로 이 경의 자세에 투철한가 투철하지 않은가에 따라 악인, 속인, 선인, 현인, 성인의 차별이 생긴다. 이 경의 자세로 오랜 세월동안 수행해가면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명덕이 밝혀지고, 학문이 관통되어 자신 내부의 이(理)인 성(性)과 자신 외부의 이(理)가 합치되어 마침내 성리(性理)의 도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나와 이웃이 둘이 아니고, 나와 천지가 둘이 아닌, 불이(不二)의 세계가 전개되어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존재들은 나의 몸이요, 모든 원리들은 나의 마음이라는 대인(大仁)의 바다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수행은 쉬운 것은 아니다. 갓난애가 태어나서 한 걸음을 옮기는 데에도 일 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고 '엄마'라는 소리를 내는 대로 수개월이 걸린다.
하물며 하늘의 도리를 통해 내 생명의 근원을 확연히 드러내어 천지와 내가 하나로 합일되어 대자유인이 되는 길이 어찌 멀고도 험하지 않겠는가? 수많은 인내와 피를 말리는 처절한 고통과 번민이 있은 후에야 가능한 것이다.
한 겨울의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견디지 않고 이른 봄의 매화가 어찌 그토록 진한 향기를 토해낼 수 있겠는가? 수행자가 되는 길은 크게 태어나기 위해 겉으로는 스스로 고독의 바다 속에 빠져 한 세상 죽어가는 과정이다.
39. 장남헌의 주일재명(主一齋銘)
主一齋銘 : 마음이 하나 됨을 주로하다
人之心 一何危
紛百慮 走千岐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되면(全一) 위태로운 것이 없으나, 어지러워지기 시작하면 백 가지 생각이 천 가닥으로 갈라진다.
惟君子 克自持
正衣冠 攝威儀
澹以整 儼若思
오직 군자만이 스스로 하나를 지켜 외관을 바르게 하고 위의(威儀)를 갖추고 고요하고 단정하여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하게 할 수 있다.
主于一 复何之
그럼 어떻게 하면 마음을 하나로 지켜갈 수 있을까?
事物來 審其幾
應以專 匪可移
理在我 寧彼隨
사물이 다가오면 그 기미를 살피고 전일(全一)하게 응하면 사물이 이치가 파악되고 사물의 이치가 파악되면 내가 끌려가지 않고 사물이 나에게로 끌려온다.
積之久 昭厥微
靜不偏 動靡違
이렇게 오래오래 공을 쌓아 가면 미묘한 도리도 차차 밝혀져서 고요할 때는 치우치지 않고 움직일 때는 어긋나지 않게 된다.
嗟勉哉 自邇卑
惟勿替 日在玆.
아, 힘써 나아가라. 일상생활의 가깝고 작은 데서부터 멀고 원대한 곳에 이르기까지 놓치지 말고 오직 이 한 마음을 지켜가라.
(解說)
물방울 하나하나가 사방팔방으로 흩어질 때는 힘이 없지만 한 곳으로 모여들어 어느 한 방향으로 몰아치면 파도가 방파제를 부수듯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햇볕은 흩어지면 미약하지만, 돋보기로 한 지점으로 모으면 종이를 태울 수 있다.
공기도 흩어지면 아무런 힘도 없지만 타이어 안에 집중적으로 모으면 수 십 톤의 무게도 받칠 수 있다. 이같이 인간의 마음도 하나로 뭉쳐 하나의 방향을 향할 때는 무서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럼 수행자는 어디에 한 마음을 집중하여 나아가야 하느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하고 자신의 존재근원을 밝히는 데 마음을 두었고, 예수는 너 자신 속에 천국이 있으니 그 천국은 너희 것으로 온전히 하는 데 마음을 두었고,
석가는 사람마다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인 불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이 불성을 찾아 가꾸고 열매 맺어 생사를 뛰어넘는 각자(覺者)가 되는 데 마음을 두었고,
공자는 안으로 타고난 자신의 명덕을 밝히고 밖으로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이르는 데에 마음을 두었다.
그러나 이 모든 수행의 출발점은 우리의 일상생활의 중심인 '지금 여기'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40. 주희(朱熹)의 서자명(書字銘)
書字銘 : 글자를 쓸 때의 마음가짐
握管濡毫 伸紙行墨 一在其中.
붓자루를 잡고 붓끝을 먹물에 적시고 종이를 펼쳐서 글씨를 써내려가니 오직 하나(一)가 그 안에 있다.
點點畫畫 放意則荒
取姸則惑 必有事焉
점을 찍거나 획을 그을 때 생각의 중심을 놓아버리면 글씨가 거칠어지고, 아름답게 쓰려고 억지로 무리를 가하면 정신이 흩어져서 문제가 생긴다.
神明厥德.
다만 수행한 정신의 덕이 그 속에 피어나도록 하면 족하다.
(解說)
'얼굴과 말과 글씨는 바로 그 사람이다'는 말이 있다. 왜냐하면 수행된 심의 차원이 바깥으로 드러난 것이 곧 얼굴이요, 말이요, 글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생각을 놓은 채 그저 되는 대로 휘갈겨 써도 안 되고 그렇다고 억지로 무리를 가하여 아름답게 보이려고 거짓꾸밈을 더해서도 안 된다.
다만 그 속에 자신의 진솔한 모습이 스며있도록 쓰면 된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수행자로서의 긴장된 ‘경(敬)’의 마음가짐을 놓쳐서는 안 된다.
41. 주희(朱熹)의 자양금명(紫陽琴銘)
紫陽琴銘 : 자신의 금(琴)에 새기다
養君中和之正性
禁爾忿慾之邪心.
그대의 고요하고 조화로운 성(性)을 기르고 노기와 탐욕에 젖은 사심(私心)을 없애라.
乾坤無言物有則
我欲與子鉤其深.
하늘과 땅은 말이 없건만 물물(物物)마다 그 속에 마땅한 도리인 이(理)를 품고 있으니, 나는 이 거문고와 더불어 그 깊은 도리를 낚고자 한다.
(解說)
거문고와 같은 악기는 그저 소리를 내어 귀만 즐겁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거문고가 만들어진 이(理)와, 이 거문고가 소리를 내는 이(理)와, 소리의 어울림이 생성하는 이(理)와, 나와 거문고 사이의 관계의 이(理)와, 거문고 소리와 우주질서 사이의 이(理)를 동시에 궁구해보는 것이 악기의 진정한 묘미이다.
솔개는 날고, 물고기는 뛰고, 수레는 육지로 달리고, 배는 바다로 가고, 감이 떨어지고, 죽순이 솟는 데에는 모두 그럴만한 우주의 이법(理法)이 들어 있다.
그러나 보려고 하는 자는 볼 수 있지만 보려고 하지 않는 자는 결코 볼 수 없다. 이 세상에 가장 큰 장님은 눈이 있어도 보려고 하는 마음 자체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이다.
42. 주희(朱熹)의 창명(窓銘)
窓銘 : 창에 새기다
言思毖 動思躓 過思棄
端爾躬 正爾容 一爾衷.
말을 삼가고, 행동을 삿된 길로 떨어지지 않게 하고, 허물을 버리고, 몸을 단정히 가지고, 얼굴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전일(全一)하게 유지하라.
(解說)
주희는 자신의 몸을 닦기 위해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래서 자주 눈에 띄는 창문에마저 이같이 경계하는 글을 써 붙여놓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갔다. 이런 태도가 곧 일상생활의 '경'의 자세이다.
43. 주희(朱熹)의 사조명(寫照銘)
寫照銘 : 초상화에 쓰다
端爾躬 肅爾容
檢於外 一其中
몸을 단정히 하고, 얼굴을 엄숙히 하고, 행동을 검소하게 하고, 마음을 전일(全一)하게 하고
力於始 遂其終
操有要 保無窮.
시작하면 힘써서 반드시 그 끝을 보고, 절조를 마음에 품고 종신토록 보존하라.
(解說)
누군가가 주희의 초상화를 그려주자 주희는 파리하고 쇠약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비록 몸은 늙었지만 오직 수행에 전념하여 한 생을 마치기를 원할 뿐 다른 생각은 없다'고 말하고 위의 명(銘)을 초상화 위에 직접 쓰고는 종신토록 수행의 길로 매진한다.
위의 '시작이 있으면 그 과정에 힘써서 반드시 그 끝을 본다'는 구절은 주희의 수행 태도를 잘 보여준다.
44. 주희(朱熹)의 경재잠(敬齋箴)
敬齋箴 : 주희의 공경하라
正其衣冠 尊其瞻視
潛心以居 對越上帝
의관을 바로 하고 눈길을 우러러 보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앉아서 저 너머 계시는 상제(天理)를 마주한다.
足容必重 手容必恭
擇地而蹈 折旋蟻封
발걸음은 무겁게 하고, 손짓은 공손히 하고, 땅은 가려서 밟아 조그만 개미집도 피해 간다.
出門如賓 承事如祭
戰戰兢兢 岡敢或易
대문을 나서면 손님을 맞이하듯 공손히 하고, 일을 대할 때는 제사를 지내듯 경건히 하고 두려워하여 잠시나마 안이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守口如艵 防意如城
洞洞屬屬 毋敢或輕
입은 병마개를 막듯 굳게 막고, 뜻은 성(城)을 지키듯 성실하고 진실히 간직하여 잠시나마 경솔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不東以西 不南以北
當事而存 靡他其適
동쪽을 마음에 품고 서쪽으로 가지 않고 남쪽을 마음에 품고 북쪽으로 가지 않으며, 하는 일에 마땅히 정성을 다하여 정신을 흩뜨리지 않는다.
勿貳以二 勿參以三
惟心惟一 萬變是監
두 마음을 품어 정신을 둘로 분열 시키거나 뒤섞여서 셋으로 쪼개지 말고 오직 마음을 하나로 지켜 만 가지 변화를 관찰한다.
從事於斯 是曰持敬
이렇게 때에 따라 한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것을 경(敬)의 자세라 한다.
動靜弗違 表裏交正
홀로 고요히 앉아 있거나, 더불어 행할 때도 천리를 어기지 않으며 안과 밖을 바르게 간직한다.
須臾有間 私欲萬端
不火而熱 不冰而寒
한 순간이라도 마음에 틈이 생기면 사사로운 욕심이 일어나 일파(一波)가 만파(萬波)가 되어 불을 지피지 않아도 달아 오르고 얼음이 얼지 않아도 떨리게 된다.
毫釐有差 天壤易處
三綱旣淪 九法亦斁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나면 하늘과 땅이 서로 자리를 바꾸고 삼강(三綱)이 무너지고 구법(九法)도 폐하게 된다.
嗚呼小子 念哉敬哉
아, 어린 학동들이여, 생각 생각마다 경으로 대하라.
墨卿司戒 敢告靈臺
이에 먹을 갈아 경계하는 말을 써서 영대(靈臺-마음)에 고한다.
(解說)
이 글은 주희가 장경부(張敬夫)의 주일잠(主一箴)을 읽고 그 글의 내용이 너무 좋아 재실 벽에 써놓고 스스로를 경계한 글이다.
항상 마음을 마치 하늘 높이 계시는 상제를 대하듯 경건히 가져야 한다. 저급한 마음가짐에 저급한 외모와 저급한 행위가 나오고, 경건한 마음가짐에 경건한 외모와 경건한 행위가 나온다.
입을 병마개 막듯 막고, 뜻을 성문을 지키듯 지켜가며, 일을 대할 때는 오직 한마음으로 대하고 마음 안팎을 항상 같이 하여 자신을 속이지 않고, 혼자 있을 때나 남과 함께 있을 때나 항상 경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면 반드시 바른 삶이 따라온다.
말뚝이 바로 서면 그 그림자가 바르듯이 바른 마음가짐과 바른 생활태도를 지니면 반드시 바르고 행복한 삶이 따라온다.
45. 주희(朱熹)의 조식잠(調息箴)
調息箴 : 숨 쉬는 것에 관하여
鼻端有白 我其觀之
隨時隨處 容與猗移
코끝에 희게 보이는 한 점이 있는데 나는 항상 그 점을 응시하여 어느 때 어느 곳에 처하든 마음을 텅 비게 하고 얼굴은 평온하게 한다.
靜極而噓 如春沼魚
動極而噏 如百蟲蟄
고요함이 지극하면 숨을 내쉬되 봄물의 물고기같이 고요히 하고, 움직임이 지극하면 숨을 들어 마시되 백 가지 벌레가 웅크리듯 한다.
氤氳開闔 其妙無窮
孰其尸之 不宰之功
하늘과 땅의 기운이 열리고 닫히는 묘한 이치는 다함이 없는데 누가 있어 그 무위(無爲)의 일을 다스려 가는가?
雲臥天行 非予敢議
守一處和 千二百歲
구름 위에 누워 하늘을 나는 일은 내가 감히 논할 일이 아니지만, 하나(一)를 지켜 1,200살을 사는 일을 기약해 본다.
(解說)
'코끝에 흰점을 응시하라'는 수행방법은 불교의 선문(禪門)에서 흔히 하는 방법이다. 인간의 마음이란 본래 어디론가 자꾸 달아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바깥으로 치닫는 마음을 한 곳으로 끌어 모으는 방법이 바로 이 수행 방법이다.
정좌나 가부좌 또는 반가부좌 자세로 고요히 앉아 시선을 코끝의 한 점에 두고, 숨을 배꼽 아래 단전 부분으로 깊이 서서히 들어 마시고는 한동안 고요히 있으면 몸의 움직임도 호흡도 없는 지극히 고요한 상태가 된다.
이 고요함이 지극하면 숨을 가만히 내쉰다. 마치 겨울 얼음 밑의 물고기가 미동도 없듯이 고요히 내쉰다. 내쉼이 극에 달하면 다시 조용히 아랫배로 숨을 들어 마신다.
이런 수행을 계속해 가면 마음은 태초의 우주처럼 끝 간 데 없이 텅 비고 얼굴은 호수처럼 평온해진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삿된 욕망과 분별심은 사라지고 천지와 서로 화(和)하게 되어 육체의 경계를 넘어서서 천세 만세를 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것과 같은 그런 황당무계한 일은 수행자가 논할 일도 아니고 원하는 바도 아니다.
46. 주희(朱熹)의 경학찬(警學贊)
警學贊 : 역(易)을 배울 때 경계할 것에 관하여
讀易之法 先正其心
肅容端席 有翼其臨
'주역'을 읽는 방법은 우선 마음을 바르게 하고, 엄숙한 얼굴로 단정히 앉는다.
于卦于爻 如筮斯得
假彼象辭 爲我儀則
점대를 뽑아서 괘를 얻으면 효(爻)나 괘(卦)가 상징하는 말을 스스로 지켜야 할 법칙으로 삼는다.
字從其訓 句逆其情
事因其理 意適其平
글자는 그 새김의 뜻을 따르고 구절은 그 숨은 의미를 헤아리며 일은 그 밑바닥에 흐르는 이치를 파악하고, 뜻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한다.
曰否曰臧 如目斯見
曰止曰行 如足斯踐
좋거나 좋지 않다는 말이 있으면 마치 그러한 일이 눈앞에 일어난 듯 살피고, 멈추거나 간다는 말이 있으면 마치 발로 직접 가고 멈추듯이 한다.
毋寬以略 毋密以窮
毋固而可 毋必而通
너무 광활하게 생각하여 빠뜨림이 없게 하고 너무 좁게 생각하여 막힘이 없도록 한다.
平易從容 自表而裏
及其貫之 萬事一理
섣불리 옳다하지 말고 반드시 통하고 말겠다고 얽매이지도 말고, 평상심으로 조용히 밖에서 안으로 이치를 궁구해가면 만사를 관통하는 이(理)가 드러나게 된다.
理定旣實 事來尙虛
用應始有 體該本無
이(理)가 파악되어 확실히 서게 되면 일이 닥쳐와도 심은 고요히 비게 되어 작용과 응함이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稽實待虛 存體應用
執古御今 由靜制動
심의 본바탕은 원래 텅 비어 있으니, 가득 찬 속에 텅 빔을 기다려 텅 빈 본바탕으로 매사에 응하여 옛 것을 거울삼아 오늘의 일을 다스리고 고요함으로 움직임을 제어한다.
潔靜精微 是之謂易
體之在我 動有常吉
역(易)은 원래 청정하고 고요하고 정미(精微)한 것으로 그 본바탕을 나에게서 찾아가면 움직임에 항상 길(吉)함이 있다.
在昔程氏 繼周紹孔
奧旨宏綱 星陳極拱
옛날 주공(周公)이 연구하고 공자(孔子)가 이어받은 이 학문을 정자(程子)가 계승하여 그 깊은 뜻을 파헤치고 체계화시키니 마치 뭇 별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운행하는 것과 같게 되었다.
惟斯未啓 以俟後人
小子狂簡 敢述而申
아직 다하지 못한 뜻은 뒷사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제자가 외람되게 몇 마디 설명을 곁들인다.
(解說)
'주역'은 주나라의 역을 말한다. 물론 주역이 등장하기 전에 우리 민족 고유의 한역(桓易), 하나라의 연산역, 은나라의 귀장역도 있었다. '역(易)'은 원래 카멜레온의 겉모양을 형상화한 글자로 '변화'를 상징한다.
