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감상한다는 것.. 우선은 내 안에 자리 잡은 영화라는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의를 옮겨 보는 것이 이 주제에 대해 가장 잘 접근할 듯 싶다.
영화라는 것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연속 촬영한 필름을 연속으로 영사막에 비추어, 물건의 모습이나 움직임을 실제와
같이 재현시켜 보이는 것. 무비(movie), 시네마, 키네마, 활동 사진)영화의 사전적인
의미는 말 그대로 영화라는 것의 외적인 모습을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 듯 싶다.
우린 영화라는 한 단어에 이보다 더 많은 수식어를 붙일 수 있기에 또한 더 내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에 영화라는 단어를 굳이 사전에서 찾지 않아도 나름대로의
정의를 살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라는 것은 이렇다.
<내 생활 중 전부를 차지하기도, 일부분이기도, 또는 전혀 관계가 없기도 한 생활>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난 가끔 <내 얘기야..> 하는 경우가 있다. 아님, 아직 다가오지
않을 미래의 공상물이나 굉장히 오래된 과거, 갱스터 영화 등을 보다 보면 스크린 안엔
내 생활과 전혀 동떨어진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영화는 내 생활 전체를 대변하기도
전혀 별개의 경우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보는 영화인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를 감상하는 기준도 하나 일 수는 없는 것이다.
현재 내 앞에 내 눈에 내 안으로 들어오는 영화가 과연 내 생활과 얼마의 연관관계를
보여 주느냐에 따라 그 감상법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첫째로 내 생활과는 전혀 무관한 영화를 보는 경우는 이렇다.
이런 경우 대부분 SF물이거나 스릴이 적적히 가미된 호러물, 허황되기 그지없을 법한
하지만 재미 면에서는 인정해야하는 홍콩물등을 넓은 의미로써 들어볼 수 있다.
이런 영화를 관람(난 이런 영화는 감상이 아니라 관람이라 표현한다)하게 되면 난 철저하게
재미에 빠져들려 노력한다. 영화를 만든 이들 또한 현란한 볼거리와 다양한 쇼를 보여 줌에
초점을 맞추어 가기에 그들의 의도를 가장 잘 보아줌으로써 나름대로 그 영화의 중심을
보려한다.
<철저한 재미> 대부분 사람들도 그렇듯 영화를 보는 이유 중 첫 번째는 재미일 것이다.
며칠 전 뉴스에서도 현대인들은 각박해지고 건조해진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코믹물이 많이
가미된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영화를 선호한다고 했다. 굳이 이 말에 동감을 하지 않아도
인간이란 동물은 원초적으로 유희의 문화를 가지고 살고 있기에 재미에 대한 열정은 다른
동물들에 비할 것이 못될 것이다. 그런 원초적인 욕구를 장전시켜 맘껏 발산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영화를 만날 때면 그 유희에 만큼 취해버린다. 아주 철저히.
하지만 그냥 영화가 흘러가는 대로 하하호호 한다면 감독이 연출한 롤러코스트를 이용하는
경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롤러코스트를 타고 짜릿한 유희를 즐긴 후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우린 자신이 지나온 길이 어렴풋해진다. 영화에 푹 빠져 정신없이 관람했다고 말한다면
그는 영화가 짜놓은 문으로 들어가 그 문으로 나온 꼴에 지나지 않는 다 말하고 싶다.
재미를 추구하기 위함이라면 감독이 만든 문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 아니겠냐는
질문도 나올 법하다. 하지만 재미 앞에 <철저한>를 추구하기 위해선 자기 자신만의 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재미 앞에 붙는 <철저함>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영화를 본다. 전쟁 영화이다. 여기저기에서 전투신이 벌어진다. 카메라는 현란하게 터지는 폭발물
앞에서 열심히 앵글을 맞춘다. 그리고 그 사이로 주인공의 참 멋진(?) 모습들이 모여진다.
바로 그 순간 난 주인공에 의해 쓰러지는 엑스트라들을 주시한다. 한참 주인공의 움직임에 정신이
없을 때 우리의 엑스트라들은 주인공을 빛나게 하기 위해 참 여러 가지 모습으로 자신을 희생한다.
옛날에는 시체의 배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거나 조금 전 까지 죽어있던 사람이 다시 총을 들고 뛰어
다닌다. 그리고 또 주인공의 총에 조금전과는 다른 폼으로 죽어간다. 내가 생각하는 잘 만들어진
영화(뒤에서 말할 좋은 영화도 포함이 될 것이다)는 엄청난 제작비도 화려한 스타의 명연기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을 빛나게 해주는 엑스트라와 소품들의 완벽성에 많은 점수를 주고, 평한다.
