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검도가 좋다. - 2012. 12.7 - 10.10
(제10회 태국 나카네컵 검도대회 참가기)
매년 12월이면 방콕에서 나카네컵 검도대회가 열린다.
올해가 10회째인데 우리가 처음 참가한 것은 2009년이었고(안식년이어서 우리는 없었다) 그때는 아스파가 준우승을 하였다. 그후 매년 참가하고 있는 나카네컵 검도대회는 태국에서 열리는 검도대회중 가장 권위있는 대회라고도 할 수 있다. 대회는 참가하는 인원에 따라 그룹이 구분되는데 대개는 남녀가 함께하는 12세이하 초등부와 중고등부(남), 대학 일반부(남), 여자는 인원이 적어 중학생부터 고, 대, 일반부까지가 한팀, 4단 이상이 한그룹으로 하여 전체가 5그룹으로 나뉘어 치러졌다. 작년에 우리팀은 초등부 2,3위, 남중고부 1,2,3위, 여일반부 준우승을 했는데 올해는 대학일반부 남자들이 참여하게 되어 모두 4그룹에 참여하는 것이다. 내심 이번에는 대학부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4강 이상의 성적을 내주기를 기대하였다. 그렇다면 최상이리라.
대회가 열리게되면 선수선발이 가장 어렵다. 이번에는 누구를 데리고 가야하나? 먼저는 아빠컵(란나검도클럽의 자체 선수권대회 명칭)을 통해 선수를 선발한다. 우리 아이들이 심판이 되고, 선수가 되고, 기록원이 되고 아이들이 주도하여 대회를 한다. 1,2,3등에게는 상금이 나가고 1,2등은 주로 대회에 참가하는 특권이 주어진다.
이번에는 협회에서 공문이 오기를 초등부, 중등부 남녀, 고등부 남녀, 대학 일반부를 분리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아예 2명씩 데리고 가면 12명 딱 맞을 것 같았다. 선발을 위해 한달전에 아빠컵 검도시합을 하였다. 아이들에게 순위를 가리도록 하였고 결과를 가지고 대학에 다니는 2명과 검도팀의 주장인 찰랏을 불러 선수 선발 의향을 물었다. 아이들의 생각은 대부분 일치하였다. 대학생 2명을 포함하여 12명이 선발되었는데 자꾸 한명이 눈에 들어왔다. 워라멧이었다. 고등 학생중에서 2명을 선발하면 워라멧은 그 안에 들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는 평소에 죽도를 매만지며 열심을 내고 있었다. 지금 2학년인 아이들이 졸업하면 그 뒤를 이을 아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워라멧을 명단에 넣었다. 선수가 13명이 된 것이다. 대학에 다니는 아이에게 참가선수를 발표하라고 하였다.
금요일 오후, 학교에서 돌아오자 마자 방콕으로 떠나야 하는데 4시 30분까지 15인승 벤이 오기로 했다. 4시까지 오겠다던 벤은 갑자기 차가 고장이 나서 갈 수 없다고 한다. 아니 이럴수가 !! 아이들이 돌아왔다. 짐을 챙기던 아이들을 보니 명단이 있는 아이들이 없었다. 남딴과 에스더를 참가자 명단에 넣지 않은 것이었다. 둘에게 물었더니 남딴은 피곤하여 가지 않겠다고 하고 에스더는 가겠다고 한다. 터미널에 가서 버스를 타고 가야했기에 쏭태우를 불렀으나 오지 않았다. "얘들아! 짐 가지고 아빠 차에 타라. 내차로 터미널까지 가자." 남딴이 빠지고 아이들 12명이 나와 함께 쏭태우 트럭에 탔다. 아이들은 호구를 싣고, 먹을 과일이며 밥이며 물이며 봉고 안에서 가면서 먹으려고 준비한 것들을 들고 차에 올랐다.
터미널에 가니 다행히도 9시 차가 있었다. 표를 사고보니 앞으로 3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차를 주차장에 3일동안 주차하기로 하고 미리 준비한 저녁 - 카오니아오(찹쌀밥)와 목이 굽은 생선-을 주차장에서 먹었다. 그래도 시간은 많이 남았다. 아이들은 오락실에 가고자 했다. 한 시간 동안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도록 했다. 버스를 탈 시간이 다가와 호구를 들고 방콕에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임 선교사님에게 내일 새벽 6시30분에 방콕에 도착한다고 알리고는 추위에 떨며 선잠을 잤다.
버스 안에서 한참 자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6시 30분이 되었는데 어디에 있느냐며 전화가 온 것이었다. 새벽에 나오느라 임 선교사님은 잠도 못자고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왔는데 차는 도착 예정된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반갑게 맞은 아이들을 구겨넣듯 임 선교사 차에 태우고 나머지 아이들은 나와함께 돌아갈 버스표를 구입하고 택시를 타고 임 선교사 집으로 갔다. 일찍 일어난 조 라헬 선교사는 아침을 준비하며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을 먹은 아이들은 하나둘씩 잠을 청했다. 버스를 타고 오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였기에 아이들은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잠을 잤다. 한시가 넘자 라헬선교사는 잠자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비빔밥을 준비했다. 아이들은 보기에도 많은 비빔밥을 게눈 감추듯 치웠다. 두시가 넘어 대사관에 가서 대통령 선거를 위한 투표를 하였다.
