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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들마다 표현 방식은 달라요. 각양각색입니다. 이건 사실 당연한 것이예요.
생김새가 다르고 피부색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고 목소리가 다르고.. 키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듯..
말이라는게 밖으로 나와서 뱉어내면.. 글로 써지면.. 논리적 틀을 전제로 하게 되고 언어적 패러다임을 형성하는데..
붓다들도 다 마찬가지예요. 붓다들 역시 이런 언어적 한계에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이나 별반 차이가 없으나.. 다만 꿰뚫어 보는 깊이나 의식의 통찰력..
그 심오함에 있어서 배울점이 있을 뿐이예요.
깨달음의 총결론이라면.. 이미 수많은 붓다들이 설파해왔으나.. 나는 그것을 이렇게 말해요.
<너 스스로 자신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라고요. 네. 자기 자신 스스로를 감동시키는 것.
이것이 사실 동서고금을 통털고 시공을 넘어서 내가 감히 말씀드리는 깨달음의 총결론이예요.
중원의 모든 정신분야가.. 만귀일처.. 그 삼라만상의 만가지 이론과 지식들이 다 이것으로 귀결되는 것이예요.
내가 사랑이라는 말을 잘 안쓸려고 해요. 또 무저항이나 뭐 이런 말들요.
이미 보편적인 중원의 상식으로 굳어 버렸어요. 초인들이 이런 이야기 들으면 가끔 참으로 답답합니다.
굳어 버렸다는 얘기는 죽어서.. 형상의 껍데기만 남아 있다는 것이거든요?
형상의 껍데기라는 것은 그냥 형태만 남아 있고.. 실지로 진짜 생명력이 죽어버렸다는 얘기입니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신이 하면 로맨스란 말처럼.. 사랑이니 무저항이니 하는 말들이 이미 남탓하고..
되먹지도 않은 추잡한 이론으로 무장해서 사리분별 못하고..
아무때나 정치적으로 탄압하는 교묘한 위장의 용도로 전락되어 남용된다 이것이예요.
일종의 도덕론이나 윤리론처럼.. 소위 이론으로 뼉다구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는 것이죠.
이것들이 다 마찬가지예요. 소위 말하는 종교적 교리 같은 에네르기인 것이거든요?
소위 종교권의 교리를 넘어섰다고 자부하는 이들.. 정말 그럴까요? 실상은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종류의 믿음 체계를 개인적 교리로 대체했을 뿐이다 이 말이예요.
게다가 이런 단어를 가져다 <해석>하는 사람들의 의식수준에서 멋대로 가져다가..
알게 모르게 자기세뇌.. 동아리 세뇌.. 분위기 세뇌.. 패거리 세뇌.. 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해석의 자유라고 오용되고 남용되는 측면으로 인해서..
온갖 불상사와 장애가 비일비재하게 의식 속에 주화입마 처럼 퍼져왔기 때문에 그렇다 이 말씀이예요.
너 자신을 알라는 진리도 그래요. 자각. 리멤버. 순수의식. 고요. 또는 불성.. 신성.. 다 마찬가지 입니다.
이런 것들이 물론 깊이 들여다봐도 맞는 이야기이고 심오한 깊이에서 태동한 부분들이예요.
하지만 그것을 명확히 해석할 수 없는 의식수준에서의 피상적인 에고의 해석이 불순물로 늘 끼어들어서 힘들다는 것이거든요.
특히나 시간이 흐를수록 정체되고 말에 갇히게 되고.. 모든게 굳어지고 경직된다 이 말입니다.
수행자들이 초발심을 잃고 주화입마에 빠지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이와 같은 까닭입니다.
깨달음이란 바로 지금 이 순간... 진정한 삶의 깊이와 연결된 에티튜드다.
그것은.. 말로서 표현할 수 없는 <깊이>에서부터 우러져 나오는 생생한 감동 그 자체다.
이것이 바로 나 자신을 감동시키는 것이며.. 바로 우리 자신을.. 그리고 우주 자신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우주는 그대의 감동을 기다리고 있다. 우주가 바로 그대다. 그대가 바로 우주인 것이다.
우주 또한 감동을 통해 스스로를 성장하고 각성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대가 우주를 감동시키는 것이 바로 그대가 자신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우주는 감동의 열쇠를 그대에게 주었다. 삶은.. 그대가 우주에 감동을 창조하는 진정한 자신이다.
