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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문고 임선동, 신일고 조성민, 경기고 손경수, 공주고 박찬호, 대전고 정민철, 부산고 염종석, 원주고 안병원, 경남상고(현 부경고) 차명주... 야구를 좋아하는 매니아들에게는 한 대 맞을법도 싶은 질문하나 던지겠다. 위에 언급한 선수들의 공통점은? 그렇다. 설마 이런 질문을 하리라고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아마 1회초부터 1사 만루의 상황에서 스퀴즈 번트를 감행하는 상대편에게 뒤통수 맞은 듯한 기분이 드는 것과 같은 느낌일 것이다.
너무도 뻔한 질문의 정답은 바로 1973년 소띠해에 태어난 투수들이다. 1958년 개띠 트리오 최동원, 김시진, 김용남 이후 대한민국 야구 창건 이래 대형투수들이 이토록 풍성하게 즐비했던 적은 없을 정도이다. 이미 고교시절 전국무대에서 '초고교급' 실력을 발휘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은 이들에게 연고권의 각 구단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위에 언급된 선수들 중에서 언론의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던 투수들은 '서울 3인방' 임선동, 조성민, 손경수 였다. LG와 OB의 스카우트 신경전은 치열하게 진행되었는데, 항간에는 계약금이 5억원대까지 뛰었다는 루머가 나돌 정도로 이들의 진로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한지붕 두가족' LG와 OB는 신인 1차지명 우선 선발권을 놓고 항상 주사위 대결을 펼쳤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마다 행운은 LG를 향하였다. 우선 지명권을 확보한 LG는 휘문고의 임선동을 지명 하고 OB는 조성민이 아닌 경기고의 손경수를 지명한다. 왜? 당시 조성민은 고려대 진학의지가 워낙에 확고했던 탓에 임선동에 이어 손경수마저 LG에 빼앗길 것을 우려했던 OB가 차선의 선택으로 손경수를 지명했던 것이다. 그러나 임선동과 손경수의 92년은 LG와 OB가 아닌 연세대와 홍익대 에서 시작되었다. 결과론이지만 당시 LG와 OB 어느 구단으로부터도 우선 지명을 받지 않았던 조성민은 훗날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 절차에 있어서 아무런 걸림돌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었고, LG의 지명을 받은 임선동은 대학 졸업 후 자신의 해외 진출에 결정적인 족쇄로 작용하게 된다.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던 73년생 대어급 투수들 중 프로로 직행한 투수들은 대전고의 정민철 (빙그레 입단), 부산고의 염종석(롯데 입단), 원주고의 안병원(태평양 입단)이었다. 이들이 입단하기 전만해도 고졸 신인 중 입단 첫 해 두자릿수 승수를 기록한 투수는 바로 전해 91시즌 롯데의 김태형(11승)이 유일할 만큼 고졸신인 투수에게 프로의 벽은 베를린 장벽만큼이나 높은 것이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도 마침내 무너진 것처럼 92시즌 프로로 직행한 정민철,염종석,안병원 이 세 명의 '고졸 3인방'은 약속이나 한 듯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는 기염을 토하며 프로야구 무대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킨다. 만약에 임선동, 조성민, 손경수 등이 동시에 입단을 했더라면,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만약 연고권의 빙그레에 입단했다면, 한국 리그는 과연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었을지 문득 궁금해 진다.
