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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여행
2006년 4월24일 월요일부터 26일 수요일까지 2박 3일
체류기간이 불과 한 달여 밖에 남아있지 않아서 더는 미룰 수가 없는 입장이다. VISA를 받으러 한국에 갔다 온지가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 한국을 또 다시 갔다 오던지 아니면 가까운 나라에 갔다 오던지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 미국입국 시, I-94에 체류기간을 2년만 찍어주기 때문에 최소한 2년마다 한번씩 미국을 나갔다 와야 하는데 이것은 E-2 VISA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이다. 2년마다 미국 밖으로 나갔다 온다는 것이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생활에 얼마나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가는 미국에서 살아 본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미국을 떠나 가장 가까운 나라가 캐나다 아니면 멕시코이지만 대부분은 한국을 갔다 오는 편으로, 한국을 한번 방문할 경우 그 경비가 만만치 않아 가정살림에 미치는 영향 또한 지대하다. 4인 가족이 한국에서 한 달을 체류한다고 가정을 하고 비용을 산출해 보면, 항공료가 대략 4천불에, 선물비와 한국에서 쓸 돈을 합하면 장사를 쉬는 것으로 인한 손실은 차지하더라도 대략 만불, 약 천만 원정도 소요된다. 2년 동안 미국에서 만 불을 모은 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한 달에 한 오백 불씩만 모은다면 2년이면 만 불이 되니까 충분할 것처럼 보이지만 말처럼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여러 가지 여건상 우리는 가까운 멕시코에 갔다 오기로 결정을 했다. 비용도 줄이고 가게 폐점기간도 줄이고 아이들 학교 결석일수도 줄이고 기왕지사 멕시코도 구경한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꿩도 먹고 알도 먹기로 했다.
여행사에 문의를 했더니 멕시코여행 패키지로 칸쿤이 있지만 주말에만 출발 할뿐더러 집결지도 LA란다. 이래저래 비용을 따져보니 한국에 갔다 오는 거나 별반 차이가 없어 우리끼리 여행을 하기로 하고 직접 멕시코 지도를 탐색했다. 멕시코시티가 가장 무리 없을 듯 보였다. 역사 유적지도 많고 게다가 멕시코의 수도니까 여러 가지의 편리함을 제공함으로써 만약에 발생할 지도 모를 그 어떤 불편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을 거라는 점에서 이번 여행의 최적지로써 손색이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사실 일주일 전에 사업차 멕시코에 투자하러 갔던 재미교포가 현지괴한들에게 납치되었다가 기적적으로 탈출, 구사일생한 사건이 있었던 터라, 이번 멕시코여행이 좀 떨리기는 했다. 하지만 미안한 말이지만 그 사람이야 돈이 많아 납치를 당했을지는 몰라도 돈 없는 나야 그 누가 잡아가리오. 한국에서도 납치나 유괴사건은 종종 있지 않았던가? 그렇더라도 해 떨어진 후에는 가급적 외출을 삼가하고 사람들이 없는 외진 곳에는 가지 말 것이며, 특히 개인택시는 절대 타지 말라는 신문기사의 충고를 새겨 읽었다.
4월24일 아침에 출발을 하여 25일 새벽에 도착을 하고 25일 하루 숙박을 한 후 26일 오후에 돌아오는 것으로 말은 2박 3일이지만 사실은 비행기에서 하루를 보내고 하루만 호텔신세를 지는 아주 최소한의 일정으로 정하였다. 계속해서 여행관련 사이트를 검색하여 멕시코시티까지의 가장 저렴한 항공편과 숙박 그리고 렌터카를 물색하였는데 별3개 반짜리 호텔로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시내 중심에 위치한, 사진으로 봐도 그런대로 괜찮아 보이는 호텔을 찾았다. 항공료와 1일 숙박비(방 하나에 침대 두 개) 및 조식 제공을 패키지로 1인당 340불씩, 4명 모두 1,360불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원하는 일정과 딱 들어맞는 항공편이라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어 즉시 예약을 하였다. 또한 렌터카는 사용거리에 관계없이 하루16불에 대여하는 가장 저렴한Economy를 선택하였다. 이로써 기본적인 것은 모두 해결이 되었고 이제 답사코스를 정하는 일만이 남았다.
가지고 있던 Microsoft Streets and Trips Map CD를 컴퓨터에 넣고 Landmarks를 검색해서 일대의 유적지를 찾기 시작했다. 멕시코시티 및 수도권 일대에 산재해 있는 유적지를 제대로 보려면 일주일가지고도 어림없어 보였다. 하긴 우리나라 서울만큼이나 유서 깊은 지역을 며칠은 고사하고 단 하루 만에 섭렵하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겠지만 그래도 자주 갈 기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평생에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간 김에 더 볼 양으로 일단 유적지란 유적지는 죄다가 적어보았다. 그리고 다시 추스르고 정리를 하여 이틀간의 답사코스를 완성하였는데, 25일 오전에는 떼오띠우아칸 (Teotihuacan)의 신전을, 오후에는 시내의 유적지를, 저녁식사 후에는 시내관광 겸 드라이브, 그리고 다음날 오전, 차풀테펙(Chapultepec)으로 마무리하는 다소 아쉽기는 해도 그런대로 알찬 여정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설렘으로 대망의 여정을 마련하였다.
마침내 날이 밝아 길 떠날 시간이다. 체류기간 때문에 이번 여행을 하는 것이니 만큼 다른 건 몰라도 여권과 I-94는 반드시 챙겨야 한다. 그리고 네비게이터와 다름없는 노트북과 Microsoft Streets and Trips Map CD 역시 챙겨야 한다. 이게 없으면 장님이나 다름이 없다. 그 동안 틈만 나면 답사코스는 물론이고 시내 주요도로를 몇 번이나 그려보아서 이제 웬만한 길은 충분히 익혔지만 그래도 다소 불안하다. 뭐 그렇더라도 마음속의 불안감이야 있을지언정 즐거움이 앞서는 게 사실인지라 우리 모두의 얼굴에는 설렘과 들뜬 마음으로 가득 찬 표정이 역력하다. 공항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Economic Parking Lot에 차를 주차시키고 (공항 내 주차장보다 요금이 저렴하며 장기간 주차할 때 사용하면 주차요금이 절약된다.) Blue Parking의 K구간을 꼭 기억하라고 식구들에게 다짐시켰다. 주차장을 빨간색과 파란색 두 종류의 색깔로 구분 짓고, 셔틀버스를 각기 따로 운영하기 때문에 자신이 주차한 곳이 무슨 색인지 잘 기억해두어야 한다. 자칫 빨간색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놓고 돌아 올 때 공항에서 파란색 셔틀버스를 타면 큰 낭패를 볼 수가 있다.
