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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 2008' 나홀로 국순이야기(2탄)
조금은 내용이 궁금하기는 하지만 긴 글에 알레르기가 있어 짧은글을 선호하시는 분이나 매우 바쁘신 분을 위해
우선은 가장 짧은 글로 요약해보겠습니다^^
- 작년에 이어 올해에 또 나홀로 국순을 걍 떠났답니다 -
- 겪어봤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다리도 아프고 힘들더군요 -
- 잘 때도 없고 힘들었지만 꾹~ 참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
- 못 참을 정도로 다리가 아팠지만 이를 악물고 또 걸었습니다 -
- 힘겹게 완주했고, 영덕게에 소주한잔 걸치고 몸이 쇠잔해져서 상경하였답니다 -
낯 기온이 많이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바람에 묻어오는 색깔은 어김없는 가을의 초입에 느낄 수 있는 색깔입니다.
어린 소년시절부터 가을을 탔었는데 오랜만에 가을바람 속에 그때의 동심을 느껴 봅니다
나 홀로 하는 두 번째 국토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실은 국순 보다는 내용상 극기훈련에 가깝단 생각이 들지만 우리국토를 걸으며 좋은 기를 모으고 그 토대 위에 자기성찰을 위함이니 '국토순례대행진'이 어색하지 않은 표현인 듯 합니다
AGAIN 2008! 체력적으로는 작년보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저를 아껴주시고 격려해주신 동문과 친구의 격려 등으로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4박5일이라는 짧은 시간이 저에게 한번에 많은 기를 불어 넣어주고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거란 기대보다는 이 짧은 시간들이 모여서 어느 시점에 보다 성숙해진 인간으로 살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작은 바람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출발(出發)-어느덧 익어가는 2008년
아버님을 떠나보내고..,
작년 기행문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지난해에는 사업관련해서 힘든 일이 많았었는데 올해 4월 하순 아버님이 돌아가신 시기를 전후하여 심적으로 힘든 시간들이 계속되는 듯 합니다
저에 대한 기대가 때론 부담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저에겐 평생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그늘이었고 후원자이셨으며 집안에서 유일하게 합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돌아가시기 1년여 시간 고생하시는 와중에서도 저에게 듬뿍 쏟아주셨던 믿음과 사랑은 평생 가슴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아버님의 병환과 더불어 2008년 외롭고 힘든 일도 많이 생기는 한해인 듯 합니다
병환 중에도 아버님과 저를 가슴아프게 했던 가까운 지인 들의 배신과 구설수, 치사한 음모와 계략, 오해.., 현재사업에 대한 회의와 의욕상실등..
좀 지친 듯 합니다. 정말 과감하게 1년 정도 정리하면서 쉬고 싶은데 주변상황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네요
좋든 싫든 전쟁터 같은 이 세월을 포기하지 않고(혹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 없는) 넘어야만 하는 것이 인생인 것도 같습니다
훌쩍 떠나 1년 정도 외국에서 고생하며 공부 좀 하고 오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은데 남은 현실은 녹녹치 않군요.
올해 정월대보름 태어난 아들쌍둥이를 포함하여 아들 셋과 아내, 이제 홀로 되신 어머니는 스스로 상황판단력이나 생활의지가 점점 나약해지시어 더욱 신경 써서 모셔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직도 모든 일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질 때면 두려움과 답답함에 순간순간 숨이 차 오르게 하지만, 어린애처럼 뛰쳐나갈 수 있는 시절이 아니니 인내와 희망으로 어떻게든 다함께 살 수 있는 지혜를 얻고자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올해 또 할 수 있을까..,? 쉼터로 여행이나 가고싶다^
2007년 국토순례를 끝마치던 순간부터 쉽지는 않겠지만 매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2008년에는 시간이 허락하면 텐트 등의 장비를 갖추어 500리(200KM)길 나 홀로 국순을 실행해 볼까하고 은근슬쩍 목표치를 올려보기도 했었지만 막상 올해의 몇 개월은 심신의 피로도가 극한 상황까지 몰리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버님이 임종하시기까지의 몇 개월 투병생활은 엄청난 고통에서 투병하셨고 마약진통제를 맞으며 온몸의 살이 마르고 피부가죽만 남을 때까지 견뎌내야 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아버님 병간호하면서 몸에 받지도 않는 줄담배를 끝없이 피워댄데다가 장기 입원형태가 아니라 계속해서 응급실로 입 퇴원을 반복해야하는 아버님 병환치료 방법 등으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몸이 조금씩 안 좋아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도움을 주기는커녕 죽어 가시는 아버님의 가슴을 갈기갈기 후벼파던 자손들간의 짐승보다 못해 보이는 아집과 갈등 등으로 제 가슴에도 피멍이 들어갔습니다
3개월 가까이 출근을 못한데다가 더해지는 스트레스는 심신을 함께 지치게 했고 제정신으로 보내기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혼자 국토순례한다고 누가 상주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기다려주는 것도 아닌데 아버님 49제를 치르고 나면 여름에 여행이나 좀 가보고자 생각했었습니다
정말 마음이 지쳤었고 출장은 수없이 다니지만 정작 홀로 여행해 본적도 거의 없는 듯 하고 해서 적당한 곳 물색이 되면 평소에 가지 못했던 나라로 보름정도 여행을 떠나보고자 마음먹었습니다. 5월중순경부터 인터넷으로 가끔 여행정보 검색을 가끔 하기 시작했지요
노는 것도 체력이 되야 놀지! 인간아
누워도 깊은 잠도 못 들고 술 한잔 마셔도 숨이 차서 힘이 들고 누가 말만 시켜도 예민해지고 짜증이 날 정도로 스트레스도 심했지만 몸이 거의 망가져 있었습니다
일을 하던, 싸우던, 놀던, 체력회복 없이는 모든 일에 기회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5월 20일 담배를 끊었습니다.