각성하라. 우주여.. 감동할지어다.. 우주여.. 깊은 감동과 하나 되는 삶 그리고 나..
이것이 바로 깨달음의 핵심.. 총결론인 것이다.
사실 매우 심플하고 간단한 이야기들이예요.
중원에 펼쳐진 온갖 이론들을 수박 겉핥기로 들쑤셔봐야 쉽사리 답 안나와요.
왜냐하면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의식수준에서 갖다 붙이기 바쁘고 조작하기 바뻐서 그래요. 즉 자기 해석의 한계에 막힌다는 얘기예요.
의식의 성장? 진화? 상승? 이런 말이야 맞는 이야기지만 기본적인 에티튜드 이상에서는 의미가 없는 허공의 메아리란 것이예요.
왜냐? 가슴이 열려서 공감하고 감동의 불길이 치솟지 않으면 그냥 목사님 설교에 눈꺼풀이 내려오는 것이지 뭐겠어요.
계속해서 옳고 그름의 흑백논리 속에서 긍부정의 온탕과 냉탕을 왔다갔다 하는 패턴에서는.. 결코 진정한 깊이를 열어낼 수 없어요.
내가 이런 깊이 없음을 비판하는 까닭도 그래요. 그것은 비판이면서 동시에 넘어서 <각성>이거든요.
그것을 각성하고 감당해내야 다음 우주의 깊이가 개벽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예요.
바로 이 깊이가 무한 감동입니다. 무한 감동..
살아 있는 원천.. 근원의 힘이며.. 중원에서 표현하는 순수한 고요예요.
내가 왜 이것들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 영성이란 추구하는게 아니다..
고요니 불성이니 신성이니.. 그런 것들이 아니다.. 하냐면요.
이것이 본시부터 말인지라 말과 사고를 통한 립서비스와 꼴통에서 기인하는 분위기용으로 전락해서 그래요.
물론 간화선처럼 의식 그 자체를 합리적으로 파고들어가 초합리를 향해가는 것이라면 괜찮아요.
하지만 어줍잖은 실력으로 말을 가져와 머리 속을 도배한다는 것은.. 사실 우주의 감동에 똥칠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발라 놓은거 나중에 자기가 못견뎌서 언젠가는 거둬내야 할 일입니다.
가끔 그래요. 아니 소위 수행자들의 허다한 에네르기 에티튜드 중에 이런게 있어요.
무저항의 깊은 고요에서.. 외부세계가 어떻든 저항하지 않겠다.. 모든 것은 완벽하다.. 오직 천사만 존재한다..
깊은 내면의 순수한 상태만이 진짜일뿐 모든 것이 환상이다. 모든 것은 내 마음이 빚어낸 것이니 내 탓이다..
모든 것에 관여하지 않고 무저항으로 받아들이겠다. 이런건 질적 깊이의 에티튜드로서 실전에서 체득할 부분인데..
실제로는 생각이나 사고로 이데올로기가 되버려요. 이런게 완전히 지랄병에 빠진 주화입마란 것입니다.
내가 이걸 단멸오류라고 일축해서 말하는데.. 사람인지라 상처받을까봐 그냥 핵심 내용만 짚어주고 말아요.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뒤에 가서 반드시 콩깍지 까게 되있어요.
그러니까 아무런 판단도 안하고 아무런 저항도 없는척 흉내내기 하다가..
뒤에서는 온갖 어두운 에고가 튀어나와요. 기만과 사기질.. 노략질.. 가식과 체면들 말이죠.
어떤 불의와 어떤 망발이 일어나도 소위 무저항과 고요의 갑옷을 입고..
자신의 일이 아니니 방관만 하겠다던 자들이.. 사실은 똥칠을 더하면 더한다 이 말씀이예요.
숨겨놓고 쟁겨놔서 잘 안보여서 그렇치.. 더하면 더했지.. 정말 더러운 꼬라지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물론 마음의 깊은 평정심은 중요해요. 하지만 진정한 평정심은 역설적으로 그것을 고집하지 않아요.
평정심에서 자연스러운 우주의 힘이 형상세계로 흘러들고 깃들어 신성의 숨결에서 창조하는 것이란 말이죠.
