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작가> 3호, 2022년
회색인 외 1편
맹문재
사무실로 가는 길에 나와 동행하던 시인이 다가와
이별을 전쟁처럼 알렸다
나는 어 어 하다가 붙잡지 못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천 원짜리 한 장이 길 위에서 불타고 있기에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냥 두면 어느 구석에 밀려가 썩고 말 것이기에
경찰서에 신고하는 일이 힘들기에
착한 사람과 악수하고 싶기에
더 큰 이유는
나도 남의 돈을 주울 만큼 융통성이 있기에
나는 인정받지 못하는 데 후원금을 내고
키운 화분을 누가 가져가도 잘했다고 웃을 줄 알고
새들에게 아침 모이를 주고
떨이 물건을 제값으로 사고
우연적인 피해를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회색분자들이 늘어나는 세상에서
우리만이라도 변하지 말자고
색깔을 지키는 최저 기준이
친일 문학상 거부라고 시인에게 말했다
엊그제 대구 강연에서 빨갱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고 했다가
비난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거나
핏대를 올려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 채 웃기만 했다
나는 그것을 후회하려고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상포진에 대하여
며칠 전부터 목소리가 가라앉고 콧물이 나왔는데
어제는 왼쪽 엉덩이 군데군데 빨갛게 부풀어 올랐고
오늘 아침에는 유사한 증상이
무릎 아래까지 번졌다
코로나 백신을 맞은 병원에 찾아가
부작용인가 싶어 내보였더니
대상포진이라고 했다
약국에서 처방하는 일주일 치 알약을 먹고 연고를 바르라고
따갑고 아파 제대로 잠자기 어려울 것이라고
의사는 나를 단숨에 제압했다
소년공 출신 후보가
거짓말투성이 검찰 출신 후보에게 패한 대통령 선거에
며칠째 잠을 설쳤다
소화기 내과 담당 의사는 시티 촬영을 한 사진을 보며
담낭에 붙어 있는 것이 용종인지 혈전인지 분명하지 않다며
초음파 검사를 다시 하라고 했다
대상포진에 걸린 이유는 백신 부작용 때문인가?
체력 저하 때문인가?
열등감대로 살 수 없기 때문인가?
정치적 신념이 착하기 때문인가?
약력
시집으로 『사북 골목에서』『기룬 어린 양들』 등 있음. 전태일문학상, 윤상원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