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 나선 산책
제주도 바깥에 머물던 장마전선이 활성화되어 북상하면서 강수가 예보된 칠월 셋째 월요일이다. 한 달 한 차례 다녀오는 문학 동인들과 트레킹을 계획한 날인데 우천으로 일정을 진행할 수 없어 후일로 미루었다. 날이 밝아오는 새벽부터 흐린 하늘에 성근 빗방울이 듣기 시작하더니 빗줄기는 점차 굵어져 갔다. 이번 장마철에 우리 지역엔 비가 귀했는데 비다운 비가 내리려나 싶다.
아침밥을 일찍 해결한 후 비가 오는 속에도 우산을 받쳐 쓰고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퇴촌삼거리로 나가니 비가 오는 관계로 운동 기구에 매달려 몸을 단련하는 이들은 볼 수 없었다. 아직 학생의 등교나 회사원들의 출근 시간대가 아니라 거리에 다니는 차량은 적어 한산했다. 반송공원 북사면 수변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빗줄기가 세차 그런지 산책객은 아무도 없었다.
지난해 여름 이후 우리 지역은 강수량이 적어 창원천은 불어난 냇물이 흘러볼 겨를이 없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개울물이 넉넉히 흘러 천변에 가로지른 징검다리가 잠기기 시작했다. 산책로 길섶 싱그러운 풀잎에는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혀 일시적이나마 자연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을 혼자 만끽할 수 있었다. 비가 세차게 와서 그런지 먹이활동을 하는 왜가리나 백로들도 볼 수 없었다.
반지동 아파트단지를 앞두고 빗줄기는 더욱 세차져 산책하기 무리라 주차장 곁의 정자로 올라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는데 맞은편 정병산에는 짙은 운무가 걸쳐졌다. 그새 폰 카메라에 담아둔 우중 풍경을 몇몇 지기들에게 전송하면서 안부를 나누었다. 이웃한 아파트단지 주민들은 출근 시각이 다가오자 우산을 받쳐 쓰고 차량 곁으로 다가가 시동을 걸어 각자 일터로 향하기 시작했다.
정자에서 한동안 머물며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빗줄기가 약해져 산책로로 내려가 천변을 따라 걸었다. 아침부터 굵은 빗줄기가 세차게 내렸던지라 누적 강수량이 상당해 상류로부터 흘러온 물이 불어나 넉넉히 흘렀다. 냇바닥에 자라는 노랑꽃창포와 고마리를 비롯한 습지 식물들은 불어난 냇물에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휩쓸려 일제히 냇바닥에 물길 방향으로 납죽 엎드렸다.
명곡 교차로를 앞둔 산책로에는 코스모스가 일찍 꽃을 피웠으나 폭염과 물 부족으로 고사 직전이었다가 이번 비에 생기를 띠었다. 길섶에는 조경용으로 심어둔 원추리가 제철을 맞아 주황색 꽃잎을 펼쳤다. 저절로 자란 개망초는 점점이 하얀 꽃을 피워 메밀밭을 보는 듯했다. 천변을 따라 파티마병원과 홈플러스 맞은편까지 내려가니 길섶엔 무슨 꽃을 심으려는지 터를 골라 놓았다.
약해진 빗줄기는 그치지 않고 차분하게 내렸다. 창원대로와 겹친 용원지하차도에 이르러 발길을 되돌려 창원천을 거슬러 올라갔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산책을 나선 이들이 더러 보였을 텐데 아주 드물게 지나갔다. 명곡 교차로를 지난 유목교에 이르러 다리를 건너 창이대로 보도를 따라 걸었다. 아까 보이지 않던 백로와 왜가리가 나타나 긴 목을 빼고 먹잇감을 겨냥하는 듯했다.
지귀상가를 찾아가니 오일장이 서는 날이 아니라 장터는 한산했다. 서민 취향의 냄새가 물씬한 장터 골목이었다. 비가 오면 가끔 들린 주점은 아침나절이라선지 문이 닫혔는데 그 곁에 문이 열린 가게로 들었더니 다리가 불편한 아주머니가 맞아주었다. 나를 이어 단골인 듯한 한 사내가 뒤따라 들어왔다. 나는 탁자에 앉아 맑은 술을 시켜 놓고 고등어를 한 마리 구워주십사 했다.
우중 장터에서 혼자 맑은 술을 잔에 채워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천변으로 나갔더니 장맛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렸다. 냇물이 너울너울 흘러가는 창원천 천변 산책로를 따라 창원의 집 근처를 지난 퇴촌교에 이르니 중대백로와 쇠백로가 다리 밑에서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메타스퀘이어가 높이 자란 가로수 길을 걸어 아파트단지로 들어서니 반나절 산책을 마쳤다. 22.07.18
첫댓글 창원천 천변 경치가 베리 굿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