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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스케이트장에도 수영장에도 한 번 못 가 봤을 것이다. |
최성재 |
수영 선수 박태환과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는 국민 오누이다. 최근에 박태환이 조금 주춤하고 있지만, 그는 이미 올림픽 금메달을 땄고 나이가 겨우 절정의 시기로 들어서고 있어서 그런지 그를 욕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적 영웅도 사소한 일을 빌미로 하루아침에 거지발싸개 취급하는 한국의 풍토에서 이것은 유례없는 현상이다. 그만큼 수영 불모지 국가를 조국으로 둔 박태환의 선전은 경이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린 선수지만 그들의 겸손한 태도도 돋보인다. 한편 피겨스케이팅의 불모지인 나라를 조국으로 둔 김연아는 4개월 앞으로 다가온 동계 올림픽의 첫 금메달을 조심스럽게 내다볼 수 있는 2009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 자신의 세계기록을 또 다시 갱신하며 한두 점을 다투는 경기에서 007과 거쉰으로부터 선사받은 음악의 날개를 타고 세계 10위권 선수의 절반을 차지하는 나라의 2등 선수와 30점 이상 앞서면서 홀로 빛났다. 국민의 대다수는 스케이트를 한 번 신어본 적도 없지만, 트리플 플립이니, 트리플 러츠니, 더블 악셀 토루프니, 스케이트의 어느 부분을 빙판에 대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몇 바퀴 도는지를 구별하는 난해한 이들 용어가 귀에서 더 이상 겉돌지 않는다. 박태환이 동서양의 기라성 선수를 모조리 제치고 금빛 물살을 가를 때, 김연아가 동서양의 얼음꽃 요정을 창백하게 만들며 은반을 화려하게 수놓아 아이스 링크로 함박눈처럼 쏟아지는 인형 선물에 파묻힐 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러면 대통령도 중차대한 국사(國事)를 제치고 바로 직접 전화하여 그들을 격려한다. 덕분에 부모도 아니고 코치도 아니지만, 대통령이 작지만 뉴스의 날개를 탄다. 여기서 잠깐! 사교육 얘기만 나오면 이성을 잃는 대통령이 그들에게 전화하는 것은 참 앞뒤가 안 맞는다. 국민 오누이야말로 사교육으로 시작하여 사교육으로 성공한 영웅이기 때문이다. 만약 박태환과 김연아가 대통령과 교육부장관의 말씀을 충실히 따라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일주일에 한두 시간 체조하고 달리고 공차는 공교육만 받았다면, 그들이 어떻게 태극기를 올림픽 경기장과 세계선수권 대회장의 가장 높은 곳으로 솟아오르는 해처럼 서서히 떠올라 찬란히 빛나게 할 수 있었을까. 아마 공교육만 받았다면 박태환은 수영장에 발도 한 번 못 담가 보았을 것이고, 김연아는 스케이트를 발에 대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도 각각 단국대와 고려대에 재학 중이지만, 공교육 곧 수업과는 거의 담을 쌓고 산다. 말만 대학생이다. 인터넷이 발달했으니까, 그들만은 특별히 따로 공부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이에 대해서 뭐라고 뒷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들이 이룬 성취가 워낙 대단하고 그들이 국민에게 주는 기쁨이 너무 크기 때문이리라. 혈세만 축내는 학교가 제공하는 공교육으로는 그들의 수준에 도저히 맞출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리라. 다른 어떤 부문보다 예체능은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예체능 사교육비도 일반 학생들이 국영수 사교육비보다 높아도 한참 높다. 예술고나 체육고가 있지만, 그것은 대학에 비해서 숫자가 터무니없이 적거니와 거기서도 사교육은 필수다. 사교육을 맹렬히 받지 않으면 아예 그런 학교엔 입학을 못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칼라스의 재능과 볼트의 천재로도 시골학교의 학예회나 체육대회에나 겨우 나갈 수준밖에 안 될 것이다. 언감생심 전국 체전은커녕 시도 체육대회에도, 국전은커녕 지방예술제에도 못 나갈 것이다. 그만큼 한국에서 12년간 학생들이 받는 예체능 교육은 정서발달과 신체발육에 약간의 도움을 줄 뿐, 전문가를 기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빵점을 맞더라도 누구나 이수가능하기 때문에 졸업을 위한 요식행위로 예체능을 가르치는 척하고 공부하는 척한다. 알량한 체력장마저 없애는 바람에 키만 컸지, 살은 물렁살이요 뼈는 유리뼈다. 학교에 운동부가 있더라도 선수는 거의 모든 수업(공교육)에 불참한다. 교실에 들어가더라도 잠만 잔다. 오로지 운동만 한다. 사실상 어릴 때부터 프로선수다. 그들에겐 특별히 감독과 코치가 따로 있다. 거기에 필요한 돈은 대부분 학부모가 낸다. 사실상 학교에서 허용하는 사교육이다. 명문 사립학교가 아닌 한, 교육청이나 학교가 정식 예산으로 운동부에 지원하는 건 전체 필요경비에서 말 그대로 새 발의 피만큼 보잘것없다. 부모가 돈이 없으면, 가난하면 예체능에서는 아무리 재주 있어도 성공하기가 바늘귀 사이로 밧줄이 지나는 것보다 어렵다. (예수님이 말했을 때는 원래 밧줄'gamta'이었으나 발음이 비슷한 낙타'gamla'로 오역함.)