바로 7월 1일 대학병원에 평생처음으로 정밀 종합검진 예약을 하고 아버님 관련 서류업무 등을 마무리하고 6월초부터 작년에 한참 하던 북한산 산행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스트레스로 체열이 가슴위로 올라와서 시력은 떨어지고 초점이 야릇하게 집중이 안되더군요.
산행이 가장 좋은 듯 생각되어 6월초부터 1주일에 2회 정도 북한산 봉우리를 정해서 하루에 6시간정도 등산을 했습니다
3주쯤 지나니 눈이 좀 밝아지면서 몸이 회복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기관지가 약해서 담배가 몸에 잘 맞지 않았는데 담배끊은 것도 많은 도움이 된 듯합니다
막상 7월이 되니 여름상품 판매 등으로 바빠진 데다가 직원을 한 명 내보낸 상태여서 보름간 여행할 시간 내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더군요
짧지만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남았던 국순으로 다시 마음을 잡았습니다
어쩌면 여행을 계획대로 떠났어도 "나홀로국순"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힘겨웠지만 작년에 그만큼 의미도 있었고 올해 다시 해보고 싶은 생각이 마음에 항상 남아 있었습니다. 몸이 전 같지는 않아 많이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7월 한 달을 나름 바쁘게 보내다 보니 일정잡기가 쉽지 않더군요
한주한주 밀리다 결국은 여름의 끝트머리인 8월 18일 나 홀로 국순을 다시금 떠나게 되었습니다
출발준비-한시간 안에 모든 준비를 끝내라!
18일 월요일 회사 일을 끝마치고 퇴근하니 8시네요
저녁을 먹고 씻으니 9시인데 10시에는 집에서 나가야하니 1시간 동안 모든 출발 준비를 해야했습니다.
출발당일인 월요일 오전까지 쫒기다 출발 일정이 확정이 안된 상태였으니 준비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작년부터 생각해오던 알찬 준비물들이 구할 시간이 없으니 허당이고 최소한의 숙식을 위한 도구나 정보를 구해야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지도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년에 경험에 의하면 가장 힘들었던 것이 숙박문제여서 올해는 가벼운 1인용(비상용)텐트를 구해서 가려고 했었는데 작년이상으로 갑자기 출발하는 바람에 상황이 똑같아져 버렸네요
전문 지도판매점으로 갈 시간은 없고 급한 대로 근처 대형서점으로 갔더니 VJ특공대에서 추천했다던 75000:1 정밀지도가 있었는데 주요소, 음식점, 숙박시설, 주변관광지 이 4가지를 아주 상세하게 표시를 해두었더군요 표지에 2008년 신판 크~게 써놓았으니 기재정보도 최근 거라는 믿음이 가더군요
오~이런게 있다니! 얼른 구입해서 국순지에 해당되는 지면 4장을 찢어 가방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다음은 신발이었는데 등산화는 너무 무거울듯한데 운동화를 살 곳이 마땅치 않네요
실은 동문체육대회때 신었던 새 운동화가 있었는데 모양은 그럴 듯 한데 일산시장에서 산 1만5천원짜리 였습니다.
작년 국순때 만원짜리 운동화로 싸구려운동화가 왜 힘든지를 절실히 느꼈던지라 운동화는 좋은 것으로 신으려 했는데 올해도 초스피드로 출발이네요
그래도 작년보다는 5000원 더 주고 산 운동화니 다르겠지 하는 가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운동화는 그냥 통과하기로 하고 수건하나,비치반바지2개,등산양말3개,양말2개,물파스1개,치약,칫솔,티셔츠2개, 윈드자켓1개, 상경용긴바지1개,디지털카메라,등산모자,500ml얼린물 한병,게토레이한병,휴대용 화장지,휴대용3단미니우산,썬글라스,기본경비등을 등산가방에 채우니 든 것 없이 무게가 꽤나가네요
하여튼 잡히는 대로 가방에 담고 버스로 몇 군데 출장 다녀온다고 이야기하며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였습니다
출발(出發)-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된 나 홀로 뚜벅이 행진(行進)
밤10시쯤 집에서 나와 일산 대화역(3호선)으로 버스로 이동하여 지하철을 타고 강남고속버스터미널로 출발하였습니다
뭔 생각으로 그랬는지 졸다가 같은 3호선상에 있는 남부터미널역에서 잘못 하차하여 시간상으로 막차시간인 밤11시30분까지 안동행 버스를 탈 수 있는 강남 센트럴시티까지 갈 수 있는 시간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네요
어차피 버스에서 자다가 도착하여 새우잠으로 보충해야 할 형편이었으니 느긋하게 서울서 시간 보내다 첫차인 6시40분차를 기다리기로 작정했습니다
일단 남부터미널역 근처 치킨매니아란 호프집에서 닭다리에 생맥주 한잔하고 국순정신을 이용하여 남부터미널역에서 강남고속버스 터미널까지 걸었습니다
1시간쯤 걸린 듯 합니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새벽3시 모든 버스 편은 끝나고 대합실에서 밤을 지새는 몇몇 사람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매표소와 매점사이에 있는 스낵코너 근처 긴 의자에 저도 또아리를 틀고 누웠습니다
배낭을 베고 누웠는데 그리 춥지는 않았지만 덮을게 없어서 그런지 뭔가 휭한 느낌이 듭니다.