주인공을 살리기 위해 주변을 소홀히 한다면 참으로 엉성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우리의 눈이 이끌리는
곳을 제외한 주변에 얼마나 공을 들였냐에 대해 일차적인 초점을 맞춰 영화를 보는 것이
나만의 감상법 제1조다.
둘째로 내 생활의 일부를 차지하는 영화를 만났을 때이다.
내 생활 자체와 비슷한 케이스를 만나는 경우일 테지만, 가끔은 저런 시나리오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느끼게 하는 영화를 보는 경우이다. 습작하는 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영화를 구성하는
시나리오를 그저 주변인물로 보지 않게 한다. 정말 탄탄한 시나리오를 만났을 경우는 부러움의
시샘을 한껏 보내 보기도 한다.
"아∼ 저걸 내가 썼으면....."하는 부러움 가득 영화를 관람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영화가
다른 이들에게까지 잘 되어진 영화로 보여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어떤 물체를 보는 관점이
틀리듯이 하나의 영화를 구성하는 시나리오를 해석하는 각도도 틀리기 때문이다. 최근에
<큐브> 와 <쓰릴시커>라는 비디오를 본적이 있다. 제목을 대면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정도로 소위 뜬 영화가 아니다. 스릴과 공포, 액션에 공상이라는 스프를 가득 친 영화이기에
당시 옆에 진열된 <섹스피어 인 러브> 나 <러브레터>등의 입소문에 밀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연결들과 구성은 초반부부터 "아∼저걸 내가 썼으면..."하는
부러움으로 끌고 들어갔다. 엄청나게 탄탄한 시나리오라고 말하기엔 그렇다. 하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양파 껍질을 까는 재미가 그 시나리오 속에 담겨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렇게 2시간 여의 상영시간을 가진 영화 중에서 단 몇 분의 내용이라도 "아 저걸 내가 썼으면..."
하는 시샘을 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가진 영화를 찾아 관람하려는 것이
나만의 영화 감상법 제2조이다.
셋째로 내 생활 전부를 차지하는 영화를 감상
(이제 관람이 아닌 감상이라는 용어를 감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하게 되는 경우이다.
이런 영화를 보는 날엔 하루종일 아무런 일도 할 수 가 없다. 몽롱한 상태라고 해야 하는가?
영화 속 기분이 그대로 전이되어 벌건 대낮에 취해 버리게 되는 유쾌한 주정을 부릴 수 있는
날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영화를 보는 도중에 몇 번이고 엄청난 전류에
감전이 되곤 한다. 하지만 난 그 짜릿함에 숨막혀 할 뿐 죽진 않는다. 그리고 다시 그 짜릿함이
엄습해 오길 기다린다. 그렇게 2¡3번만 감전이 되면 온 몸에 힘이 쭉 빠져 버린다. 아주 가끔은
노래를 듣고 있을 때 이런 느낌을 받곤 한다. 나를 감전 시켰던 노래가 바로 <셀렌디온>의
<The power of Love>였다. 처음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머리 털 하나까지 올라서는 기분에
온몸이 전율로 떨어야 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을 감상했을 때도 그랬다. 종결부로 갈수록 뻔한 스토리였지만 내 영화
감상법 제1조의 엑스트라와 주변 소품을 관찰하며 철저한 재미에 빠지기를 충분히 만족
시켜주었고(주인공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전투신을 벌이고 병사의 표정, 총 한 자루 탄피 하나,
폐허가 되어 거리를 메우고 있던 돌멩이 하나까지도 제1조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
제2조의 시나리오가 맘에 쏙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잘 보여진 내용들이었다.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나만의 영화 감상법 제3조 [영화를 보며 전율을 느껴라]를 만족
시켜 주었다는 점이다. 초반부의 전투신은 이제 갓 제대한 나에겐 더 피부로 파고들었다.
만약, 저곳에 내가 있다면 이란 가정이 주는 숨막힘 그리고 공포. 총탄이 빗발치며 병사들의
몸을 유린하는 모습은 너무도 생생했다. 마치 내가 거기 있는 것처럼...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거대한 물고기를
낚은 기분이었다. 영화 중간중간 느꼈던 전율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재잘거리면 입을
통해 이 기분이 다 날아가 버릴 것 같아 더욱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난 영화를 <감상>했다.
지금까지 나의 영화 감상법이라는 주제로 내 나름대로의 영화를 보는 시각을 서술해 보았다.
이 엉터리 같은 3가지 방법이 나의 영화 감상법이고, 또 영화를 고르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