천지의 운행은 잠시도 쉬는 때가 없다.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항상 출렁인다. 바로 이 쉼 없는 천지의 변화 속에 '변화하는 존재로서의 내가 어떻게 머물고 나아가며 천지의 변화와 더불어 조화롭게 상생할 수 있느냐'를 연구하는 학문이 곧 역이다.
그러므로 역은 변화의 중심에 서서 변화의 방향을 잡아가는 나의 마음 본바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욕과 집착으로 가득 찬 마음을 텅 비게 하면 그 자리에 천리가 드러나서 천지변화의 파동과 조화되어 막힘이 없이 순조롭게 생을 이끌어 갈 수 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사리사욕과 탐심으로 가득 차서 인욕이 천리를 누르게 되면 나의 흐름이 천지의 흐름과 역행되어 하는 일마다 막히고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주역'을 한다는 것은 곧 내 마음을 비워서 인욕을 없애고 천리를 드러내는 수행 과정과 일치한다.
'주역'의 첫머리에 주역점을 치는 자세로 '먼저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에 정성된 마음으로 점을 치고, 한 가지 일을 가지고 두 번 점치지 말라'라는 내용은 주역을 공부하는 자세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47. 주희(朱熹)의 복괘찬(復卦贊)
復卦贊 : 역(易)의 복괘를 찬양하다
萬物職職 其生不窮
孰其尸之 造化爲功
만물이 많고 많아도 그 생겨남에는 다함이 없다. 누가 이를 관장하는가?
陰闔陽開 一靜一動
於穆無彊 全體妙用
우주의 운행하는 모습을 보면 음(陰)에 닫히고 양(陽)에 열리고, 한 번 고요하고(靜) 한 번 움직이면서(動) 무리(無理)가 없이 자연스레 전체의 묘용을 드러낸다.
奚獨於斯 潛陽壯陰 而曰昭哉
복괘를 살펴보면 맨 아래 양효가 하나 뿐이고 그 위로 전부 음효인데 어찌 밝다고 말하느냐?
此天地心 蓋翕無餘 斯闢之始
이는 천지의 마음으로 모든 만물이 남김없이 때를 기다려 바로 이 하나의 근본에 시초를 두고 끝없이 거듭거듭 생겨나오기 때문이다.
生意闖然 具此全美
其在于人 曰性之仁
이런 천지의 낳고 생하는 아름다운 덕이 인간의 본성 속에 들어있는데 이를 인(仁)이라 한다.
斂藏方寸 包括無垠
有茁其萌 有惻其隱
이 인(仁)은 조그만 방촌(方寸) 속에 갖추어져 있지만 펼치면 천리를 감싸고도 남음이 있고, 싹을 내면 모든 만물에 대한 자비로운 마음이 된다.
于以充之 四海其準
바로 이 인(仁)의 마음을 확충해 가는 것을 사해(四海)의 준칙으로 삼는다.
曰惟玆今 眇綿之間
是用齋戒 掩身閉關
지금 수수하고 정갈한 옷으로 몸을 가리고 마음을 깨끗이 하여 문을 닫고 앉아
仰止羲圖 稽經協傳
敢贊一辭 以詔無倦
복희씨의 영정(影幀)을 우러러 보며 각종 전(傳)을 모아 역경을 연구하면서 결코 게으르지 않기를 기약하며 이 찬(贊)을 짓는다.
(解說)
복괘의 상괘(上卦)는 땅을 뜻하는 곤괘로 되어있고 하괘(下卦)는 우레를 뜻하는 진괘로 되어있다. 전체 괘상은 땅 속에 우레가 내장되어 있는 형상이다.
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땅 아래에는 아무런 생명체도 없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마치 식은 재속에 감춰져 있는 하나의 불씨같이 생명체가 숨어있다. 이것은 복괘의 효상에서 하나의 양효가 다섯 개의 음효 아래 숨어 있는 형상과 유사하다.
그래서 봄이 되면 마치 우레가 하늘로 솟아오르듯이 땅 속에서 수많은 생명체들이 고개를 쏙쏙 내민다. 바로 이것이 뭇 생명을 끝없이 낳고 기르고 갈무리하는 천리의 마음이다.
이런 천지의 어진 마음을 일러 천지의 인(仁)이라 하고 이 천지의 인(仁)이 인간의 본성 속에 부여된 것을 일러 인간의 인(仁)이라 한다.
그리고 이 인(仁)의 작용을 일컬어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 한다. 이 인(仁)은 비록 인간의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지만 펼치면 온 천지(天地)를 끌어안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로 다함이 없다.
인간이 수행한다는 것은 곧 내 마음 속의 이 인(仁)의 씨앗을 발아시켜 기르고 확충하여,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나아가 모든 유정(有情) 무정(無情)의 존재들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인(仁)의 지극한 자리가 곧 홍익인간이다.
48. 장식(張栻, 장남헌)의 복괘의찬(復卦義贊)
復卦義贊 : 역(易)의 복괘의 뜻을 찬양하다
天地之心 其體則微
于動之端 斯以見之
천지의 마음은 그 바탕이 비록 미묘하지만 움직임의 단서를 살피면 그 드러남을 알 수 있다.
其端伊何 維以生生
羣物是資 而以日亨
그럼 그 단서는 무엇인가? 끊임없이 만물을 생성하는 힘이다. 뭇 만물들은 이 천지의 생성하는 힘에 의지하여 삶을 이어간다.
其在於人 純是惻隱
動匪以斯 則非天命
이 천지의 만물을 낳고 길러가는 마음이 곧 인간에게는 측은지심이 된다. 이러한 측은히 여기는 순수한 마음이 곧 천명이고, 순수하지 않은 마음은 천명이라 할 수 없다.
曰義禮智 位雖不同
揆厥所基 脉絡該通
의(義)와 예(禮)와 지(智)도 비록 그 위치는 서로 다르지만 모두 이 측은지심인 인(仁)에 바탕을 두고 있다.
曷其保之 日乾夕惕
斯須不存 生道或息
그럼 이 순수한 인(仁)의 마음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낮에는 힘쓰고 밤에는 삼가 두려워한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이 생성의 도는 멈추고 만다.
養而無害 敬立義集
是爲復亨 出入無疾
이 마음을 보존하고 길러 가면 경(敬)의 태도가 확립되고 의(義)가 모이면 ‘다시 살아나 형통하여 출입에 병통이 없다’는 복괘의 괘사가 성립된다.
(解說)
천지가 끊임없이 만물을 낳고 길러가는 것을 인(仁)이라 한다. 이 천지만물의 멸망하지 않고 계속 유지되는 것은 모두 이 천지의 인(仁) 덕분이다. 이같이 인간도 천지의 마음을 본받아 뭇 생명을 낳고 뭇 생명을 길러가는 인(仁)을 실천해야 한다.
인간이 인간답고 인간 사회가 멸망하지 않고 계속 번성하는 것은 모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 인(仁)의 묘용 덕분이다. 인(仁)이란 실로 위대하다. 요컨대, 인(仁)이란 곧 천지의 생생지도(生生之道)이며 동시에 인간의 생생지도(生生之道)이다.
49. 장식(張栻, 장남헌)의 주일잠(主一箴)
主一箴 : 마음이 하나되게 하라
人稟天性 其生也直
克愼厥彝 則靡有忒
사람은 하늘의 성품을 본받아 스스로 바르니 그 떳떳함을 힘써 지켜 가면 어긋남이 없게 된다.
事物之感 紛綸朝夕
動而無節 生道或息
그러나 사물에 감응할 때는 비록 하루 동안에도 때로는 어긋나기도 하고 때로는 바르기도 하는데 이같이 움직임에 절도를 잃게 되면 생생(生生)의 도(道)마저 멈추게 된다.
惟學有要 持敬勿失
驗厥操舍 乃知出入
그러므로 학문에는 근본이 있고 이 근본을 경(敬)으로써 지키고 잃지 않아야만 지킬 것(天理)과 버릴 것(人慾)을 스스로 몸으로 겪어서 마음의 들고 남을 알게 된다.
曷爲其敬 妙在主一
그럼 경(敬)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오직 하나를 지키고 받들어 가는데 그 묘방이 있다.
曷爲其一 惟以無適
그럼 하나를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오직 상대하는 것이 없는 전일(全一)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居無越思 事靡他及
涵泳于中 匪忘匪亟
혼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잡념이 없고, 일을 당하여서도 오직 그 일에만 몰두하여 마음이 중(中)에 머물러 잊어버리지도 않고 수선을 떨지도 않는 집중의 상태를 말한다.
斯須造次 是保是積
旣久而精 乃會于極
이렇게 경(敬)의 상태를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않고 보존하고 쌓아가기를 오래해가면 심의 묘용이 정밀해져서 마침내 지극한 경지를 알게 된다.
勉哉勿倦 聖賢可則
이같이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으면 성현(聖賢)을 본받을 수 있다.
(解說)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이란 말이 있다.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계속 밀고 가면 세상에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은 마음을 한 번 모아보기도 전에 일을 포기하고 만다. 혹은 마음을 집중한다 하더라도 50%, 60%, 기껏 해도 70%선에서 스스로 정성을 다했다고 속단하고 물러서고 만다. 99%와 100%는 분명히 다르고, 99.999%와 100%도 엄연히 다르다.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99.9999%는 완벽했는데, 0.00001%가 잘못되어 발사한 후 1분이 채 되기도 전에 폭발하여 수많은 아까운 생명을 앗아가고 말았다. 이같이 마음의 집중, 어설픈 집중이 아니라 100% 뚜렷한 목표를 향한 무서운 집중, 바로 여기에 사람을 변화시키는 비밀이 숨어 있다.
50. 진덕수(眞德秀, 진서산)의 심경찬(心經贊)
心經贊 : 심경을 찬양하다
舜禹授受 十有六言
萬世心學 此其淵源
순(舜) 임금이 우(禹) 임금에게 건네 준 열여섯 글자는 만세토록 심학의 연원이 된다.
人心伊何
인심(人心)이란 어떤 것인가?
生於形氣 有好有樂
有忿有懥 惟慾易流
형기(形氣)에서 생겨났으므로 좋아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원망을 하기도 하는데, 오로지 욕심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타락하기 쉽다.
是之謂危
이를 두고 '인심은 위태롭다'고 한다.
須臾或放 衆慝從之
그러므로 인심은 눈 깜짝할 사이에도 그대로 놓아두면 뭇 허물이 따르게 된다.
道心伊何
그럼 도심(道心)이란 어떤 것인가?
根於性命 曰義曰仁
曰中曰正 惟理無形 是之謂微
성(性)과 명(命)에 뿌리를 두고 의(義)와 인(仁)과 중(中)과 정(正)을 두루 갖춘 것으로 곧 이(理)를 말한다. 순수 이(理)이므로 형태가 없고 형태가 없으므로 이른바 '도심은 미세하다'고 한다.
毫芒或失 其存幾希
미세하므로 털끝만큼이라도 방심하면 보존하기가 어렵게 된다.
二者之間 曾不容隙
察之必精 如辨白黑
知及仁守 相爲始終
이 인심과 도심 사이에는 본래 뚜렷한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것을 살필 때는 정밀히 살펴야만 흰 것과 검은 것을 구별하듯 뚜렷이 구분할 수 있고, 인심과 도심을 뚜렷이 구분해야만 앎에 이르게 되고, 인(仁)을 지키어 비로소 지(知)와 인(仁)이 서로 시작과 끝이 되어 하나로 연결된다.
惟精故一 惟一故中
오로지 정밀히 살펴 도심 하나를 보존해야하므로 '일(一)'이라 하고, 하나이므로 '근본(中)'이 된다.
聖賢迭興 體姚法姒
持綱挈維 昭示來世
성현(聖賢)들이 번갈아 일어나 심법을 말했는데, 순임금이 근본을 세우고, 우 임금이 이를 전수받아 만사의 규범을 삼아 후인들의 수행의 지침이 되게 했다.
戒懼謹獨 閑邪存誠
曰忿曰慾 必窒必懲
늘 삼가고 두려워하며 특히 혼자 있을 때 근신(勤愼)하고, 삿된 생각을 막고 참됨을 보존하며, 성냄을 막고 탐욕을 버려야 한다.
上帝寔臨 其敢或貳
屋漏雖隱 寧使有愧
상제(上帝)께서 항상 너의 곁에 강림해 계시니 어찌 한시나마 삿된 생각을 할 것이며, 비록 구석진 방이 은밀하다 해도 어찌 부끄러운 행동을 자행할 것인가?
四非當克 如敵斯功
四端旣發 皆廣而充
사비(四非)는 마치 적군을 공격하듯 막아야 하고, 사단(四端)은 이미 발했으면 이를 널리 확충해가야 한다.
意必之萌 雲棬席撤
子諒之生 春噓物茁
사사로운 생각이 일어나면 마치 구름을 걷듯이, 혹은 깔고 앉은 자리를 말아 치우듯이 없애야 하고, 사랑과 인(仁)의 마음이 싹트면 마치 훈훈한 봄바람에 만물이 자라나듯 길러가야 한다.
雞犬之放 欲其知求
牛羊之牧 濯濯是憂
닭이나 개가 우리에서 나가면 다시 찾을 마음을 내고, 소나 양을 기르면 산의 풀을 다 뜯어 먹어 혹시 민둥산이 되지 않을까 염려하듯 찾고 경계하는 마음을 미리 지녀야 한다.
一指肩背 孰貴孰賤
손가락, 어깨, 등(背) 이 셋 중 어느 것이 귀하고 어느 것이 천하겠는가?
簞食萬鍾 辭受必辨
비록 표주박 속의 거친 밥 한 그릇이든지 엄청난 만금의 돈이든지 간에 이를 앞에 두고 거절할 것과 받을 것을 분명히 가려야 한다.
克治存養 交致其功
인욕을 극복하고 제어하는 일과 천리를 보존하고 기르는 일은 서로서로 공(功)이 되어 조화되도록 해야 한다.
舜何人哉 期與之同
순임금은 어떤 분인가? 그도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나도 순임금과 같기를 기약해야 한다.
維此道心 萬善之主
天之與我 此其大者
도심이야말로 모든 선의 바탕으로 하늘이 나에게 준 위대한 것이다.
斂之方寸 太極在躬
散之萬事 其用弗窮
이 도심을 나의 방촌으로 거두어 들이면 태극이 내 몸 안에 있게 되고, 밖으로 드러내어 온갖 일에 응하게 하면 그 용(用)이 다함이 없으니
若寶靈龜 若奉拱璧
念玆在玆 其可弗力
어찌 신령스런 거북을 귀히 여기듯 푸른 옥을 소중히 받들듯 이 도심을 전심전력으로 간직하지 않겠는가?
相古先民 以敬相傳
操約施博 孰此爲先
옛 선인(先人)들은 오직 경(敬)으로써 이를 전해 지킬 때는 오직 하나(一)로 거두어 들이고, 펼칠 때는 온 누리에 가득 차게 베풀었으니 세상에 이 일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我來作州 茅塞是懼
爰輯格言 以滌肺腑
내가 수령이 되어 한 고을을 맡게 되었으니 이에 혹시 사사로운 욕심이 도심을 막을까 우려되어 여러 선인들의 금구(金句)를 한 자리에 모아, 이를 통해 마음 깊숙한 곳까지 깨끗이 씻고자
明窓棐几 淸晝爐熏
開卷肅然 事我天君
맑은 날 맑은 창 아래 비자나무 책상 앞에 앉아 향을 피우고 책을 펼쳐 내 마음 속의 도심인 천군(天君)을 받든다.
(解說)
'심경(心經)'이란 책은 퇴계 선생이 2살 때 여읜 아버지를 대신하고자 죽는 날가지 소중히 간직하고 마치 엄부(嚴父)처럼 우러러 모신 책이다.
'서경'속의 '인심유위 도심유미 유정유일 윤집궐중(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이란 16자의 심법은 모든 유학도들의 수행의 지침이 된 금구(金句)이다.
이 속에서 인심과 도심을 정밀히 구분하여 인심을 버리고 도심을 지켜가는 자세는 마치 전쟁터에서 적군을 물리치듯 해야 하고, 사비(四非) 즉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를 생활화해 가야 한다.
특히 심경 속의 한 부분인 '우산(牛山)이 옛날에는 풀과 나무로 무성했는데, 풀과 나무를 심지 않고 오랜 세월 동안 그저 소와 양이 뜯어먹게 그대로 방치한 결과 이제는 민둥산이 되고 말았다'는 내용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즉 참사람이 될 수 있는 씨앗인 도심은 기르지 않고 그저 인욕에 하루하루 이끌리다 보면 마음 속의 선과 참된 생명력은 다 소진되어 버리고 마치 무성하던 우산이 민둥산이 되어버리듯 그 무한한 가능성을 배태한 도심은 시들어버리고 한낱 보잘 것 없는 늙은 가죽에 덮인 범부로 한 생애를 마감하고 만다.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개와 닭이 우리에서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찾느라 야단법석을 떨면서도 정작 자신의 도심과 양심이 자기 몸 밖으로 빠져 나가 돌아오지 않아도 찾기는커녕 인욕에 덮여 나간 줄도 모른 채 그저 살아간다. 이것 또한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51. 진무경(眞武經)의 물재잠(勿齋箴)
勿齋箴 : 사물(四勿)을 경계하다
天命之性 得之者人
人之有心 其孰不仁
사람이란 하늘로부터 성(性)을 부여받고 이를 지니고 있으니 어찌 인(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人而不仁 曰爲物役
사람이면서도 인(仁)하지 않는 것은 곧 다른 외물(外物)로부터 지배당함을 의미한다.