노숙할 때 신문지라도 덮으려고 하는 것이 꼭 추워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지 좀 덮거나 가리면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느낌이랄까요 ㅎㅎ
새벽4시가 넘으니 좀 썰렁해서 안되겠기에 터미널 인근 반포아파트단지내에 동네 사우나에 입성, 잠시 눈을 붙인다는 것이 눈을 뜨니 화요일아침 8시네요 허걱!
가장 빠른 것이 8시 30분차, 바로 매표하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다시 하는 행진(行進)-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길
안동에서 지난해의 감회를 느끼며..,- 행진 첫째 날
19일오전 12시쯤 되어 드디어 안동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안동이 어떤 곳입니까? 작년 18년만의 여정을 마감했던 감동의 땅이자 개인적으로 여행을 오곤 했던 추억의 땅이었습니다. 안동 땅에 내리자마자 느끼는 친근감은 남다른 것이었습니다
안동에 내려 작년에 마지막 힘을 짜내어 거닐던 안동교를 둘러보고 안동역 근처에서 안동에서 가장 유명한 특산품인 안동 간고등어로 점심을 하고 힘찬 발걸음을 시작했습니다
일단 계획은 첫 번째, 당일 숙박예정지까지 무조건 도착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 '물은 보일 때마다 마시고 담아두고 사가자'였으며 세 번째는 '끼니비스므리 되면 다음식당 기다리지 말고 일단 밥먹자'였습니다
참으로 단순한 계획이었지만 2007년의 쓴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에 중요한 계획이었습니다
안동주변에 많은 관광유적지와 기념관(하회마을,민속박물관,조각공원,안동호,태조왕건촬영지등..)이 있었지만 어제의 실수로 오전을 까먹은 상태라서 가능하면 첫날은 최대한 속도를 올려 걸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목표는 안동터미널에서 28km지점에 있는 덴마크호텔! 1차숙박지이기고 한 호텔로 안동시의 동쪽을 감싸는 안동호와 함께 자리잡은 임하호변에 위치한 오래된 서구풍 숙박시설로 이름은 호텔, 규모는 모텔수준의 숙박시설이었습니다
일단 거리를 확보해야하기에 출발! 바람을 가르며 지나는 화물트럭 소리와 끊이지 않고 울어대는 매미소리만이 저를 적막하지 않게 해주고 있었습니다
매미소리를 몇 시간동안 환청이 나도록 듣다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 하나 있더군요
다들 아시겠지만 매미는 7년을 땅속에서 고행? 하다가 날개를 달고 날아올라 7일간을 원없이 웁니다. 참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매미가 7일간만 땅속에서 살다가 7년간을 울어댄다면.. ㅎㅎ 아마도 대한민국 산야는 시끄러워서 못살지 않겠습니까
7년 동안에 살아남은 놈들만 날아올라 울어도 이리 시끄러운데(물론 처음 1시간은 고향의 정취가 느껴졌습니다만)7일간 달랑 고생하다 7년간 떼 지어울면...! 허걱..!!
하여간 걷는동안 그런 황당한 상상을 하며 혼자 미소지어 보았습니다
2시간 여를 걸으니 안동대학교가 나오네요.
대학교 후문 나무벤치에 물을 마시며 앉아있으니 갑자기 졸음이 몰려오네요. 더위가 한풀꺾였다고 하지만 8월의 한 낯은 아직도 열기가 가득했습니다.
전날 편히 잠을 못 잔데다가 더위에 몸이 녹으면서 나른해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출발 하루전인 일요일까지 약간 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그 날 오후에 코를 푸는데 코피가 뚝뚝떨어지네요.
참 오랜만의 코피, 몸 안의 독이 빠지는 것이라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넘겼더랬습니다.
작년에도 전날 밤새우다시피하고 새벽부터 걸었어도 다리는 아팠지만 몸이 이번처럼 무겁지는 않았는데 감기가 계속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잠이 아직 덜 깬듯한 기분 나쁜 찌뿌듯함으로 울어대는 매미소리에 간간이 까마귀가 후렴구를 넣네요. 사부란재라는 작은 고갯마루였는데 주변에 공동묘지(포진)가 있어서 그런지 맑은 안동 길에 어인 까마귀란 말입니까
그래 너도 어느 나라에서는 길조일진대..