출발 두 세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을 해야 한다. 911이후로 검색에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진 탓이다. 20대 이상의 남자로 미국이름이 아니면 일단 검색 대상이다. 내 이름이 Parker가 아닌 Park이기 때문에 공항검색요원들에게 있어서 나는 별도의 특별검색대를 통과해야 하는 요주의 대상인가보다. 매번 집중 검사를 당했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마치 무슨 죄인인양 취급 당하는 것 같아 처음 검색 때는 기분이 상당히 나빴었다. 지금도 불만이지만 면역이 된 탓인지 처음 보다는 그래도 좀 낫다. 하긴 아틀랜타공항은 얼마 전부터는 아예 알몸투시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곳을 통과하는 모든 승객들은 아마도 수치심마저 느낄 테니 이제는 이곳이 오히려 더 나은 곳인지도 모르겠다. 원래 워싱턴의 시애틀과 오리건의 포틀랜드공항은 911이전에도 검색으로 악명을 떨치던 곳이다. 오히려 출국이 입국보다 더 까다롭다. 오죽하면 불편해도 다른 공항을(샌프란시스코 또는 LA) 이용한다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아무튼 승객 감소에 따른 적자로 인해 포틀랜드공항은 국제선 항공사들이 철수를 하였고 말이 국제공항이지 사실은 국내선만 운영하고 있다. 공항 재정에 막대한 영향이 있을 텐데 그래도 검색에는 변함이 없다. 시종일관 검색에 대한 초심을 잃지 않은 곳이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가히 존경할 따름이다. 이곳은 명색이 국제공항이지만 외국으로 가려면 다른 공항으로 가서 환승을 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LA로 가서 다시 멕시코 가는 비행기로 갈아 타야 한다. 오전 10시 50분 알래스카항공을 타고 두 시간 반을 날아 LA에 도착 한 후 무려 7시간을 지겹도록 기다린 끝에 저녁 8시반 드디어 멕시코를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 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우리가 포틀랜드에서 타고 왔던 바로 그 비행기를 또다시 타고 멕시코로 가는 게 아닌가!
새벽5시 조금 지나 멕시코시티의 베니또 후아레스(Benito Juarez) 국제공항에 도착을 하였다.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권만 있으면 입국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꼬모 에스따모스 아미고? 라며 인사를 하는데 그저 빙긋 눈웃음밖에 달리 뭐라 말도 못하고 서있으려니 3개월의 체류기간 도장을 꽝 찍어주면서 환영의 미소와 함께 여권을 돌려준다. 미국 같았으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서둘러 입국장을 빠져 나와 예약한 렌터카를 찾기 시작했다. 비행기에서 눈 좀 붙이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뜬눈으로 꼬박 날아 와서는 이제 졸린 듯 모두들 눈은 벌개가지고 정신들이 없어 보인다. 그나저나 영어는 하나도 보이질 않고 온통 스페니쉬다. 우리나라는 세계화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한글은 어디로 보내 버리고 온통 영어로 도배하다시피 했는데 이곳은 오직 스페니쉬다. 멕시코에 왔으니 스페니쉬를 사용하라는 것 같은데 불편은 하지만 그래도 첫인상치고는 그리 나쁘지가 않다. 아니 오히려 부러움이 들었다.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당당한 국력인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사용하는 에스빠뇰은 식민지의 유산으로 과거 스페인 식민시절부터 강제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지금은 그들의 언어가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국어로써의 에스빠뇰에 대한 강한 긍지를 엿볼 수가 있다.
어느 쪽으로 나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가지고 온 스페니쉬사전을 찾아 출구라는 단어부터 찾았다. 출구를 따라 한참을 걸어 나오다 문득 벽에 걸려 있는 대형 스크린을 보니 LG제품이다. 비행기 이착륙 스케줄 스크린에도 모두가 다 LG 로고가 붙어있다. “얘들아, 여기 좀 봐라. 여기 우리나라께 있다.” LG 로고를 보더니 갑자기 졸음이 다 달아나 버린 듯 두 눈을 크게 뜨고는 신나서 좋아들 한다. ‘나는 자랑스런 한국사람이다’ 라는 표정을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애들은 물론 나 역시 자부심으로 한껏 고조되어 괜히 우쭐해졌다. 수출하는 기업은 돈이 목적이겠지만 해외에서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건드려 감동을 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삼성이나 LG는 그런 기업들 중 하나이다. 현대자동차도 이제부터는 노사분규에 쏟을 힘을 제품의 격을 높이는데 사용한다면 길을 가다가 품격의 현대 차를 보았을 때 그 얼마나 가슴 뿌듯할까?
마침내 렌터카사무실을 찾았다. 다행히도 영어를 할 줄 아는 젊은 남자가 근무를 하고 있었다. 예약일자와 이름을 말하니 바로 본사에 전화를 걸어 확인한다. 공항 내에서는 간이사무소를 차려 놓고 예약접수 및 확인 업무만 할 수 있고 실제로 렌터카를 대여하는 장소는 공항 밖에 있기 때문에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단다. 공항 내에서 모든 게 다 이루어지는 미국과는 차이가 있다. 공항에서 본사까지 안내할 직원이 올 거라며 잠시만 기다리란다. 이른 새벽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분주하다. 한 이십여 분을 기다려도 온다는 사람이 오지를 않아 직원에게 본사가 이곳에서 먼 곳이냐고 묻자 공항 바로 밖에 있다며 잠시 후면 곧 도착을 할 거란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달러를 멕시코화폐인 페소로 환전도 하고 이곳 저곳 상점도 구경하였다. 김포공항 만하거나 그보다 좀 작은 듯 한데 비교적 깨끗하였고 무엇보다도 바닥재라든지 조명시설 등 내부가 무척 고급스럽게 보여 아마도 이 공항을 지을 때 상당히 많은 돈을 들였을 것 같아 보였다. 볼일을 보려 근처 화장실에 들어 갔더니 깨끗한 내부에 소변기마다 최신식 감지센서가 부착되어 있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가만 살펴보니 어떤 소변기는 감지센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로 누르는 페달이 별도로 부착되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소변기는 줄을 잡아 당기도록 되어있는 게 아닌가! 아마 감지센서가 고장이 난 모양인데 참 우습게도 해 놓았다. 감지센서가 고장이 났으면 감지센서를 고칠 일이지 어찌 저렇게 절묘하게 덧붙여 놓을 수가 있을까.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마도 현대식시설들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과 기술 또는 물자가 부족한 모양이다. 그럼 이 공항은 도대체 무슨 기술로 어떻게 지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이삼십 분이 지나 렌터카사무실로 돌아가 직원이 왔느냐고 재차 물으니 본사에 다시 전화를 걸고는 한다는 소리가 조금만 더 기다리란다. 어쩔도리없이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직원이 전화를 받더니 지금 막 도착했다며 따라 오란다. 서둘러 짐 보따리를 챙겨 직원을 따라 갔다. 공항밖에 밴 한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우리끼리만 돌아오게 될 경우를 생각해서 길을 익힐 심산으로 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 나가는 동안 줄 곳 바깥을 주시했다. 차가 출발하여 백여 미터쯤 나가니 횡단보도 앞에 신호등이 있다. 신호를 받고 직진하여 또 한 사오백 미터 가니 일방통행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또 다시 신호등이 있다. 저 신호등을 지나면 양방향길이 되며 사거리다. 우회전을 하니 온통 렌터카업소다. 차를 타고 오분 거리도 안 되는 본사를 지척에 두고, 맙소사, 차라리 걸어 갔어도 될 만한 거리를 무려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게 하다니 그럼에도 별로 미안해 하지도 않아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질 않았다. 조금 전 입국 때의 그 친절함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미국 운전면허증과 신용카드를 복사하여 사본은 그들이 보관하고 원본과 자동차 키를 내게 건네 주면서 바깥에 주차 되어 있는 자동차로 안내를 한다. 십 년도 더 되어 보이는데 외관으로 봐서는 그런대로 쓸만해 보였다. 이 차는 수동식에 에어컨도 없다. 하지만 에어컨을 사용할 계절도 아니고 또 집사람이 운전할 것도 아니다. 물론 더 좋은 차도 있다. 하지만 비싸다. 비싸도 그냥 비싼 게 아니다. 엄청 비싸다. 하루 16불이면 거의 공짜 아닌가? 까짓 거 수동식이면 어떻고 에어컨이 없으면 어떠냐 잘만 달리면 최고지. 외관 상태를 간단히 점검하고 서류에 서명을 한 후 정식으로 인수했다.
