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리학(性理學)의 6대가 중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임성주(任聖周)가 18세 되던 해인 무신년 정월 초하루에, 자신이 지난해에 세웠던 새해 계획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데 대해 탄식하면서 지은 글이다. 임성주의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중사(仲思), 호는 녹문(鹿門),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충청도 청풍(淸風) 출생으로 이재(李縡)의 문인이며, 공주(公州)의 녹문(鹿門)에 은거하여 평생 동안 학문에 몰두하였던 인물이다.
임성주와 같은 큰 학자조차도 새해를 맞을 때마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서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데 대해, 얼굴이 붉어지면서 진땀이 흐른다고 탄식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외물의 유혹을 끊고 구태를 일소하여, 새해에 수립한 계획을 실천하고자 마음을 다잡았다. 임성주와 같이 자기 관리에 철저한 분도 그랬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네와 같은 범부 범부(凡夫凡婦)들이겠는가.
오늘날의 사람들은 예전 사람들처럼 새해 계획을 세우면서 자신의 덕성(德性)을 높이겠다느니, 자기 자신을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하겠다느니 하는 등의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는 않는다. 대부분 아주 사소하면서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 가장 흔한 계획이 금연, 금주, 다이어트, 어학 공부 등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꾸준하게 실천하지 못하고,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금연 계획 하나만 보더라도, 담배 판매량이 1월에는 확연히 줄었다가 2월이면 늘기 시작해서 3월이면 평소대로 회복된다고 한다. 이것으로 보면 금연을 계획한 사람들이 대부분 계획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특별히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 있다. 구한말 때 을사조약에 항거하여 단식(斷食)으로 목숨을 끊은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 1842~1910)와 같은 분이 그런 사람이다. 이분은 열네 살 때 자신의 부친이 과거에 급제하여 잔치하는 것을 보고는 부러운 나머지, 자신도 꼭 과거에 급제할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그러면서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는 왼쪽 엄지손가락을 구부린 채 펴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였는데, 그 뒤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10년 동안 엄지손가락을 펴지 않은 채 지냈다고 한다.
향산옹과 같이 의지력이 굳센 사람에게는 새해 계획을 실천하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이런 정도의 굳센 의지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즉 새해에 세웠던 계획이 작심삼일로 끝나고 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실패한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자괴감에 빠질 필요까지는 없다. 다만 새해 계획을 세우면서 특히 주의할 점이 있는데, 막연하게 목표만을 설정해 놓아서는 실패하기가 쉽다. 새해 계획을 잘 실천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까지 강구해 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느 정도 성공할 가망이 있다.
나의 처가(妻家)에는 새해의 계획을 실천하는 것과 관련된 아주 좋은 풍습이 하나 있다. 신정 때에는 온 가족이 모여서 함께 새해를 맞는다. 아침에 항렬 순서에 따라 세배를 마친 다음, 장인어른께서 온 가족에게 카드를 한 장씩 나누어 준다. 그 카드는 반으로 접혀 있으며, 겉면에는 장인어른이 가족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한마디씩 쓰여 있다.
그 카드를 받은 가족들은 겉면에 쓰여 있는 말을 읽고 이를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둔다. 그러고는 카드 속에다가 자신의 새해 계획을 적는다. 그런 다음 각자 돌아가면서 자신의 새해 계획을 발표한다. 발표를 마친 다음에는 그 카드를 모두 거두어 보관해 둔다. 1년이 지나 새해 첫날이 되면 그 카드를 다시 꺼내어서, 처음에 계획한 것이 잘 이루어졌나를 점검해 본다.
십여 년 전에 이와 같은 의식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가족들이 모두 쑥스러워하면서 불편하게 여기기도 하였다. 자기 자식이나 부모 앞에서 지난해를 반성하고 새해 계획을 발표한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쉽겠는가. 그러나 여러 해 동안 이를 반복해서 하다 보니, 이제는 온 가족이 이에 익숙해져 스스럼없이 지난해를 반성하고 새해의 계획을 발표하곤 한다.
이 의식의 좋은 점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새해 계획을 공개된 장소에서 발표함으로써 그 계획을 실천하고자 하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다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가족 구성원들 각자의 생각과 처지를 이해하게 되어, 가족 간에 깊은 유대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가족들도 새해 첫날에 이런 의식을 행해, 보다 더 알찬 새해를 맞이하였으면 한다.
묵은 해를 보내고 또 새해 맞거니, 迎新除舊歲 하늘의 도 날로 힘써 쉬지를 않네. 天道日乾乾 새로운 덕 다시금 또 닦아야 하고, 更合修新德 예전 허물 다시금 또 고쳐야 하네. 端宜改舊愆 미약한 양 고요히 잘 길러야 하고, 微陽須靜養 착한 생각 쇠해지게 해선 안 되네. 善思豈因遷 나이 이미 다 늙었다 한탄치 말라. 莫恨年華晩 아흔 살에 시를 지은 사람 있다네. 作詩九十年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 1553~1634)이 49세가 되던 해에 새해를 맞이하면서 지은 「신세음(新歲吟)」이란 시이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아흔 살에 시를 지은 사람’은 춘추 시대 위(衛)나라의 임금 무공(武公)을 말한다. 위 무공은 9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신하들에게 자신의 잘못된 점에 대해 말해 달라고 부탁하였으며, 「억계(抑戒)」라는 시를 지어 자신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경계하였다.
이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돌이켜본다. 나는 지난해에 금연과 건강관리 두 가지를 계획하였다. 그 가운데 금연은, 중간에 잠시 무너진 적이 있지만, 다시금 마음을 다잡은 탓에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그러나 건강관리는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탓에, 전보다 더 심하게 몸이 망가지고 말았다. 아마도 운동부족과 음주가 그 원인이었을 것이다. 올해는 이에 대해 좀 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실천할 생각이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갑오년 새해가 시작된 지 이제 겨우 십여 일밖에 안 지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도 아직까지는 새해의 계획을 처음에 세운 대로 잘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중에는 벌써 작심삼일로 그치고 만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이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어, 모든 기운이 약동한다는 ‘청마(靑馬)’의 해 갑오년 새해 첫날에 세웠던 계획을 끝까지 잘 실천해 나갔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