노자와 톨레 쪽 구루들이 고요의 무無를 강조하는 것은 형상세계와의 조화와 실질적인 의義를 창조하는 바탕을 제시하는 것이지..
어떤 겉모습이나 말 몇마디를 흉내내서 겉으로 나타나는 사고체계를 신앙하라는 뜻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건 내가 본래 이쪽 계통을 오랜시간 거쳐와서 누구보다 잘 알고.. 그래서 자신있게 말해줄 수가 있는 것이예요.
아무튼 정말 더러워서 입에 담지도 못해요. 그런 적나라한 어둠을 내가 다 끄집어낼 수가 있는데.. 정말 더럽습니다.
정말로 더러운 것은 말이죠. 겉으로 나타나는 표현이나 말 몇마디에 대한 부분이 아니예요..
심층에 부패한.. 아주 꼬깃꼬깃 감추고 감춰놓은 원형의 두려움 바로 그것들이죠.
어느정도로 진실을 외면하는지.. 오히려 진실을 외면하고 숨어버리는데 골이 배긴 에너지라서..
일반인들보다 훨씬 심한 수준의 주화입마에 빠져 있어서 그런지 더러워서 말을 못할 정도예요.
내가 이들을 각성시킨다면 우주가 진짜 大감동합니다. 내가 한사람이라도 더 각성시키는데 도움이 되면 그게 사랑인 거예요.
이것이 소위 최고의 사랑이라고 불리우는 의義에 속하는 주제인데..
붓다들 조차도 패거리 의식의 망발 때문에 쉽게 접근도 안되고.. 겨우 배워 나가는 과정에 있는 부분이예요.
물론 나는 지금 특정한 부류가 아닌.. 온 우주가 하나이고. 우리가 모두 하나라는.. 그런 대원칙에서..
우주의 각성.. 감동의 회복.. 깊이의 회복을 말씀드리고 있어요. 이것이 바로 각성입니다.
비방과 소위 단편적인 수준의 부정적인 에티튜드의 훼방질과 각성은 질적으로 방향이 달라요.
각성은 심층의 원칙과 심오한 우주의 방향성과 하나로 생생하게 흘러가는 것이예요.
그것은 깊숙한 마르지 않는 원천에서 잉태된 태고로부터 비상한 우주의 청춘이며 젊음입니다.
인간적인 의식에서 표현이 외설적이라던지 직설적이라던지 매너수준이 어떻다던지 하는 잣대가 아니예요.
혐오에서 기인하는 일방적 비난과는 질적으로 달라요. 혐오나 비난은 인간적인 자기 이득을 위한 수작이고..
반대로 예찬 역시 깊이 없는 흑백논리 수준의 의식에서 일어나는 허망한.. 이미 전제된 부정에 힘없이 대항하기 위한 담합일 뿐이예요.
엄밀한 의미에서 보자면 사기를 당한 것이든.. 친 것이든.. 사기이며 기만질입니다. 이게..
아무튼.. 혐오나 예찬의 흑백을 넘어선 <각성>이라고 하는 것은.. 우주이성. 심층의 대원칙과 맥을 같이 하는 창조의 원천입니다.
이것을 알고 스스로 터득해갈때 성장할 수 있고 또 감동이 깨어나는 각성의 우주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알을 깨고 탄생하는 생명의 한 줄기에 우주가 어떤 감동을 불어넣는지... 참으로 우리는 이제 그 생생한 깊이를 자각해야 합니다.
자신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은 근본적으론 오직 자기 자신뿐이예요.
자기 자신이다. 아니다.. 어차피 언어의 표현적 한계지만.. 핵심은 <스스로>입니다.
물론 우리의 관점에선 나와 너와 우리가 이 우주에 어우러져 있고.. 다 달리 보이고 제각각인 것도 맞는 말이지만..
핵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감동시키는 것.. 그것을 사랑이라 표현하든.. 열정이라 표현하든..
진정성이라 표현하든.. 최선이라 표현하든.. 의지라 표현하든.. 그 진정한 감동에 모든 열쇠가 있어요.
진정한 웃음이든.. 진정한 눈물이든.. 우리가 우주를 창조하는 것은 우주의 감동을 배워 나가는 것입니다.
그대가 웃을때 우주는 웃습니다. 우주는 그대에게 웃으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그대에게 울면 안돼.. 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대의 진정성에 함께 감동할 뿐입니다.