미국에서는 멕시코 운전면허증을 사용 할 수 없다. 하지만 멕시코에서는 미국 운전면허증을 쓸 수가 있다.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횡포인가? 이 얼마나 불공평한가?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듯 미국의 횡포라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나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미국에 거주하는 수많은 멕시칸들이 그들의 고국을 방문 할 때 하루면 될 비행기보다는 여러 날이 걸리는 자동차를 택한다. 그들은 시간보다는 비용을 앞세우기 때문에 대부분이 대가족들인 그들로서는 비용이 비행기의 절반에 절반도 안 드는 자동차를 택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멕시코에 입국하면서 미국 자동차 번호판과 면허증 등을 모두 바꾸어야 한다면 꽤나 정신 없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자국민의 편의를 고려한 실리적인 정책이 아닐까? 하는 내 개인적 생각이다. 자동차시동을 켜고 딸아이에게 노트북을 켜라고 했더니 아뿔싸! 차에 연결하는 전기컨넥트를 깜박 잊고 안 가지고 왔단다. 그럼 노트북자체 전전지로 얼마쯤 쓸 수 있느냐니까 한 반시간 정도란다. 공항근처에서 전자제품 판매소를 찾아 컨넥트를 하나 살까 하다가 말도 잘 통하지 않을 뿐더러 길눈도 어두운 사람이 괜한 헛수고하여 시간만 낭비할 것 같아 하는 수 없이 노트북은 비상시에 쓰기로 하고 멕시코시티 시내 지도를 한 장 얻어 다시금 길을 익힌 후 간략하게 그린 지도와 머릿속의 지도에 의지하기로 하고 일정에 따라 떼오띠우아칸을 향해 바야흐로 본격적인 여로로 들어 섰다.
멕시코시티의 주도로는 시내의 외곽을 원형으로 둘러 싸고 있는 공항순환로이다. 총 길이가 40km인 이 길은 시내의 모든 길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만일 지나치더라도 한 바퀴만 돌면 원래 그 자리로 되돌아 오는 어찌 보면 초심자에게는 편리할 수도 있는 길이다. 공항 앞을 지나는 대로가 바로 이 공항순환로이다. 공항에서 약 8km쯤 가다가 Av Insurgentes Norte라는 길을 만나면 우회전을 하고, 다시 12km를 곧장 따라 가면 길 이름이 85D로 바뀌는데 이에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20km를 더 가면 132번 도로가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17km쯤 가면 마침내 그 유명한 떼오띠우아칸이 나오는 것이다. 참 간단하다. 그런데 이렇게 간단한데 우리는 전혀 엉뚱한 길로 들어섰다. 공항에서 Av Insurgentes Norte까지는 잘 간 것 같은데 어디서 엉뚱한 길로 빠졌는지 지금쯤이면 85D가 나와야 하는데도 좀처럼 85D라는 이름이 보이질 않는다. 게다가 도로표지판의 지명도 좀 이상하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떼오띠우아칸 가는 길을 물어 보았다. 그 사람은 영어를 못하지만 떼오띠우아칸이라는 말은 알아 들었는지 손짓으로 옆길을 가리키며 뭐라고 말을 하는데 지나쳤다는 것인지 돌아서 저쪽 길로 가라는 것인지 전혀 알아듣질 못하겠다. 하지만 분명 엉뚱한 길임에는 틀림없는 모양이다. 서둘러 방향을 틀어 오던 길로 다시 돌아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엔Av Insurgentes Norte를 지나쳐 시내를 관통하고 말았다. 이야말로 비상사태가 아니고 무엇인가. 즉시 노트북을 켜서 멕시코시티 지도를 열었다.
시내의 교통질서는 한마디로 엉망이다. 조금 전의 그 길은 지방으로 가는 국도라서 그랬는지 미국과 별차이 없이 비교적 한산했지만 지금 이 시내도로는 사정이 다르다. 무질서가 법인 듯, 우격다짐으로 자동차를 들이대며 끼어들지를 않나, 노랑신호를 파랑신호와 동등하게 애용하질 않나, 빨강신호에서 파랑신호로 바뀔 찰라 죽기 살기로 출발하는 것은 예사이고 이 차선 저 차선 왔다 갔다 곡예운전에다가 이쪽저쪽 사방에서 지르는 경적소리와 교통경찰들이 불어 젖히는 호각소리, 이 모든 것들은 나를 점점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전세계의 중고차 아니 중차는 빼고 고차들만 다 모아 놓은 듯 도로 위의 수많은 자동차들은 한결같이 폐차 직전의 노후한 자동차들로 시꺼먼 매연을 내 품으며 내달리는데 정녕 이곳이 멕시코의 수도란 말인가?
