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에 있는 자하문은 창의문이라고도 한다. 창의문 문루에는 계해거의(癸亥擧義) 정사공신(靖社功臣)이라는 제목으로 공신 47명의 명단이 붙어 있다. 1623년 광해군을 쫓아낸 인조반정 공신들 명단이다. ‘썩은 세상 뒤집고 정의를 세우겠다고 나선’ 자들이다. 원래는 53명인데 6명은 이런저런 이유로 이름이 사라지고 없다. 6명의 이름은 김자점, 심기원, 이흥립, 이괄, 김경징과 심기성이다. 왜 사라졌나? 알아본다. 특히 김자점, 일개 유생에서 영의정까지 올랐다가 ‘도끼로 목과 허리가 토막 나 죽은’ 사내 이야기.
영조의 기우제와 창의문
서기 1743년 음력 5월 7일 가뭄이 한창인 그 여름날 영조가 창의문 문루에 올랐다. 인근 평창에 있는 북교단(北郊壇) 기우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침 광해군을 내쫓고 능양군 이종이 왕위를 차지한 인조반정 120주년 되는 해이기도 했다. 영조는 반정 공신 이름을 현판으로 걸라고 명한 뒤 소현세자 묘에 참배를 지시하고 궁궐로 돌아갔다. 창덕궁 돈화문을 들어가 인정문이 보일 무렵 억수같이 비가 내렸다.(1743년 5월 7일 '영조실록')
공작정치가 김자점, 일등공신이 되다
창의문은 1623년 3월 13일 새벽 능양군이 '義(의)' 자를 등에 붙인 반정 군사들을 지휘해 창덕궁으로 쳐들어가며 지나간 문이다. 이보다 3년 전 이들이 광해군 폐위 계획을 세운 곳은 창의문 바깥에 있는 세검정 계곡이었다. 김류, 이귀, 심기원, 신경진, 최명길, 구굉 등 전직 관리와 유생 김자점, 심명세가 그들이다.('계해정사록')
첫댓글 세검정의 모습
세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