환영인사라 생각하고 저도 인사차 돌맹이를 확 던져주었습니다 ㅋㅋ
3시가 넘으니 걷기에 좀더 편한 날씨가 되었고 거대한 병풍처럼 좌우에 끝없이 펼쳐진 가파른 산들과 녹음을 바라보며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지닌 산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두시간여를 더 걸으니 망천교라는 긴 다리가 나오네요
오늘의 숙박지가 있는 임동면까지는 7-8km거리이고 등뒤의 서산에서는 해가 어느 덫 잦아들고 있었는데 산길에서의 코끝에 걸리는 초저녁 바람이 좋네요
어린 시절 뒷동산에서 뛰어 놀다 저녁 무렵 집에서 피어오르던 굴뚝연기를 보면 이런 느낌의 저녁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뛰어가곤 했던 것 같습니다
조금만 가면 오늘은 긴밤이다! 아야이야이에오~~
이제 두시간 정도면 오늘의 휴식과 어제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임동면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임동에 첫 번째 숙박지를 정한 것은 첫날 걷기에 적당한 거리이기도 했지만, 임동대교를 건너면 가래골을 지나 가랫재라는 고개를 하나 넘어야하는데 높이를 짐작할 수 없어서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빨리 덴마크호텔이라는 곳에 도착해서 푹 쉬면서 재충전하고 둘쨋날과 셋쨋날 좀더 시간을 단축하여 영덕에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도착하면 긴 다리 잘빠진 대게 한 마리 골라 안주 삼고 시원한 얼음소주 한 병 할 생각을 하니 발걸음도 산뜻 힘이 나더군요
망천리 대평교를 건너니 34번 국도는 임하호를 따라 경상북도 소방학교가 있는 임동까지 호수가를 따라 곧게 뻗어 있었습니다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할 생각으로 걸음을 재촉하니 서서히 산마루에 있는 마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면소재지인데 생각보다 아담한 사이즈더군요
가구수도 동리수준정도의 몇 호가 모여있었습니다
임동에서 만난 첫 번째 구멍가게에서 이온음료 한 병을 들이키며 생전 처음 와보는 산마루 작은 마을에 입성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덴마크는 어데 갔을까? 마크야~ 마크야~! 덴마크 어디 있니~!!
아 그런데 임동마을 호수 변에서 뾰족탑에 불을 켜고 저를 맞이해 줄 덴마크호텔이 안보이네요. 해는 이미 떨어졌는데 왜 불을 켜놓지 않았을까
사전답사 없이 진행하는 나홀로 국순의 막연한 불안감이 또다시 엄습하면서 저는 갑자기 발이 바빠져서 덴마크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고 계속 가니 임동교가 나오네요
분명 지도상에는 덴마크호텔을 지나쳐야 임동교가 나오는데 어찌된 것일까요
다시 빠구! 찬찬히 호수가를 살펴보니 어둑어둑한데 20여미터 높이로 설치된 철제 차단막이 방진포(먼지를 막아주는 천막)가 설치된 채 세워져있네요
가까이 다가서서 출입로로 안을 들여다 보니 오 마이 갓!
이 저녁에 불을 밝히면 아름다울 것 같은 유럽풍 외형의 우리 덴마크가 뒷벽부터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허걱!
수퍼아저씨께 여쭈어보니 올초부터 환경문제 때문에 시에서 보상받고 철거중이라고 하더군요
아~ 어머니! 저는 어디서 자야합니까?
방법은 하나, 무대뽀 정신으로 가랫재를 접수한다
방법이 많지 않았습니다 다리는 풀리고 어제부터 계속 얼굴이 조금 부은 상태였는데 피로감으로 눈이 침침해오네요
국도 변에 몇 개안되는 숙박업소 위치를 100%신뢰한 것은 아니지만 VJ특공개에 소개되었다는 최신 네비게이션 정밀지도에 나와있는 34번국도에서 가장 큰 숙박업소가 허물어지고 있을 거라고는 별로 예상을 못했습니다
낯도 아니고 밤에 어느 집을 찾아가 재워달라고 부탁할 형편은 아니고 방법은 다음 숙박업소가 있는 곳까지 가보는 것인데 지도상으로 10km를 더가면 고향장이라는 모텔이 있었는데(이것도 지도상으로) 문제는 한국전쟁시 전투가 격렬했다던 가랫재였습니다
낯에 평지를 10km걷는 것이 아니라 야밤에 홀로 10km길이의 산을 넘어야 한다는 부담이었지요
물 보충 후 출발~! 첫 번째의 큰 변수였지만 무대뽀 정신으로 무장하고 야간산행 한다 생각하고 가랫재를 향해 전진했습니다
임동교를 건너 한시간 정도 걸으니 고개초입에 가랫재 휴계소가 있네요
저녁을 못 먹은 지라 휴게소에서 된장찌개에 밥 한 그릇을 먹고 이온음료 한 병을 더 샀습니다.
