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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청춘남여 사랑방 스크랩 ♣정담♣ 열두 달의 친구이고 싶다..
miyoung 추천 0 조회 65 06.01.19 23:48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 화반채석
  •  
    화반채석은 중국 대륙해안에 유일한 해식기둥,해식무늬,해식돌로 돌연 바다위로 떠올랐고 모양이 기괴하고 오색분분하며 길이가 약 35m,폭이 20m,높이가 9m이고 해안에 분포한 이암석의 총길이는 50m이다. 이는 해안풍경,해수욕장등 자연풍경과 유기적으로 잘 조화되어 있다.
    화반채석은 주로 적,황,백 세가지 색깔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은 모양 하나도 마치 그림같고, 수를 놓은 것 같고, 여러가지 백태문양들이 구름같고, 날고 있는 것 같아 아름답다.
  • 성산두
  •  
    성산두는 중국 바닷가의 극동으로 제일먼저 해상일출을 보는 곳으로 예로부터 '태양이 떠오르는곳'으로 불리웠다. 고대부터 성산두는 태양신이 거주하는 곳이라하여 중국역대 황제들은 여러차례 이곳을 시찰했다. 제일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도 2번이나 이곳에와 태양신에게 제를지내고 장생불로초를 구하려 하였다. 또한 성산두는 예로부터 군사요충지로서 백제를 치기 위하여 소정방이 13만의 수군를 거느리고 출발한 항구이기도 하다. 전임 중국 총서기인 호요방은 이곳에 '천진두'란 휘호를 남겼는데 이는'하늘이 끝나는곳' '육지의 끝'이라는 뜻이다.
  • 성수관
  •   성수관은 역대로 내려오면서 풍수지리로 이름난 곳으로 성수관내의 성스러운 냇가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성수관은 도교 전진파의 발상지중의 하나이다. 은행나무가 만발하여 이름지워진 은행촌, 만병통치약인 성수가 있고, 여러곳의 누각, 단, 궁전 등 모두가 유적이며 장관이다. 거대한 암석조각은 길이가 260m이며, 지도자 및 유명화가들의 비석들도 140여폭이 있다. 또한 이곳의 경치는 아름답고 천연경관이 30여곳이나 된다.
  • 해뤼도 (낚시)
  •   해뤼도는 용안항과 거리가 2마일(배로는 20분정도의 거리)떨어져 있는 작은 섬으로, 총면적은 0.07㎢이며 갈매기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 섬에는 1960년 주둔군부대가 만든 방공터널이 있다. 또한 섬 뒤편에는 바닷가 바위위에 낚시터를 잘 갖추고 있으며, 섬 꼭대기에는 18개의 방갈로시설이 있다. 낚시로는 감성돔,광어,우럭,바다장어,황어,석반어,조기등을 잡을 수 있고, 계절별 또는 사용미끼에 따라 크기는 다르지만 큰 것은 30∼40㎝정도의 고기를 잡을 수 있다.
     
     

      석도
     
  • 적산법화원
  •   적산법화원은 산동성 영성시 석도진 적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당조시기, 신라인 장보고가 지은 것으로 당시 산동에서 규모가 제일 큰 불교사원이었다. 먼 옛날에 적산은 온통 붉은 것으로 뒤덮혀 있었는데 여기에 사는 적산신이 오가는 선박들의 안전을 가져다준다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불공을 드렸다.
    신라인 장보고는 흥덕왕 3년에 청해진을 창설하고 대사를 봉해 받음으로써 한.중.일 삼국의 해상무역을 독점하고 '해상실크로드'를 개척하여 해상무역왕으로 불리웠다. 그는 무역이 번영하기를 기원하면서 적산에 불교사찰을 지어 많은 스님들을 모셔와 <법화경>을 읽어 <적산법화원>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런데 적산법화원에서 열린 법회는 모두 신라 언어와 신라 방식 그리고 신라 승려들에 의하여 진행되었고, 참석한 대중 역시 모두 신라 교민들이었다. 당시 산동반도 연해안 곳곳에는 신라인들이 촌락을 형성하여 살아가고 있었다.
    이처럼 법화원은 재당 신라인들에게 있어서 교화를 담당하는 장소이며 만남의 장이었고, 교민사회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중심체였으며 신라 교민들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열린 장소였다.