耳蕩於聲 目眩於色 以言則肆
以動則輕 人欲放紛 天理晦冥
귀는 소리에 이끌리고, 눈은 색에 이끌리고, 입은 방자한 말에 이끌리고, 몸은 경솔한 행위에 이끌리어, 인욕은 드러나고 천리는 어두워져 마침내 자취를 감추고 만다.
於焉有道 禮以爲準
惟禮是由 非禮勿徇
도(道)가 행해지려면 오직 예(禮)로써 기준을 삼고, 예가 아니면 따르지 말아야 한다.
曰禮伊何 理之當然
그럼 예란 무엇인가? 이(理)의 마땅함이 자연스럽게 펼쳐짐을 말한다.
不雜以人 一循乎天
다시 말해서 인위를 배제하고 한결같이 천리를 따름을 말한다.
勿之爲言 如防止水
물(勿)이란 글자는 '하지 말라'는 뜻인데 인욕이 마치 물처럼 계속 흘러나올 때 이를 막고 방지함을 말한다.
孰其尸之 曰心而已
그럼 누가 이것을 하는가? 마음이다.
聖言十六 一字其機
이 마음을 잡는 요체는 성인들께서 서로 주고 받은 '16자 심법' 가운데 바로 '일(一)'자에 놓여있다.
機牙旣幹 鈞石必隨
일단 마음이 하나가 되면 행위의 저울추는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我乘我車 駟馬交驟
孰範其驅 維轡在手
내가 수레를 타고 갈 때 수레를 끄는 말 네 마리가 서로 엇갈려 달린다면 누가 이것을 바로 잡아 수레가 길 밖으로 벗어나지 않게 하는가? 바로 말고삐를 잡은 나다.
是以君子 必正其心
翼翼兢兢 不顯亦臨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마음을 바르게 하여 공경하고, 두려워하고, 삼가하고, 드러나지 않는 일도 마치 상제가 옆에 있는 듯이 자신을 속이지 말고 조심조심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해 가야한다.
萬夫之屯 一將之令
霆鍧飇馳 孰敢干命
일만 명의 병사도 한 장수가 명령을 내리면 천둥 같은 북소리에 맞추어 일사분란하게 바람같이 내달리니 누가 감히 장수의 명을 어길 수 있겠는가?
衆形役之 統于心官
모든 일이 행해질 때도 오직 마음이란 관부(官府)에서 나오는 천리의 명령에 의해 진행된다.
外止弗流 內守愈安
그래서 밖으로 행해서는 머물 자리에 머물러서 타락하지 않고, 안으로는 굳게 지켜서 허물없이 편안히 지낼 수 있다.
其道伊何 所主者敬
모든 도리의 밑바탕은 '경(敬)' 한 자에 놓여있다.
表裏相維 動靜俱正 葇盡苗長
醅化禮醇 方寸盎然 無物不春
마음 안팎이 서로 한결같이 이어지고, 고요할 때와 행할 때 언제나 바름을 지켜 가면, 강아지풀 같은 잡초는 없어지고 벼 같은 곡식은 무럭무럭 자라나며, 거친 재료가 익어 맑은 술이 되는 묘용이 마음에 넘쳐흘러 드디어 만물(萬物)이 봄(春)을 맞은 듯 생생히 피어난다.
惟勿一言 萬善自出
念玆在玆 其永無斁
오직 인욕을 금지하는 이 '물(勿)'자 한 자에 모든 선이 나오니, 이 '물(勿)'자를 잘 지켜 나가면 매사에 어긋남이 없게 된다.
(解說)
'물(勿)'은 '금하다', '경계한다'의 뜻으로 '형기에서 우러나오는 사욕을 경계하고 막고 금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간은 구체적인 육체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 육체에서 피어나는 인욕은 강하고 억센 반면에 형체도 없는 천리(天理)인 도심(道心)은 미묘하고 미세하다.
그러므로 인간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인욕에 이끌리기는 쉬워도 도심에 이끌리기는 어렵다. 바로 여기에 의도적인 수행의 자세가 요청된다.
인욕으로 흐르기 쉬운 절대적인 인간의 약점을 극복하고 미세한 천리를 보존하고 길러가기 위해서는 천리 하나만을 붙들고 끝없이 정진해가는 '일(一)'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 일(一)의 자세를 견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욕을 금지하는 '물(勿)'의 단호한 자세가 요청된다.
52. 진무경(眞武經)의 사성재잠(思誠齋箴)
思誠齋箴 : 진실하고자 생각하다
誠者天道 本乎自然
성(誠)이라는 것은 자연에 바탕을 둔 하늘의 도(道)를 말하며, 인간은 이 성(誠)을 온전히 드러내려고 정성을 기울여간다.
誠之者人 以人合天
曰天與人 其本則一
사람이 정성을 다하여 하늘의 도와 하나로 합해질 때 하늘과 더불어 함께하는 사람이 되고 그 근본은 하나에 두고 있다.
云胡差殊 蓋累於物
心爲物誘 性遂情移
天理之眞 其存幾希
창날처럼 서로 어긋난다거나 차이가 난다거나 특별히 다르다는 것들은, 마음이 모두 물(物)에 얽매이고 유혹되어 성(性)이 정(情)으로 물들어, 천리(天理)의 참됨(道)을 보존하기가 어렵게 된 까닭이다.
豈惟與天 邈不相似
形雖人斯 實則物只
이렇게 되면 하늘과 더불어 하나가 될 수 없으며, 비록 겉모습은 사람이나 그 마음은 오히려 물(物)에 가깝게 되고 만다.
皇皇上帝 命我以人
我顧物之 抑何弗仁
위대한 상제께서 나를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였으니 어찌 내가 뭇 존재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維子思子 深憫斯世
指其本源 祛俗之蔽
學問辨行 統之以思
擇善固執 惟日孜孜
자사(子思)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사랑하여, 천리가 사욕으로 뒤덮여짐을 경계하고 오직 신중히 생각함으로써, 학문과 행위의 옳고 그름을 구별하고 통제하며, 선을 택하여 이 선을 굳게 지켜나가는 데 부지런하였다.
狂聖本同 其忍自棄
人十己千 弗止弗已
성인(聖人)과 광인(狂人)이 본래 본바탕은 하나로 같건만 광인은 인간으로 차마 하지 못하는 인(仁)의 본심을 스스로 포기해 버리고, 본심에서 벗어난 행동을 남들이 열 번 하고 그치면 자신은 천 번을 하고도 그치지 아니하고 계속 거듭해 간다.
雲披霧卷 太虛湛然
塵掃鏡空 淸光自全
구름 걷히고 안개 개이면 태허의 고요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거울 위의 티끌을 없애버리면 거울이 다시 밝아져 원래의 온전한 밝은 빛을 되찾아 비로소 사람과 하늘이 하나가 된다.
曰人與天 旣判復合
渾然一眞 諸妄不作
하나가 되면 이미 경계를 따라 나누어졌던 분별상(分別相)들이 어울려져 전체인 하나로 환원되어 여태까지의 가지가지 분별의식들이 자취를 감춘다.
孟氏繼之 命曰思誠
更兩鉅賢 其指益明
맹자가 자사의 뒤를 이어 '사성(思誠)'으로 거듭 강조하니 두 현인을 거쳐 '성(誠)'의 뜻이 더욱 밝아졌다.
大哉思乎 作聖之本
歸而求之 實近非遠
위대하구나, 생각함(思)이여, 성인을 이루는 근본이구나, 돌이켜 '사(思)'를 구하여보니 멀리 있지 않고 바로 내 몸 안에 있구나.
(解說)
자사(子思)는 '중용'속에서 '성자천지도야 성지자인지도야(誠者天地道也 誠之者人之道也)'라고 성(誠)의 뜻을 더욱 극진히 했다.
즉 성(誠)은 하늘의 도이고 이 성(誠)을 항상 생각하고 이를 일상 행동에서 그대로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곧 인간의 도다.
다시 말하면 만물들이 그들의 타고난 생명을 마음껏 피워가도록 정성을 다 기울여주는 것이 곧 하늘의 道인 '성(誠)'이고, 이 하늘의 뜻을 그대로 이어받아 우리의 일상생활에 오염됨이 없이 이 하늘의 뜻이 잘 발현되도록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 나아가는 것이 곧 '성지(誠之)' 혹은 '사성(思誠)'이고 이것이 곧 인간의 道요 인간의 길이다.
원래 광인과 성인은 본바탕은 천지의 이(理)로 하나이지만 광인은 본심을 잃고 본심을 보존하려는 정성(誠)이 없어서 결국 광인으로 전락되고 성인은 본심을 보존하고 이 본심에 따라 모든 행동을 하려는 정성(誠)이 온전하므로 결국 성인으로 변한다. 그러나 광인이 되었다고 본심마저 광인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때 묻은 거울을 닦으면 원래의 밝은 빛을 되찾고, 어둠에 싸인 하늘에 구름을 걷어내면 원래 있던 밝은 달이 조금도 손색없이 그대로 훤히 드러나듯이 광인과 속인의 경계는 천지의 참된 성품인 성(誠)을 간직하느냐 간직하지 않느냐 다시 말해서 항상 마음속에 두고 생각하느냐 생각하지 않느냐에 따라 차별된다. '생각한다'는 뜻의 이 '사(思)'자 한 자가 성인과 광인을 만드는 갈림길이 된다.
53. 진무경(眞武經)의 야기잠(夜氣箴)
夜氣箴 : 밤잠으로 양심을 기르다
子盍觀夫, 冬之爲氣乎, 木根其根.
겨울철의 기(氣)의 상태는 겨울나무의 기운이 뿌리로 들어가 저장되어 있는 것과 같다.
蟄坏其封, 凝然寂然, 不見兆朕而, 造化發育之, 具實胚胎乎其中.
마치 초벌구이 도자기들을 가마 안에 넣고 입구를 봉한 듯 겉으로 보기에는 잠잠하여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듯이 보이지만 끊임없는 조화와 변화의 움직임이 바로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盖闔者闢之基, 貞者元之本而, 艮所以爲物始終.
닫힘은 열림의 기초이고, 정(貞)은 원(元)의 근본이 되고, 간괘(艮卦)는 모든 물(物)의 시작과 끝을 의미한다.
夫一晝一夜者, 三百六旬之積, 故冬爲四時之夜而, 夜乃一日之冬.
하루의 낮과 밤이 360여개 쌓여 1년이 되므로 겨울은 네 계절의 밤이 되고 밤은 하루의 겨울이 된다.
天壤之間, 群動俱闃,
窈乎如未, 判之初而.
그러므로 밤은 천지간(天地間)의 움직이던 뭇 존재들이 마치 천지가 아직 나누어지기 전 태초의 고요 속에 잠들어 있는 때와 같다.
維人之身, 嚮晦宴息.
亦當以造, 物而爲宗.
사람의 몸도 해가 져서 쉬고자 할 때는 마땅히 이 만물의 조화를 따라야 한다.
必齋其心, 必肅其躳, 不敢弛然, 自放於牀, 第之上使, 慢易非僻, 得以賊吾之衷雖.
반드시 그 마음을 재계하고 그 몸가짐을 엄숙히 하여 오만하고 방자한 마음이 돋아나 인욕이 활개를 쳐 되는대로 침대 위에 몸을 맡기는 일이 없도록 속마음을 단속해 가야한다.
終日乾乾, 靡容一息, 之間斷而, 昏冥易忽之際, 无當致戒之功.
비록 낮 동안은 천리(天理)를 보존하기에 부지런했더라도 마음이 해이해지기 쉬운 밤 동안에 한 순간이라도 틈을 보여 고개를 내미는 인욕을 단속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공(功)이 없게 된다.
盖安其身, 所以爲朝聽晝訪之地而, 夜氣深厚則, 仁義之心, 亦浩浩其不窮.
들은 대로 곧바로 실천할 수 있는 바르고 참된 마음의 터전 위에서 잠자리에 들면 우선 몸이 편안하고, 천지의 맑은 밤기운이 쌓여 어질고 의로운 인의(仁義)의 마음이 더욱 두텁고 넓어져 간다.
本旣立矣而, 又致察於事物周旋之頃, 敬義夾持, 動靜交養則, 人欲無隙之可入, 天理曒乎其昭.
근본이 확립된 후에 사물을 대할 때마다 그 이치를 깊이 성찰하고 경(敬)과 의(義)를 지키어 동정(動靜)간에 함께 길러 가면 인욕(人慾)이 들어올 틈이 없어지고 천리(天理)가 밝고 느긋한 가운데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融然知及之而, 仁不能守之, 亦空言其系庸.
앎인 지(知)는 어느 정도 달했으나, 만물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인(仁)의 경지에 달하지 못하면 모든 지식은 헛된 장식품으로 끝나고 만다.
爰作箴以自砭, 常懍懍乎瘝恫.
이에 잠(箴)을 지어 마치 바늘로 몸을 찌르듯 육체가 병들고 마음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고자 한다.
(解說)
봄은 원(元)이고 목(木)기운으로 생명을 싹 틔우고 지상위로 그 모습을 드러나게 한다. 여름은 형(亨)이고 화(火) 기운으로 생명을 분열 성장시키고 무성히 자라게 한다.
가을은 이(利)이고 금(金) 기운으로 생명을 수렴시키고 결실하게 한다. 겨울은 정(貞)이고 수(水) 기운으로 생명을 저장시키고 본자리로 돌아가 고요히 쉬면서 다음 봄을 준비한다.
봄 여름은 하루의 낮이요, 가을 겨울은 하루의 밤이다. 그러므로 밤에는 마치 나무가 겨울 동안 모든 기운을 씨앗이나 뿌리로 수렴하여 땅 속에서 휴식을 취하며 동시에 다가올 봄을 준비하듯이, 수행자는 고요히 잠을 청하는 가운데 맑은 야기(夜氣)를 축적해 가야 한다.
만약 밤마다 이 맑은 야기를 기르고 축적하지 않으면 마치 저 무성했던 우산(牛山)이 소와 양에게 계속 뜯겨서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민둥산이 되고 말듯이 사람도 타고난 풍성한 생명력이 소진되어 마침내 사랑도 정도 없는 차가운 인조인간으로 화하고 만다.
그러므로 자칫 인욕으로 흐르기 쉬운 밤에는 스스로 삼가고 조심하여 절도 있게 기운을 제어 하고 편안한 잠 속에서 맑은 야기를 흠뻑 받아서 내일의 활동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를 야기가 가장 충만한 시간대로 보고 이 시간대는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수면을 취하거나 고요히 좌선에 몰입한다.
54. 오징(吳澄, 오초려)의 경잠(敬箴)
敬箴 : 오징의 공경하라
維人之心 易於放逸
操存舍亡 或入或出
대체로 사람의 마음은 풀려나서 달아나기 쉽다. 붙들면 보존되고, 내버려두면 들고 나감이 망령되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敬之一字 其義精密
學者所當 服膺弗失
收斂方寸 不容一物
경(敬)이란 글자는 그 뜻이 매우 정밀하니 배우는 사람이 마땅히 가슴에 간직하여 방촌(方寸)에 거두어 들여서 하나의 외물(外物)도 허용하지 말고 그대로 보존해 가야한다.
如入靈祠 如奉軍律
整齊嚴肅 端莊靜一
戒愼恐懼 兢業戰栗
마치 신령스런 사당(祠堂)에 들어가듯 엄격한 군율(軍律)을 받들 듯, 가지런하고, 엄숙하고, 단정하고, 장중하고, 고요하고, 삼가고,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如見大祭 罔敢輕率
如承大祭 罔敢慢忽
마치 큰 손님을 맞이하듯 경솔하지 않고, 마치 큰 제사를 받들 듯 오만하거나 소홀하지 않아야 한다.
視聽言動 非禮則勿
忠信傳習 省身者悉
把捉於中 精神心術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함에 예(禮)가 아니면 행하지 않고, 충(忠)과 신(信)을 전수받아 익히고, 스스로 몸을 반성하고, 희노애락이 피어나기 이전의 마음 상태인 중(中)을 유지하는 것을 정신과 마음을 드러내는 묘방으로 삼아야 한다.
檢束於外 形骸肌骨
常令惺惺 又新日日
또한 밖으로 행동을 단속하여 온 몸이 언제나 깨어 있도록 하고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되도록 정성을 다해야한다.
敢以此語 鏤于虛室
감히 이 글을 빈 방에 새겨 경계하고자 한다.
(解說)
사람의 마음이란 미묘하여 '있다'고 하면 있고, '없다'고 하면 없다. 거두어 방촌에 두면 온갖 사물을 낳고 기르고 갈무리 하는 천지의 힘과 하나가 되고, 놓아 외물에 끌리어가도록 내버려두면 마치 뒹구는 낙엽처럼 한낱 욕망의 노예로 전락되고 만다.
바로 이 미묘한 마음을 모으고 거두어 들이고 기르고 간직하여 의연한 천지의 대행자가 되도록 스스로를 이끌어가는 한결같은 자세가 곧 경(敬)이다.
