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몰이의 또 다른 기폭제도 있었다. 청춘스타들이 주연한 드라마 '마지막 승부'였다. 여기엔 당대의 꽃미남 손지창·장동건·이종원에 지금은 은퇴한 심은하가 출연했다. 그 손지창을 만났다.
- ▲ 사업가로 자리를 잡은 손지창은 1주일에 한 번씩 연예인 농구단 동료와 손발을 맞춘다. 그는“운동을 두루 좋아하지만 농구만큼 날 미치게 하는 스포츠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잠실학생 체육관에서 공개 촬영하는데 1만 명이 넘는 팬들이 몰릴 정도였어요. 드라마에 카메오로 출연한 이상민·서장훈과는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요." 드라마 속 '천재 슈터' 손지창(40)은 여전히 연예계 대표 농구광(狂)이다.
그는 1992년 연예인농구단 '프렌즈'를 만들었고 지금은 '피닉스'로 이름을 바꿔 단장을 맡고 있다. 손지창은 "연예인 동아리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손지창의 노트북 컴퓨터엔 각종 기업과 단체의 농구 동호회 연락처가 200개 정도 들어 있다. "1주일에 한 번씩 기업 동호회와 연습경기를 통해 기량을 점검해요. 8월 말엔 청와대 팀과도 한판 붙었죠."
손지창의 포지션은 슈팅 가드. 그의 플레이를 본 프로농구 관계자는 "교과서적인 폼과는 거리가 있지만 슛이 꽤 정확해 놀랐다"고 말했다. 손지창 자신도 "슛 폼이 별로인 건 인정한다"고 했다.
"'마지막 승부'찍을 때 몸무게가 58㎏이었어요. 배역은 3점슛 도사인데, 힘이 달려서 공이 날아가지가 않았죠. 어쩔 수 없이 공을 '밀면서 던지는' 슛 폼을 개발했고, 그게 몸에 익어버렸어요."
손지창은 중학교 입학 전 겨울방학 때 농구를 시작했다. 140㎝이 조금 넘던 키가 179㎝까지 큰 것이 "농구 덕분"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때는 꽁꽁 언 겨울 운동장에서 친구와 '100골 먼저 넣기' 경기를 할 정도였다.
손지창은 "대학생 되면 체육관에서 농구할 줄 알고 엄청나게 기대했는데 입학해보니 여전히 운동장 신세더라"고 말했다. 손지창이 기억하는 최고의 농구 경기는 한국과 중국이 맞붙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결승전이다.
"드라마 촬영하다 부산으로 날아갔어요. 금메달을 따는 감격스러운 장면을 보는 건 좋았는데 경기가 연장전까지 가는 바람에 서울행 비행기를 놓치겠더라고요. 경찰차를 타고 공항으로 달려가 가까스로 촬영 펑크나는 것을 막았죠."
손지창은 연예인농구단을 이끌고 봉사활동이나 농구 저변 확대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는 "농구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은 너무나 많은데, 제대로 된 사회인 농구 리그가 없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근에 방송에서 연예인 야구가 인기를 끌자 주변에서 '농구 그만하고, 야구단이나 하나 만들라'는 얘기까지 들었어요. 3년 전부터 사회인 농구대회를 만들고 싶어 준비하는데 후원업체 구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손지창은 2000년부터 '베니카'란 기업 이벤트 전문 대행사의 대표를 맡고 있다. 최근 5년 넘게 방송활동을 안 하는 이유도 '20명의 직원과 그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이다.
지난해 65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90억원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연예계 생활이 엘리베이터라면 사업은 계단을 올라가는 것 같다. 몸은 비교할 수 없이 고되지만 훨씬 짜릿한 성취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업 때문에 골프에 재미를 붙일 때가 있었지만 아직 농구만큼 나를 미치게 하는 운동은 없어요. 깔끔하게 꽂히는 3점슛 한 방에 스트레스가 싹 풀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