그대의 진정한 내면의 감동이 우주와 함께 할 뿐이예요. 더 깊은 진실로서 생생하게 말입니다.
그대가 진정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릴때.. 우주 역시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가 창조하는 것을 우리는 배우고 있고.. 우리가 배우는 것 속에서 더 원대한 창조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머리가 아닌.. 머리를 넘어선 가슴에서부터 감동을 끌어올린다는 것은..
더이상 주화입마의 어둠의 장막을 방관하지 않고 딛고 일어서는 각성입니다.
감동을 위해서 어둠이 있습니다. 살아 넘치는 생생한 감동을 체험하고 스스로를 자각하기 위해서..
역설적으로 똑같은 파워의 어둠이 있습니다.
이는 바로 빛의 각성을.. 신성을 우주에 창조(실현)하기 위해서 입니다.
인류는 이제 심층의 감동을 창조하는 순간을 열어가는 <초인시대>로 넘어가고 있어요.
더이상의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구루나 각자는 없어요. 우리가 모두 초인이 되는 시대입니다.
이미 초인들이 나타나고 있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의 내면에 역시 초인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 그대의 우주는 그대의 감동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때 그 감동이 초인을 일깨워 나갈 것이예요.
이제 인류를 위해서.. 지구를 위해서 어떤 봉사를 해야할지 우리가.. 스스로 창조의 키를 끄집어내야 합니다.
바로 진정한 깊이라는 심층의 보물상자에 꽂아줄 창조의 엑기스를 말이예요.
봉사라는 표현이 꼭 공명심이나 고지식한 이미지 구현을 위해서 행하는 서비스나 기부행위가 아닙니다.
그런 인공적인 의식 자체가 사실 의식의 포장과 위선이 은밀히 감춰진 것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내 말은 자원봉사하고 착한척 가식 덩어리로 이미지 쌓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물론 모든 경우가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경우가 특히 중원에 좀 있는 편이라서 하는 얘기예요.
중원의 온갖 종류의 이론들.. 파벌들.. 정신적 에네르기들.. 우주들..
내가 해체하고 분별해서 대대적으로 헤쳐모여 한번 외칠라 치면.. 열병식도 거행할 수가 있어요. 그야말로 장관일 겁니다.
일단 말로서 끄집어내는 의식이라면.. 어디서 굴러 먹었던 아무리 후까시를 쳐도 출처가 있고 근원이 있고.. 냄새가 나기 마련입니다.
심층으로 들어가서 보자면 모든 종류의 비교가 다 가능하니.. 거들먹 거리는 영적 노략질의 협잡꾼들이 참으로 우스운 일이예요.
어떤 각자나 구루의 이야기라도 다 가능해요. 우주가 궁극에서 하나라서 그렇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것이거든요.
심층의 감동을 열어나갑시다. 깊숙한.. 늘 함께 하던 깊이의 감동을 뿜어 올리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삶에서 맞이하는 그대의 진솔한 에티튜드로.. 스스로의 감동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오직 그대만이 그대 자신을 감동시킬 수 있으며.. 이것이 우주가 삶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된 목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주의 꿈을 실현시키는 가장 중추의 목소리인 것이예요.
그렇습니다. 바로 우주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우주의 꿈을 말이죠.
그대가 초인이 되고.. 우주 스스로가 초인이 되도록 말입니다. 우주도 성장을 꿈꿔요. 이것이 바로 우주가 성공하는 길이예요.
흑백논리에서의.. 머리 속.. 마음 속 아상의 허상으로서의 윤리나 도덕론으로서의.. 그런 죽어버린.. 영성이론으로서의..
나같은 사람이 보면 바로 해체되는 옹알이 수준의.. 실소를 자아내는 주화입마의 에티튜드를 넘어서..
누가 진정 이 우주의 살아 넘치는 감동을 생생하게 열어 나갈 수 있겠습니까.
누가 자신의 가슴 깊은 곳에 뿜어져 올라오는 진실과.. 참으로 함께 하겠습니까. 과연 누구 입니까.
누가 과연 자기 자신과 우리와 온 우주를 감동시키겠습니까. 누구 입니까.
그대 아닙니까? 아닙니까? 아닙니까??? 내 말이 틀렸습니까? 어떻습니까? 정녕 그렇습니까??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