55. 오징(吳澄, 오초려)의 화명(和銘)
和銘 : 온화하라
和而不流 訓在中庸
화이불류(和而不流)는 중용(中庸) 속에 들어있는 교훈이다.
顔之愷悌 孔之溫恭
안자(顔子)께서는 언제나 화락하셨고, 공자(孔子)께서는 온화하고 공손하셨다.
孔顔往矣 孰繼遐蹤
공자와 안자는 먼 고인이니 누가 있어 그 정신을 이을 것인가?
卓彼先覺 元公淳公
元氣之會 淳德之鐘
송나라 때 주돈이 선생과 정호 선생이 있었으니, 두 분 선생은 원기(元氣)가 모이고 순박한 덕(德)이 있어,
瑞日祥雲 霽月光風
庭草不除 意思沖沖
마치 해와 같고, 상스러운 구름 같고, 밝은 달 아래의 풍경 같아서, 정원의 풀을 뽑지 않아도 그 뜻과 생각이 넓고 온화하였다.
天地生物 氣象融融
萬物靜觀 境與天通
천지가 만물을 낳는 기상은 화(和)에 근원을 두고, 만물은 바로 이 하늘의 화(和)와 더불어 각자의 경계를 뛰어넘어 서로 통한다.
四時佳興 樂與人同 泯若圭角
네 계절의 조화로운 순환에 흥취가 있으니 주위 사람과 더불어 함께하고 뾰족한 모난 자리는 흥건히 적셔 그 예리함을 없앤다.
春然心胸 如玉之潤 如酒之醲
봄 같은 온화한 가슴 속은 마치 아름다운 옥이 맑은 물을 머금은 듯 술이 짙게 익은 듯 하고,
晬面盎背 辭色雍容
얼굴은 맑고 깨끗하고, 뒷모습은 물동이가 가득 찬 듯 원만하고, 말하는 기색은 온화하고 조용하고,
待人接物 德量舍洪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접하는 태도는 푸근한 덕으로 싸여 있다.
和粹之氣 涵養之功
이 모든 것은 온화하고 순수한 화기(和氣)를 평소에 함양한 공덕이다.
敢以比語 佩于厥躬
감히 이 말을 새겨서 몸에 패물처럼 지니고자 한다.
(解說)
'중용'에서는 희노애락이 발하기 전의 고요한 상태를 '중(中)'이라 하고, 발하여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한다.
바로 이 화(和)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천지의 마음이며 뭇 존재들이 분리되고 구획된 자신의 경계를 훌훌 열고 나와 하나로 어울리는 대문이다. 그래서 모든 위인들은 바로 이 화(和)의 마음을 귀하게 여겼다.
만물을 따스하고 온화하게 감싸주는 큰 덕을 기르는 바탕이 곧 이 화(和)이며, 모든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의 따스한 입김도 바로 이 화(和)이다.
이 따스한 화(和)의 마음을 바탕으로 한 작은 생명의 애틋함을 알고, 한 작은 생명의 고뇌를 알고, 한 작은 생명의 고독을 알고, 한 작은 생명의 애한을 알고, 한 작은 생명의 눈물을 안다.
바로 이 작은 생명을 감싸주고 지켜 주려고 여태까지 굳게 닫아 두었던 따스한 마음의 문을 진정으로 열 때 비로소 참다운 인류애인 인(仁)의 문에 들어갈 수 있다.
이름도 없는 계곡 옆 이름도 없는 나무 아래 파리한 그믐달을 머리에 이고 여태 정들었던 뿌리 곁을 차마 떠나지 못해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 여윈 나뭇잎 한 장의 숨은 이야기를 들을 줄 알 때 우선 내 심신과 화(和)하고 이웃과 화(和)하고 천지와 화(和)할 수 있다.
56. 오징(吳澄, 오초려)의 자신명(自新銘)
自新銘 : 자신을 새롭게 하라
齒本白一 朝不漱 其汚已積
面本白一 旦不頮 其垢己黑
體本白一 日不浴 其形已墨
치아는 원래 희지만 하루라도 닦지 않으면 찌꺼기가 눌러 붙어 더러워지고, 얼굴은 원래 희지만 하루 아침이라도 세수하지 않으면 때가 끼고, 몸도 본래 희지만 하루라도 목욕하지 않으면 검게 된다.
齒雖汚 漱之則卽無
面雖垢 頮之則卽不
體雖墨 其形浴之則
塋然如玉潔且淸
치아가 비록 더럽더라도 양치질을 하면 다시 희게 되고, 얼굴이 비록 때가 끼었더라도 세수를 하면 다시 희게 되고, 몸이 비록 검더라도 목욕을 하면 마치 옥처럼 맑아진다.
是知 齒本無汚 其汚也實自吾
面本無垢 其垢也實自取
體本潔且淸 其形之墨也 實自成
원래 치아에는 더러움이 있는 것은 아닌데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이고, 얼굴에는 본래 때가 있는 것이 아닌데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이고, 몸도 원래 맑고 깨끗한데 검게 된 것은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이다.
齒本白而我自汚 誰之辜
面本白而我自垢 誰之咎
體本白而我自墨 誰之慝
이같이 치아는 본래 흰데 내가 게을러서 스스로 검게 만들었으며, 얼굴은 본래 흰데 내가 스스로 더럽게 만들었으며, 몸도 본래 흰데 내가 스스로 검게 물들었으니 이 모두 누구의 잘못으로 탓할 것인가?
幸而
一朝漱其齒 白者复爾
一朝頮其面 白者復見
一日潔其體 而白者复如玉
盖曰向也 吾身白者已塵
다행히 하루 아침이라도 치아를 닦으면 원래의 하얀색이 다시 살아나고, 얼굴을 씻으면 원래의 흰 빛이 다시 돌아오고, 몸을 깨끗이 하면 흰 빛이 다시 옥처럼 되살아나니, 이 모든 것은 결국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지 않겠는가?
今焉澡雪 舊染維新
而今而後 殆不可复
본래 흰 몸이 때로 잠시 더럽혀졌다가 이제 목욕을 하여 다시 깨끗한 원래의 몸을 되찾았으니 더 이상 더럽혀질 수 없다.
士子守己 當如女子
文人治身 當如武人
선비 된 사람이 자신을 지켜 감은 마치 여인처럼 해야 마땅하고, 글 쓰는 사람이 자신의 몸을 다스림은 마치 무인(武人)과 같아야 한다.
女子居室 必無一毫 點汚介然
自守如此 是謂守己 如女武人
여인이 방에 거처할 때는 털 끝만큼이라도 허물이 없도록 스스로 절조를 지켜가니, 이를 두고 선비가 자기를 지킴은 마치 여인처럼 하라고 이르고,
殺敵必須 直前不顧 勇於自治
무인이 적을 죽일 때는 뒤돌아봄이 없이 단칼로 적을 죽이는 과단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如此是謂 治身如武
이를 두고 글 쓰는 이가 자기 몸을 지킴은 마치 무인이 자신을 다스려가듯 하라고 이른다.
女子女易 所謂不有躬也
武不武傳 所謂我非夫者
여인이 여인답지 못하는 것을 '역(易)'에서는 '몸을 보전하지 못함'으로 풀이하고, 무인이 무인답지 못하는 것을 '전(傳)'에서는 '장부가 아님'으로 표현하고 있다.
身之白者渾全
而未壞貴常以
不女之女爲戒
몸의 흰 빛이 온전하여 아직 원래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때는 소위 '여인이 여인답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하여 보존하고,
身之白者旣壞
而求全謹無若
不武之武人然
이미 흰 빛이 허물어진 후 다시 원래의 온전한 몸을 되찾고자 할 때는 소위 '무인이 무인답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과단성 있게 힘써야 한다.
(解說)
원래 쇠 속에는 녹이 없는데 무단히 녹이 생겨 단단한 쇠를 못 쓰게 하듯이, 본래 우리의 마음은 깨끗하고 맑고 밝고 온전한데, 스스로 번뇌와 분별의식과 삿된 생각을 구름떼처럼 일으켜 우리의 온전한 마음을 뒤덮어 버린다.
그러나 원래의 순수한 마음의 근원마저 오염된 것은 아니다. 구름 걷히면 명월(明月)이 돋아나듯, 안개 걷히면 청산(靑山)이 드러나듯 지혜와 수행의 바람으로 번뇌의 구름떼만 날려버리면 원래의 순수한 마음은 온전히 드러난다.
아직 우리의 본래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온전히 지니고 있으면 마치 여인이 자신의 순결을 지켜가듯이 그 마음을 보존해가고, 이미 거울이 더럽혀지듯 본래의 순수하고 온전한 마음을 잃고 심이 오염되어 있다면, 마치 무인이 머뭇거리지 않고 곧바로 적의 목을 자르듯이 잘못된 습관과 삿된 생각을 단칼로 잘라버리고 본래의 순수한 심을 되찾아야 한다.
이를 두고 '본래의 순수한 마음은 마치 여인이 순결을 지키듯 보존해 가고, 이미 오염된 마음은 마치 무인이 적의 목을 자르듯 단숨에 잘라 버려라'고 이른다.
57. 오징(吳澄, 오초려)의 자수명(自修銘)
自修銘 : 자신을 수양하라
養天性 治天情
正天官 盡天倫
타고난 천성(天性)을 기르고, 타고난 정(情)을 다스리고, 타고난 감각들을 바르게 하고, 타고난 천륜(天倫)을 다한다.
奚而養 奚而治
奚而正 奚而盡
그럼 어떻게 기르고, 어떻게 다스리고, 어떻게 바르게 하고, 어떻게 다할 것인가?
未知之 則究之
旣知之 則踐之
그 방법을 아직 모른다면, 그 이치를 궁구하고, 이미 알고 있다면 실천에 옮긴다.
究者何 窮其理
踐者何 履其事
궁구한다는 것은 그 이치를 캐묻는 것을 말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그 이치를 실제로 행하는 것을 말한다.
若何而爲 仁義禮智道
이치를 캐묻는다는 것은 어떻게 하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도가 이루어지고,
若何而爲 喜怒哀懼愛惡之節
어떻게 하면 희노애락애구오(喜怒愛樂哀懼惡)의 절(節)이 되고,
若何而爲 耳目鼻口手足 四支之則
어떻게 하면 이목구비수족(耳目口鼻手足)의 준칙이 되고,
若何而爲 君臣父子夫婦長幼朋友之常
어떻게 하면 군신, 부자, 부부, 장유, 붕우의 떳떳함이 되는지
探其所以然 求其所當然
그 까닭과 도리를 모색해가는 것을 말한다.
是之謂窮其理
存之於心則如此
見之於事則如此
行之於身則又如此
실제로 행한다는 것은 이 이치를 마음에 보존하고, 사람과 사물을 응대하는 일에, 직접 이 이치를 몸으로 실천하여,
內而施之於家則如此
外而推之於人則如此
大而措之於天下則又如此
안으로 가족에 적용하고, 밖으로 남에게 적용하고, 나아가 천하에 적용해 그 이치를 넓혀가는 것을 말한다.
躬行之焉力踐之焉 是之謂覆其事
然則其先如之何 曰立誠 而居敬
그런데 이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바로 매사에 정성을 다하는 성(誠)의 자세와 초지일관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하는 경(敬)의 태도이다.
(解說)
이 짧은 인생에 그저 그렇게 살지 않고 무언가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스로의 수행이 필요하다.
그럼 어떻게 스스로를 수행해 갈 것인가?
먼저 삶의 의미를 궁구하고, 이를 일상생활에 직접 실행하여 스스로 자신의 몸속에 지행(知行)을 합일(合一)시켜, 우선 가족과 하나가 되고, 이웃과 하나가 되고, 천하와 하나가 되어 마침내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이르는 데 있다.
자신을 수행한다는 것은 결국 타고난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히는 일인데 명덕이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지 이(理)의 한 자락이자 전체인 자신의 성(性)을 말한다.
성(性)의 네 요소가 인, 의, 예, 지이고, 이 성(性)이 형기에 부딪혀 나오면 정(情)이 되는데 이 정의 일곱 가지 요소가 희, 노, 애, 락, 애, 구, 오이다.
이 희, 노, 애, 락, 애, 구, 오는 이, 목, 구, 비, 수, 족의 몸을 통해 밖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인, 의, 예, 지의 구체적인 실천 규범이 삼강오륜이다.
성(性)은 이(理)가 형기에 부딪힘이 없이 그대로 발현되므로 순선이다. 원래 성(性)자는 마음 심(忄)과 날 생(生)의 합성어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의미를 상징한다.
정(情)은 성(性)이 우리의 육체인 형기에 부딪혀 나온 다양한 감정이므로, 우리의 형기인 감각기관이 바로 서면 바른 정이 될 수 있고, 사욕으로 왜곡되면 비뚤어진 정이 된다. 그러므로 정은 순선이 될 수 없고, 선과 악이 혼재되어 있다.
원래 정(情)자는 마음 심(忄)과 푸를 청(靑)의 합성어로 ‘마음이 색체로 물들어 드러났다’는 의미를 뜻한다. 이 이치를 바탕으로, 평소 눈, 코, 귀, 입, 몸의 감각기관을 잘 다스려 마음이 육체의 욕망에 지배되지 않도록 하고, 내 마음 속의 심이 바르게 표출되어 아름답고 밝은 정으로 피어나도록 한다.
그리고 내 마음 속의 성의 요소인 인, 의, 예, 지를 잘 보존하여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으로 피어나게 하여 나의 타고난 명덕을 밝혀 개인적 자아를 완성하고 이를 토대로,
사회윤리인 군위신강, 부위부강, 부위자강의 삼강(三綱)과 군신유의, 부부유별, 부자유친, 장유유서, 붕우유신의 오륜(五倫)을 일상생활에 실천하여
사회적 자아를 완성하여 자신 속의 성(性)과 천지의 이(理)가 관통되게 하여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이르러 마침내 모든 존재를 낳고 기르고 살리는 천지의 도에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무엇보다 자신의 수행에 중요한 것은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는 성실한 태도인 성(誠)과 오직 바른 길로만 가겠다는 치열한 수행자세인 경(敬)이다.
바로 이 성(誠)과 경(敬)은 모든 수행의 기초가 된다. 그러므로 성과 경이 밑받침되지 않는 수행은 모두 사상누각이요 허공환성(虛空幻城)에 불과하다.
58. 오징(吳澄, 오초려)의 소인욕명(消人欲銘)
消人欲銘 : 욕심을 줄여라
人欲之極 惟色與食
食能殞軀 色能傾國
인욕(人慾)의 극(極)은 색욕(色慾)과 식욕(食慾)이다. 식욕은 몸을 상하게 할 수 있고, 색욕은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
紾兄摟子 食色乃得
將紾將樓 不亦大惑
꼭 형의 팔을 비틀어 밥을 빼앗아 와야만 먹을 수 있고, 꼭 담을 뛰어넘어 처녀를 끌고 와아면 처를 구할 수 있다면,
형의 팔을 비틀거나, 처녀를 끌고 옴이 그 절박한 상황을 고려해볼 때 반드시 크게 본마음을 잃었다고는 볼 수 없다.
必也謀道 必也好德
而勿謀食 而勿好色
그러나 도(道)를 구하고자 하면 반드시 덕을 좋아해야 하지 밥이나 여색을 좋아해서는 안 된다.
飮食男女 大欲存焉
不爲欲流 乃可聖賢
먹고 마시고 색을 구하는 일은 본능적인 욕망이지만 이 욕망에 이끌러 가지 않고 본심을 바로 지켜 가면 성현이 될 수 있다.
我思古人 以理制欲 常戒以懼
옛 선비들은 이(理)로써 욕망을 제어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경계를 삼았다.
惟愼其獨 賢賢易色 好善不足
홀로 있을 때 삼가고, 마치 색을 좋아하듯 현인을 좋아하고, 선을 좋아하기를 항상 부족한 듯 하였으니,
何暇色耽 恣情悅目
어느 겨를에 색을 탐하고 눈을 즐기며 정을 남발하였겠는가?
食無求飽 志學惟篤
何暇食求 以極其腹
밥을 먹을 때는 식탐에 빠지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뜻을 두텁게 두었으니, 어느 겨를에 식욕에 끌려 다니는 노예가 되었겠는가?
如或不然 是人其天
貪淫蠱惑 有愧格言
이와는 반대로 어떤 사람이 있어, 천성이 음란하고 주위 사람마저 음란한 행동으로 이끌어 간다면 이는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일이다.
好色是欲 德未見好
惡食是恥 未足議道
색을 좋아함은 욕망에서 비롯되었으니 덕에는 '좋아함'이란 단어를 찾아볼 수 없고, '음식이 좋고 나쁘다'는 차별심은 식욕에 이끌리는 부끄러운 일이니 도(道)를 논하는 일에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嗚呼食色 今其戒玆
오호라, 식욕과 색욕이여, 지금 당장 경계하고 경계할 일이다.
戒之如何 剛以治之
그럼 어떻게 경계할 것인가? 오직 마음을 굳게 하여 다스려 갈 뿐이다.
(解說)
인간에게는 식욕, 색욕, 재물욕, 명예욕, 수면욕이라는 오욕(五慾)이 있는데 이 중에서 가장 제어하기 어려운 것이 식욕과 색욕이다. 식욕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긴요한 것이고, 색욕은 종족 보존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욕구이다.
