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토) 오후 3시 경북대학교 사회대 앞에서 <4.9인혁열사 35주기 추모제 및 여정남 공원 제막식>이 있었습니다. 추모 공원은 유가족 3억 5천과 모금액 6천을 합해 4억 1천만 원으로 조성되는데, 경북대학교(총장 노동일)에서 200평의 부지와 기초 토목공사까지 해결해 주어서 쉽게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립대학교에서에서는 이례적인 일로 평가 됩니다. 조형물은 ‘힘없이 쓰러져 가는 뫼비우스의 띠를 떠받치고 있는 손’을 작가 이태호 님이 조각하였습니다. 작가는 역사 변혁과 민주화, 통일의 역사에 대한 의지를 표현하였다고 풀이했습니다. 안과 밖이 같은 뫼비우스가 역사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조경은 8월 경에 완성할 예정입니다.
인혁당 조작사건은 1974년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이 영구집권에 대한 국민의 저항에 부딪히자 민청학련 사건을 조작 발표하고, 인혁당 재건위가 이를 배후 조종하여 내란예비음모 및 내란선동했다는 혐의를 씌워 대법원이 1975년 4월 8일에 사형 선고를 하고 18시간 만에 8명을 사형 집행한 사건입니다. 경북대 복학생 여정남은 탁월한 카리스마로 학생운동을 이끌어 왔는데 민청학련과 인혁당을 잇는 고리 역할을 한 혐의를 받아 가장 극심한 고문을 받고 30세에 사형을 당했습니다. 당시 사형 9명, 무기징역 7명, 징역 20년 4명, 징역 15년 4명, 징역 5년 2명.
32년이 지난 2007년 1월 23일 인혁당 사건 무죄 판결이 나고, 여정남 열사는 입학 45년 만에 명예졸업장을 받았습니다. 여덟 분 이외에도 세 분은 옥사, 여섯 분은 복역후유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 날 추모제와 제막식이 이어서 열렸는데, 대구 경북 지역은 물론 전국에서 예년보다 훨씬 많은 인사들이 참석하였습니다. 문정현, 박정기, 배은심, 이규재, 이부영, 배다지, 한승헌, 이철, 안재구, 이창복, 장영달, 이수일, 임재경 등 유명 인사들이 많이 참석하였습니다.
참석 인사들은 추모사를 통해, “시대적 상황에 흔들리거나 조급증을 내지 말고, 심오한 과학성과 숭고한 도덕성으로 자기 단련을 끊임없이 해나가자”,“역사의 심판과 진실의 승리는 의로운 이들의 끊임없는 저항과 투쟁의 결실임을 선언한다”, 교육현장의 선생님들께서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해 달라”,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광주는 민주화운동의 성지요, 대구는 민족운동의 성지이다. 광주와 대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유가족 대표는 “이분들은 스스로 역사가 되었다. 역사는 진실을 기억한다. 역사는 진실을 기록한다.”고 추모했습니다. 눈시울을 적시는 말씀 말씀들이었습니다.
한편, 행사장 입구에서는 대구평통사 백창욱 목사 와 운영위원 몇 분이 평화협정운동 추진위원과 길잡이 모집을 하여 많은 참가자들이 참여해 주었습니다.
첫댓글 총장이 바뀌니 이런 기쁜 일도 생기는군요. 내가 대학을 다니던 바로 그 시절이었습니다. 인혁당 사법 살인 사건은 우리나라 사법 사상 가장 부끄러운 사건이라고 하더군요. 늦게나마 여정남 공원이 생긴 것을 축하해야겠지요.
전 총장님 성함이 [노동일(勞動일)] 하시는 분들을 우대하게 생겼다고 그전부텀 생각해 왔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