워낙에 대어급 고졸 신인들이 즐비했던 탓에 정작 대졸신인들은 상대적으로 외면받은 듯한 느낌이지만 92시즌을 앞두고 동산고-한양대 출신의 국가대표 에이스 출신의 정민태라는 또 하나의 대어급 신인이 데뷔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정민태는 자신보다 경력이나 기량면에서 뒤쳐진다 여겼던 고졸 신인급 선수들에 대한 계약금 예상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에 대해 자존심이 상한 듯 자신의 계약금은 7억원 이상은 되야한다고 항변을 하기도 한다. 결국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고졸 대어급 신인들은 전부 대학으로 진로가 결정되고 정민태는 1억 6천만원의 계약금을 받아 당시 역대 최고 계약금이었던 롯데 박동희의 1억 4천만원을 2년만에 경신하게 된다. 정민태 외에도 대전고-동아대를 졸업하고 당시로선 적지 않은 금액인 7천8백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빙그레에 입단한 지연규 또한 큰 기대를 받았다. 타자 중에는 삼성에 2차지명으로 입단한 신일고-중앙대 출신의 동봉철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
90년 창단 첫 해, 백인천 감독의 '혼(魂)의 야구'를 앞세워 리그를 평정했으나, 이듬해 다시 예전 청룡의 위치로 추락한 트윈스는 새 사령탑으로 서울 라이벌 구단 베어스 감독 출신인 이광환을 2대 감독으로 선임한다. 89년 베어스 감독을 맡으면서 '자율야구' 라는 새로운 모토를 내걸었으나 실패에 그쳤던 이광환 감독을 영입한 것은 다소 의외의 결과로도 볼 수 있었다. 과연 자리를 잡지 못했던 이광환 감독의 야구철학이 트윈스에서 성공할 것인지의 여부도 새로운 관심거리가 되었다.
올림픽 이후 국내 대중문화는 급격한 개방의 바람을 맞게 된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거세게 휘몰아친 홍콩영화의 붐은 장국영, 주윤발, 왕조현, 유덕화 등의 홍콩 톱스타들의 국내 CF 출연 및 콘서트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비단 홍콩 스타 뿐만이 아니었다. 당시로선 최고의 지명도 를 자랑하는 거물스타의 내한공연이 성사된다. 당시 10대팬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미국의 < 뉴키즈 온 더 블록 > 이었다. 그들을 기다렸던 10대 팬들은 공연장으로 몰려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전 준비가 부족했던 공연장 환경은 결국 밀려오는 팬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수라장으로 돌변하게 만들었고, 당시 공연에 갔던 팬들 중 수십여명이 부상을 당하고 한 명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빚어지고 만다. 이 사건은 역설적으로 10대 청소년 팬들을 대중문화에 적극적인 참여와 소비의 계층으로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2년 시즌 개막 후 얼마 지나지 않은 4월 11일 토요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잠실에서는 타이거즈와 베어스의 경기가 벌어졌다. 양팀의 선발투수에는 꽤나 관심이 갈만한 이름들이 올라와 있었다. 타이거즈의 선동열과 베어스의 박철순이었다. 당대 최고의 에이스와 프로 원년 최고의 에이스의 맞대결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경기였다. 결과는 타이거즈의 5:0 승리. 선동열은 원년 최고의 에이스와의 자존심 대결에 밀리지 않으려는 듯 혼신의 역투를 펼치며 자신의 통산 29번째 완봉승을 거둔다. 시즌 성적 2승 8세이브 평균자책점 0.28의 경이로운 기록행진을 펼치고 있던 그는 공교롭게도 프로입단 후 처음 부상으로 시즌 나머지 일정을 전부 거르게 된다. 그리고 그 경기는 그의 마지막 완봉승 경기였다.
같은 날 저녁, 문화방송에서는 봄 개편을 맞아 새롭게 선보인 < 특종! TV 연예 > 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임백천을 메인 MC로 하여 김찬우,이영자 등이 패널로 등장한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연예정보 전달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콩트나 토크쇼 등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프로 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에 있던 코너 중의 하나는 신인가수들이 자신의 노래를 부른 후 작곡가 하광훈, 작사가 양인자, 가수 전영록, 방송인 이상벽 등이 심사평을 밝히는 코너가 있었는데, 첫 게스트로 등장한 가수는 < 서태지와 아이들 > 이었다. 그들의 노래가 끝난 후 심사평은 한결같이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시도였다는 의견이었다. 그리고 방송인 이상벽은 심사멘트에서 " 뉴키즈 온더 블럭을 대체할 만한 10대들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 고 밝혔는데 마치 미래를 예견이나 한 것처럼 < 서태지와 아이들 > 은 대중문화에 새로운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당시에 접할 수 없었던 강렬한 비트와 댄스 그리고 랩은 10대들에게 급속도로 전파되며 당시 중,고등학교 교실에서는 쉬는 시간마다 그들의 회오리 춤을 연습하는 학생들로 넘쳐났고 < 서태지와 아이들 > 의 패션은 이후 오랜기간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게 된다.
