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대사
추석 명절을 앞두고 공양주 보살이 집에 다니러 가셨다.
매번 끼니때마다 식사를 준비해 주던 공양주 보살의 빈자리는 어제 저녁부터 현실이 되었다.
당장 밥을 손수 해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거리를 준비한다는 게 때로는 성가신 일이다.
주섬주섬 찌개 재료를 만지다가 새삼 공양주의 공덕을 생각하게 되었다.
혼자 먹기 위해 차리는 음식도 이렇게 손길이 많이 가는데 여럿이 먹을 절밥 차리는 일은 오죽 힘들겠나 싶다.
출가해서 외딴 곳에서 홀로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때 내 솜씨로 밥을 지어먹는 일이 가장 번거로웠다. 더군다나 음식을 척척 잘하는 손맛도 아니라서 밥상의 반찬은 늘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혼자 마주 대하는 밥상은 늘 건조하고 쓸쓸하다. 누군가와 나누어 먹는 음식이 따스하고 정겹다는 것도 그 시절에 경험했다.
이런 일을 겪고 난 뒤에는 누가 차려 주는 밥상이 그리 고마울 수가 없다.
이런 까닭에 진수성찬이 아닐지라도 어느 곳에서든 매번 맛있게 먹는 편이다. 밥상 차려 주는 정성과 고마움을 알기 때문이다.
조석으로 다른 반찬을 밥상에 올려야 하는 주부들의 심정과 애환을 남편이나 자식들은 잘 모르 것이다.
엄마와 아내를 무슨 음식이든 뚝딱 만들어 내는 기계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주부들에게는 끼니마다 식단 짜는 일이 꽤 머리 무거울 것이다. 몸이 천근만근 힘들 때는 주방 가는 일이 따분하고 귀찮다고 들었다. 하지만 때를 거르지 않고 식탁을 차리는 주부들의 노고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혼자 지내면서 식사를 준비해 보면 이 일이 그날의 중요한 일과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밥 짓고 상 차리는 일만 빼면 반나절의 여유가 생길 것 같다. 아침 주고 돌아서면 점심때가 된다는 말이 맞다. 설거지 하고 좀 여유롭다 싶으면 금세 밥 때다.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집에서 해결하는 일은 그래서 쉽지 않다. 오죽했으면 하루 세끼 집에서 먹는 삼식이 남편이 밉다는 우스개가 나왔겠나.
여자의 일생은 부엌에서 시작해서 부엌에서 끝난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여성들은 손에 물마를 날이 없는 삶이다.
빨래나 청소 등 집안일도 끝이 없다. 청소라는 것이 그렇더라. 청소를 해놓으면 표시가 나지 않지만, 하지 않으면 또 금방 표시가 난다. 그러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집안일이다.
이런 일을 두고 ‘그림자 노동’이라 부른단다.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가려진 곳에서 하는 일이 그림자 노동이다. 주부들의 집안일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그림자 노동에는 보수나 연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어떤 보상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보수다.
주부들의 가사 노동력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경제성장률 지표에는 상당 부분 영향을 줄 것이다.
주부들의 그림자 노동은 경제 지표에서 빠진다고 한다. 그러나 주부가 하는 일을 도우미에게 지킨다면 그만큼의 소비가 발생할 것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집안일은 결코 경제적 활동과 무관하지 않다.
살림하는 전업주부들이 남편이나 자식에게 가장 서운해질 때는 “집에서 하는 일이 뭐 있어?”라는 말을 들을 때라고 한다.
혼자서 주부의 도움이나 손길 없이 일주일만 지내보라. 집에서 뭐하느냐는 소리가 쏙 들어가고 말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들은 그림자 노동의 공덕을 모르는 사람들.
처음 출가해서 제일 힘든 게 밥하는 일과 빨래하는 거였다. 이런 일들을 자신이 직접 해결해야 하는 입장이 되면 사정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식사와 빨래를 해결해 준다는 것은 대단히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쓰며 있고
한 알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 있다.
공양 게송의 일부분이다. 이 세상에 노고와 은혜 없는 것은 없다.
밥상이 차려지기까지의 공덕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이 속에 있다.
이 세상에 음식 만드는 일이 가장 큰 일이다. 옷은 안 입어도 살 수 있지만 밥을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식사대사다.
출처 ; 현진 스님 / 산 아래 작은 암자에는 작은 스님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