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숙공 윤관장군은 고려왕조의 초기에 태어나서 문무겸전의 탁월한 자품을 갖추고 왕건태조와 건국이념을 이어 받아 고구려의 옛 강토의 북녘의 실지를 회복하기에 충의불굴의 온갖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기어코 겨레의 숙원을 성취시킨 위대한 인물이라 문종조에 등과하여 벼슬이 문하시중 수태보에 이르고 예종때 대원수로 여진정벌의 대작전을 전개하여 천리변경을 소탕하고 9성을 쌓아 자주국방의 시책을 굳힌 다음 마침내 두만강건너 칠백리땅 선춘령에 고려경계비를 건립하고 凱施하였으니 정녕 민족의 승리요 영광이었다. 하지만은 여진이 영구히 조공을 바친다는 奸計에 의지가 약한 문신들의 동조로 9성은 환부되고 말았다.
그러나 조선왕조의 세종때에 와서 9성 옛터 일부에 6진을 다시 개척하여 現世紀에 이르는 국경을 확정지었으니 장군이 세운 「拓地鎭國」의 偉功은 새삼스러이 국토통일의 비원을 안고 민족중흥의 대업을 위하여 한결같이 前進하고 있는 이 민족의 영원불변한 지표가 아닐 수 없다.
서울 중구 의주로2가에 있는 서소문공원을 걷다 보면 동상이 하나 보인다. 고려시대 윤관(?~1111) 장군의 동상이다. 석조좌대 높이가 5.74m에, 동상은 6.26m인 육중한 모습이다. 윤관은 현재 서울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이다. 고려 숙종이 정치쇄신을 위해 부수도로서 '남경'을 설치할 때 이를 도와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고려사'에는 1101년(숙종 6년) "윤관 등으로 하여금 남경의 지세를 살피게 하고 그의 건의에 따라 도읍지 건설에 착수했다"고 적고 있다.
남경 궁궐은 1104년에 완공된다. 윤관이 남경 건설의 중임을 맡은 것은 그의 지역적 기반이 바탕이 됐을 것이다. 그의 고향은 파평(지금의 경기도 파주)으로 전체적으로 남경권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고조 윤신달이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공로를 세워 삼한공신에 오른 후 후손들도 지역의 토호이자 고려왕조의 중책을 이어 맡았다.
윤관은 문하시중(수상)까지 역임했다. 역사상 윤관의 최대의 공로는 영토확장이다. 1107년(예종 2년)에 17만 병력으로 북진해 여진족을 밀어내고 지금의 함경북도와 간도지역에 '동북9성'을 쌓았다.
첫댓글 오래된 장군님의 동상이 역사를 말해 주는것 같군요 ! ~
상무대가면 새롭게 동으로 만든 장군의 동상이 있지요 ! ~
윤관 장군 동상이 서울역 부근의 서소문공원에서 옮겨져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 좌측
훈련원공원으로 이전설치 되었습니다.
이틀 전(10월8일)에 다녀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