대중 문화에는 < 서태지와 아이들 > 이 있었다면 프로야구 판에는 < 염태지와 아이들 > 의 돌풍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염종석, 정민철, 안병원 이 세명의 10대 트리오는 이전까지 고졸 신인 투수들이 입단 첫해부터 발붙이기 힘들었던 프로 마운드의 굳건한 장벽을 허물어 뜨렸다. 선동열이 잠시 개점휴업한 사이 잠잠하던 마운드에 < 염태지와 아이들 > 이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그들이 거둔 입단 첫 해 성적은(염종석 17승 9패 6S 평균자책점 2.33 / 정민철 14승 4패 7S 평균자책점 2.48 / 안병원 10승 8패 2S 평균자책점 4.26)은 프로 5년차 이상된 에이스급 투수 들 못지 않은 대단한 활약이었다. 홈런 41개 대기록을 수립한 장종훈이라는 대형타자를 필두로 '타고투저'가 득세했던 상황에서 이루어진 기록이라 더욱 가치가 빛난다.
각 팀의 순위경쟁으로 치열했던 그 해 여름, 극장가는 세 편의 성인영화가 뜨겁게 극장가를 달군다. < 로보캅 > , < 토탈리콜 > 등을 통해 이미 자극적인 영상의 달인으로 칭송받던 폴 버호벤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마이클 더글러스와 샤론 스톤이 주연을 맡은 < 원초적 본능 > 은 허리우드, 연흥, 동아 극장 등에서 개봉되어 평일에도 좌석을 꽉꽉 메우면서 성인관객들의 절대 지지를 받는다. 서울에서만 무려 970,180명의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갔는데, 이 숫자 안에는 당시 파격적인 영상의 소문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서 액면상 미성년자의 한계를 극복하고 극장에 발을 들인 청소년 관객들의 비공식적인 수치도 포함되어 있다.
국내 가요 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에도 일대 전환점이 된 작품이 많은 관객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는다. 이른바 한국 영화 최초의 기획영화라고 일컬어지는 김의석 감독, 최민수, 심혜진 주연의 < 결혼 이야기 > 이다. 제작사에서는 제작 초기 단계에서 젊은 신혼부부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 하여 그 결과를 토대로 스토리를 구성하고 좀 더 많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선보인다. 피카디리 극장에서 개봉한 < 결혼 이야기 > (역시 미성년자 관람불가 였음)는 서울관객 기준 52만명을 동원하며 외화의 득세 속에서도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꿋꿋하게 지켜낸다.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여배우 제인마치와 홍콩 미남배우 양가위가 함께 공연한 < 연인 > 도 관중몰이에 성공한 작품이었다.
장종훈의 연일 쏟아지는 홈런포, 10대 투수들의 돌풍, 그리고 롯데의 선전으로 2년 연속 100만 관중돌파에 성공한 사직구장 등, 갖가지 호재가 맞물리며 92 프로야구는 총관중 3,912,092명을 동원하며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수립한다. 자이언츠는 홈 관중 1,209,632명을 동원하여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수립하는데 당해 총관중의 무려 31%에 달하는 수치이다. 525여만명의 총관중의 26%(137만여명)을 동원한 올 시즌과 자뭇 흡사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봄, 여름 내내 뜨겁게 달구어진 사직구장은 가을에는 거의 용광로 수준으로 다다른다. 역대 포스트 시즌 중 가장 극적으로 미쳐버린 자이언츠의 맹활약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71승 55패의 성적으로 페넌트 레이스 3위에 올랐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1위 이글스, 2위 타이거즈, 4위 라이온즈 등 이른바 상위팀을 상대로는 고작 19승(이글스 5승, 타이거즈 7승, 라이온즈 7승) 밖에 거두지 못하고 대신 베어스, 트윈스, 돌핀스, 레이더스 등 하위팀을 상대로 무려 52승이나 거두는 왕성한 식욕을 과시하는 편식증이 극에 달하였다. 그래서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과연 자이언츠가 전통의 강호 이글스, 타이거즈, 라이온즈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을 것인지도 확실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준플레이오프 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인다. 막강 화력의 라이온즈를 상대로 염종석, 박동희 단 2명의 투수로 셧아웃을 시킨 것이다. 염종석과 박동희는 나란히 완봉승을 거두는 괴력을 발휘하며 라이온즈에게 씻을 수 없는 굴욕을 안긴다. 결국 라이온즈는 92시즌 직후 대대적인 세대교체에 들어가게 된다.
