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오봉산 정상 아래의 거대한 바위벼랑 '마당바위'는 김유신과 화랑들이 호연지기를 닦던 곳이다. 호쾌한 조망이 좋다. 드라마 '선덕여왕'과 '동이'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신라 선덕여왕이 기지로 백제 군사를 물리친 유명한 기사가 삼국유사에 나온다. 경주 건천의 여근곡(女根谷) 이야기다. 이 사건은 여왕의 예지 능력을 돋보이게 하고 정치적 리더십을 강화한데 그치지 않고 도성을 방위하는 국책 사업으로 이어졌다. 대구로 이어지는 군사적 요충지에 663년 부산성(富山城·사적 제25호)이 완공된 것이다.
부산성은 경주의 서쪽에 있는 여러 봉우리와 계곡을 걸치고 있다. 자연석으로 쌓은 석축은 험준한 비탈 7.5㎞를 빙 둘렀다. 성안은 25만여 평의 거대한 분지로 물이 많고 농사에도 적합했다.
그 부산성을 지키는 화랑 중에 '득오'가 있었다. 거대한 성채에는 사방으로 문이 나 있었고 창고와 훈련장도 있었다. 성의 창고지기에 임명된 '득오'가 자신을 찾아온 '죽지랑'과의 우정을 노래한 향가가 바로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다.
삼국통일의 일념으로 무장한 '젊은 피' 화랑들이 지키던 그 길을 따라 걸었다. 성곽의 남측을 빙 돌면서 성터 유적을 답사한 뒤 북쪽에 해당하는 오봉산(五峯山·633m)을 오르는 길이다.
부산성은 화랑 '득오' 이야기 간직 100명 앉는 '마당바위' 호쾌한 조망 드라마 '선덕여왕'·'동이' 촬영지 유명
■화랑들이 지키던 부산성 밟으며 산행
오봉산은 다섯 개의 봉우리가 올망졸망 모여 서 있는 모양새다. 그런 모양을 따서 닭벼슬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오봉산은 경주 남산의 유명세에 가려서인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산성의 남문과 서문터, 창고와 훈련장 등이 남아 있는데, 학술적인 목적이 아니면 그다지 찾는 발걸음도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과 '동이'가 오봉산 일대를 무대로 하면서 인지도가 높아진 덕분에 점차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오봉산과 부산성은 운대리(윗장시) 버스정류소에서 출발해 여근곡 성테마박물관을 거쳐 585봉~코끼리바위~정상~484봉~261봉을 지나 건천읍 송선리의 '송선(선동)' 버스정류소로 내려오는 9.8㎞ 코스(산&산 328회)로 즐길 수 있다. 다만, 이 길로 오르면 정상~484봉의 극히 일부 구간만 성터를 밟을 수 있다. 이번에는 송선리버스정류소에서 출발해 성곽을 왼쪽으로 빙 두르다 경작지에 막힌 구간에서 성안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정상에 오르는 능선에서 성터를 따라가게끔 해서 성 유적을 가능한 한 많이 밟을 수 있게 코스를 짰다.
이 코스는 송선리 성암사 원점회귀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할 경우 송선버스정류소에서 출발해 1㎞ 남짓 성암사까지 걸어야 한다. 성암사에서 본격 산행에 나서 출입이 제한된 복두암을 스쳐 능선을 탄다. 남문 근처까지만 성곽을 따라가고, 잠시 성안으로 들어와 분지의 고랭지 채소밭 사이를 헤치고 폐축사 건물들을 지나친다. 오봉산의 주능선에 올라타서 정상을 올랐다가 성암사로 되돌아오면 산행의 마침표가 찍힌다. 12㎞를 5시간 남짓 걸었다. 성 안팎으로 드나들 때 헛갈릴 수 있다. 이정표가 없는 산이라서 지도와 산&산 리본을 잘 살펴야 한다.