나오는 길에 음료를 사며 가게 아저씨 물었지요
"아저씨, 청송쪽으로 얼마나 가면 모텔이 나오나요?" 혹시 고향장도 없어졌을까봐 속으로 긴장하며 물어보았습니다
사실 정말 잘 때가 없으면 생각해둔 것이 마을마다 있는 버스 승차장에서 새벽까지 웅크리고 잘 생각이었습니다
요즘은 버스를 기다리는 승차장마다 3면을 막고 긴 나무의자가 하나씩 설치되어 있어서
그나마 잠깐 등 붙일 수는 있겠다 생각했지요.
집에서 챙겨온 긴 팔 윈드자켓이 저에겐 밤을 지낼 수 있는 최후의 보루였던 샘이었지요
다행히 아저씨의 대답은 긍정적인 반응70%, "거기를 이 밤에 걸어 넘으려고?" 하는 의구심의 눈초리 30%였습니다
아저씨 왈 "아,여서 차로는 한 5분, 걸어서는 한 20-30분 걸릴끼요"
미스터리하나-어떻게 식당 아저씨는 가랫재 고개를 20-30분에 넘었을까??
정답은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 식당 아저씨는 평생 걸어서 한번도 가랫재고개를 넘어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헐~
산을 지그재그로 도는 고개는 어디가 끝인지 알 수가 없고 뜨문뜨문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 그리고 자동차가 지나가지 않을 때는 머리 위에 헤일 수 없는 별들만이 맑게 빛날 뿐 적막과 어둠 자체였습니다
문득 문득 몰려드는 졸음과 피로는 분명 오늘은 오버페이스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국순의 나름 편안한 일정은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었지요
아무리 꼬리부분이지만 태백산맥줄기를 넘는 일인데 지금 넘고있는 고개의 가파름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란 생각도
들긴 하더군요
아마도 가랫재를 넘으면서 제가 가사를 알고 있는 노래는 기운을 복 돋우는 차원에서 목청껏 다 부른거 같습니다
생각외로 아직도 외우고 있는 군가가 여러곡이더군요 ㅋㅋ
"샤나이로 퇴여나서 활일도 만타만!... 헉헉"
현재시간 밤10시,체감시간 새벽1시. 아 이제 내리막길입니다
내리막길은 생각 외로 직선도로였고 30여분쯤 더가니 저 멀리 스크린간판이 설치된 것이 눈에 들어왔고
"어서오세요 고향장"이 "어서오세요 고냥자"로 보이네요
야밤에 먹은 눈물 젖은 멧돼지 고기
1층에서 계산을 하고 3층 방으로 올라오니 피곤하고 졸립기도 하지만 갑자기 엄청 허기진 생각이 드네요.
이 시간에 나가서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을 리는 만무하고 방에 야식집 전화번호가 있길래 전화를 했습니다. 식사는 안되고 현재 가능한 메뉴는 한가지, 멧돼지제육볶음 대,중,소.
3만,2만,1만 "아줌마, 멧돼지제육볶음 소 만원짜리랑 밥 한 공기 부탁할게요"
아줌마 왈"2만원 이하는 배달이 안 되는데요" "그럼 맥주 두병 추가할게요"
그 아줌마 주인아저씨에게 물어본다더니 하는 말이 "2만원이하는 기름 값이 올라서 배달이 힘들답니더"
"아 그럼 제육 작은 거랑 맥주2병 시키면 만6천원인데 기름값 좀 드릴게요"
그 아줌마 왈 "글쎄 2만원짜리 아님 배달이 어려울거 같네예" 아~ 꼴통!
피곤한데다 짜증이 확 나데요. 식당은 하나고 대안은 없고...,
뭐 귀찮아서 안팔겠다는 심산인거 같은데 차라리 영업끝났다고 하던지..참!
갑자기 택시 승차거부가 생각나데요. 승차거부하면 불편신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승차거부나 배고픈데 음식 판매거부나 비슷한 죄라 생각되어
느닷없이 나온 말이 "당신들 신고해버릴거야~ 앙!"큰소리를 쳤네요
그 집 남정네랑 전화 바꿔가며 무슨 이유로 신고하느니 하면서 한참을 티격태격하다 아무리 피곤해도 신성한 국토순례에 아니다 싶어 좋게 이야기하고 서로 사과하고 맥주 한병에 만원짜리 작은 거로 배달이 되었습니다
이미 나른해 입맛이 없어진데다 정작 추가한 밥 한 공기는 가지고 오지도 않고 아 스~* 고기는 야생소가죽처럼 질기고 맥주를 홀짝이며 양파 몇 개 집어먹다 밀어놓고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지난밤의 기억들을 감싸 안은 채 해는 다시 떠오르고 - 행진 둘째 날
어제 밤의 기억들은 밤새 아련해지고 한여름에 제법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가을의 향취와 향수를 가득 뿌린 채 이내 사라져 버리네요
아침에 일어나니 왼발 뒷꿈치와 오른발 엄지 발가락에 바둑알 만한 물집이 잡혀있네요
엄지발가락 쪽의 물집이 신발 신기에 불편하여 손톱으로 꼬집어 당겼더니 터지며 물이 쏙 빠지네요. 비누로 깨끗이 씻고 새 등산양말로 갈아 신었습니다.