  • 기석관
  •   법화원의 맞은편에는 기석관이 있는데 그곳에는 각종의 신비한 기암기석들을 수장하고 있다 .
  • 장보고 기념탑
  •   적산법화원의 북쪽에 있는데, 한 민족의 선각자 장보고대사를 기념 하기 위하여 세운것으로 1994년 7월 24일 준공되었으며 탑높이는 15m, 넓이는 16㎡이다.
    탑의 의미는 한,중 양국의 친선이 영원함을 상징으로 나타낸다.

      위해
     
  • 환취루
  •  

    환취루는 위해시 중심에 위치한 환취로 공원 내에 있는 누각으로 명대에 건설되었다.
    1944년 일제 침략으로 불태워졌다가 1978년 재건 되었고, 환취루는 총3개층이고 높이는16.8m이다. 이 환취루에서는 위해시내 전경을 바라볼 수 있고, 유공도를 바라볼 수 있다.

  • 유공도
  •   위해시내에서는 동쪽으로 2.1해리에 있는 곳으로 유공도는 말 그대로 유씨네 살던 곳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동한 말년에 유씨 황족중 일부 사람들이 당시 가혹한 핍박에 의해 이 섬으로 피난 왔었다 한다. 그후 유씨들은 늘 위험에 처한 선민들을 이 섬에서 도왔기에 선민과 섬에서 살던 사람들이 유씨들을 기념하기 위해 유공사를 지어 유공을 모셨으며 이 섬을 유공도라 부르게 되었다. 또한 유공도는 북경,상해의 문호를 지키기위해서 해안 방위상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이곳은 해군 조청부 북양수사가 태어난 곳으로 중 일 갑오전쟁의 전쟁터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갑오전쟁기념관,북양수사충정비,중화병기관, 북양해군제독서 등이있다.

      연태
     
  • 봉래각
  •  
    봉래라는 이름은 옛날 신선들이 살았다는 전설속의 바다 가운데 있는 산 이름인데 이곳을 봉래라 명하였는데 그 이름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후에는 등주로 불리웠다. 봉래에는 송나라때 이룬 봉래각이 있는데 그 안에는 누각,불상,사원등이 많이 조성되어 있다 성벽으로 따라 동쪽으로는 수성이있다.
  • 등주수성
  •   등주항에 자리잡은 등주수성은 옛부터 지리적위치 때문에 해군의 요새지였다. 수성은 성벽,적대,성문,병영,지휘소,등대등이 있다. 이 수성은 완벽한 해안군사 방어체제를 구축하고있어 평상시에는 수군을 주둔시키고 전시에는 언제나 출동할수있었다. 명나라때 유명한 장군 척계광이 있는데 그는 바로 등주사람으로 왜구를 물리치는데 혁혁한 전공을 세운 사람이다. 근대에 이르러 등주항은 모래와 흙이 많이 쌓여 수심이 얕아져 지금은 관광지로 변하고 말았다.
  • 고선박물관
  •   등주고선박물관은 1990년에 완공되었으며 석선조작품으로 통나무배, 용선, 차륜선,모래선 등 4가지 선박들을 화강석으로 조각해 놓았고 또한 등주항만의 진흙탕 속에서 건진 고대 원조때의 해군선박을 5:1 비례로 원형복원하여 전시하였다. 그 외에도 고선모형, 포석기, 명조대포 등이 진열되어있다.