제과업계에서는 뜨거운 라이벌이었지만 정작 야구에서만큼은 '무늬만 라이벌' 이고 전력의 우위가 두드러진 타이거즈와 플레이오프에서 맞닥뜨린 자이언츠. 타이거즈는 비록 선동열이 임시휴업에 들어갔지만 이강철(18승), 김정수(14승), 신동수(13승), 조계현(10승), 문희수(10승) 등 다른 팀에 가면 1선발을 꿰찰 수 있는 쟁쟁한 투수들이 즐비한 마운드와 홍현우, 이순철, 이호성, 박철우, 한대화, 김성한, 이건열, 장채근 등이 버티고 있는 타선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던 당대 최강의 팀이었다.
그러나 자이언츠에는 염종석이 있었다. 선동열 이후 가장 위력적인 슬라이더를 장착한 그는 타이거즈와의 플레이오프 5경기에서 2승 1세이브를 거두며 팀의 승리를 전적으로 책임진다. 잠실에서 벌어진 5차전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믿을 수 없는 다이빙 캐치로 연거푸 타이거즈 공격진의 기를 꺾어 놓은 공필성의 호수비는 당시 자이언츠의 'AMAZING 포스트 시즌' 포스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라이온즈, 타이거즈를 차례로 무너뜨린 자이언츠의 마지막 상대는 사상 최초로 시즌 80승 고지를 넘어선 신흥 강호 빙그레 이글스. 도저히 범접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40홈런 고지를 넘어선 장종훈(그가 세운 119타점은 타고투저가 기형적인 수준으로 도달했던 99시즌에서야 이승엽에 의해 경신될 수 있었다.), 압도적인 격차로 타격왕에 오르며 4번타자 같은 1번타자의 포스를 과시한 이정훈, 언제든지 한방을 터뜨릴 수 있었던 이강돈, 강정길, 강석천 등은 공포의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주축이었다. 투수진에서는 다승왕과 구원왕을 한꺼번에 거머쥔 송진우(19승)를 필두로 염종석과 더불어 10대 돌풍을 일으킨 정민철(14승), '소리없이 강한' 장정순(14승), '터줏대감 고무팔' 이상군(10승), '이닝이터' 한용덕(9승) 등이 두터운 마운드를 구성하고 있었다.
타이거즈와 5차전 까지 가는 접전을 치르고 온 자이언츠 보다는 압도적인 전력으로 느긋하게 시리즈를 준비한 이글스의 우세가 점쳐졌다. 하지만 야구는 징크스가 반복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8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라이온즈와 자이언츠의 당시 사령탑은 각각 김영덕 감독과 강병철 감독이었다. 그 후의 스토리는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기에 요점만 이야기한다면 최동원의 전설적인 활약에 결국 파트너를 고른 라이온즈가 또 다시 고배를 마신 것이다.
8년 후....김영덕 감독의 유니폼은 푸른 색에서 오렌지 색으로 바뀌었을 뿐 상대는 하늘색 유니폼의 자이언츠와 강병철 감독 그대로였다. 김영덕 감독은 최동원, 선동열이라는 당대 최고의 거물투수들 의 벽에 가로막혀 원년 이후 정상 문턱에서 번번히 물러나야만 했다. 그러나 선동열마저 없는 상황에서 우승의 한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 상황에서 또 다시 老감독의 꿈을 무너뜨린 투수는 최동원-선동열에 이은 또 하나의 '동'자 돌림 거물투수 박동희였다.