입맛이 써 아침은 거르고 여관방안에 있던 일회용커피를 한잔 타서 마시고는 냉장고에 보관해두었던 생수를 다시 등산용 가방에 장착, 그렇게 행진 두 번째 날을 시작하였습니다
첫날에 물집이 크게 잡힐 정도의 오버페이스가 남은 이틀 간의 일정을 길고 힘들게 느껴지도록 만들더군요
어제 걸은 거리를 따져보니 40km가까이 되었습니다.
오후부터 출발한 첫날치고는 상당히 많이 걸었습니다. 국도 따라 남은 거리는 이제50여km, 남은 이틀 간에 소화해야 하는 거리는 첫째 날에 비하면 부담이 적은 거리였습니다
계산상으로 이틀로 나누어 25km씩 걸으면 되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페이스가 이미 무너진 상태에서 무조건 이틀 안에 행진을 끝낸다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둘째 날의 작전은 이랬습니다
어제의 숙박지에서 20km정도 가면 대동장이라는 모텔이 하나 있었는데 그 모텔을 지나치면 영덕까지(30km) 숙박할 곳이 없습니다
휴게소에서 안동과 영덕일대를 넘나드는 운전자(과일수송 납품등)에게 재차 확인한 내용이고 지도상에도 그러했지요
다행인 것은 대동장이라는 모텔은 확실히 있다더군요
몸에 좀 무리도 오고 해서 둘째 날은 거리를 좀 단축시켜 20km지점인 신촌약수탕으로 유명한 신촌리에 있는 대동장에서 묵고 마지막행진날인 셋째 날에 대동장에서 영덕까지 30km를 축지법으로 넘어가서 단풍색 영덕대게찜으로 배를 채워 보는게 목표 였는데,과연 그랬을까요?!
모텔을 나와 걷다보니 어제 밤에 실랑이했던 멧돼지전문의 청송이라는 식당이 전방 2km정도 거리에 있더군요. 별로 멀지도 않은데 기름 값 타령에 그렇게까지 인색하게 굴다니 참 치사한 인간들이구나 싶은 생각이 다시 들더군요 ㅎㅎ
입맛을 돋우어준 청송의 왕복숭아
오전 10시쯤 출발하여 8km쯤 걸으니 청송군 진보면이라는 곳이 나오네요
구간동안 폐교된 초등학교가 2개나 되는 것을 보면 한동안 인구가 꾀나 많이 빠져나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을을 빠져나오는데 한 2km정도 걸은 듯 합니다 마을이 길기도 참 길군요
아침도 거른지라 근처 순대국집에서 점심을 청했습니다
음식 타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큰 도시인 안동에서 먹은 간고등어정식을 빼놓고는 음식들이 정말 맛없네요 반찬들은 소금과 고춧가루외에는 양념을 사용하지 않는 것 같은 맛이고 이 식당도 몇 점 들어간 순대고기가 햇빛에 급히 말린 고기처럼 껄끄럽고 게다가 양도 턱없이 적네요. 맥주한잔 하려다 대충 떠먹고 나왔습니다
안동과 영덕을 제외하고 기간동안 먹은 음식들이 모두 그렇더군요
대도시 음식들은 지역별로 거의 음식 맛이 평준화 된 듯 한데 시골지역들은 지방특색이 많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양념사용이나 음식의 맛은 개인적으로 경기와 호남지역이 훨씬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주인장들도 친해지면 엄청 말씀들을 잘하시는데 처음대할 때 툭툭 한마디 던지는 말들이 참 짧아서 식당의 인심이라도 얻어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식당의 인심이란 밥시켜서 음식 맛이 안 맞으면 저 같은 경우는 생고추나 양파 고추장 이런것을 부탁하는데 이번에는 달라고 했다간 "딴디가서 쳐무!" 할거 같아서 입다물고 주는 대로 먹다 왔습니다 ㅎㅎ 물론 그분들 본심이 아니란 걸 압니다^^
청송군과 영덕군에 걸쳐서 사과와 복숭아가 많이 나옵니다
사과는 이제 조금씩 출하가 시작되고 있었고 복숭아는 한참 출하중인데 끝물이 얼마 안남은 상태더군요 국도변 다니다보면 포장 쳐놓고 과일 직판하는 곳이 많은데 이곳도 꽤나 많았습니다
입맛도 깔깔하고 단물나는 과일이 그리워지네요
부스를 설치해서 길가에서 장사하시는(주로 농장을 직접 운영하시는 분들)아주머니에게 "안녕하세요 많이 파셨어요? 맛 좀 볼 수 있나요?"라고 인사하니 "와 걸어 댕겨요? 맛보소"하고 반갑게 맞아주시네요
구석에 벌레 먹은 엄청 큰 것으로 하나 골라 깎아 한 입 입에 넣으니 그 맛은 달기도 했지만 양념으로는 만들 수 없는 정말 신나고 오묘한 맛이네요