      청도
     
  • 노산
  •   산둥반도 동남부의 황해연언에 위치하여 있는데 '노'씨의 성이 근원이 되는 명산이다. 노산은 바다와 산이 이어지는 형세로 다른 산과는 달리 그 자연 풍경이 4가지 특징으로 개괄되는데
    기이한 산봉우리와 암석,산과 바다 정취의 결합,노산 샘물,피서 명승지가 바로 그것이다. 유명한 노산광천수와 청도 맥주는 바로 노산 샘물로 만든 것이다. 노산은 이런 자연 풍경으로 예로부터 '신선의 고향', '동천복지' 등의 미명으로 많은 제왕들과 문인, 스님들의 동경을 자아냈다.
  • 노산북구수
  •  
    노산은 도교의 발상지이다. "구수"란 아홉 개 물을 가리킨다. 북구수는 내구수 외구수로 나뉘는데외구수는 차타고 지나며 도중에 제3수인 저수지를 보게된다. 내구수는 여행객들이 걸어가면서 보는 경치인데 "천연화랑"이란 미칭을 가지고 있다. 내구수는 산좋고 물 또한 맑아 "소금강"이라고도 불리운다. 내구수 제9수에 이르면 조음폭포이다.
  • 태청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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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청궁은 노산 남쪽 기슭을 등지고 황해를 바라보고 있어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곳에 위치하였으며, 이는 서한(기원전 140년)때 부터 건축하였는데 중국 도교의 삼청신상을 모시고 있어 태청궁이라고 하였다. 태청궁 앞에 있는 신수천은 물맛이 좋고 가물거나 장마때도 그대로인데 이는 노산의 제1의 명샘물이다.
  • 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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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교는 청도의 상징이다. 청도시민들이 제일 자랑스럽게 여기는 곳으로 청도에 오면 흔히 제일먼저 가보는 곳이 잔교이다. 잔교의 역사는 100여년이 넘었는데 이는 1891년에 처음으로 건설된 부두이다. 1897년 독일 청도 점령시에는 잔교가 군용부두로 사용되었으나
    1931년 청도대항부두가 건설된 후로 잔교는 부두로 사용되었던 역사를 거두고, 현재는 잔교가 길이 440m 넓이 10m로 복원되어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 독일총독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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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는 영빈관이라 하는데 독일이 청도 점령시 독일총독이 살던 집으로서 건축면적은 4000평방미터. 안의 기물들은 대부분이 독일에서 직접 실어온 것임. 1905년에 건축시작하여 1908년에 완공 되었음.
  • 팔대관
  •   유명한 요양지, 여덜개 길이 있고 매개 길 마다 한 개 수종이 있고, 길마다 중국의 유명한 관역으로 명명되어 있다. 현재는 모두 열 개 길이 있는데 습관상으로 그냥 팔대관이라 함. 팔대관엔 모두 200여개 건축이 있는데 24개 나라의 예술 풍격을 가지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제2해수욕장 부근에 있는 "화석루"이다.
  • 소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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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어산은 어부들이 고기를 잡아 널어 놓았던 산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높이가 60m로 산은 높지 않지만 이곳에 오르면 청도시 전경을 한눈에 볼수 있는 전망대중의 하나이다. 이곳에서 청도시의 옛모습과 새모습을 대조해 볼 수 있다. 1897년 독일 청도 점령시에는 이곳에 포대를 설치하였던 곳이나 소어산에는 '람조각'과 '옹취각'이란 두개의 누각이 있다.
  • 해군박물관
  •   청도만에 자리잡은 해군박물관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중국 해군 발전역사를 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 또한 중국의 애국교육 시범 장소이기도 하다. 현재 실내 전시관, 무기장비 전시장이 있는데 중요한 전시물은 군함, 잠수함, 군복, 훈장, 비행기, 미사일, 탱크, 수중병기 등이 있다. 이 해군 박물관은 중국 해군 발전사 및 중국군 발전사를 볼 수 있는 곳이며 또한 중국 역사의식을 알 수 있는 곳이다.

      유방

  • 양가부 민속촌
  •   유방시에 위치한 500년의 역사를 가진 가정집이 그대로 보존되어 옛 모습을 살린 민속촌이다. 이는 중국 내에서 제일 큰 연 생산 공장일 뿐만 아니라 연화(구정을 맞이하여 집집마다 벽에 붙이는 전통적인 그림)가 유명하다. 500년의 역사와 경험과 기술로 제작한 '양가부' 표 연은 '산동성 공예 미술 백화상' '국제 연회 박람회 금상' 등 여러 상을 받았으며 상품은 국내외로 널리 팔리고 있습니다. 양가부 민속촌에서 생산한 연은 백여개 종류가 있습니다. 하늘을 훨훨 나는 용두오공, 천태만상의 선동옥녀, 아름다운 자태를 돋보이는 꽃과 물고기, 살아 움직이는 듯한 짐승들 등 많은 연이 있습니다.

