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575장 (구 302장) / 고린도전서 4 : 14 - 21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575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고린도전서 4장 14절 – 21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8.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아멘!
콜롬비아 대학교의 전임 총장 니콜라스 머리 버틀러는 분은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첫 번째 사람들은 무엇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사람들, 두 번째 사람들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 세 번째 사람들은 일들이 일어나도록 만드는 사람들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참된 지도자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일이 일어나도록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다." 라고 했습니다.
좋은 지도자는 좋은 일이 일어나도록 여건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국제 월드 비전의 회장 스탠리 무니햄은 "자격증과 학위와 졸업장이 지도자를 만들지 못한다." 고 했습니다. 지도자는 단순한 교육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첫째, 지도자 바울의 모습은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4장 15절에서 바울은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고 했습니다. 성정이라는 말은 우리도 똑같이 연약하고 반드시 죽게 되어 있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시면서도 우리와 다른 하나님이시지만, 바울은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로마서 7장 24절에서 바울은 자기 속에 있는 인간의 부패한 죄성과 심각하게 투쟁하는 사람임을 고백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저 내랴.”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야 죄와 사망을 극복할 수 있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5). 바울은 자신이 심각하게 싸워야 할 죄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마가를 선교여행에 데리고 가느냐 마느냐를 놓고 자기를 이끌어준 바나바와 다투고 갈라서기도 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이런 사람이라는 데 용기를 얻고, 바울이 바나바와 다투는 모습에서 이상하리만큼 친근감을 맛보게 됩니다. 바울도 실수가 있었던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것이 없었더라면 바울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수퍼맨의 딱지를 붙이겠지만, 그것 때문에 바울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동료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이 시대의 지도자 상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나와 성정이 같은 사람인데도 세계를 흔드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나와 같은 사람이면서도 비범할 수 있었던 사실은 우리로 나태하고 무능한 것에서 벗어나도록 촉구합니다. 그러면 바울은 어떤 면에서 비범했을까요? 사도 바울은 약하면서도 하나님에게 쓰임 받았다는 점이 비범합니다.
둘째로, 지도자 바울의 모습은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이 바울을 바라볼 때, 시험을 받을 만한 약함이 바울의 몸에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바울의 모습은 지도자답지 않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대개 지도자라면 말도 잘하고, 키도 훤칠하게 크고, 외모가 준수한 사람을 연상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외부적인 조건들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사랑하였고, 바울을 위해서 눈이라도 빼어 주겠다고 했던 것은 바울이 지도자이면서도 겸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다른 계시들을 받은 지도자 바울이었지만, 자만하지 않게 하는 하나님의 대책이 있었으니 '육체의 가시' 였습니다. '육체의 가시' 는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선물이라는 것을 뼈아픈 체험을 한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고통의 선물보다 하나님의 사랑의 더 큰 표시는 없습니다. 고통 자체는 좋은 것이 아니지만, 고통을 통하여 좋은 결과를 끌어내시는 하나님의 섭리 때문에 어떤 고통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은 고난을 당했을 때 비로소 부활의 주님만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질병은 바울로 하여금 자만하지 않게 하였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 안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에게만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 고백하였습니다(고후 12:10). 바울은 약한 것 때문에 신세타령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기뻐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온전히 죽고 자기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의 새 생명이 약동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셋째, 지도자 바울은 하나님에게 붙잡힌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신의 사명을 발견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주님으로부터 자기와 주님과 사명을 깨닫고 주님에게 붙잡힌 사역자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도움과 능력에 의지하여 말을 했고, 말한 대로 살고 산대로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어떻게 일해야 할지 그 방법을 알 뿐 아니라, 왜 일해야 하는지 그 목적과 이유도 알았습니다. 그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고 심지어 연약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에게 붙잡혀 예수님의 생명을 전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우리 마음속에 이런 사명자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여, 우리들의 가정과 교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우리 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더 밝아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