지도를 보니 우리는 정반대로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어디에서 방향을 바꾸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이곳의 도로표지판 관리는1970년대의 한국도로처럼 길 따로 지도 따로인 듯 지도의 길과 현지의 길이 상당히 다르게 느껴진다. 게다가 도로표지판의 익숙지 않은 스페니쉬 글씨도 제법 한몫을 하고 있다. 어디 차를 세우고 누군가에게 물어라도 봐야겠는데 차를 세울 마땅한 곳도 못 찾겠다. 마침 신호대기로 정차를 하는데 승객을 실은 택시 한대도 내 옆에 멈춰 섰다. 창문을 열고 떼오띠우아칸 가는 길을 물어 보니 뭐라고 열심히 설명은 해 주는데 하나도 못 알아 듣겠다. 다시 물어보는데 신호가 바뀌는 통에 하는 수 없이 질문의 답도 얻지 못하고 차를 출발하여 앞으로 가려니 그 택시가 내 옆에 바짝 붙어 또 뭐라고 하면서 내 차 앞을 추월하여 앞서기 시작한다. 마치 자기를 따라 오라는 것 같았다. 신호등을 네댓 개쯤 통과하자 택시기사는 창문 밖으로 손을 뻗어 왼쪽 길로 가라는 신호를 하고는 그대로 직진해 가버렸다. 지도를 보니 공항순환로다. 그 택시기사가 공항순환로로 연결을 시켜 준 것이다. 정말 고맙지 않은가? 다시 지도를 보니 공항순환로는 지역에 따라 그 이름을 일곱 가지로 달리 하고 있는데 우리는 현재 Blvr Puerto Aereo를 달리고 있다. 공항을 지나는 순간 이 이름은 Av Rio Consulado로 바뀐다. 원래, 오전 8시쯤이면 떼오띠우아칸의 피라미드 신전을 볼 것으로 예상을 했는데 오전 10시인 지금 아직껏 공항을 벗어 나지 못하고 있다. 무려 5시간을 공항에서 헤맨 셈이다. 그러나 그사이 나는 시내의 도로표지판 글자에 익숙해졌고 무엇보다도 시내에서 운전 할 때는 이들과 같은 방식으로 거칠게 운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Av Insurgentes Norte와 연결된85D는 고속도로였다. 톨게이트에서 목적지를 묻는 것 같아 떼오띠우아칸하니까 뭐라고 하는데 아마도 통행료를 내라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얼마를 내야 할 지 모르겠다. 숫자가 제일 큰 지폐를 두 장이나 줬더니 한 장은 돌려 주고 나머지 한 장을 받고는 잔돈을 꽤 많이 거슬러준다. 이제 20km를 가서 132번 도로로 바꿔 타면 바로 우리가 가려는 떼오띠우아칸가는 길이다. 한 15분쯤 달리다 보니 피라미드라고 쓰여진 도로표지판이 나왔다. 그 표지판을 따라 고속도로를 빠져 나오긴 했는데 벌써 떼오띠우아칸일 리가 없다. 지방국도인 듯한데 이 길이 맞는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노트북의 건전지도 다 되어 지도를 볼 수도 없다. 그냥 앞으로 가다 보니 도로가 고속도로 같은 길로 다시 바뀌었다. 우리가 지나온 길은 아마도 고속도로와 국도를 연결시키는 인터체인지였던 모양이다. 한 30분을 계속 달리다 보니 피라미드라는 도로표지판이 다시 나왔다. 표지판을 따라 길을 빠져 나오자 곧 마을이 나왔는데 낡은 건물들과 좁고 복잡한 길이 마치 우리나라의 시골읍내와 흡사하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떼오띠우아칸하니까 오히려 되묻듯이 피라미드? 하면서 손으로 앞을 가리키는데 저쪽에 신전의 꼭대기가 보인다. 꼭대기를 보면서 이 길을 따라 계속 가면 될 것 같다. 좁은 골목 같은 길을 빠져 나오니 오른편에 신전의 꼭대기가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서행을 하며 그 꼭대기를 따라 가는데 누군가 갑자기 차 옆으로 와서는 뭐라고 하는 것이 돈을 달라는 것 같아 보였다. 이건 또 뭐야? 옷 차림새로 보아서는 거지는 아닌 것 같은데 도무지 모르겠다. 한참을 떠들더니 건너편 감시초소처럼 생긴 건물 벽에 붙어 있는 숫자가 적힌 판을 손으로 가리키며 또 다시 알아 듣지도 못하는 에스빠뇰로 사정없이 떠들어댄다. 입장료를 내라는 모양인데 일반사복차림의 이 사람이 진짜 매표소 직원인지 알 수가 없다. 오히려 사기꾼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제복은 고사하고 모자나 명찰도 없이 하다못해 그 흔한 완장도 없는 이 사람의 복장으로는 아무리 봐도 매표소 직원 같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랴 내라는 돈을 내지 않으면 입장을 시켜 줄 것 같지가 않다. 안내문에 적혀진 대로 주차비와 입장료를 내고 자갈밭에 차를 주차 시켰다.
자갈밭을 따라 안으로 걸어 들어 갈수록 신전의 꼭대기는 점점 사라져 오히려 시야에서 자취를 감췄다. 길 옆 한편으로 모두 열 채도 안 되는 초라한 기념품 판매소가 줄지어 늘어서 있지만 대부분 셔츠 아니면 수건들로 기념이 될만한 것들은 없고 그나마 한결같이 조잡하다. 한가지 특별한 것이라면 돌을 갈아 보석처럼 다듬은 것인데 아마도 이곳의 특산품인 모양이지만 그러나 사고 싶을 만큼의 모양도 없고 가치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하나만 사라고 줄기차게 쫓아다닌다. 우리나라나 여기나 어쩌면 이렇게 사정이 비슷할까? 더구나 지나가는 관광객을 호객하는 행위 또한 비슷해 간만에 고국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관광객이래 봐야 현재 내 주변에는 저 앞의 두 사람과 우리가족 네 명, 여섯 명이 전부다. 우리나라 같으면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가게들로 북적댈 텐데 이곳의 분위기는 유명세치고는 상당히 썰렁하고 초라하다. 오직 정적만이 흐르고 있을 뿐 아주 조용하다. 아니 어쩌면 바로 이분위기가 수백 년 전의 아즈텍 바로 그 모습이 아닐까?
돌과 자갈을 쌓아 계단처럼 만든 낮은 언덕을 올라서니 저 앞에 조그마한 신전이 온전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걸어 들어 갈수록 조그맣던 신전은 점점 커져 한눈은 고사하고 세 번으로 나누어봐도 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커졌다. 무지막지하게 높다. 아니 높다기보다 상당히 가파르다. 이처럼 가파른 신전이 두 개나 있는데 입구에 있는 지금 보고 있는 신전은 달의 여신이고 왼쪽 저 끝에 우뚝 서 있는 이와 똑 같이 생긴 또 하나의 신전은 태양의 아들이다. 이 두 신전은 각각 세 개의 단을 가지고 있는데 모양은 신전과 비슷하나 크기와 높이가 신전의 삼분의 일쯤 되어 보이는 작은 단으로 각 신전의 중앙과 좌우에 각각 하나씩 서있다. 그리고 달의 여신에서 태양의 아들까지 가는 길 양쪽은 경기장의 관람석처럼 생긴 돌 계단으로 이어져있다. 신전과 단 그리고 관람석은 네모진 형태의 돌들을 계단처럼 쌓아 올려 만들어져 있는데 이 돌들은 대량생산공장에서 생산된 규격화한 제품들인지 그 모양과 크기가 모두 같다. 돌의 길이는 얼마인지 모르겠으나 돌출된 계단의 크기는 가로 세로 높이가 모두 성인 발자국으로 하나반정도 즉1.5피트 정도로 일정하다. 같은 네모진 돌이라도 우리의 첨성대는 그 곡선미에서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느끼게 하는데 이 곳의 석조물들은 직선만 있고 곡선은 없다. 게다가 좌우 높이가 모두 한결같아 마치 군대의 열병식장을 느끼게 할 정도의 딱딱한 절도만이 있을 뿐이다. 한치의 어긋남이나 틀림에 절대 용서가 없는 거대한 위압감으로 신에 대해 최대한의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게 만듦으로써 이 신전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훌륭한 석조물일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이 신전이 잘 지어진 것인지 못 지어진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그 규모 면에서 웅장하고 신전이나 제단의 크기와 높이를 똑같이 했다는 점에서 당시의 측량기술을 인정할 따름이다. 이 유물들을 보고 있자니 공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노역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은 과연 신성한 신전을 짓는다는 명분에 신바람 나서 신나게 신전을 세웠을까? 그래서 이만큼 지은 것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노역장에 끌려 나왔기 때문에 이보다 더 잘 지을 수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지못한 마음으로 해서 이 정도에 그친 것일까?