      치박
     
  • 박산용동
  •   박산용동은 길이가 1,600m 개발된 중국에서 희귀한 대형석회암동굴이다.
    동굴내에는 종유석, 석순, 석화, 석만 등이 아름답게 있으며 자태또한 천차만별이라서 하나의 예술궁정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 강태공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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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태공은 3000년 전 산둥성에서 태어난 인물로 위수강변에서 곧은 낚시를 하면서 기회를 기다리다 주나라 문왕을 만났으며, 문왕과 대를 이어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켰다.
    그후 그공으로 강태공은 제나라의 초대 왕으로 책봉되었으며, 139세까지 살았다고한다. 강태공 사망후 주나라의 관례로 시신은 원래 섬겼던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의 무덤 주위에 묻었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위치는 모른다. 제나라의 초대왕을 기념하기 위해 강태공이 사용했던 의관을 옛 제나라 수도인 오늘의 치박에 묻었는데 이것이 의관총이다. 이곳의 앞면에 강태공사당을 만들었다.
     
  • 고차박물관
  •   임치중국고차박물관은 중국에서 첫 번째로 꼽히는 제일 명확하고 완전한 차마유적과 문물이 일체화된 고차박물관이다. 중국 10대 고고학적 발견의 하나인 춘추시대의 전차 10량과 말 32필이 매장된 전시시설을 비롯하여 중국의 역대차량의 진품을 집중시킨 곳으로 중국차량의 유구한 역사와 차량제조 기술의 지위를 말해주고 있다.
  • 순마갱
  •   제경공순마갱은 추추시기의 제나라 공후인 제경공의 묘로 이곳에는 말 600필이 매장되어 있어 중국에서 보기드믄 대규모 순마갱이다. 매장된 순마는 전쟁시 사용하던 말로 규모가 이렇게 큰 순마갱은 제나라 통치계급의 강성함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105필의 순마를 전시하고 있다.

      제남
     
  • 표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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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남은 '천성'이라고 불리워질 만큼 옛부터 샘이 많은 도시로 실제로 제남시내에는 72개의 샘이 존재한다. 표돌천은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샘으로 3개의 샘 구멍에서 밤낮없이 물이 솟아오르고 때로는 수면이 융기할 만큼 기세를 떨쳤다.
  • 산둥성박물관
  •   산둥성박물관은 산동성에서 출토된 역사적인 유물들을 전시한 박물관이다. 이 곳에는 커다란 공룡의 뼈, 상당히 큰 나무배,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아들 무덤에서 출토된 미니병마용등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 황하
  •   중국북부를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중국 제2의 장으로 길이는 5,464km이고 유역면적은 752,443㎢이다. 황하강 중,하류는 중국 문명의 요람지로서 이름이 높다. 유역에는 산시성 란텐현에서 발견된 란텐원인의 유적을 비롯한 채도 및 흑도기와 은나라의 유물이 수없이 발견되었고, 그밖에 역대 왕조의 유적도 무수히 남아있다. 황하강은 흘러내리는 진흙에 의해서 화베이평야의 대부분을 형성할 만큼 "물 1말에 진흙 6되"라고 할 정도로 유수중에 포함된 토사의 양이 많아서 1년에 13억8천 만톤의 진흙이 하류로 운반되고 있어 토사 함유량으로는 세계 제일이다.

      태산
     
  • 태산
  •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의 태산은 중국에서 오악지장이니 오악독존이니 하여 천하 제일의 명산으로 꼽았다. 그 이유는 제왕이 이곳에서 하늘에 뜻을 받는 봉선이라는 의식을 거행했기 때문이다. 일반 백성들에게도 이 산은 신령스런 산으로서 태산에 한번 오르면 지상에서 적어도 10년을 장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태산등정이 숙원이었다고 한다. 태산은 해발 약 1,545m로 산동성 구릉에서도 최고로 높은 산으로 산동성 동부. 제남시. 태안 등 3개 현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옛날부터 천하제일의 산으로 칭송받아오듯이 자연경관은 물론이고 신앙의 산으로도 추앙받아왔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돌비석 등의 옛유적과 종묘 등이 있어 볼 만한 것이 많은 국립공원으로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자연문화유산이다.