플레이오프에선 염종석이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면 한국시리즈는 박동희를 위한 무대였다. 정규시즌 7승에 그치며 실망스런 시즌을 보낸 그는 포스트 시즌을 위해 담금질을 한 것처럼 가을이 되자 그 동안 자이언츠와 부산 야구팬들이 그에게 바라던 이상적인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부산고 시절의 그 화려했던 포스가 부활한 것처럼 신들린 투구를 펼친 그는 자이언츠를 정상에 올려 놓으며 한국시리즈 MVP의 영광을 차지하게 된다. 이제 본격적인 박동희 시대가 도래한 것이 아니냐는 기대로 품을 만하게 했지만 안타깝게도 필름은 거기서 멈춘다. 그 후로는 그가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는 모습도, 상대를 제압하며 역투하는 그의 모습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8년만에 리그 패권을 차지하며 사직구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자이언츠. 그 후 두 번의 한국시리즈(95년,99년)에 올랐지만 아쉽게 정상문턱에서 고배를 들어야 했고, 2000년대 접어 들어서는 가을에 야구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부산의 야구팬들은 8년 동안이나 기다려야만 했다. 결국 외인감독 로이스터의 지휘 하에 달라진 모습으로 마침내 가을야구 무대에 선을 보인 자이언츠. 혹자들은 2008 포스트 시즌의 자이언츠에서 92시즌의 '크레이지 모드'를 기대하기도 했고 일부 언론에서는 당시 우승의 주역들의 인터뷰를 실으며 바람몰이에 나섰다.
그러나 바람은 더 이상 불지 않았다. 치밀한 전력분석과 12년 연속 포스트 시즌 경험이라는 큰 자산을 보유한 라이온즈에게 3연패로 물러난 것이다. 포스트 시즌이라는 단기전에서 바람의 존재는 더 이상 약발이 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현장에서 수시로 전력분석을 통해 마치 농구처럼 상황에 맞는 포메이션을 선보이는 새로운 형태의 진화된 야구를 선보인 SK 와이번스가 2년 연속 패권을 거머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국내 야구의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물론 예상치 않은 바람을 몰고오며 이변을 일으키는 극적인 재미에 팬들은 더욱 열광할 것이다.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다.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는 실력과 기(技 & 氣)를 키워야만 가능한 것이다. 앞으로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요행이란 없는 것이다. 아직도 십수년째 '바람'을 모토로 숱한 시행착오를 일으키는 구단이 있다. '바람' 보다는 오히려 창단 초기의 '혼(魂)'을 불어 넣는 데 주력하면 어떨까 하는 바램도 든다.
사진첩 속의 빛바랜 추억이지만 대중문화와 야구에서 새로운 혁명의 기틀을 다진 92년에 대한 회상은 여기서 마치고자 한다.
첫댓글 완전 불펌에 중간에 사진 두장은 지워버리고.. 제목에도 쩜쩜쩜(...) 으로 손댔습니다.. 그냥 기사에 종석형이 몇번이나 나오는지 .. 92년을 되새기며 심심한 찰나 읽어보세요~
활자판 다 모아놓은 것 같은 이 글...스위티 멋져~-_-ㅋ 근데 이 글 혼자 놀기의 진수에 낄 수 있겠다...캡슐 속 약 과립 수 세기~등등의...ㅋ 정말 심심할 때 볼게~ ^^ ㅎㅎㅎ '슬염표 혼자 놀기' ㅋ
어맛! 언니~~ ㅋㅋㅋ
카페온이 활성화 되지 않네요.. 안녕히 주무세요~~ 정신 번쩍 들게하는 실시간 답글..
이름을 포함한
명과 팀명까지 몇번 나올까요

정
하게 다 짚어내신 분께 11월 12일 18시 이후로 스위티와 데이트 하실 수 있는 번호표를... ^^;; 늦은밤 얼른 자고 일어나야 정신차리겠죠

경품이...흠...ㅋ 오늘도 열심히 공부한 스위리~코~자렴...^^ㅋ
집중력이 약한 관계로 아쉽지만... 경품받기는 힘들듯..^^
오오 다들 경품을 회피하는 분위기? 내가 한번 찾아볼까? ㅡㅡㅋㅋㅋㅋ
악~~~~~~~~~ 눈아프다..ㅋㅋ
스위티....우등상 타겠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