굳이 꼭대기까지 올라가자고 꼬드겨서 오르긴 했는데 이 이상은 나도 무리다. 삼분의 이까지 올라 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너무 가파른지라 몹시 떨린다. 가파르다라는 말은 바로 이런 곳을 두고 하는 말인 모양이다. 아까 저 밑에서 올려다 볼 때보다 훨씬 더 가파르다.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만일 발을 헛짚어 계단을 잘못 디디기라도 한다면 순간 저 아래까지 아무런 간섭 없이 단번에 굴러 떨어질 것이다. 그 옛날, 제물로 받혀질 사람이 이 위로 끌려 오르는 동안 제아무리 강심장이라도 정신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위로 계속 올라가면 칼에 찔려 죽을 것이고 아래는 깎아지른 낭떠러지 같은 돌계단이라 도망쳐봤자 굴러 떨어져 죽을 것이니 이래 저래 죽기는 매한가지이다. 계단을 오를수록 죽음의 제단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또 낭떠러지 계단은 점점 더 높아지니 제단에 이르기도 전에 겁에 질려 정신을 잃고 급기야 기절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올라와 서있는 여기는 말하자면 베이스캠프인 모양이다. 저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아 몰랐는데 올라와 보니 평지처럼 상당히 넓다. 저 위까지 마저 더 가야 제단이 있는데 더는 못 오르겠다. 여기서도 저 아래 작은 제단들이며 또 저 멀리 주변경치며 볼 것들은 웬만큼 다 보이니 이만하면 충분히 올라왔다. 처음 신전을 보는 순간에는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구조물에 잠시 말을 잊었었지만 지금은 그 신전이 그 신전이고 그 제단이 그 제단이다. 이제 내 눈에는 그저 돌덩어리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는데 기내식도 제공하지 않는 알래스카항공을 타고 밤새 날아와 벌써 열두 시 반이 지나도록 아침도 먹지 못하고 돌아 다녔으니 허기져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다.
오르는 것 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힘들다. 아니 혹시 헛디딜까 두려워 무척 조심스럽다. 그러다 보니 더더욱 다리가 후들 후들거린다. 어렵게 내려와 우리는 차를 타고 왔던 길로 나왔다. 그런데 아까 이곳으로 올 때는 분명 외길인 것 같았는데 나가려니 길이 의외로 여러 갈래로 꼬여 있다. 기억을 더듬어 가다 보니 읍내의 작은 광장이 나왔다. 우리는 멕시코시티로 가는 고속도로를 찾아야 하는데 도로 표지판도 없어 보인다. 아니 광장에 딱 하나가 있지만 전혀 모르는 생소한 지명이다. 내게는 있으나마나 한 표지판이었다.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갔는데 이상하게도 다시 그 광장이 나왔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멕시코시티 하니까 주저 없이 잘 가르쳐주는데 알아듣지도 못하는 에스빠뇰의 설명은 내게 별로 도움이 되질 않았다. 그저 손으로 가리키는 길을 따라갈 뿐이었다. 그렇게 가다 보면 어느새 광장에 와있다. 희한한 길이다. 그새 광장을 서너 바퀴나 맴돌았다. 이곳엔 주유소도 없는지 보이질 않는다. 아직 기름이야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헤매다 보면 결국엔 기름도 바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당황스럽고 초조해졌다. 저 모퉁이의 철공소 같은 잡화점으로 무조건 들어갔다. 멕시코시티 하니까 역시 친절하게 잘 가르쳐준다. 하지만 알아듣지도 못하는 에스빠뇰로 아무리 자세히 설명을 하면 뭣하나. 어쨌든 분명한 것은 광장을 빠져나가면 옆으로 샛길이 있어 그 길로 가라는 것 같은데 우리는 그 곳을 벌써 네댓 번이나 갔어도 찾지를 못하고 결국은 광장으로 다시 오고 만 것이다. 종이를 주고 지도를 그려 달라고 해서 보니 더 헷갈린다. 말로는 지도를 잘 그리는데 손으로는 못 그리는 모양이다. 아무튼 다시 가볼밖에 도리가 없다. 아무리 찾아도 고속도로로 가는 길은 없다. 아니 우리가 찾지를 못하는 것이다. 온 신경이 머리로 다 뻗치고 있는데 저 앞에 경찰차가 서 있다. 떠나기 전에 빨리 저 구세주를 만나야 산다. 앞뒤 볼 것 없이 경찰차 옆에 차를 급히 세우고는 멕시코시티 가는 길을 물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설명이다. 나는 그 길을 못 찾고 있다고 아무리 영어로 말을 해도 이들 또한 영어를 알아 듣지 못하고 에스빠뇰로 똑 같은 말만 되풀이 할 뿐이다. 나는 더 이상의 말은 못하고 계속해서 멕시코시티, 멕시코시티 하니까 급기야 상의 단추를 세 개나 푸르고 손수건으로 이마와 목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재차 같은 설명을 하는데 목소리 톤도 점점 오르는 것이 이들도 짜증이 나는 모양이다. 하지만 벌써 몇 차례나 오갔어도 못 찾는 그 길인 지라 여기서 확실하게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계속 반복해서 물었다. 그러자 경찰은 둘이서 뭐라고 하더니 손짓으로 따라 오라며 먼저 출발을 한다. 나는 놓치지 않으려 경찰차 뒤에 바짝 붙어 따라 갔다. 나에겐 별 필요 없어 보였던 그 도로표지판을 지나 조금 더 가더니 오른쪽으로 길 같지도 않은 작고 좁은 골목길로 들어 갔다. 좁은 길을 따라 한 5분쯤 가다 보니 마침내 내가 그렇게도 애타게 찾았던 132번 국도가 아닌가? 안도의 한숨이 나왔고 앞서 가는 경찰들에게 무한의 고마움을 느꼈다. 이제 이만하면 나 혼자 갈만하다. 그런데도 경찰차는 멈추질 않고 계속 앞서 가고 있다. 올 때는 한 시간쯤 걸린 것 같았는데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아서인지 불과 반시간도 안되어 우리는 85D 고속도로 톨게이트 앞에 도착을 하였다. 여기서는 눈감고 가도 멕시코시티다.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차에서 내리려는데 그들은 이미 톨게이트 입구에서 차를 돌려 되돌아가고 있었다. 2006년 4월 25일 화요일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 떼우띠우아칸에서 순찰 근무를 했던 경찰관 두 분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금 감사를 표한다.