사교육을 줄인다며 특목고에서 시험을 못 치게 하자, 도리어 사교육이 아니면 특목고에 명함도 못 내밀게 되었다. 왜 이런 메피스토텔레스 효과가 일어났을까. 필기고사가 없어지자,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내신을 보완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특목고는 면접의 이름으로 그것을 대신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과목을 볼 수 없어 과학고는 수학과 과학, 외고는 영어듣기로 뽑았다. 과목이 적으니까, 그 내용은 중학 과정을 넘어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 수준으로 올라갔다. 중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다. 부자 부모를 둔 영재들은 내신도 당연히 관리해야 하지만, 그보다 늦어도 중1부터 특별교육을 받는 게 훨씬 중요하다. 목동과 강남과 분당과 일산에는 수학과 과학과 영어에서 수영의 박태환,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같은 인재들이 한 집 건너 한 명꼴로 수두룩하다. 그들이 특목고를 휩쓴다. 내신은 그들이 매우 불리하지만, 위대한 사교육 덕분에 그들은 학교 이름을 빛내고 인근 지역의 아파트 값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린다. 특목고 100명 합격하면 인근 아파트는 수천억, 수조 원 상승한다. 그러면 정부는 그 지역의 미친 아파트값을 잡으려고 별의별 수단을 다 쓴다. 연합고사를 부활시켜 중학생 누구나 시험을 보게 해야 한다. 특목고든 일반학교든 선지원 후시험으로 선발해야 한다. 점수가 높은 학생은 특목고로 진학하고 나머지는 일반학교에 가면 된다. 후자의 경우에도 점수가 낮은(100점 만점에 60점 이하) 학생은 가차 없이 불합격시켜야 한다. 중학교에 남겨 유급시키든지, 정부의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부로선 돈 한 푼 안 들이고 입시학원에 맡겨 전처럼 재수하게 하든지! 그러면 학교 공부만 충실히 해도, 가난한 학생도 전처럼 얼마든지 명문고에 갈 수 있다. 선생님들도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면, 오히려 공교육이 정상화된다. 학생들도 창피당하지 않기 위해서 교실에서 눈을 반짝이지 않을 수 없다. 12년 동안 내내 졸고 자고 떠들어도 빛바랜 졸업장을 어김없이 팍팍 쥐어주는 엉터리 공교육은 영원히 한반도에서 내쫓아야 한다. 그래도 사교육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작아질 따름이다. 공교육과 사교육은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니까. 김연아와 박태환의 부모는 사교육 엄금이라는 대통령과 교육부 말을 지나가는 참새소리처럼 가볍게 들었다. 그들이 나쁜 사람인가. 잘못된 정책을 편 역대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이 나쁜 사람인가. 그들의 부모는 대통령의 말씀 대신 헌법에 충실했다.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31조 제1항). 지난 20여년간 공교육에서는 ‘균등’만 강조했지, 그것을 공산주의식으로 해석하여 곧 전체주의적 평등만 강요했지, 개인에 따라 저마다 다르고 특색 있는 ‘능력’은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박태환과 김연아의 부모는 자녀가 탁월한 능력이 있음을 알고 획일화된 부실하기 짝이 없는 아니, 각각 수영과 피겨스케이팅에서 전혀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 공교육을 철저히 무시하고 헌법 정신에 입각하여 자녀를 세계에 우뚝 세웠다. 장하다, 김연아와 박태환! 위대하다, 그들의 부모! 거룩하다, 대한민국의 헌법! (2009. 10. 20.) |
[ 2009-10-20, 18:10 ] 조회수 : 506 |
첫댓글 공교육은 보통 평등인간을 만들어 국위선양은 말더라도 외화로 평등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지는 못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