그러나 식욕과 색욕에 휩쓸리어 배불리 먹고도 살생을 계속하고, 아내를 가지고도 다른 여인과 더불어 음란한 짓을 일삼는다면 분명 문제는 있다.
먹되 식욕에 이끌리지 않고, 성행위를 하되 음욕에 이끌리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바른 욕망의 표현이며 자연의 이법을 따르는 여여(如如)한 행동이다.
그래서 음식은 도심을 담고 있는 육체를 보존하고 길러가는 약으로 삼고, 색은 음양의 조화를 이끌어가는 따스한 화합의 장으로 여긴다.
이같이 식욕과 색욕은 무조건 거센 물길을 틀어막듯 무조건 막아야만 하는 악(惡)이 아니고, 잘 이끌어 가면 뭇 생명을 살리는 아름다운 강의 흐름도 될 수 있다.
59. 오징(吳澄, 오초려)의 장천리명(長天理銘)
長天理銘 : 천리 가꾸기
天理之至 惟仁與義
仁只在孝 義只在弟
천리(天理)의 지극함은 인(仁)과 의(義)이고, 인(仁)은 효(孝)에서 비롯되고, 의(義)는 제(弟)에서 비롯된다.
苟孝於親 是能爲子
苟弟於兄 是能爲弟
부모에게 진실로 효를 다할 때 능히 자식이 될 수 있고, 형에게 진실로 공경을 다할 때 능히 아우가 될 수 있다.
能爲子弟 他不外是
참된 자식과 아우가 되고나면 다른 일들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此之不能 何況他事
인간의 도리에서 가장 기본적인 효(孝)와 제(弟)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면, 다른 일들이야 언급해서 무엇하랴?
盡乎人倫 堯舜爲至
然其爲道 孝弟而已
인륜에 가장 극진했던 요임금과 순임금도 그 근본은 모두 효와 제에서 비롯되었다.
知斯二者 卽所謂智
節斯二者 卽所謂禮
實有二者 卽信之謂
이 효(孝)와 제(弟)를 아는 것을 지(智)라 하고, 이 두 가지를 절조있게 행하는 것을 예(禮)라 하고 이 두 가지를 미덥게 실천하는 것을 신(信)이라 한다.
安行二者 樂則生矣
五常百行 不離斯二
이 효와 제를 일상생활에서 편안히 실천해가면 즐거움이 생겨나고 마침내 인, 의, 예, 지, 신의 떳떳한 오상(五常)의 도리가 확립되고, 백 가지 행실이 법도에 맞게 된다.
窮神知化 亦由此始
알고 보면 신묘한 이치와 우주의 운행 변화도 모두 이 효제의 원리에서 비롯된다.
如或不然 流入佛氏
名爲周徧 實外倫理
만에 하나라도 이 효제에서 벗어나면 불학(佛學)의 허무주의에 떨어져 명분은 그럴듯해도 인륜(人倫)을 벗어나는 일을 면치 못하게 된다.
事親從兄 豈不甚易
人非不能 特不爲耳
부모를 모시고 형을 공경하는 일이야 아주 쉬운 일인데도 사람들은 할 수 없어서가 아니고 다만 하지 않을 뿐이다.
嗚呼仁義 爲之由己
아, 인(仁)과 의(義)여, 이를 행하고 행하지 않음은 오직 나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
尙勉之哉 毋自暴棄
바라건대 여기에 힘쓰고 함부로 자포자기 하지 말지다.
(解說)
효(孝)는 상하의 종적(縱的)인 인륜이고, 제(弟)는 좌우의 횡적(橫的)인 인륜이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도리에서 윗사람을 섬기고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인륜의 도리를 배워가고, 형을 공경하는 도리에서 동료와 이웃을 사랑하고 아끼는 인륜의 도리를 습득해 간다.
그러므로 바로 이 효와 제에서 상하좌우 종횡으로 두루 통하는 사랑과 의(義)를 확충해갈 수 있다. 이 효제(孝弟)가 몸에 배이면 좁게는 한 가정이 편안하고, 넓게는 천하가 편안해진다.
요순의 천하 덕치도 알고 보면 모두 이 효제의 원리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간단한 효제를 실행하지 않는다. 이것은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다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나가는 노인을 위해 지팡이로 사용할 나뭇가지 하나 꺾어주지 않는 일은 할 수 없어서가(不能) 아니라 다만 하지 않기(不爲) 때문이다. 할 수 있는 일을 다만 육체의 안일을 위해 하지 않는 것은 천지에 대한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는 배은망덕한 행위이다.
60. 오징(吳澄, 오초려)의 극기명(克己銘)
克己銘 : 자신을 극복하라
去病非難 當拔其根
병을 제거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마땅히 그 뿌리만 뽑아버리면 된다.
己私旣克 天理复還
천리(天理)를 되돌아오게 하는 일은 쉽다. 사사로운 욕심만 뽑아버리면 된다.
克他未得 但加裁抑
固不猖獗 終尙潛匿
남을 이기지 못한 경우에 오직 단속하고 억누르면 세력의 거셈은 어느 정도 막을 수는 있지만 잠재된 공격의 불씨마저 막을 수는 없다.
克者伊何 譬如破敵 戰而勝之
'이긴다(克)'는 것은 어떤 뜻인가? 마치 적군을 깨뜨리듯 싸워서 승리함을 말한다.
是之謂克 二者異情 學者當明
그러나 학문하는 사람은 자기를 이기는 일과 남을 이기는 일, 이 둘을 마땅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人欲如敵 入據吾城
被吾戰勝 遠屛退聽
인욕(人慾)은 마치 적과 같아서 나의 마음의 영역인 성(城)으로 들어와 점거하면 이와 맞서서 용감히 싸워 성 밖으로 몰아내어 멀리 쫓아버려야만 감히 다시 들어오지 않는다.
不敢复來 攻城犯命
或敵在內 驅之城外
성이 공격당할 때 명령을 어기는 자는 제거하고, 성 안에 이미 적군이 들어왔을 때는 성 밖으로 몰아내고 성문을 굳게 닫아 막고 중요한 지점을 물 샐 틈 없이 경계해야 한다.
閉門固拒 控守要害
雖不得入 禍胎猶在
비록 적군이 성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을지라도 화근(禍根)은 여전히 남아있다.
守備一疎 又被攻壞
수비가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언제 적군이 침입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一戰有功 敵自服從
區區固守 敵敢力斲
한 번의 싸움에 효과를 보아 적군이 일시적으로 스스로 복종했더라도 자그만 틈만 보이면 적군은 싸움을 걸어온다.
一日克己 隋卽复禮
天下歸仁 其效如此
마찬가지로 단 하루 자신을 이겨(克己) 예를 되찾고(復禮) 천하를 인(仁)으로 돌아가게 했더라도 그 효과는 일시적으로 그친다.
克伐怨欲 苟徒力制
而使不行 仁則猶未
다시 말해서 자만하고, 원망하고, 탐욕스런 못난 마음을 노력을 통해 일시적으로 억눌렀다 해도, 완전한 인(仁)에 이른 것은 아니다.
去惡之道 如農去草
旣已芟夷 复蘊崇之
악을 없애는 도리는 마치 농부가 잡초를 없애는 것과 같아서 이미 잡초를 베어버렸더라도 때가 되면 다시 자라나서 곡식을 덮게 된다.
絶基本根 勿使能殖
則善者信 無复蟊賊
잡초의 원뿌리마저 완전히 뽑아버릴 때 비로소 곡식이 기를 펴고 병충해도 없이 무럭무럭 자라나게 된다.
不能勝敵 其何能國
나라를 다스리는 데도 어찌 적을 격퇴하지 않고 가능할 수 있겠는가?
爲學亦然 其可不力 以士希賢
마찬가지로 학문하는 것도 힘쓰지 않고 어찌 현인이 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顔眞準的 力到功深 優入聖域
안연(顔然)을 참다운 등대로 삼고 힘을 다하고 공(功)을 쌓아 가면 반드시 성인(聖人)의 영역에 진입할 수 있다.
(解說)
보통 사람의 마음은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으로 혼재되어 있다. 그런데 인욕은 형기를 따라 나오므로 잡초처럼 강하고 천리는 형체가 없는 이(理)에서 나오므로 곡식처럼 연약하다.
농부가 논밭을 방치해 두면 잡초가 곡식을 덮어버리듯이 학문하는 사람이 마음을 되는대로 내버려두면 인욕이 천리를 뒤덮어 버린다.
그러므로 농부는 밤낮 잡초를 제거해야 곡식이 자라고 학문하는 사람들은 밤낮 인욕을 제거해야 도심이 자란다.
그러나 농부가 잡초를 제거할 때 흙 위의 잡초 줄기만 제거하면 처음에는 말끔해 보이지만 며칠이 지나면 또다시 논밭은 잡초로 뒤덮이게 된다.
마찬가지로 학문하는 사람이 하루에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했다 해도, 며칠이 지나면 또다시 인욕이 고개를 내민다.
마치 일시적으로 적군을 성 밖으로 몰아내었다 해도 적군은 아군 수비의 빈틈만 보이면 어김없이 공격해오듯이 온갖 사심이 고개를 내민다.
그러므로 농부가 잡초의 뿌리까지 완전히 뽑아 태워버리지 않는 한, 장수가 성 밖으로 쫓아낸 적군을 공격하여 완전히 섬멸시키지 않는 한, 학문하는 사람이 완전히 인욕을 제거하지 않는 한, 농부와 장수와 수행자는 밤낮 끊임없이 잡초를 제거하고 적의 동태를 살피고, 인욕의 근원을 철저히 차단해 가야 한다.
바로 이 밤낮 경계하는 자세가 곧 경(敬)이고, 이 경(敬)의 자세는 죽고 나서야 그만 둘 일이다.
61. 오징(吳澄, 오초려)의 이일잠(理一箴)
理一箴 : 진리는 하나이다
或問予天 予對曰理
누군가가 나에게 '천(天)'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이(理)'라고 대답하겠다.
陰陽五行 化生萬類
其用至神 然特氣爾
必先有理 而後有氣
'음양오행'은 만물을 낳고 변화시키는 신묘한 작용을 가지고 있지만 기(氣)이므로 반드시 이(理)를 짝하고, 그 선후는 이(理)가 먼저고 그 뒤에 기(氣)가 따른다.
蒼蒼蓋高 包含無際
其體至大 然特形只
푸른 하늘이 높이 떠서 가없이 모든 만물을 포함할 정도로 그 바탕이 지극히 크지만 짝이 있고, 형(形)이 있는 기의 덩어리에 불과하다.
形氣之疑 理實主是
형태(形態)가 있는 것은 모두 기의 엉김의 소산이므로 이(理)의 지배를 받는다.
無聲無臭 於穆不已
天之爲天 斯其爲至
이(理)는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모양도 없지만, 천(天)이 천(天)으로 되는 것은 바로 이 이(理)의 지극함에 있다.
分而言之 名則有異
이 하나의 이(理)를 나누고 거기에 이름을 붙이니 차별이 생겨난다.
乾其性情 天其形體
건(乾)은 천(天)의 성(性)과 정(情)을 말하고, 하늘은 천(天)의 형태와 바탕을 말한다.
妙用曰神 主宰曰帝
以其功用 曰神曰鬼
專而言之 曰理而已
이 천(天)의 신묘한 작용을 일러 신(神)이라 하고, 만물을 주재(主宰)함을 일러 제(帝)라 하고, 그 작용이 세세함을 일러 귀(鬼)라 하지만 이 모든 것의 밑바탕은 오직 이(理)일 뿐이다.
大哉至哉 理之一言
크고 지극하구나, 이(理)의 묘용이여!
天以此理 位上爲天
物資以始 是謂乾元
하늘이 바로 이 이(理)로써 하늘이 되어 위에서 주재하고, 만물이 이에 힘입어 비로소 시작되니 이를 일러 건원(乾元)이라 한다.
地以此理 而位下焉
物資以生 實承乎乾
땅은 이 이(理)를 품고 아래에 자리하고, 만물은 이 땅의 기운으로 형태를 갖추어 언제나 하늘을 받든다.
人生其間 眇然有已
乃位乎中 而參天地
사람은 천지(天地) 사이에 태어난 비록 조그만 존재이지만, 천지의 중앙에서 천지와 더불어 대등하게 존재한다.
惟其理一 所以如此
이는 하나의 이(理)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天地與人 理固一矣
人之與物 抑又豈二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의 공통된 이(理)로써 진실된 하나라면, 사람과 만물도 하나의 공통된 이(理)로써 하나이다.
天地人物 萬殊一實
其分雖殊 其理則一
따라서 하늘과 땅, 사람, 만물은 겉으로는 서로 다른 형상을 하고 서로 다른 가지로 존재하지만 하나의 뿌리(理)에 근원을 둔 같은 열매이다. 즉 각각 공유하고 있는 이(理)는 하나이다.
天地無情 純乎一眞
至誠不息 終古常新
曰天地人 理則惟鈞
하늘과 땅은 삿된 정(情)이 없어 하나의 참된 이(理)로 순수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쉬지 않고 옛 것의 수명이 다하면 다시 새로운 것을 생성하므로, 하늘, 땅, 인간은 삼재(三才)로 영원하다.
或不相似 以人有身
氣質不齊 私欲相因
이같이 하나의 순수한 이(理)의 관점에서 볼 때는 하늘, 땅, 인간이 서로 동등하지만, 현실적인 존재로 볼 때는 인간은 저마다 다른 몸이 있고, 기질이 서로 다르고, 다른 사욕(私慾)이 있으므로 천차만별의 차이가 생겨난다.
惟聖無欲 與天地參
理渾然一 形肖而三
오직 성인(聖人)만이 욕심이 없어서 천지와 함께 할 수 있고 비록 형상은 천, 지, 인 셋으로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이(理)로써 혼연일체가 된다.
下聖一等 于時保之
未能樂天 畏天之威
보통 사람들은 성인(聖人)보다 한 차원 아래서 아직 하늘과 더불어 비록 즐기지는 못하지만, 하늘의 이(理)를 시시각각 보존하고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 한다.
畏天伊何 無終日違
及其至也 與聖同歸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종일토록 천리에서 벗어남이 없다는 것인데 이 벗어남이 없는 태도가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마침내 성인의 자리에 돌아갈 수 있다.
一者謂誠 惟天惟聖
이 하나(一)를 지키는 마음이 곧 성(誠)인데 하늘과 성인(聖人)만이 능히 할 수 있다.
希聖之賢 主一持敬
성인이 되기를 바라는 현인은 이 일(一) 즉, 성(誠)을 주로 하여 경(敬)을 지켜간다.
敬而戒懼 弗聞弗見
敬而謹獨 莫見莫顯
敬而窮理 則明乎善
이 경(敬)의 자세로, 항상 경계하고 두려워하여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실천하고, 특히 홀로 있을 때를 삼가고,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도 경계하고, 이치를 끝까지 궁구하여 선(善)을 밝혀간다.
如臨如履 心常戰戰
一而無適 有失者鮮
마치 깊은 물가에 이른 듯, 살얼음을 밟는 듯 조심스런 마음으로 이 하나의 도리를 지켜 가면 헛된 길로 떨어지지 않으니 잃을 것도 적게 된다.
如或不爾 禽獸不違
만약 이런 경계의 태도를 져버리게 되면 금수와 다름없는 존재로 전락되고 만다.
人物之初 理同一原 人靈於物
원래 사람과 만물은 하나의 같은 이(理)를 바탕으로 태어났는데 왜 사람은 만물보다 더 신령스러운가?
曷爲其然 形氣之稟
物得其偏 是以於理
不通其全 人得其正
固非物比 全體通貫
그 까닭은 만물은 형기를 부여받을 때 치우친 기를 받았기 때문에 이(理)가 막히거나 잘 소통되지 않기 때문이고, 사람은 바른 기를 부여받았기 때문에 다른 만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이(理)가 잘 소통되기 때문이다.
性爲最貴 最貴之中 又有不同
이같이 인간의 성(性)이 가장 존귀한데 이 존귀한 동등한 성(性)을 둘러싸고 있는 기(氣)와 질(質)은 인간 개인마다 서로 다르다.
氣有淸濁 質有美惡
기(氣)에는 맑음과 탁함이 있고, 질(質)에는 미(美)와 추(醜)가 있다.
曰聖賢愚 其品殊途
바로 이 기(氣)와 질(質)의 다양한 배합에 따라 성인, 현인, 어리석인 이의 차이가 벌어진다.
濁者惡者 愚不肖也
其淸其美 則爲賢知
즉 탁하고 추한 기와 질이 모이면 불순한 어리석은 이가 되고, 맑고 아름다운 기와 질이 모이면 현인이나 지자(智者)가 되고,
得美之美 得淸之淸
無過不及 純粹靈明
맑은 기 가운데 가장 맑은 기를 얻고 아름다운 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질을 얻어 지나침도 없고 모자람도 없이 순수하고 영명(靈明)하여
天理渾然 無所虧喪
斯爲聖人 至誠無妄
천리(天理)와 구별됨이 없이 하나가 되어 조금도 이지러지거나 떨어져 나감이 없어 온전한 기와 질을 그대로 받을 때 지극한 정성과 순선을 갖춘 성인(聖人)이 된다.