무뚝뚝하긴 해도 우리나라사람들도 누군가가 길을 물으면 비교적 잘 가르쳐주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묻는 사람이 한국사람이 아닐 경우에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길을 가다가 외국인이 영어로 길을 물어 볼 양이면 갑자기 눈을 말똥 뜨고는 쳐다보다가 머무적거리며 머리 숙이고 그 자리를 피한다. 저쪽에서 이 광경을 보기라도 한 사람은 자신에게도 물어 볼까 봐 일찌감치 머리를 돌려 눈이 마주치지 않게 하고 간신히 그 자리를 벗어난다. 아니면 아예 오던 길로 되돌아 줄행랑을 친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춰진 한국사람들은 죄가 많은 민족이다. 남 앞에서 당당히 머리 들고 말조차 못하는 죄 많은 백성인 것이다. 그에 반해 멕시칸들은 참 대단하다. 아니 당당하다. 비록 영어는 못하지만 도망치기는커녕 전혀 망설임이 없이 에스빠뇰로 성심을 다해 가르쳐준다. 그러니 이 얼마나 친절한 민족이고 호감이 가지 않겠는가.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어보면 한국말로 잘 설명하면 될 텐데 우리는 반드시 영어로 말을 해야 하는 줄 지독한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 그저 한글로 말하면 된다. 필요하면 그들도 한번쯤 한글을 접해보고 입국을 할 테니까.
떼오띠우아칸에서 멕시코시티로 돌아온 우리는 호텔로 바로 가질 못하고 당연히 시내를 여러 바퀴나 돌며 헤맨 끝에 또다시 택시기사의 도움으로 간신히 호텔에 올 수가 있었다. 호텔은 사진으로 본 것과 사뭇 다르다. 이 주변에서는 제일 높은 건물이지만 상당히 낡은데다가 리 모델링을 하는지 건물 바깥 한쪽 벽은 그물망을 씌워 놓고 공사가 한창이다. 호텔 로비는 협소할 뿐만 아니라 식당마저 그 한 켠에서 부페를 운영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음식은 우리가 먹기에는 역겨울 듯 상당히 힘들게 보여 일단 짐을 방에 갖다 놓고 호텔 밖으로 나가 식당을 찾기로 했다. 그 동안 오전 오후 두 차례나 시내를 헤맨 덕분에 이젠 멕시코시티의 지리에 많이 익숙해졌다. 그래도 로비에 비치되어 있는 호텔 주변 지도를 두 장 챙겨서 한 장은 내가 또 한 장은 애들에게 주면서 호텔위치를 한번 더 확인 한 후 밖으로 나왔다.
호텔에서 두 블록을 걸어 오다 보니 최근에 새로 지었는지 깨끗하면서 가장 현대적으로 멋을 한껏 부린 제법 규모가 있는 건물이 있는데 간판이라고 읽어봐야 모르겠고 일단 안으로 들어 갔다. 조용한 가운데 입주한 상가들도 단정하고 품위가 있어 보인다. 손님들도 세련되어 보이고 이곳은 그야말로 지금까지 왁자지껄하는 멕시코시티가 아닌 또 다른 세계 같다. 그야말로 부티 나게 아니 속된 말로 럭셔리하게 보였다. 서너 개의 식당이 있지만 멕시칸보다는 이태리가 그나마 무난할 듯하여 이태리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 밖을 볼 수가 있도록 입구와 도로 쪽은 통 유리로 되어 있고 반대쪽 벽에는 농촌풍경을 배경으로 찍은 흑백사진이 죽 걸려 있는데 아마도 이 식당 주인의 젊었을 때 사진인가보다. 통 유리와 흑백사진들을 통해 현대와 과거를 무리 없이 접목시킨 이 식당은 무척 고급스러워 아차 음식값이 너무 비싸지 않을까? 지갑을 한 번 확인하게 만들었다. 미국에서 이 정도의 식당일 경우 일인당 적어도 삼사십 불은 족히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럴 때 돈을 써보지 또 언제 쓰겠냐. 식당의 지배인이나 종업원들은 영어를 전혀 못할뿐더러 메뉴 또한 당연히 스페니쉬였지만 주문하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햄버거 하면 모두가 알듯이 피자나 스파게티, 파스타, 라자니아등 웬만한 이태리음식 용어는 세계공용어나 다름이 없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남으면 호텔에서 먹으려고 음식을 다섯 가지나 시켰는데 가지고 갈 것도 없이 다 먹어 치웠다. 반면 청구된 음식값은 500페소 정도로 미국 돈으로 50불이 채 안 되었다. 물가가 싸다더니 정말이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음식 맛도 좋아 여러 가지로 만족스러웠다. 기분도 좋아 봉사료도 두둑이 무려 10%나 되는 50페소를 식탁에 놓고 일어서면서 다시 한번 계산서를 보았는데 그런데 좀 이상하다. 시킨 음식 다섯 가지에 항목이 두 가지가 더 있다. 마지막은 세금으로 이해하겠는데 여섯 번째는 모르겠다. 음식값은 아닌 게 분명한데 혹시 자릿세인가? 깜박하고 사전을 호텔에 놓고 나오는 바람에 해석도 안 된다. 종업원에게 물어 보았지만 영어를 못하는지라 우리와 대화가 되질 않았다. 지배인을 불렀지만 마찬가지다. 캐나다처럼 세금을 두 가지로 걷는 모양이지. 그래 봐야 50불인데 뭐. 이렇게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고 어쨌든 우리는 좋은 기분을 유지한 채 시내유적지 관광을 나섰다.
