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의 통일
독일 통일은 동독 주민들의 민주적인 선택에 의해 서독이 동독을 평화적으로 흡수 통합한 사례이다. 국제적으로는 고르바초프의 ‘개방’과 ‘개혁’으로 유럽에서 동서 냉전 체제가 와해되고, 동유럽 국가들의 개혁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1) 통일과정
독일 통일은 우선적으로 동독 내부의 변화에서 비롯되었다. 동독의 개혁을 요구하는 동독 주민들의 시위가 확산되었으며, 1989년 11월 9일에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다. 동독의 변화는 그동안 서독정부가 꾸준히 추진해 온 동방정책의 효과였다. 특히 동독인들의 서독으로의 대량 탈출은 내부적인 개혁요구, 대규모 시위와 공산당 독재에 대한 강력한 도전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태 발전에는 서독의 방송매체가 큰 영향을 미쳤고 서독으로 넘어오는 모든 동독인들에게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인정하는 서독 기본법의 11조 ‘독일인 자격조항’도 탈동독의 배경이 되었다.
동독에 새로운 정치세력이 들어서고 1990년 3월 동독에서 역사적인 자유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선출된 드메지어(Lothar de Maiziere) 수상을 수반으로 하는 연립정부는 서독의 콜 정부와 신속하고도 집중적인 협상을 전개하여 1990년 10월 3일 통일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동독과 서독은 공식적으로 통일을 이룩하였다.
2) 경제적 통일
독일의 경제적 통일은 1990년 7월 1일 통화통일을 이룸으로써 국가적 통일보다 몇 개월 앞서 이루어졌다. 동독의 사회주의 경제구조는 서독의 모델이 의해 변화되었다. 국영기업들이 1990년 여름 설치된 신탁관리청(Treuhand-Anstalt)을 통해서 급속히 민영화되었다. 신탁관리청이 위임받은 과제는 대규모 기업연합체인 콤비나트와 소위 국민소유기업, 대중조직들의 토지나 특별재산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민영화의 목적은 동독지역의 경쟁력 제고와 일자리 확보, 사유재산에 기초한 효율적인 경제구조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1994년 여름까지 1만 4천개 이상의 기업이 민영화되었는데, 이는 동독이 가지고 있던 총기업의 95%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동독경제의 개선은 점차적으로 개선되었다. 1992 - 3년부터 서서히 회복기에 들어선 동독경제는 이후 실질 국내 총생산이 7 - 9%사이에서 증가하였다.
3) 사회적 갈등
독일의 통일은 체제의 차이와 경제력 격차안고 이루어진 것으로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가져왔다. 서독은 초기의 양독의 경제사회적 격차를 재정을 통해 완화하고자 했다. 연방정부가 동독지역에 투자한 금액은 1991년에 888억 마르크, 1992년에 1천 166억 마르크, 1993년에 1천 265억 마르크이었다. 독일 노동청이 1992년에 조기퇴직자 수당, 고용창출, 직접전환 교육, 실업자 수당 등으로 지출한 사회복지비 중 동독지역에 지출한 금액은 전체의 절반가량이나 되었다. 그렇지만 동독인들의 상대적 박탈감이나 통일 휴유증은 간단하지 않았다. 통일 이후 실시된 1990년 첫 총선결과 집권 기민 - 자민 연정이 승리하기는 하였지만, 구동독 공산당의 후속정당인 민주사회당(민사당)이 구 동독지역에서 약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식조사 결과도 동서독 주민간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과 서로에 대한 편견이 크게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4) 독일통일의 교훈
동서독의 통일은 분단이후 서독 정부가 꾸준히 추진해온 평화공존 정책의 결과였다. 공존을 기초로 지속적인 접촉 정책이 평화적인 통일을 가져온 것이다. 독일인들은 초기부터 통일을 거론하지 않으면서 기능주의적 접근을 통해 실리를 추구하였다. 동서독 통일의 원동력은 인적·물적 교류는 물론 서로 상대방 TV까지 자유롭게 시청할 수 있을 정도로 동서독인들이 공동 문화권, 공동 생활권을 향유하면서 서로를 잘 알고 있었던 데서 비롯되고 있다. 이것이 독일인들로 하여금 동서독 관계의 변화를 큰 충격없이 받아들인 힘이 되었고, 더 나아가 통일의 구상과 실천의 바탕이 되었다. 그렇지만 동서독 통일은 통일의 휴유증을 극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가르쳐 주고 있다. 독일은 우선 실현 가능한 교류부터 시작하여 결국 베를린 장벽을 허물어뜨렸고, 주변 국제적 환경을 독일 통일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여 독일통일을 달성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