聖性而安 賢學而行
愚而能學 雖愚必明
성인은 타고난 본성으로 편안하고, 현인은 배워서 행하고, 어리석은 이는 비록 어리석지만 배움을 어렵게 계속하여 밝아진다.
愚而不學 是自暴棄
下愚不移 正此之謂
어리석으면서도 배우지 않으면 마침내 스스로 자포자기에 빠져 '최하품의 어리석은 이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비난을 자초한다.
乾父坤母 民胞物與
四而實一 窮亘今古
四者之內 物爲最賤
하늘은 아버지, 땅은 어머니, 그 사이의 백성은 형제, 그리고 또 다른 형제인 물(物), 이 네 가지는 원래 하나의 이(理)에 바탕을 둔 같은 것이었는데 고금을 통해 이 가운데서 마지막 물(物)이 가장 천대를 받아왔다.
天地與人 則無少間
胡世之人 多間以私
上不化贊 下甘物爲
원래 사람은 천지(天地)와 더불어 털끝만큼의 간격도 없었는데, 어찌 사람 스스로 사사로운 욕심에 빠져 큰 틈을 만들어 위로는 천지의 조화를 돕지 못하고 아래로는 기꺼이 물(物)과 같은 비천한 존재로 전락되고 마는가?
上智下愚 學知困知
就人而論 亦分四歧
위로 성인으로부터 아래로 자포자기에 빠진 어리석은 사람이 있고 그 사이에 배워서 아는 현인(賢人)이 있고 온갖 어려움을 겪은 후 겨우 배워서 터득하는 둔재가 있다.
理焉本一 人自爲四
이(理)는 원래 하나인데 이같이 네 부류로 구분되는 것은 사람 스스로의 지닌 그의 기질 탓이다.
下愚之人 蓋不足齒
困知可賢 聖可學能
맨 아래층의 자포자기에 빠진 어리석은 사람이야 같은 반열에 오를 수 없지만 많은 어려움을 겪은 후 비로소 터득하는 둔재는 노력 여하에 따라 현인도 될 수 있고 성인도 될 수 있다.
柰何爲人 不求踐形
왜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으로서의 형상을 갖추게 된 근원자인 이 이(理)를 본받으려고 돌아보지 않는가?
理在兩間 一本殊分
散爲百行 別爲四端
이 이(理)는 음양 양기(兩氣)의 근원자로서 원래 하나의 흐름으로 만 가지로 나눠져서 만 가지 사물을 자아내고 인간의 마음속에서 사단(四端)으로 드러난다.
或謂之道 或謂之誠
千言萬語 一之異名
이 이(理)를 때로는 도(道)라 하고, 때로는 성(誠)이라고 일컫지만 모두 하나(一)의 이(理)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萬事萬物 胥此焉出
理一之義 周遍詳密
모든 만물이 이 하나(一)를 바탕으로 생겨나니 이 '일(理一)'이라는 뜻은 참으로 두루 널리 미치고 자세하고 긴밀하다.
理萬而一 心爲主宰
心一而萬 理之宗會
이(理)는 만 가지로 구별되면서도 하나이고 심(心)이 이(理)를 주재한다. 심(心)은 하나이면서 만 가지 작용을 드러내고 만 가지 이(理)가 모여드는 종회(宗會)가 된다.
在天曰理 在人曰心
이 하나(一)가 하늘에 있으면 이(理)라고 일컫고, 사람에 있으면 심(心)이라 일컫는다.
理一曰實 心一曰欽
이(理)가 오직 하나로 가득 찬 것을 참됨(實)이라 하고, 심(心)이 하나로 전일(全一)된 것을 경(敬) 곧 흠(欽)이라 한다.
(解說)
비행기가 만들어지기 전에 먼저 비행기에 대한 설계도가 완성된다. 그리고 이 완성된 설계도에 따라 물질들을 배합하고 조립하여 비로소 구체적인 형상화된 비행기가 세상에 나오게 된다.
여기서 설계도 역할을 하는 것이 곧 이(理)이고 물질, 부품, 동력들은 기(氣)가 된다. 배도 이와 같은 과정을 따라 만들어지고, 수레도 이와 같은 과정에 따라 만들어진다.
비행기는 하늘로 날고, 배는 물 위로 가고, 수레는 육지 위로 간다. 비행기의 마땅함은 하늘로 나는 데 있고, 배의 마땅함은 물 위로 떠서 가는 데 있고, 수레의 마땅함은 육지 위로 가는 데 있다. 이 각 사물에서의 존재의 마땅함을 일러 소이연(所以然)이라 한다.
반면에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신하는 임금에게 바른 도리로 충성을 다해야 하고 부부간에는 마땅한 구별이 있어야 하고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반드시 차례가 있어야 하고 친구 간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 같은 도덕적 윤리적 규범의 마땅함을 일러 소당연(所當然)이라 한다. 그리고 위의 소이연과 소당연을 합쳐 이(理)라고 지칭한다.
이같이 존재와 규범의 마땅함은 당연하고 여여(如如)한 하나의 원리로서 존재하는데 이를 이일(理一)이라고 한다.
이 하나의 이(理)가 각각의 사물에 따라 존재 간의 각각의 관계지움에 따라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그 마땅함을 드러내는데 이를 이일분수(理一分殊)라 한다. 즉, 하나의 근원적인 이(理)가 여러 갈래로 분파되었다는 뜻이다.
이런 마땅한 원리와 규범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은 성실하고 일관된 참된 태도를 성(誠)이라 하고 인욕과 천리의 갈림길에서 항상 천리의 길을 따르고 고수하려는 일관된 마음가짐을 경(敬)이라 한다.
천(天), 지(地), 인(人), 물(物), 이 모든 것들은 오직 하나의 이(理)를 바탕으로 존재하지만 이 이(理)를 근본으로 하여 하나의 구체적인 형상을 지니게 하는 기(氣)와 질(質)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저마다 다양한 형태를 갖추게 된다.
즉, 이(理)는 오직 순수한 성으로서 만물의 공통적인 바탕으로 존재하고, 기는 청(淸)한 기와 탁한 기로 구분되고, 질은 아름다운 질과 추한 질로 구분된다. 바로 위의 세 요소인 이, 기, 질의 배합의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의 존재가 성립된다.
이(理)와 가장 청한 기와 가장 아름다운 질로 배합되면 성인(聖人)이 되고, 이(理)와 청한 기와 이름다운 질로 배합되면 현인(賢人)이 되고, 이(理)와 비교적 많은 청한 기와 비교적 많은 아름다운 질로 배합되면 보통의 평인(平人)이 되고, 이(理)와 비교적 많은 탁한 기와 비교적 많은 추한 기로 배합되면 자포자기 상태로 빠지는 어리석은 우인(愚人)이 되고, 이(理)와 탁한 기와 추한 질로만 구성되면 사방이 꽉 막혀 이(理)가 소통되지 않는 동물 식물 광물 등의 물(物)이 된다.
그러나 모든 존재 속에는 존재로서의 완벽하고 원만한 저마다의 완전한 이(理)를 생득적으로 지니고 있으므로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성인(聖人)의 경지에 올라 천지(天地)와 더불어 여여(如如)한 우주의 묘리(妙理)를 함께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다. 성인(聖人)은 날 때부터 완전한 덕과 이를 갖추고 태어나서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그대로 천지의 도리와 화합하여 천지의 사업인 인(仁)을 함께 할 수 있다.
현인(賢人)은 성인의 말씀을 배움으로써 쉽게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고, 보통 사람들은 애써 노력하고 갖은 고초를 겪고 많은 시달림을 당하고 나서야 겨우 현인의 경지를 거쳐 마침내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가 있다.
그러나 제일 아래층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포자기에 빠져 자기 자신 속에 완전한 덕인 이(理)가 본래적으로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아예 학문과 수행의 길을 스스로 포기해 버린다.
스스로 자기 변혁을 포기한 자는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물지만, 일단 자기 변혁의 바른 길에 올라 스스로 애쓰고 노력하는 자는 시간만 투자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성인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62. 진백(陳柏, 진무경)의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夙興夜寐箴 :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鷄嗚而寤 思慮漸馳
盍於其間 澹以整之
닭이 울어 잠에서 깨어나면 여러 가지 생각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이 때 조용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피어오르는 생각을 하나, 둘 정리해 간다.
或省舊愆 或紬新得
次第條理 瞭然黙識
때로는 지난 허물을 반성하고, 때로는 새로 배운 것을 모아 차례대로 조리를 세워 고요한 가운데 명료히 체계를 잡아 간다.
本旣立矣 昧爽乃興
盥櫛衣冠 端坐斂形
提掇此心 曒如出日
嚴肅整齊 虛明靜一
마음의 근본이 이미 섰으면 뿌옇게 동이 틀 때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고 의관을 갖추고 단정히 앉아 흩뜨려진 마음을 거두어 들여서 이 마음 지니기를 마치 떠오르는 해와 같이, 훤하고, 엄숙하고, 한결같이 가지런하고, 텅 비고, 고요히 밝게 가져, 하나로 수렴되게 한다.
乃啓方策 對越聖賢
夫子在坐 顔曾後先
이런 고요한 일심(一心)의 상태에서 책을 펼치고 책 속의 성현들을 우러러 마주 대하면 공자께서 자리에 앉아계시고, 안자와 증자께서 앞뒤에 서 계신다.
聖師所言 親切敬聽
弟子問辨 反覆參訂
성인들이 말씀하신 것을 몸으로 간절하게 공손히 듣고, 제자들의 의문점과 논의 사항들을 거듭 거듭 비교하며 자신을 바로 잡아간다.
事至斯應 則險於爲
明命赫然 常目在之
일상생활의 여러 가지 일에 응할 때는 마음의 밝은 이치가 마치 목전에 보이듯이 행동하는 가운데 드러나도록 한다.
事應旣已 我則如故
方寸深淵 凝神息慮
일이 끝나면 다시 본래의 적적한 마음자리로 되돌아가서 고요히 정신을 수렴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그친다.
動靜循環 惟心是監
靜存動察 勿貳勿參
동(動)과 정(靜)은 마치 고리처럼 순환하는데 오직 심(心)으로 이를 감시하여 고요할 때는 보존하고 움직일 때는 살펴서 마음이 여러 가지 상념으로 갈라지거나 뒤섞이지 않게 한다.
讀書之暇 間以遊泳
發舒精神 休養情性
독서를 하다가 틈이 나면 정신을 마치 물 속에 헤엄을 치듯 자유롭게 풀어 쉬게 하여 성정(性情)을 풍요롭게 길러간다.
日暮人倦 昏氣易乘
齋莊正齊 振拔精明
해가 저물면 낮 동안 사람에게 시달린 피로로 인한 탁한 기운이 들어오기 쉬우니, 이 때일수록 마음을 삼가 바르고 장중히 가져 정신을 밝게 일으켜 세운다.
夜久斯寢 齊手斂足
不作思惟 心神歸宿 養以夜氣
밤이 깊어지면 잠자리에 들어 손과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모든 생각을 쉬게 하고 심신(心神)을 잠자리로 돌아오게 하여 맑은 야기(夜氣)로써 충만케 하여 이를 길러간다.
貞則复元 念玆在玆 日夕乾乾
정(貞)이면 곧 원(元)으로 돌아가니 오직 이 바른 도리에만 생각을 두고 밤낮 쉬지 않고 힘차게 나아간다.
(解說)
'숙흥야매잠'이란 숙흥(夙興), 즉 새벽에 일어나고 야매(夜昧) 즉 밤에 잠드는데 필요한 잠(箴), 즉 수행준칙이란 뜻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새벽에 일어나면 가지가지 상념이 떠오르는데 이 때 온갖 잡념들이 자기를 끌어가 버리도록 마음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심신을 가다듬어 마음을 마치 떠오르는 태양처럼 밝고 맑고 힘차게 가지고 고요한 가운데 자신의 내부를 관조하여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어제 배운 것을 조리에 맞추어 체계 있게 정리하고 오늘 할 일을 계획하고 보다 나은 자신의 모습을 꿈꾸며 수행 정진할 것을 다짐해야 한다.
그리고 낮 동안에 일상생활에서 여러 가지 일을 접할 때에는 과연 자신이 배운 학문의 이치와 수행한 마음의 역량이 효험을 발휘하는지 스스로 느끼고 증험하여 항상 수행의 고삐를 다잡아가야 한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이면 낮 동안의 여러 가지 일과 만난 사람들로 인하여 피로가 겹치고 권태로움이 쌓여 마음이 해이해지기 쉽고 자칫하면 수행의 고삐를 놓아버리기 쉬운데 이 때일수록 더욱 마음을 장중히 가다듬고 무너지는 정신을 곧추세워야 한다.
밤이 깊어지면 잠자리에 드는데 이때도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가다듬고 모든 잡념을 쉬게 하여, 낮 동안 물욕에 파묻힌 양심을 밤 동안 다시 소생시키는 맑은 힘인 야기(夜氣)로 심신(心神)을 가득 채워 원래의 청정한 정신을 길러가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마음의 고삐를 항상 조여 갈 것만 아니고, 독서하다 때때로 틈이 나면 심을 고요하고 적적한 가운데 자유롭게 노닐게 하여 성정을 풍부히 길러가야 한다.
활시위는 항상 팽팽하게 매어두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활시위를 풀어 활의 탄력을 더하고, 거문고의 줄도 때로는 느슨하게 풀어 현(絃)의 묘음(妙音)을 더해간다.
만물은 원(元), 형(亨), 이(利), 정(貞)의 과정을 거치며 생성 소멸해 간다. 원(元)은 봄으로 생명의 싹틈이고, 형(亨)은 여름으로 생명의 무성한 성장이고, 이(利)는 가을로 생명의 결실이고, 정(貞)은 겨울로 생명의 저장이고 휴식이고 기다림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 순환이 한 번 끝나면 다시 봄으로 되돌아가 사계절의 순환이 계속된다. 이렇게 맞물린 고리처럼 끝없이 순환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새벽은 원이고, 낮은 형이고, 저녁은 이고, 밤은 정이다. 그러므로 정(貞)의 밤이 알차고 아름다우면 다시 원(元)의 새벽이 알차고 아름답게 열린다.
63. 진덕수(眞德秀, 진서산)의 경재명(絅齋銘)
絅齋銘 : 은은히 드러나는 군자의 덕이여
衣錦絅衣 裳錦絅裳
有美于中 而弗自章
비단 저고리 위에 홑저고리를 걸치고 비단 치마 위에 홑치마를 두르니, 비록 그 속에 아름다움이 있으나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云胡昔人 若是其晦
爲己之功 無與乎外 懍焉戒惕
옛 선비들은 스스로 닦은 학문을 이같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깊이 감추어 삼가고 경계하였다.
于微我欲亡愧 匪蔪人知
나는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랄 뿐 구태하게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充實光輝 其積莫揜
而我之心 惟一韜斂
내 마음 속의 밝은 덕의 광명을 충실히 길러 그 쌓임을 애써 감추고 오직 마음 속 깊이 갈무리 해두고자 한다.
細人有善 汲汲暴揚
그러나 남에게 있어서는 하찮은 사람이라도 선(善)이 있을 때는 이를 세상에 드러내어 칭송하기를 미루지 않는다.
敝縕中閟 文錦外張 孰知聖門
그리고 다 해진 솜옷을 문양 있는 비단 옷 위에 덮쳐 입음으로써 그 화려함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막는다. 누가 알겠는가?
回愚參魯 撲兮若無 至美森具
공자의 문하에 안회는 겉으로 어리석게 보였고 증자는 미련스럽게 보였지만 그 마음 깊숙한 곳에는 지극한 아름다움이 가득 감추어져 있었음을.
中庸之末 凡入引詩
聲臭泯然 繇此其基
'중용'의 말미에는 직접 시경에서 인용한 구절이 여덟 곳이나 있는데 이는 비록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지만 마음 속 깊이 숨어있는 바로 이 도(道)의 향기를 함양하기 위해서이다.
淵乎至哉 聖門之妙
入德之門 曰惟至要
아, 넓고도 크도다. 숨은 도의 향기여, 성문(聖門)의 묘함이여! 덕으로 들어가는 문은 오직 이 도의 지극함을 요할 뿐이다.
掎歟王子 日處此齋
益深益微 古人與偕
아, 왕씨 가문의 자손들이여! 매일 매일 이 경재에 새겨진 내용에 입각하여 깊이를 더하고 세밀함을 더해 고인(古人)과 더불어 숨은 도의 향기를 함께 할지어다.
(解說)
'경(絅)'이란 무명이나 삼베로 만든 홑옷을 말한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부나 명예나 학문이나 선행을 남들 앞에 드러내기를 바란다.
그래서 남들로부터 시기 질투를 받아 마음이 상하거나 중도에 좌절하고 만다. 즉, 선(善)의 씨앗이 자라 그 열매를 맺기도 전에 퇴색되고 만다.
그러나 현인(賢人)들은 비단옷 위에 초라한 무명으로 만든 홑옷을 걸침으로써 비단 문양의 화려함이 외부로 드러남을 감춘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덕을 밝히기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의 학문을 안으로 익히고 익혀서 마치 투박한 독 안의 잘 익은 술이 향기를 온 사방에 발하듯이 숨은 도(道)의 향기를 은은히 주위로 내뿜는다.