입맛이 다시금 살아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때부터는 영덕까지 판매하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계실 때마다 사과나 복숭아 하나씩 꽤나 여러 번 얻어먹었습니다
복숭아 먹으며 아주머니가 주신정보하나:
다름 아닌 수제 복숭아 통조림 만들어먹는 방법인데요
복숭아는 다른과일에 비해서 장기보관이 쉽지 않은 과일인데 통조림으로 만들어 유리용기에 담아서 보관하면 오래 보관도 되고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자연산 간식이라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한번 만들어먹어 봄직 하더군요
이미 아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공장에서 설탕등등 잔뜩 넣어서 진공어쩌구해서 어렵게 만들어지는 음식인줄 알았습니다
1.일단 모양 상관없이 딱딱한 복숭아를 구매합니다
2.껍질을 벗긴 후 씨를 빼고 먹기 좋은 크기나 모양으로 적당하게 자릅니다
3.아무 첨가물 없이 솥에 넣고 중간 불로 가열하되 김이 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약한 불로 7-8분 더 가열합니다
4.불을 끄고 식히면 단물이 우러난 건강식 수제 복숭아 통조림이 되는데 유리용기등에 담아서 김치냉장고등에 보관했다 꺼내먹으면 별미랍니다
5.국물이 많은걸 원하면 물을 적당량 넣거나, 더 단것을 원하면 설탕 등을 첨가하여 끓 일 수도 있지만, 좀 당도가 있는 복숭아라면 자연산 그대로가 좋겠지요^^
동네전체가 사이다에 녹물 타먹는 신촌리 - 숙박지 대동장 도착
청송군 진보면 고현리 꽃돌전시장에서 기묘한 모양의 꽃돌을 구경하고 3시간정도 걸으니 두 번째의 숙박지가 있는 신촌리라는 곳이 나왔습니다. 시간은 오후4시쯤 되었네요
이곳은 동네 전체가 특이한약수로 유명한데 여기저기에서 펑펑 쏟아지는 물들이 모두 사이다처럼 톡 쏘는 탄산수인데 씁쓸하고 녹물 맛이 심하게 나더군요
탄산수에 철분이 많이 녹아있어서 그렇다는데 동네 분들 지나다니면서 무슨 막걸리도 아니고 수시로 퍼드시네요. 저는 잘 못먹겠더라구요
일단 꼭대기 층에 주왕산이 바라보이는 쪽으로 방을 잡고 잠시 누웠습니다
지방에 내려 온 것이 어제오전인데 머릿속의 체감시계는 벌써 보름쯤 훌쩍 지나간 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깨어보니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시간은 6시 조금 넘었습니다 잠깐 자고 일어나니 몸이 더욱 가라앉는 느낌이고 발이 부은 듯 하여 양말을 벗어보니 물집이 여섯군데나 잡혀있었습니다
왼발의 두 개는 심하지 않았지만 오른발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새끼발가락 앞쪽에 강낭콩만한 물집이 잡혀 새끼발가락이 네 번째 발가락보다 길어졌습니다.
뒷꿈치에 바둑알 하나, 엄지발가락과 발가락사이에도 하나씩.
그냥 내일 걷기에는 너무 커져서 터트려야 하나 한참 망설이다 손톱으로 살점을 조금씩 떼어내고 비누로 깨끗이 씻어냈습니다. 으악~! 엄청 쓰라리네요
달인이신 김병만선생은 이렇게 말씀을 하셨지요~ "엄~청시리 큰 물집 떼어내고 때타올로 밀어 보셨어요? 안해보셨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이거 정신이 확 납니다!" ㅎㅎㅎ
내일 덪나지 말아야 할텐데 걱정이되었습니다 30km라..에휴~~경험상 대충 짐작은 가네요
저녁을 해결해야 했기에 욕탕용 슬리퍼를 신고 동네 어귀로 나왔습니다
여관 바로 옆에 식당이 있어 매운 닭볶음탕(닭도리탕)을 시켰습니다. 1인분에 만오천원이라고 적혀있는데 닭도리탕을 엄청 좋아하는 터라 간만의 매콤달콤한 맛이 기다려졌습니다. 양이 꽤 많이 나오더군요.. 커억, 이런 맛도 내는구나
좀 심하게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냥 생 닭 먹는 게 낫습니다
올해 국순은 맛하고는 별로 인연이 없네요
다시 한번 기대 속에 다짐을 했습니다. 내일 밤에 영덕대게나 실컷 먹어야쥐~!!