오후 5시가 넘자 인근 람캄행 대학에 가서 검도연습을 하기로 했다. 팀들이 오기전에 미리 연습하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연습을 마친 다음 2팀으로 나누어 게임을 했다. 오늘의 수훈은 단연 아리야였다. 아리야는 여자들은 물론이고 남자들도 이겼다. 연습을 끝내고 쌀국수를 먹기로 했다. 인근에 있는 쌀국수 집에 도착하니 벌써 9시였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음식을 두 그릇, 세 그릇을 해치우고 쏭태우를 타고 돌아오니 10시가 넘었다.
주일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간단하게 모여 예배를 드렸다. 호구를 챙겨 임 선교사님 차에 싣고 일부는 차에 타고 나머지는 택시를 타고 대회가 열리는 학교로 갔다. 학교에는 낯익은 얼굴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아이들은 벽에 붙은 대진표에 눈길을 주고 있었는데 관심은 내가 누구와 붙느냐는 것이다. 일본 사범들이 많이 와있었다. 나카네 사범과 지난번에 우리를 도와주러 오신 무레이 사범을 찾아가 인사를 했다. 지난해에 이름은 잘 모르지만 일본 사범들이 검도장을 짓는다고 7만5천밭(2,500$)을 헌금하였었다.
10시경에 경기가 시작되었다. 초등부부터 경기를 시작하였는데 초등부는 우리 아이들 세상이었다. 경기를 하는 족족 이겼다. 예상대로 결승전에 오른 것은 입과 라였다. 이어진 중고등부 남자경기가 열렸다. 우리는 중고등부로 나뉘어 5명이 참여하였다. 덤으로 데리고 온 워라멧이 초반부터 잘하더니 제일 먼저 4강에 올랐다. 죤은 꼽과 4강전을 벌여 져서 탈락했고 찰랏과 꼽이 올라 4강에는 우리 아이들 3명과 일본 사범 아들이 올랐다. 결국 결승전에 오른 것은 찰랏과 꼽이었다. 뒤이어 벌어진 여자부 경기에서는 학생들이 많지 않아 중고대, 일반부까지 합처서 하였다. 작년에 준우승을 차지했던 아리야는 작년 우승자를 초반에 만나탈락했고, 초반에 탈락할 것이라 예상했었던 까이와 에스더는 승승장구하여 8강에서 만났다. 까이는 매경기마다 침착하게 경기를 이끌어 결승전에 올랐다. 식사후에 이어진 대학 일반부 경기에서는 두명이 참가하였는데 적어도 4강은 갈 것이라 예상했다. 탁월한 감각을 가진 위치안은 비록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4강에 오른 2명과 같은 조여서 1승 1패를 하였는데 1패또한 매우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다. 일본인 4단과 경기를 하였는데 1점 앞서고 있던 위치안이 30초를 앞두고 2점을 내어주는 과정에서 이해하기 힘든 판정에 경기를 지켜보던 아이들은 주심이 편파적이라며 항의를 하였지만 이것도 배움의 일부라며 자위해야 했다. 깨띠삭은 연장전 끝에 8강에 올랐지만 4강전에서 탈락했다. 대학 일반부에서만 잘 해줄수 있다면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아쉬움을 뒤로 하며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드디어 결승전이 열렸다. 입과 라, 평상시 같으면 대부분 라가 이기는데 이번에는 입이 이겼다. 나는 경기전 입에게 네가 마음만 먹으면 우승할 수 있다고 하였었는데 입은 우승하고 나서 너무 좋아하였다. 뒤이은 경기에서도 우리 아이들끼리 결승전을 하였다. 찰랏과 꼽이 결승전을 하여 찰랏이 이겼다. 10월에 이어 두 번째 챔피언에 오른 것이다. 고등부는 3년 연속 우리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벌어진 여자부 결승전에서 까이는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다. 고1과 일반인이 붙는 경기였고 침착하게 보고 치는 까이의 공격에 심판의 손이 몇 번이나 올렸다 내렸다 했다. 아마도 이전 게임에서 우리 팀이 다 이겼기에 까이는 원 싸이드하게 이기지 못하면 아마도 이기기 어려우리라 예상했지만 올라갈듯 올라가지 않은 심판의 손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주심은 까이에게 줄까말까를 몇 번 망설이다가 연장전 끝에 결국 패하고 말았다. 비록 졌지만 그래도 잘했다. 성실하게 상대를 보고치는 까이가 많이 성장한 것이다. 어찌보면 운동은 정직한 결과를 가져다 준다. 땀흘린 댓가를 느끼게 하니 감사할 뿐이다.
시상식이 끝나고 같이 사진을 찍었다. 태국에 검도를 전해주었던 나카네 사범과, 또 지난번에 우리에게 와서 검도를 가르처준 무레이 사범과도, 자신의 제자를 우리에게 보내 검도를 시작하게 하였고 방콕에 올때마다 신세를 지는 임 선교사와도 같이 사진을 찍었다. 짐을 꾸려 집으로 가려는데 저녁 밥을 먹고 가자고 한다. 무까타 뷔페에 가서 아이들은 실컫 저녁을 먹었다. 버스를 타러 가야할 시간까지 아이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치 며칠을 굶은 아이들처럼....., 버스에 탄 아이들은 타자마자 치앙마이에 도착할 때까지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