공자의 제자 안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어리석고 증자는 미련스럽게 보였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남모르게 묵묵히 수행된 숨은 도(道)는 무르익어 마침내 그윽한 덕향(德香)으로 피어났다.
'비단 옷 위에 삼베옷을 걸친다'는 시경 속의 말은 가치관이 혼재된 오늘날 그래도 고요한 곳에서 묵묵히 바른 삶을 추구해가는 수행자들의 침묵과, 지조와, 외로움과, 기다림을 잘 대변해 주는 명구라 하겠다.
64. 장식(張栻, 장남헌)의 독서루명(讀書樓銘)
讀書樓銘 : 독서루에 새기다
洪惟元聖 硏幾極深
出言爲經 以達天心
넓구나, 세상에 으뜸가는 성인(聖人)이시여, 우주의 기틀을 연구함이 극도로 깊어서 입으로 하신 말씀은 그대로 경전이 되어 하늘의 마음에 이르렀구나.
天心煌煌 聖謨洋洋
有赫其傳 惠我無疆
하늘의 마음은 더 없이 밝고, 성인의 도모함은 더없이 넓다. 그 밝은 도가 그대로 훼손됨이 없이 나에게 전해지니 그 은혜가 한이 없구나.
嗟哉學子 生乎千載
孰謂聖遠 遺經猶在
아, 비록 배우는 제자가 천년 뒤에 태어났더라도 누가 성인께서 멀리 계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孰不讀書 而味厥旨
章句是鑿 文采是事
성인께서 남기신 경전이 아직 그대로 여기 남아 있고 누구든지 그 경전만 읽으면 그 취지를 얻을 수 있는데.
矧其所懷 惟以祿利
茫乎四馳 其曷予曁
그러므로 장구(章句)나 적당히 분석하고 조합하여 제멋대로 그 뜻을 억측하고, 수사가 빼어난 화려한 문장이나 외워 높이 받들고, 마음에 품은 녹봉이나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과거지문(科擧之文)이나 구하러 사방팔방으로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일 등은 어찌 내가 취할 일이겠는가?
嗟哉學子 當知讀書
匪有所爲 惟求厥初
아, 배우는 자들은 독서의 목적이 반드시 얻어야 할 특별한 내용이나 지식이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초심(初心)을 되찾기 위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厥初維何 爾所固然
因書而發 爾知則全
그럼 그 초심(初心)이란 무엇인가? 네가 당연히 그런 것으로 알고 있는 양심, 명덕, 즉 천리(天理)를 말하고 이를 책에서 확인하고 깨달아가는 과정이 곧 독서하는 과정이다.
維誦維歌 維究維复
維以泳游 勿肆勿梏
네가 독서를 통해 어느 정도 앎이 온전해지면 외우고 노래하고 연구하고 반복하는 이 과정을 계속 밀고 나아가서 마치 강물 속에 유유히 헤엄을 치듯 흠뻑 몸에 젖게 하여 방자하지도 얽매이지도 않도록 하라.
維平乃心 以會其理
切于乃躬 以察以體
오직 마음을 평온하고 고요히 가지고 마땅한 도리인 이(理)를 이해, 성찰, 체득하여 간절히 실천해 가면,
積功旣深 有燀其明
迴然意表 大體斯呈
그 쌓인 공덕이 차차 깊어져서 그 밝음이 훤히 드러나 마침내 이(理)의 대체(大體)가 서게 된다.
聖豈予欺 實發予機
俾予自知 以永于爲
성인께서 어찌 나를 속이시겠는가? 진실로 나를 격려하시고 자극하시여 내 스스로 묘리를 알아내고 이를 실천에 옮기도록 조용히 기다리신다.
若火始燃 若泉始違
推之自玆 進孰予遏
성인께서는 마치 처음 불이 붙기 시작하고 샘물이 처음으로 솟아 오르듯이 우리들을 올바른 수행의 길 위로 인도하여 일단 첫 발자국만 제대로 옮기도록 이끌어 주시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 이후 계속 수행의 길로 나아가는 일은 오직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지, 누가 베풀어 주거나 막는 것이 아니다.
若登泰山 益高益崇
維理無形 維經無窮
태산을 오를 때에 더욱 높이 오를수록 더욱 우러러 보이듯이 이(理)는 모양이 없어 궁구하면 궁구할수록 더욱 심묘, 광대해지고 경전이 담고 있는 의미는 더욱 무궁해진다.
嗟哉學子 益敬念玆
以是讀書 則或庶幾
아, 배우는 이들이 더욱 공경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음속 깊이 새겨 독서에 매진하면 성현이 될 희망은 그만큼 더 커져갈 것이다.
(解說)
독서를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우선 나의 존재의 근원을 알고 나와 내 주변 존재들과의 관계를 알고, 이 앎을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직접 몸으로 실천하여, 나를 나로서 존재하도록 가능하게 해 준 하늘, 땅, 부모, 사람, 물(物)들의 은혜에 감사하고, 이들을 위해 무언가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 마음 가운데 이(理)의 한 파장인 명덕(明德)이라는 광명을 천성적으로 부여받았다. 그러나 그 명덕의 광명체는 마치 금광석 안의 금처럼 오직 가능태로서 잠재되어 있을 뿐이다.
금강석은 뜨거운 용광로 속에 넣어 제련하여 잡물을 제거해야 순금이 나오듯이, 이 가능태로서의 명덕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수행의 용광로가 필요하다.
인류의 긴 역사 속에는 이 수행의 과정을 잘 견디어 명덕을 밝힌 선각자가 많이 있다. 이런 대각자(大覺者)들이 남긴 완전한 말씀은 그대로 경전이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독서를 한다는 것은 결국 이 앞서간 성인들의 말씀에 따라 올바른 수행의 길에 올라 치열한 구도자세를 견지하여 결국 내 자신을 알고, 나아가 이웃을 올바른 삶의 길로 인도하여 모든 존재들이 타고난 생명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마음껏 즐겨 스스로 완성의 길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주는 데 그 의미가 있다.
그러나 독서가 사리사욕을 채우고, 자신만의 식욕, 색욕, 물질욕, 명예욕, 권력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될 때는 독서의 진정한 취지와 목적은 상실되고 만다.
65. 장식(張栻, 장남헌)의 규헌석명(葵軒石銘)
葵軒石銘 : 규헌에 있는 돌에 새기다
正爾衣冠 無惰爾容
謹爾視聽 無越爾躬
의관(衣冠)은 바르게 하고, 용모를 나태하지 않게 하고, 보고 듣는데 삼가고, 몸가짐을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한다.
爾之話言 式循爾衷
爾之起居 式蹈爾庸
대화 속의 말은 마음 가운데의 바른 도리를 따르게 하고, 잠자리에 들고 일어나는 일상생활은 스스로 정한 법도를 따르게 한다.
敬爾所動 毋窒其通
貞爾所存 無失其宗
일을 할 때는 공경을 다하고 사리(事理)의 마땅함이 통하도록 한다. 천리를 보존하고 곧게 지키며 그 근본을 잃지 않도록 경계한다.
外之云肅 攸保于中
中之克固 外斯牽從
바깥의 엄숙한 행을 통해 내면의 마음을 유유한 가운데 엄숙히 보존하고, 마음속의 수행을 통해 쌓인 도덕규범을 밖으로 드러내어 행위의 준칙으로 삼는다.
天命可畏 戒懼難終
勤銘于石 用做爾慵
천명(天命)을 두려워하고, 마무리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돌 위에 이 글을 새겨 게으름을 막는 금구로 삼고자 한다.
(解說)
사람의 내면과 외면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내면의 마음이 둥글고 원만하고 광대하고 심오하면, 외면의 행동도 둥글고 원만하고 광대하고 심오하게 드러난다.
반면에 내면의 마음이 모나고 편협되고 왜소하고 천박하면 외면의 행동도 모나고 편협되고 왜소하고 천박하게 드러난다.
때로는 겉치레만 잘 다듬어 어느 정도 원만하게 보이도록 할 수는 있지만 한 순간은 속일 수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바깥의 엄숙한 행동을 통해 내면을 엄숙히 단속하고 내면의 잘 수행된 도덕적 원리를 통해 바깥 행동을 바르게 단속해 간다.
항상 사리사욕이 배제된 공평무사한 천명을 존중하고, 일단 일을 시작했으면 반드시 그 끝을 볼 수 있는 정성과 근면을 지녀야 한다.
66. 장식(張栻, 장남헌)의 남검주 우계현 전심각명(南劍州 尤溪縣 傳心閣銘)
傳心閣銘 : 전심각에 새기다
惟民之生 厥有彛性
情動物遷 以隳厥命
사람은 태어날 때 떳떳한 도리인 성(性)을 갖추고 태어나지만, 이 성(性)이 형기(形氣)에 부딪혀 정(情)이 되고 이 정(情)이 물(物)에 이끌리어 동(動)하게 되면 원래의 맑은 명(命)이 무너지고 만다.
惟聖有作 純乎天心
修道立敎 以覺來今
오직 성인(聖人)만이 성취함이 있어 하늘의 마음과 더불어 완전히 하나가 되어, 도(道)를 닦고 가르침을 세워 오늘날까지 전하여 깨우쳐 주신다.
孰謂道遠 始卒具陳
卑爾由學 而聖可成
그러므로 누가 성인의 도(道)가 멀리 있다 하겠는가? 이같이 수행의 대체를 말하는 것은 오직 그대로 하여금 학문을 통해 성인에 이르게 하고자 함이다.
鄒魯云邈 異端日滋
白首章句 倀倀何之
惟子周子 崛起千載
공자와 맹자의 말씀은 아득히 멀고 이단(異端)은 갈수록 세력을 더하여 머리가 희도록 글을 배워도 과연 어느 길이 참된 학문의 길인지를 분간하지 못하던 때에, 천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우뚝 솟아난 분이 있었으니 이 분이 곧 염계 선생이다.
獨探其源 以識其大
立象盡意 闡幽明微
학덕 높은 큰 선비 염계선생께서 홀로 천지의 근원을 탐구하시어 큰 도리(道理)를 깨달으시고는 지극한 정성으로 그림을 통해 어두운 것은 드러내고 미묘한 것을 밝히시었다.
聖學有傳 不曰在玆
惟一程子 實嗣其徽
성인의 학문이 후세에 전해지는 데는 오직 한 사람만의 공으로는 부족하니 두 정자(程子), 즉 정명도 선생과 정이천 선생 두 형제분이 그 뒤를 이었다.
旣自得之 又光大之
有渾其全 則無不緫
有析其精 則無不中
두 정자께서는 염계 선생의 훌륭한 학문에 힘입어 스스로 큰 도리를 터득하시어 이 학문의 전래 맥을 더욱 크게 빛내셔서 전체를 뒤섞어도 한 원리에 관통되지 않는 것이 없고 나누어 그 정밀함을 분석해도 적중되지 않음이 없었다.
曰體曰用 著察不遺
曰隱曰顯 莫間其幾
於皇聖心 如日有融
체와 용의 관계를 뚜렷이 살펴 미진함을 남기지 않으셨고 은(隱)과 현(顯)의 관계를 정밀히 하여 사물의 조짐에서 드러남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을 뚜렷이 밝혀 마치 해와 같이 밝은 성인의 도에 합치되었다.
於赫心傳 來者所宗
이리하여 두 선생은 성인(聖人)의 학문을 마음으로 전승함에 후인들의 종가집이 되셨다.
有嵥斯閣 尤溪之濱
翼翼三子 繪事孔明
儼然其秋 溫然其春
우계의 물가에 한 전각이 우뚝 솟아있고 그 안에 주자(周子) 즉 염계 선생과, 두 정자(程子) 즉 명도선생과 이천선생 세 분의 초상을 밝게 그려 모셔 두었으니, 그 분위기가 가을처럼 엄숙하고 봄처럼 따스하다.
揭名傳心 詔爾後人
咨爾後人 來拜于前
起敬起慕 永思其傳
전각 이름을 '마음을 전한다'는 뜻인 '전심각(傳心閣)'으로 정했으니 후인(後人)들은 이 앞에서 경배하고 공경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일으켜 무궁토록 그 전하는 말의 깊은 뜻을 새기길 바란다.
于味其言 于考其爲
세 분 선생의 말씀을 음미하고 행하신 바를 살펴서 몸으로 체득해가라.
體于爾躬 以會其歸
爾之體矣 循其至而
세 분 선생께서 공들인 부분에 그대도 공을 들이고, 세 분 선생께서 보여주신 지극한 정성을 그대의 지극한 정성으로 삼아라.
爾之至矣 道豈異而
傳心之名 千古不淪
咨爾後人 無替厥初
도(道)에는 서로 다름이 없으니 이 전각의 이름인 '전심(傳心)'의 깊은 뜻이 천고(千古)에 변하지 않도록 이 명(銘)의 첫머리 부분을 후인(後人)들은 유념하길 바란다.
(解說)
남검주 우계현은 주희(朱熹)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 소위 북송의 네 선생인 염계선생 주돈이, 명도선생 정호, 이천선생 정이, 횡거선생 장재 가운데 세 분인 염계, 명도, 이천의 영정을 모셔 놓은 전각이 있고 그 전각 이름이 '전심각'이다.
세인들은 염계 선생을 주자(周子)로 칭하고, 형제지간인 명도선생과 이천선생 두 분을 통칭하여 정자(程子)로 칭한다.
일반적으로 공자의 학문은 안회와 증자로 이어지고, 증자의 학문은 자사로 이어지고, 자사의 학문은 맹자로 이어졌다고 본다.
맹자 이후 약 천 년 간 그 학맥이 중단되었다가 북송의 네 선생의 징검다리를 거쳐 주자(朱子) 즉 주희에 이르러 다시 그 학맥이 되살아나게 되었다. 이같이 성인(聖人)의 학문은 천리(天理)를 바탕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마치 도도한 강물처럼 면면히 전승되어 간다.
그러므로 그 성인의 학맥을 마음으로 이어받는다는 것은 그저 책 속의 지식 알갱이나 배워서 이해하고 논리 속에 저장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성인의 학덕을 본받고 온몸으로 체인하여 성인의 도에 합치되어 곧바로 성인과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천지와 더불어 천지 사업인 생생지도(生生之道)인 인(仁)을 실천해가는 것을 말한다. 이런 깊은 뜻을 지닌 '전심(傳心)'이란 전각의 이름은 후인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엄숙함을 지니고 있다.
67. 장식(張栻, 장남헌)의 고재명(顧齋銘)
顧齋銘 : 자신을 잘 돌아보라
人之立身 言行爲大
惟言易出 惟行易怠
사람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말과 행동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말은 섣불리 나오기 쉽고 행동은 느리고 나태해지기 쉽다.
伊昔君子 聿思其艱
嚴其樞機 立是防閑
그래서 옛 군자들은 말과 행동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마음의 근본을 엄격히 하고 마땅한 도리를 세워서 조그만 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於其有言 則顧厥爲
豪釐之浮 則爲自欺
말을 할 때에는 그 말의 실천 여부를 자세히 살펴본 후 만약 그 사이에 조그만 간격이라도 있으면 스스로를 속인다고 생각하였다.
克謹于出 內而不外
確乎其言 惟實是對
그래서 입을 조심하여 틀림없는 말이 아니면 마음속에 넣어두고 쉽사리 입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 결과 그가 한 말은 모두가 참되고, 옳고, 반드시 실천이 따르는 실언(實言)이 되었다.
於其操行 則顧厥言
須臾弗踐 則爲已愆
履薄臨深 戰兢自持
행동을 할 때는 입 밖에 냈던 말을 살펴서 곧바로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스스로의 허물이라고 생각하고 마치 살얼음을 밟아가듯, 깊은 물가에 이른 듯, 전전긍긍하며 그 행동을 바로 잡아갔다.
確乎其行 惟實是依
그 결과 그가 한 행동은 모두가 참되고 옳고 반드시 근거가 있는 마땅한 행동이 되었다.
表裏交正 動靜是資
若唱而和 若影而隨
伊昔君子 胡不慥慥
마음의 안과 밖이 서로 번갈아 잡아주고, 움직임과 고요함이 서로 번갈이 힘이 되니 마치 노래를 따라 부르듯 그림자가 물체를 따르듯 옛 군자들은 언행이 괴리된 일이 잠시도 없었다.
勉哉勿渝 是敬是保
항상 성성(惺惺)하여 심(心)이 흐려지지 않도록 이끌어 가는 것, 이를 일러 경(敬) 혹은 보존함(保)이라 한다.
(解說)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주로 말과 행동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그만큼 말과 행동은 자신을 표현하고 알리는데 중요한 수단이 된다.
그러나 대체로 말하기는 쉽고 실천에 옮기기는 어렵다. 그래서 선인들은 말은 어눌하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하라고 충고했다.
군자는 말할 때는 행동을 살피고 행동을 할 때는 그 말을 살핀다. 그 결과 마치 형체에 그림자가 따르듯 그 말과 행동이 서로 합치되었다.
재명(齋名)을 고재(顧齋)로 정한 것은 말을 발설할 때는 반드시 그 실천여부를 돌아보라는 뜻에서 돌아볼 ‘고(顧)’를 붙였다.