      곡부 (공자 고향)
     
     
     
    "배우고 때로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이는 논어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공자님의 말씀이시다.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록인 논어는 우리나라에 전해져 큰 영향을 주었다. 공자는 중국 춘추시대말기의 사상가,정치가,교육가로 유교의 시조이다. 이 공자를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것이 공묘,공자를 비롯한 공가 역대 자손들의 묘소가 공림,공자의 역대 적장손들이 살던 집을 공부라한다.산동성의 곡부시는 공자의 고향인 유교의 성지이다.공자는 인,의,예,지사상인 인본주의와 덕치주의 철학의 터전 위에서 공존공영의 인류평화를 이룩해야한다고 하였다.
  • 공묘
  •   공묘는 남북 1km,동서 2km로 총면적 2헥타 전체 건물의 방의 총수는 466개나 되는 웅대한 건물이다. 공묘는 금성옥진방에서 13비정까지의 전원과 대성문에서 적전까지의 후원으로 이분된다. 금성옥진방은 명나라 때 건조된 것으로 공묘의 전문에 해당된다.네개의 돌기둥에는 조천후라는 괴물조각이 있는데 이 조각은 황제로부터 지방제후에게만 허락되는 것이다.공묘가 제후와 동격인 인물을 기리는 묘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역대의 황제가 얼마나 공자를 존중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공묘후원에서 크고 웅대하며 화려한 대건축물이 공묘의 본적인 대성전이다. 대성전은 북경의 태화전에 이은 중국 제2의 대건축으로 태안현에 있는 천황전과 함께3대건축의 하나이다. 명나라 영락6년(1408)과 홍치13년(1500) 2차의 중수를 거쳐 청나라 옹정 2년(1724)에 새로 건축한 것이 현재의 대성전이다. 높이 32m 폭이 54m 길이 34m인 이 건축은 28개의 돌기둥에 의하여 지탱되며 정면의 19개 기둥에는 구슬을 물고 휘감은 두마리의 용이 기교한 조각술로 진짜용이 기둥을 감고 있는 듯하다. 원래 용은 황제의 궁전에만 장식할수 잇는 것으로 공묘에 이런것이 허용되었다는 것은 공자가 학문의 황제로서 존경받았다는 것을 말한다.
  • 공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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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림은 전문인 지성림을지나면 곧 이림문이 나온다.이 이림문의 누대에 서서 보면 울창한 삼림이 전개되어 보인다. 이 20헥타의 산림이 공자와 그 역대의 자손이 묻힌 묘소다. 공림의 규묘는 상당히 광대하여 이림문 북쪽으로 뻗은 도로는 7km의 유람로이다. 붉은 벽의 황색 유리지붕의 건물은 향전으로 공자의 제사를 지낼 때 제단이 설치되는 곳이다. 공자의 묘는 이 향전의 뒤에 있고, 금색의 전서로 '대성지성문선왕묘'라고 쓰여있고, 오른쪽 옆에는 아들"이"의 묘가 있고,앞에는 손자 "급"의 묘가 있다.
  • 공부
  •  
    공부는 봉건영주로서 영민을 지배하던 관청과 주택의 기능을 갖고 있었다. 공부의 총면적은 1.3헥타 전 건물은 480여간이다. 전원은 공적인 집무실이며 후원은 공가의 사생활 처이다.공자의 적장손 후손이 살던 곳이다.
     
      중국의 역대제왕들은 공자의 위대한 가르치심을 받들고 그 유적을 숭배보존함으로서 2500여년간 공자의 유교사상이 전해내려올 수 있었다.유교사상의 가르침을 다시한번 세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공자의 유교사상의 실천속에서 윤리도덕이 바로 서게될 것이고 인간답게 사는 인류평화가 이루어 지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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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 06.01.19 20:35

      첫댓글 중국. 위해 . 대륙을 향한 발걸음 놀러오세요^^cafe.daum.net/waihai

    • 06.01.19 22:36

      좋은 게시물입니다 스크래 해야지 고맙습니다

    • 06.01.20 10:23

      정말 좋은 정보네요.....

    • 작성자 06.01.21 01:33

      이거 제가 올린거 아닌데@.@.................지워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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