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 그 여자/ 강대선
성륜사 들어가는 길
배롱나무 밑을 지나가면서도 나는 보지 못했지
목이 탄 나는
절간 무인 찻집에 들어가
시원한 녹차 한 잔 마시고 물이 되었지
물의 마음으로 바라보니
저 불꽃 같은 배롱나무도 물빛
물이 흐르듯
매끄러운 여인의 몸을 하고 세상의 한낮을 견디는 묵언
여인은 선홍으로 드리운 노을이었을까
호수에 드리운 노을처럼
피어난 배롱나무꽃
나는 여인에게
차 한잔 건네고
여인은 나에게
노을 한잔 건네지
성륜사 내려오는 길
주위는 어둑하고 산은 더 적막한데
물빛으로 서 있는 여자
어둠을 제 몸인 듯 끌어안고
하염없이 깊어지지
그림자도 깊어져 어둠조차 묽어지게 하지
불티 같은 별들도
물빛으로 흐르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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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텍티트 에어리어/ 고경자
삽목한 화살나무에게 아파트는 낮은 천장이다
뚫고 나갈 수 없는 단단한 창문은 낮은 천장처럼
둥글고 모난 곳이 없어 잎들은 힘없이 떨어지고 있다
잎들은 바닥과 천장의 거리만큼 날개를 펼칠 수 있고
서 있는 나무는 머리 위의 세계가 궁금해 더 높이 자란다
열매가 빨갛게 익어 가면 새들이 찾아온다
부러진 자신의 날개를 코르크 날개로 바꾸고
붉은 열매를 쪼아 먹은 새들은
당겨진 활시위만큼 팽팽해진 붉은 심장을 토해낸다
날 수 없는 날만큼 심장은 작아졌다
벽과 벽 사이에는 날아간 화살이 박혀있어
뽑아낼수록 더 깊이 박혀 벽을 쪼아대고 있다
아파트 베란다에는
낮은 물살로도 움직일 수 있는 작은 배가 있어
매일 아침 항해 지표를 입력하고
저녁이면 완전히 지웠다
화살나무로 바다가 된 베란다에
무심한 달빛이 노를 저으면
떨어진 잎들의 새벽이 찾아온다
새벽에는 모든 것들이 부활의 자세를 취한다
포근한 베란다에서 낮은 천장을 뚫고 나갈 날개들은
붉은 심장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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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별을 보지 못한다/ 강나루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이 죽어
하늘의 별이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스모그가 끼어 지상이 시커멓게 그을린 날은
맑은 영혼을 지닌 별들조차
마음에 먼지가 낄까 봐 두 눈을 감는지
하늘이 시커멓다
언제부턴가 하늘을 보는 일이
부끄럽다
더러운 세상에서 진창길을 건너온 나는
차마 하늘의 별을 볼 수 없다
더러운 것을 많이 보아온 나의 영혼으로
별이 더러워질 것 같기 때문인데
갈수록 흐린 날이 많아져
다행이다
며칠째 비가 내린다
별들의 눈물이
세상을 헹구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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