68. 하기(何基, 북산)의 노재잠(魯齋箴)
魯齋箴 : 노둔하라
王子會之 各其齋 曰魯旣爲記以自警 後俾其友人何基仲恭父 作箴揭之
왕씨 자손들이 모여서 재실 이름을 '미련하다'는 뜻인 '노(魯)'자를 따서 '노재(魯齋)'라 지어놓고 스스로를 경계하고 있다가 뒤에 그들과 벗처럼 지내던 하기(何基) 중공(仲拲) 늙은이로 하여금 잠(箴)을 짓게 하여 걸어 두었다.
基謂王子非魯者 而自以爲魯 豈不以昔者曾子之在 聖門見謂爲魯 而一貫之妙 獨參得之蓋將從事於篤實堅苦之學
하기(何基)는 말하기를, '왕씨 자손들은 미련한 사람들이 아닌데 그들 스스로 어리석다 하니, 이는 옛적에 증자(曾子)께서 공자 문하에 계실 때 스스로 미련하다 하시면서도 성인의 학문 전반을 하나로 관통하는 원리를 홀로 헤아려 얻던 모습을 본받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以收曾氏之效也 與其志可謂遠矣
이같이 독실하고 견고하고 인내를 요하는 학문에 전념하면서 증자의 효험을 얻고자 함이었으니 그 뜻이 실로 깊고 원대하다고 하겠다.
乃爲之箴曰
잠(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維人之生 均稟太極
萬理森然 咸具物則
知覺虛靈 是謂明德
사람이 태어남에 태극을 품부 받아서 만 가지 이치가 스스로 구비되고 만물의 법칙을 모두 갖추어서 때로는 지각하며 때로는 텅 비어 신령스럽기 그지없다. 이를 일러 명덕(明德)이라 한다.
或蔽而昏 則由氣質
때로는 이 밝은 덕이 가려서 어두워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모두 기질 탓이다.
曷開其明 曷去其塞
復其本然 惟學之力
그럼 어떻게 하면 그 가려진 것을 제거해 버리고 원래의 밝은 모습을 되찾을 수가 있을까? 이는 바로 학문을 통해서이다.
昔者子輿 萬世標的
옛적 증자는 일만 세대가 흘러간 지금도 수행의 모범이 되는 분이다.
始病於魯 竟以魯得
匪得于魯 而得于實
처음에는 미련함이 병이더니 끝내는 이 미련함을 통해 도(道)에 계합했는데, 이 미련함은 곧 성실함을 말한다.
確固深純 精粹嚴密
稽其用功 有始有來
확고하고 심오하고 전일(全一)하고 정밀하고 순수하고 엄밀한 것은 모두 성실함을 위한 것이고 이 성실함을 통해 시작과 끝을 동시에 아름답게 성취할 수 있었다.
履薄臨深 是警是飭
日省者三 猶懼或失
항상 ‘살얼음을 밟는 듯, 깊은 물가에 이른 듯 하라’라는 시경의 말로 스스로를 타이르고, '일일삼성(一日三省)'이라는 스스로 세우신 수칙을 통해 혹시 정도에 벗어난 일이 생길까 두려워하고 경계하였다.
講辨聖門 是纖是悉
그리고 성인(聖人)의 문하에서 강의하고 논의할 때에는 그 말이 자세하면서도 방대하였다.
聞禮聞孝 寸累銖積
誠明兩進 敬義偕立
예(禮)나 효(孝)를 들으면 작거나 비근한 것도 몸소 실천하여 덕행을 쌓아갔고, 성(誠)과 명(明)을 겸전하고, 경(敬)과 의(義)로써 나아가, 충서(忠恕)의 원리를 꿰뚫어 만 가지 이치에 관통하였다.
一唯領會 萬理融液
彼達如賜 乃弗能及
이같이 증자는 자공과 더불어 사물의 이치를 통달한 사람으로는 따를 자가 없었으니 어찌 증자를 미련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孰謂參魯 收功友亟
오히려 얻은 결과를 두고 볼 때는 영민하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卓哉王子 追從在昔
有扁斯名 朝警夕惕
뛰어나구나, 왕씨의 자손들이여. 옛 분을 추종하여 이와 같은 이름을 편액으로 삼아서 아침에 타이르고 저녁에 경계하는구나.
勿病於魯 謂質難易
勿安於魯 謂學無益
'미련함이 병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실천에 있어 쉽고 어려움을 분간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미련함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말은 학문을 하되 조그만 이익에 머물지 않는다는 말이다.
由魯入道 有魯可式
그리고 '미련함으로 인해 도(道)에 들어간다'는 말은 오히려 미련함이 도의 징검다리가 된다는 말이다.
氣稟之偏 則懲則克
義理之微 則辯則析
예컨대 받은 기(氣)가 바르지 못하고 치우쳐 있으면 징벌하여 극복하고, 의리(義理)가 미흡하면 명백히 판단하고 분석하여 확충해 가고,
知行兼盡 內外交迪
確乎其志 前哲是述
지와 행을 합일시키고, 마음 안팎이 서로 관통되도록 하고, 그 뜻을 확고하게 견지해가면 반드시 도의 문에 이를 수 있다. 앞서간 철인(哲人)들도 결국 이와 같은 취지의 말을 했을 뿐이다.
人百己千 明乃可必
從而上達 則在不息
남이 백 번하면 나는 천 번하는 자세로 명덕을 밝혀가고 오로지 중도에 그만 두지 않음으로써 궁극적인 진리에 이른다.
滅裂鹵奔 乃吾自賊
歸咎于魯 豈不大惑
약삭빠르게 여러 가지 사려를 뒤섞어서 순수한 마음을 거칠게 만드는 것은 내 스스로 나를 해치는 일인데 어찌 이를 '미련함' 탓으로 돌릴 것인가?
我作斯箴 侑坐是勒
勿貳爾心 服膺無斁
여기 잠(箴)을 지어 새겨 두었으니 두 마음을 먹지 말고, 오직 일심으로 가슴에 간직하여 싫증남이 없도록 하라.
(解說)
'노(魯)'라는 뜻은 '미련하고 우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왕씨 가문에서는 그들의 재실 이름을 '노재(魯齋)'라 지어 편액을 만들어 걸어두고 그들 집안 자손들의 행동을 가다듬어 갔다. 여기에는 큰 뜻이 있다.
공자의 학통을 이어받은 증자는 오히려 미련했기 때문에 도에 이르는 멀고 먼 노정에서 자그만 이익이나 일시적인 편안함에 유혹됨이 없이 오직 한 길로만 묵묵히 정진하여 충서(忠恕)의 원리를 꿰뚫고 대오(大悟)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세 푼도 안 되는 작은 지식으로 손익을 계산하고 쉽고 어려움을 저울질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눈이 있어도 예(禮)가 아니면 보지 않고 귀가 있어도 예가 아니면 듣지 않고 입이 있어도 예가 아니면 말하지 않고 몸이 있어도 예가 아니면 행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 있는가?
대부분이 사람들이 저 숭엄한 산맥의 정상에는 오르지 못하고 정상으로 이르는 노정에 있는 조그만 봉우리에 주저앉아 얄팍한 지식으로 이리저리 측량하고 적당히 맞추고 장식하면서 한 생애를 마감하고 만다.
그러므로 약삭빠른 조그만 영리함보다는 오히려 우둔하고 미련함이야말로 도에 이르는 강력한 디딤돌이 된다.
미련하기 때문에 쉽고 어려움을 따지지 않고 묵묵히 정진해가고 미련하기 때문에 자그만 이익이나 편안에 유혹되지 않고 마치 소경처럼 귀머거리처럼 앞만 보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왕씨 자손들이 그들의 재실 이름은 '노재(魯齋)'라 지은 뜻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왠만한 가문이면 저마다 크고 작은 재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과연 몇 사람이 재실에 붙어있는 편액이나 주렴의 글귀를 이해하는가?
그저 시제나 지내는 형식적 공간으로 이용될 뿐이다. 낡은 기와장의 육신만 있고 그 귀한 얼이 죽었으니 서글픈 생각이 앞설 뿐이다.
69. 왕백(王柏, 왕노재의 애일잠(愛日箴)
愛日箴 : 하루하루를 아껴라
天地之化 一日不停
歲不我與 日月駿奔
하늘과 땅은 잠시라도 멈춤이 없이 운행되고, 세월은 나를 기다리지 않으며, 해와 달은 쏜살같이 달린다.
是以君子 自强不息
審己乾乾 夕焉斯惕
그러므로 군자는 스스로 힘써 행하기를 멈추지 않고 부지런히 자신을 살피고, 저녁이면 하루 일을 돌이켜보고 두려워한다.
禹惜寸陰 周公待旦
우임금은 촌음을 아꼈고, 주공(周公)은 일찍 깨어나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矧是聖人 罔敢或倦
出作入息 衆人豈豈
이같이 성인들도 혹시 게으름이 침입할까를 염려하여 집 밖에 나아가서는 부지런히 천하를 위해 힘쓰고 집 안으로 들어와서는 고요히 마음을 거두어 쉬면서 천리를 보존하기에 힘썼다.
自暴自棄 老大傷悲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스스로를 해치고 자포자기에 빠져있으니 바로 이 점이 이 늙은이가 마음 아파하는 곳이다.
我年嘗少 我學不力
明德昧昧 噬臍無及
나는 나이가 어릴 적이 배움에 힘쓰지 못해서 마음 속의 밝은 덕을 밝히지 못해 캄캄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지금 후회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嗟爾小子 母曰妙齡
髮齔幾何 頎頎而由
아, 젊은이들아, 그대의 젊음을 자만하지 말라. 어머니 품속에 까까중머리와 젖니로 있던 시절이 얼마인가? 하는 사이에 벌써 훤칠하게 자라 청년이 되어있다.
爾寒襲裘 爾飢重味
師友琢磨 家庭訓誨
그대가 추워하면 부모님이 털옷을 껴입혀주고 그대가 배고파하면 음식을 먹여주듯이 스승과 벗이 그대를 갈고 닦아주고 엄한 훈계로써 그대를 가르치고 타일러 준다.
窓牖明潔 硯席靖夷
於焉不學 鳥獸須眉
밝고 깨끗한 창문 아래 책상이 단정하게 놓여 있는데도 게을러서 배우지 않으면 마치 새나 짐승의 털 같은 수염이나 눈썹만이 무성해지기를 기약할 뿐이다.
相期爾深 爾勵爾勉
毋親他人 我監不遠
젊은이들아, 스스로 힘써 부지런히 배우고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지 말라. 내가 멀지 않은 곳에서 감시하고 있겠다.
一善一惡 夢覺之間
一喜一懼 父母之年
때로는 착한 일을 하고 때로는 악한 일을 하는 것도 목숨이 붙어있을 때에만 가능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두려워하는 것도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於斯二者 兢兢業業
毋怠而忘 毋作而輟
그러므로 이 두 구절을 삼가 받들어 중단함이 없이 꾸준히 행해가라.
東方明矣 圖書滿前
視此名扁 千程一鞭
동쪽이 훤히 밝아오면 성리(性理)를 밝히는 책과 도(圖)를 책상 앞에 펼쳐 놓고 이 잠(箴)을 보면서 천리 길도 한 채찍으로 달리는 기개(氣槪)로 배움에 전념하라.
日云暮矣 黙計爾程
그러다가 날이 저물면 조용히 앉아 그대가 가는 길이 과연 바른 길인지를 헤아려 보라.
歌此銘詩 冰炭爾衷
이 잠시(箴詩)를 노래하며 그대 마음속의 마치 얼음과 숯불같이 상반되는 천리와 인욕을 잘 구분하여 오직 정도(正道)로 나아가라.
(解說)
'애일(愛日)'이란 '하루하루를 아낀다'는 뜻이다.
세월은 결코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착한 일을 할까, 악한 일을 할까? 따져보는 것도 숨이 붙어 있을 때 이야기이고, 부모님이 건강하면 기뻐하고 부모님이 병이 들면 두려워하는 것도 모두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의 이야기이다.
죽고 나면 선도 악도 없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기뻐할 일도 두려워 할 일도 없다. 그러므로 젊고 아직 활력이 남아 있을 때 바른 길로 나아가 존재의 근원을 밝혀 원대한 꿈을 이룰 수 있고 아직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효를 다해 부모님을 기쁘게 해줄 수 있다.
내가 여태까지는 악한 일만 했는데 내일부터는 착한 일을 하며 바른 수행의 길에 오르겠다고 맹세해본들 세월은 내일을 기다려 주지 않고, 내가 여태까지는 부모에게 잘못했는데 내일부터는 효를 다해야지 하고 다짐해본들 세월은 부모님을 내일까지 이 세상에 머물려두지 않는다.
그야말로 무정세월(無情歲月)이다. 새벽에 눈을 뜨면 또 하루의 소중한 삶을 나에게 선물한 하나님께 감사하며 보람 있는 하루를 계획해야 한다.
어쩌면 어제 어느 중환자 병동에서 '오늘'을 그렇게 기다리며 죽어간 그 애절한 사람의 '오늘'을 내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말 시간은 소중하다. 유한한 존재인 우리는 주어진 오늘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며 내일을 기다리며 영원을 꿈꿀 뿐이다.
70. 진덕수(眞德秀, 진서산)의 허주명(虛舟銘)
虛舟銘 : 빈 배처럼
余嘗喜誦, 莊子虛舟語.
나는 일찍이 '장자(莊子)'에 나오는 '빈 배'라는 뜻의 '허주(虛舟)'라는 글귀를 즐겨 외웠다.
長沙郡齋有小室, 名方舟欲易之未暇也.
그런데 장사군(長沙郡)이라는 곳에 재실 하나가 있었는데 그 곳 조그만 방의 이름이 방주(方舟)였다. 이 이름을 '허주(虛舟)'라고 고치고 싶었는데 그럴 틈이 없었다.
雙井, 黃子迺以爲名, 余忻然, 爲作四言.
그러던 중 쌍정(雙井)의 황씨 어른이 '허주'라는 이름을 붙였기에 내가 흔쾌히 네 글자 형식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짓게 되었다.
萬斛之舟 不楫不維
浟浟長川 縱其所之
云誰有船 適與之觸
십만 말(斗)의 많은 곡식을 가득 실은 배가, 노를 젓지도 않고 밧줄을 당기지 않는데도, 유유히 긴 강을 따라 흘러가니, 그 가는 것을 두고 이르기를, '배 속에 누가 있어 그 배를 부딪침이 없이 이끌어 간다'고 한다.
舟本何心 奚怨奚讟
그러나 본디 배에는 마음이 없고, 마음이 없으므로 원망하고 탓할 것도 없다.
德人天遊 其中休休
덕 있는 사람은 하늘에 노닐며, 그 안에서 스스로 넉넉하다.
我無愛憎 物自春秋 兩露零零
본디 나에게는 사랑도 없고 미움도 없고, 자연에는 저절로 봄과 가을이 순환되고 이슬과 비가 내린다.
孰知其德 雪霜凝凝 豈曰予刻
어느 누가 이 큰 덕을 알 것이며, 눈 내리고 서리 엉기는 것이 어찌 사람을 괴롭히기 위한 자연의 의도라고 말하겠는가?
伯氏無尤 季平見思
懷敖兩賢 心事可師
여기 두 형제가 있어 백씨(伯氏)는 허물이 없고자 하고 계씨(季氏)는 평소 어진 이를 닮고자 하는 마음을 품었으니, 이 두 어진 이의 마음을 배울 만하구나.
紛紛小夫 欲蔽私室
森然戈矛 動與物敵
갈피를 못 잡는 못난 사람들은 자기 욕심에 가려지고 사사로움에 막혀서 무수히 창칼을 앞세우고 만물과 서로 대적하기만 하는구나.
涪翁有言 吾誰疎親
이를 보고 한 방울의 물거품이 '나는 누구와 멀고 누구와 친한가?'라고 말하며 비웃음을 짓는다.
子今自名 豈其後人
世塗漫漫 濤激浪洶
往安子行 萬變勿動
황씨 어른이 스스로 '허주'라고 지어서 후인들에게 비록 세상살이가 아득히 멀고 물결이 높고 거세어도 마치 빈 배처럼 나아가 어떤 변화에도 흔들리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解說)
허주(虛舟) 즉, 빈 배는 아무런 인위적인 힘을 가하지 않아도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유유히 흘러간다. 삶도 만물도 마찬가지다. 사리사욕을 버리고 자연의 순리대로 따라가면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유유하게 흘러갈 수 있다.
그런데도 인간은 갖가지 사욕과 번뇌와 불신에 싸여있기 때문에 행동 가운데 인위가 들어가고 조작이 들어가고 억지가 들어가서 주변 사물과 충돌하고 서로 싸우고 배반하고 배반당하면서 어렵게 한 생애를 보낸다.
푸른 하늘의 조각달은 돛대도 없고 삿대도 없이도 서쪽 나라로 잘도 가고, 산허리의 단풍나무는 보아주는 이 없어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잎이 트고 여름이면 무성하게 자라고 가을이면 빨갛게 단풍 들고 겨울이면 뿌리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며 다음 봄을 기다린다. 일단 마음이 비고나면 산 절로 물 절로 산수간(山水間)에 나도 절로가 된다.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