■김유신이 호연지기를 기르던 마당바위
성암사 앞에 서면 산행이 시작된다. 왼쪽 복두암 방향 표시를 따라가면서 입산. 지그재그 가풀막길을 40분쯤 참아내야 한다. 갈림길에서 복두암 가는 길은 끊겨 있다. '무문관 정진 중'이라는 안내가 나뭇가지로 엮은 문 위에 붙어 있다.
능선에 접근하면서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돌무더기를 만났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은 부산성 석축의 흔적이 시작되는 것이다. 재차 복두암 출입금지 안내 현수막을 지나치자 정면에 오봉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하고 오른쪽은 거대한 채소밭이다.
여기서 왼쪽 숲길로 접어들어야 성곽을 따라 걸을 수 있다. 수풀이 무성해서 길은 흐릿한데 별도의 이정표가 없으니 길을 잃기 십상이다. 이 길을 놓치고 죽 가면 밭과 목장 사이로 난 임도를 헤매게 된다.
부산성 바깥의 사면은 경사가 심하다. 방어를 위한 것일 텐데 지금은 이 성곽을 따라 가장자리에 철책이 설치되어 있다. 등반로는 성곽과 철책을 따라 나 있다. 성벽은 대부분 무너진 채로 흔적만 남기고 있지만 일부 구간은 1천30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건재한 곳도 있다.
지도상의 남문 터를 확인하고 갔지만 밭에 막혀 더 나아갈 수가 없다. 성터를 따르는 등반로가 끊긴 것이다. 성안으로 들어와 임도를 타야 한다. 동물 침입을 막으려 밭 가장자리에 쳐놓은 그물을 넘어 성안의 분지에 해당하는 임도로 접어든다. 광활한 면적이 개간되어 있지만 묵은 곳이 많다.
첫 번째 임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오봉산을 보면서 죽 내려간다. 이정표가 없는 임도 사거리를 또 만났다. 진행 방향의 큰 길을 따라 내려가면 오봉산이 점점 가깝게 보인다. 오봉산 자체가 이정표다.
오봉산이 점점 가까워졌을 때 벽체만 남거나 형체만 남은 을씨년스러운 건물들과 맞닥뜨렸다. 건물 오른쪽으로 수풀을 헤치고 나가면 금세 능선에 올라탄다. 숲 그늘에 들었을 때 바위 앞 두 갈림길에서 왼쪽 주사암으로 오른다.
다시 성곽의 돌무더기를 밟으며 5분쯤 걸었을 때 갈림길을 만난다. 성터를 횡단해서 왼쪽 길을 따라 오르면 주사암이다.
주사암 옆으로 깎아지른 듯 불쑥 허공으로 솟은 거대한 바위벼랑에 섰다. 김유신이 군사를 훈련시키며 보리로 빚은 술을 나눠줬다는 '마당바위'다. 100명이 앉을 수 있다는 넓은 바위에 서면 호쾌한 조망이 좋다. 드라마 '선덕여왕'과 '동이'의 촬영지가 된 뒤로 유명해졌다.
정상은 순식간이다. 정상 표석에 적힌 표고는 '685m'. 국립지리원 지도와 무려 52m나 차이가 난다.
산불감시초소 아래로 하산길이 나 있다. 금세 숲길이 끊기면서 주사암으로 올라가는 좁고 가파른 임도가 나온다. 200m 걷다가 임도를 버리고 능선길로 입산. 10분쯤 걸었을까. 탁 트인 조망바위에 섰다. 발밑으로 펼쳐진 게 여근곡이다. 오른쪽으로 경주 남산이, 그 뒤로 토함산이 까마득하다. 왼쪽으로는 천문대가 있는 보현산이 있고 그 뒤로 팔공산 등성이가 아스라하다. 성터를 횡단하고 나면 길은 가팔라진다. 계곡을 만나 숲길이 끝나는 곳이 성암사 입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