호텔 앞의 도로가Av Juarez이고 그 길 건너 맞은 편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답다는 Alameda공원이 있다. 공원 입구에는 멀리서도 눈에 확 띌 정도로 커다란 흰 대리석의 조형물이 있다. 공원 안으로 들어 서면 갖가지 동상들과 우아하고 고풍스런 벤치 그리고 둥그스레한 분위기의 아담한 분수가 주변 나무들의 풍경과도 무척이나 어울리게 물을 운치도 있게 품어내고 있다. 지금이야 이런 것들이 나나 우리 가족들에게는 별로이지만 백 년도 훨씬 전에는 아마 대단했을 공원이다. 짐작하건대 당시 귀족들의 휴식 공간으로 사용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 이 공원 곳곳에는 노숙자들로 가득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심지어 한 켠에서는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사랑을 나누는 이들도 있어 이번에는 눈이 번쩍 떠진다. 그러고 보니 관광객이라고는 우리밖에 보이질 않는다. 서둘러 공원을 빠져 나와 한 블록을 내려가니 역사 박물관(Centro Historico)이 있다. 근세 유럽풍의 석조 건물로 과거 스페인 식민시절의 화려했던 영화가 물씬 풍길 만큼 화려하고 웅장하다. 특히 붉은 노랑색으로 칠해져 있는 지붕의 돔이 오후의 햇살을 받아 황금색을 띄며 찬란히 빛나는 것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우리는 이 안에 들어가 구경을 할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없다. 거의가 유적지처럼 보이는 이 지역은 제한된 시간에 껍질만 보기에도 벅찰 정도이다. 길 옆으로 이 건물과 나란히 늘어 서있는 역시 같은 시대의 건축형태로 지어진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이 있고 길을 건너 겨우 차한대 지날 정도의 골목으로 들어 서니 마이요르 성당(Templo Mayor)이 있다. 성당 입구까지 두어 개의 성모 마리아상이 길변에 세워져 있고 그 밑에는 돈통이 있는데 제법 그득하다. 특이한 것은 그 옆에서 구걸하는 거지도 있지만 이 돈통은 건들이지 않는 모양이다. 성당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상당히 오래 된 듯 무척이나 낡았다. 그런데 바라다보이는 건물벽이 전혀 아니올시다 다. 건물의 중앙을 기준으로 왼쪽은 고풍스러운 벽돌로 된 벽인데 반해 오른쪽은 최근에 증축을 했는지 요즘의 그 흔한 슬라브 벽으로 되어있어 여간 이상스럽지가 않다. 게다가 부서진 부분은 보수를 한답시고 시멘트로 메워 놓은 것이 오히려 훼손을 시켜 놓은 것 같이 보인다. 성당 안에는 전면에 황금으로 도금을 한 듯 눈부신 벽화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이 성당은 화려하다가 보다는 오히려 수수하고 검소한 느낌이 들었다. 미사시간도 아닌데 제법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조용히 성당을 빠져 나와 다음 목적지인 Palacio Nacional로 향했다. 가는 내내 시장을 지나는 느낌이다. 상가 앞에는 온갖 리어카 행상과 좌판들이 늘어서 있고 상인들은 박수를 치기도하고 더러는 목이 터져라 외쳐대기도 하는데 그 소리가 ‘골라. 골라’ 하는 것처럼 들린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과 사거나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대는 이곳은 그야말로 한국의 남대문시장과도 흡사하다. 걷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어디 발 편한 신발이라도 하나 사볼 양으로 이리 기웃 저리 기웃했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다. 싸기는 한데 쓸만한 것이 없다. 상가로 들어 가보니 상가에서 파는 것이나 좌판에서 파는 것이나 상표까지 똑 같은데 가격은 두 배에서 심한 경우 무려 세 배나 비싸다. 사지도 못하고 구경만 열심히 했지만 이것이 멕시코사람들의 사는 모습이라 생각하니 이것도 즐겁다.
역사 박물관(Centro Historico)
마이요르 성당(Templo Mayor)
마이요르 성당(Templo Mayor) 내부전경
멕시코시티는 1970년과80년대의 서울과 매우 흡사하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서울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모양도 없이 그저 높기만 한 형편없이 낡은 건물들이 그 흉측한 몰골로 우아한 옛 건물들을 내려다 보며 서있는가 하면 또 한쪽엔 금방 신축을 한 듯한 건물이 상당히 깨끗하고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한껏 뽐내고 있다. 도로에는 거의가 낡은 자동차들로 이들이 품어대는 매연은 가뜩이나 잿빛으로 뿌연 하늘을 더욱 시꺼멓게 흐려놓아 보기만해도 숨이 막혀 답답한데 설상가상으로 여기저기 난립한 재개발공사는 시내를 온통 흙먼지로 뒤덮어 어쩌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눈을 뜰 수조차 어렵다. 공사로 인해 도심은 여기저기 길까지 막아 통행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길만 건너면 바로 저긴데도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형편이 이런데도 무슨 공사가 그리도 많은지 웬만한 길은 온통 뜯겨져 더욱 어수선하기만 하다. 게다가 보도 한쪽은 온갖 좌판들이 자리를 차지 하고 있어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걸음 마저 묶어 놓아 나는 이 좁은 길을 내 의지대로 걷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 의해 서기도 하고 가기도 할 뿐이다. 하지만 서울이 이미 지나온 그 길을 지금 따라 가고 있는 멕시코시티도 앞으로 한 이십 년 후쯤이면 지금 이천 년대의 서울처럼 바뀌어져 있을 것이다.
갑자기 먹구름이 잔뜩 몰려와 어둑어둑해지더니 회오리바람이 불어 흙먼지가 날리고 급기야 빗방울 마저 떨어진다. 가던 길을 돌아 호텔로 돌아 왔다. 샤워를 하고 나와보니 그새 아이들은 잠들어 있다. 저녁식사 후의 드라이브가 곤란할 만큼 나도 무척 피곤하다. 계획했던 드라이브는 포기하기로 하고 저녁 먹고 호텔에서 쉬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아직 바깥은 훤하지만 해 떨어지기 전에 저녁 먹을 만한 곳을 미리 찾아 볼 겸 호텔을 나왔다. 다행히 빗방울도 그쳤고 바람도 잠잠하다. 호텔 뒤편으로 가보니 조그만 구멍가게가 하나 있을 뿐 대부분은 사무실들이다. 다시 큰 길로 나와 찾아보았지만 커피 아니면 아이스크림 판매점뿐이고 식당이라고는 아까 점심 먹은 곳이 유일하여 별수없이 다시 들어갔다. 멕도날드가 있어 우리는 각자의 취향대로 주문을 하였다. 실내분위기나 운영방식이 미국의 멕도날드와 비슷하여 말이 통하지 않아도 주문하기에 전혀 문제가 없다. 가격마저 미국과 거의 같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아까 그 식당이 더 저렴한 느낌이 들었다. 기다리면서 주문하는 손님들을 가만 보고 있자니 햄버거를 먹는 사람들은 마치 무슨 특권층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하긴 가격이 만만치 않으니 돈이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겠지만 정크푸드를 먹으면서 으스대는 꼴이 가관이다.
별 세 개 반짜리 호텔치고는 너무 형편이 없다. 침대는 삐걱거리고 게다가 이상한 냄새는 불쾌하기 짝이 없다. 벼룩이나 빈대가 없으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말이 욕실이지 일인용 세면기에 욕조도 없이 샤워기만 하나 달랑 벽에 걸려 있는 게 전부다. 그나마 비록 제한시간이지만 온수가 나오니까 망정이지 찬물만 나온다면 그야말로 끔찍하지 않겠는가. (오후5시 이후부터 밤 10시인가 12시까지만 온수를 공급. 나머지 시간은 찬물만 나옴.) 인터넷은 고사하고 전기코드도 없어 노트북을 충전해야 하는데 이것 참 낭패다. 이리저리 찾다 보니 욕실에 전기코드가 딱하나 있다. 드라이기는 비치되어 있지 않았어도 사용은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한 모양이다. 감지덕지하게 충전을 시켰다. 창 밖은 벌써 날이 저물어 어두어졌는데 호텔 옆의 재개발 공사장은 쉬지 않고 꿍꽝거리며 작업에 분주하다. 자려고 TV를 껐더니 공사장 소음이 더 크게 들린다. 아까 보아 두었던 구멍가게에서 맥주를 사와 마시며 내일 일정을 한번 더 확인했다. 하지만 확인하면 뭣하나 또 길을 잃고 헤맬지도 모를 텐데.
