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527바람이 임의로 불매(삼위일체주일).hwp
180527 시29, 사6:1-8, 롬8:12-17, 요3:1-17
얼마 전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걱정 하지 마세요, 마가교회 목사님인데 무슨 일이 생기겠습니까?” 걱정꺼리 앞의 위로의 전화 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걱정근심들을 마주하고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되돌아보면 한없이 약한 사람 같습니다. 20대에 찜닭 집을 시작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새벽에는 공사장에 가서 일주일간 벽돌을 옮겼습니다. 임금은 떼였습니다. 몇 해 전에는 1년간 일을 했지만 역시 떼이다시피 했습니다. 상대와 대화가 되지 않았기에 속은 앓았지만 그냥 물러섰습니다. 이 두 가지 일은 아마 오래도록 마음에 담겨 있을 것 같습니다. 흐릿하게 기억나는 수많은 일들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왜 똑부러지지 못하나하는 자책도 많았습니다.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 당신의 땀과 추억, 친구와 이웃과 친지 등, 모든 소중한 것의 고향, 그러나 65세의 나이에 타지로 떠났습니다.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고, 몸도 노약했지만 떠났습니다. 그 정신은 높이 평가 됩니다. 아버지를 쏙 빼닮았나봅니다. 이제는 왜 라는 물음보다 천성으로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걱정해 주고 도와줍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마가교회 목사님인데 무슨 일이 생기겠습니까?” 무슨 일이 생겨도 다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은 75세에 믿음으로 고향을 떠났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을 믿음으로 바쳤습니다. 그 아들 이삭은 힘들게 우물을 팠지만 몇 번이나 빼앗겼습니다. 주변에서 보면 바보고 멍청이고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대신 그들의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믿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복음서 본문에는 바리새인이고 유대인의 지도자 니고데모가 나옵니다. 유대인의 지도자이자 바리새인이라는 것은 빈틈없는 자, 완벽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예수를 밤에 찾았습니다. 남몰래 조용히 예수를 찾은 것입니다. 나름대로 심각한 고민에 빠진 것 같습니다. 남들이 볼 때는 빈틈없고 완벽하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뭔가 해결 되지 않은 고민거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바리새인으로 지도자로 어디에도 속내를 드러낼 수가 없어 답답했을 것입니다.
예수는 그에게 성령으로 거듭나라고 합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영으로 난 사람이라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 영으로 난 사람은 그러하다고 합니다. 빈틈없고 완벽하고 똑부러지는 거기에 영의 활동은 쉽지 않은 것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듯, 성령이 그 사람을 이끌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주장이 없어질 때 성령이 주인이 됩니다. 성령이 이끄는 데로 성령의 주장에 몸을 내어 맡길 때 그것이 자기가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본문에 바울은 말합니다.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에 이끌리는 사람, 그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하며, “성령이 친히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위로합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성령으로 난 사람은 그러하다. 마음에 오래도록 담아둘 억울한 일, 답답한 일, 그러나 하나님의 더 큰 일, 요즘 유행하는 용어로 빅픽처(big picture), 하나님의 통치를 믿기에,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게 하기 위한 큰 그림, 큰 계획으로써, 나는 작은 붓이나, 물감으로, 도구로 쓰일 수 있다고 위로합니다.
이사야서에서는 이 암울한 세상에 누구를 보낼꼬 하는 물음이 있습니다. 그 때,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며 주님이 묻습니다. 누구를 보낼꼬, 그때 우리는 대답할 수 있습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어쩌면 이곳 고통의 현장, 소성리에 머물고 있는 이들이 그 음성을 듣고 여기 보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강형구 장로님도 바람이 어디서 부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 이곳으로 오시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각자 선 곳에서 하나님의 큰 계획, 빅픽처를 위하는 저와 여러분이길 두 손 모읍니다. 거기에는 고통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 뒤에 영광이 있음을 믿기에 우리는 기쁨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기도(시편본문)
시29
1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2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1)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거룩함의 아름다움에서
3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4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5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6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도다
7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8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키시도다
9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2)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10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