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양반마을로 1984년 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되었고, 2010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국 최대 규모의 대표적 조선시대 동성취락으로, 수많은 조선시대의 상류 주택을 포함한 양반가옥과 초가 160호가 집중되어 있다. 또 마을 내에 보물 3점, 중요민속자료 12점, 도지정유형문화재 4점, 도지정민속자료 1점 등이 있다. 월성손씨와 여강이씨 양 가문에 의해 형성된 동성 마을로 손소와 손중돈, 이언적 등 훌륭한 재상과 석학을 많이 배출했다. 현재 월성손씨 40여 가구, 여강이씨 70여 가구가 마을을 계승하고 있다.
양동초등학교
양동마을 문화관
엣모습의 양동마을 (문화관)
관가정(觀稼亭) (보물 제442호)
관가정(觀稼亭) : 마을의 가장 남쪽 끝에 자리한 관가정은 성종과 중종 때의 명신이자 청백리로 유명한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 1463~1529)이 이 마을의 경주손씨 입향조인 양민공 손소공으로부터 분가하여 살던 집이다. 이 가옥은 물봉동산 끝자락 언덕 위, 넓은 안강 뜰과 형산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남북 방향으로 흘러내린 뒷동산 언덕 축을 중심으로 동남향의 평면을 하고 있다
관가정의 고목 향나무 수령을 알수 없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8호)
관가정의 고목 향나무 수령을 알수 없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8호)
손종로 정충비각(孫宗老旌忠碑閣)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1호)
정충각(旌忠閣)
경주양동마을은 : 여강 이씨(驪江 또는 驪州 李氏)인 이광호(李光浩)가 이 마을에 거주하였으며, 그의 손서 (孫壻)가 된 풍덕 류씨(豊德 柳氏) 류복하(柳復河)가 처가에 들어와 살았고, 이어서 양민공(襄敏公) 손소공 이 540여년 전 류복하의 무남독녀와 결혼한 후 청송 안덕에서 처가인 양동으로 이주하여 처가의 재산을 상속받아 이곳에서 살게 되었고, 후에 공신이 되어 고관의 반열에 올랐다 하고... 7남매 가운데 장녀와 결혼하여 영일(迎日)에서 이곳으로 옮겨와서 살고 이들의 맏아들이자 동방5현의 한 분인 문원공 회재 이언적(文元公 晦齋 李彦迪 1491-1553)선생이 배출되면서 손씨, 이씨 두 씨족에 의해 오늘과 같은 양동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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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까이 살면서도 못봤던 풍경들이 있네요
공간님 수고 덕분에 구경 잘했습니다
설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들 되세요~
공간님 아주 좋은구경 감사 합니다
언제 한번 가봐야 할것인디~~그게 마음대로 안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