공사는 밤에도 쉬지 않고 계속 되었다. 자다가 소음에 잠을 깨어 엎치락 뒷치락하다가 어느새 날이 밝았다. 호텔에서 챠풀테펙까지는 3마일, 약 5km로 한 15분이면 충분한 거리이다. 그래도 혹시나 러시아워면 곤란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서둘러 호텔을 나왔다. 통행량은 많아도 교통이 막히지 않고 원활해서 운전하기에 적당했다. 그러나 도로변에는 웬 경찰들이 이리도 많은가! 가만 보니 서너 가지의 제복으로 미루어 이들 전부가 같은 소속의 경찰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가 교통업무에만 매달리고 있다. 노랑신호에서 빨강신호가 될 즈음 이들은 일제히 호각을 불고 곤봉을 휘둘러 대며 필사적으로 도로에 뛰어든다. 신호를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내달리는 차들이 얼마나 많으면 몸까지 던져가며 이를 막으려 할까. 또한 빨강신호에서 파랑신호가 되면 그 즉시 호각을 불고 곤봉을 휘두르며 빨리빨리 가라고 성화다. 이 또한 이들의 주요 임무인 모양이다. 차창 밖의 볼거리가 있어 잠시 머뭇거리기라도 하면 영락없이 경적소리가 울리고 잠시를 못 참고 요란하게도 추월을 해 지나간다. 난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기죽을 내가 아니고 볼 거 봐가며 차분히 목적지를 향해 갔다.
챠풀테펙이라는 도로표지판을 보면서 따라 왔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챠풀테펙이라는 지명은 온데 간데없이 사라지고 전혀 엉뚱한 지명이 눈앞에 나타났다. 조금 더 가다 보니 이번엔 챠풀테펙이란 표지판이 옆 도로에 걸려있다. 그리고 내가 있는 이 도로는 양 옆을 시멘트블록으로 막아 좌 우회전을 할 수 없는 길로 바뀌어져 있었다. 진작에 우회전해서 이 도로를 벗어 났어야 했는데 길을 놓친 모양이다. 한 십 분을 줄 곳 달리다 보니 우측으로 빠지는 길이 있다. 얼떨결에 빠져 나왔지만 되돌아 가는 길이 막연하다. 지도를 보니 한참을 외곽으로 돌아야 아까 그 길이 나온다. 지도를 따라 한참을 갔더니 길이 산속으로 들어가는 데 이게 어찌 수상쩍다 생각이 드는 순간 아닌 게 아니라 정면에는 군부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부랴부랴 차를 돌려 다시 왔던 길로 나갔다. 이곳은 상당히 외진 곳임에 분명하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한참을 달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말은 잘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 듣겠다. 대충 방향만 감으로 알아들은 후 어찌어찌 하여 마침내 챠풀테펙 근처까지는 왔지만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교통경찰에게 챠풀테펙하니까 뭐라고 한참 그러면서 머무적거리길래 뮤지움, 챠풀테펙 뮤지움하니까 저쪽을 손으로 가리킨다. 우리는 그곳에 주차를 시키고 입장권을 끊어 안으로 들어 갔다. 앞마당 여기저기에는 현대조각들이 세워져 있고 분위기로 봐서 역사 유적지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 건물 안으로 들어 갔더니 안내원이 팜플렛을 권하는데 이곳은 챠풀테펙 현대미술관이다. 전혀 엉뚱한 곳에 와 버린 것이다. 우리가 가려는 곳의 정식 이름은 까스띠요 데 챠풀테펙 (Castillo De Chapultepec)이다. 한번 끊은 입장료는 반환이 안 된단다. 공연히 입장료만 날리고 마침내 챠풀테펙에 입성을 하였다.
그 옛날 스페인 식민지 시절 산 위에 성을 짓고 총독이 거주하면서 정사를 보던 이곳은 그리 높지는 않은 산이지만 올라와 보니 시내가 한눈에 다 들어 온다. 정말 요새임을 절로 실감한다. 건물은 안팎으로 아주 온전하게 보존이 잘되어 있고 물건들 역시 있어야 할 곳에 정확히 놓여 있다. 건물 안에는 당시 총독을 비롯한 식솔들이 어떠한 생활을 했는지 설명을 들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눈으로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참관수업을 하는 수많은 초 중학생들이 인솔 교사로부터 어떤 설명을 듣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뭇 진지하다. 이 성의 옥상에 있는 정원은 요란하지는 않아도 무척 공들여 관리하였던 것 같다. 지금도 잔디와 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시원하게 물을 품어대고 있는 분수대를 보면 그 당시의 토목기술이 만만치 않았을 듯하다. 그때의 기술들을 계승 발전시켰더라면 공항의 화장실에서처럼 그런 황당한 일은 없었을 텐데. 건물 마지막 방은 입장을 못하게 막아 놓았다. 무엇이 있길래 막았을까 호기심에 몰래 들어 갔더니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해골을 길다란 나무막대기에 꽂아 마치 울타리처럼 세워 놓은 그림이 있다. 그 뒤로는 떼오띠우아칸의 신전이 보인다. 아마 신전에서 제물을 바친 후 죽은 사람의 목을 잘라 나무막대기에 꽂아 보관하는 것을 그려 놓은 것 같은데 보기만 해도 섬찟하다. 이 방안에 또 하나의 작은 방이 있어 역시 들어 갔더니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다. 현대인들이 점차 무언가에 의해 병들어 가며 결국엔 죽는다는 것을 그렸는데 오싹한 느낌에 얼른 방을 빠져 나왔다.
비행기 탑승까지는 아직 두 시간의 여유가 있다. 탑승 전에 요기를 해야겠어 공항 내 식당에 들어 갔다. 메뉴를 보니 전혀 모르겠다. 아무거나 시켰는데 어떤 것은 먹을 만하고 또 어떤 것은 전혀 이상하다. 어쨌든 장장 10시간 동안 굶는 것보다야 먹어 두는 것이 낫다. 계산서를 보니 여기도 항목이 두 개나 더 있다. 종업원은 영어를 할 줄 알기에 물어 보았더니 하나는 봉사료이고 하나는 세금이란다. 아니 그럼 그 식당에서 봉사료를 두 번이나 냈단 말인가? 멕시코에서는 계산서에 봉사료까지 포함한다는 것을 집에 가면서 알게 되어 다소 씁쓸하긴 했지만 그래도 워낙 싼 물가 덕분에 그다지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낯선 이방인에게 그토록 친절히 길을 가르쳐 주는데 그 누가 멕시코를 위험한 나라라 하겠는가!
보다 자세히 보고 싶으신 분은 http://blog.daum.net/rock2park/666888를 방문 하세요.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블로그를 만들어 정보를 정리 해보시는것도 좋을거 같아요.제게도 누가 그런 말씀 해주시더라구요 하루에 한줄씩해서 우리가 미국에 살면서 겪은 일을 올리는거래요.엄두가 안나서 시작을 아직 못했지만 댓글 안달리고 굉장히 프리해보이더군요.네이버가 편하다고 하대요.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또 댓글을 달아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내용이 재밌어 끝까지 읽었습니다. 글씨가 너무 붙어있어 아직도 눈알이 헤롱헤롱 ~~^^
어떻게 수정을 해야하는데 잘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