재워주고 먹여주면 뭐뎌! 연락한번 없는 싸가지들인디
식사를 대충하고 동네어귀 대문 앞에서 자리를 깔고 파를 다듬는 아주머니에게 말을 붙였습니다 "아주머니 이 근처에는 민박 하는데가 거의 없나봐요? 잘 데가 마땅치 않네요"
아주머니는"요즘은 식당들 할라카지, 민박은 잘없으요.이런데서 민박해봐야 돈도안되고 손님자리 비켜줘야지 불편치요"라고 하시네요
학생 때는 국토순례하며 가끔 마을에서 숙박도 부탁드리고 했다고 이야기드리니, 요즘은 그때랑 많이 다르다고 하더군요
세상이 험해져 의심도 더 많아지고 재워줘야 신경만 쓰이고 득 될 일 없다고 하시더군요
십여년 전에는 아주머니는 국토순례하는 대학생들도 2-3명씩 재워주고 먹여주고 떨어진 운동화까지 본드로 붙여서 보낸 적도 있었는데,한놈도 다시 연락오거나 찾아온 인간이 없다고 하더군요 "나도 자식 키우는 부모라고 그리했는데, 성숙해질라고 국토순례한다던 놈들이 기본도 안된 싸가지 없는 놈들 아잉겨!" 아주머니는 열받아서 다시는 안재워준다는 투로 말씀하시네요
한편,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작년 국순때 군위면에서 아무조건없이 고생한다고 재워주고 먹여주신 할머님께 찾아보기는커녕 전화한번 못했네요
당시 심정은 숙박비 10만원을 요구했어도 무조건 응해야 하는 형편이었는데 사람의 마음이 간사해 지는 것에 부끄럽고 마음이 씁쓸해지네요
세상의 인심이 점차 각박해지는 것이 누구 한사람의 책임일 수는 없지만, 작은 이기심과 작은 불신들이 모이고 모여서 그렇게 변해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추석전후에는 승용차로 2007년 국토순례지를 다시 한번 돌아 볼 겸 그때 도움 주셨던 할머님을 꼭 찾아 뵈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바람도 쏘일 겸 승용차로 한번 가봐야지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저런 개인사정을 핑계로 벌써 1년이 가버렸네요. 할머님 죄송합니다
방에 들어오니 밤늦게 까지 올림픽 중계가 한창이네요
시작하기 전에는 별로 관심들이 없다가 막상 개막식이후에 한국선수들의 선전 때문인지 온통 텔레비전도 올림픽중계뿐이고 다들 중계방송 보느라고 정신들이 없네요
저녁에 피부를 떼어낸 물집부분을 다시 한번 씻고 자정을 조금 넘겨 잠이 들었습니다
피곤은 했지만 주왕산 기슭에서 타고 내려오는 맑은 공기가 새롭게 기운을 복 돋아 주길 바라며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잤습니다
자, 이제 영덕이다! - 행진 셋째 날
날이 밝자 자연히 눈이 떠지더군요 6시쯤 되었을까 간단히 세수만 하고 짐 정리한 후
여관을 나섰습니다. 1층에 내려오니 아주머니가 식사준비를 하고 있더군요
밤에 부탁하여 얼려놓은 생수병 2개를 등산가방에 장착하고 힘차게 출발~!
다행히 어제 터트린 물집이 조금 다시 부푸러 오르긴 했지만 덫 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코가 그렁그렁하고 콧물색깔도 탁하고 눈이 침침해지는 것이었는데 감기가 피로에 조금 더 심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감기 걸렸을 때 오히려 북한산을 오르내리며 땀으로 감기를 이긴 기억이 있어서 크게 걱정을 안 했지만 왠지 32km가 셋째 날은 처음부터 너무 힘겹게 느껴만 졌습니다
황장재를 넘어서 주왕산국립공원을 끼고 돌아 거의 쉬지 않고 4시간을 넘게 걸으니 14km정도 왔고 용추폭포가 나오더군요.
영덕군 지품면에 위치한 자연폭포였습니다
셋째 날 작전은 무조건 초반에 반 이상 거리를 좁히는 것이었습니다
무아지경으로 초반에 반 이상 가야 그 다음에 설사 몸에 무리가 와도 어찌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에 지치면 아마도 포기하고 싶거나 하루를 더 연장해서 걸으려고 했을 거 같습니다
다행히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큰 고개가 없었습니다.
언덕은 있었지만 대체로 영덕바다까지 내리막이 많았습니다.
처음에 힘있을 때 오전에 걸은 것도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굴러서라도 갈 수 있는 언덕에 오른 것이지요
혹시 저에게 선물할 기회가 있으시면 품질 좋은 운동화 한 켤레 부탁함돠~!
운동화가 겉은 멀쩡한데 3일을 걸으니 프라스틱고무 바닥의 딱딱한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네요. 발 앞꿈치가 뒤틀리는 느낌 이랄까요.
30분 정도 쉬었다 일어나니 오른쪽 발로는 제대로 서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부은 것은 아닌데 뼈 사이의 근육들이 갑작스런 활동량에 경직되어 그렇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사이 새로이 물집이 잡히기도 하고 재발한 물집도 있었지만 발가락이 서로 달라붙어 불편한것 말고는 생각보다 통증은 별로 없었습니다
등산가방을 오른쪽 어깨에다가 메고 잠시 맨발로 걸어보았습니다
헉!, 200m도 못 가서 이건 아니구나 싶더라구요. 아스팔트길의 충격이 그대로 전해지는데다가 도로를 조금만 벗어나면(차를 피할 때) 풀들이 너무 억세서 맨발로 밟기에는 무리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지방국도에는 갓길은 고사하고 차가오면 피할 공간이 30cm남짓 될까말까입니다. 쏜살같이 달리는 차들이 저를 피해가던 제가 잠시 멈추던 해야하는 구간에서는 엄청 불편하더라구요.
국토순례행진 하라고 인도 만들어 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길에서 대형차가 두 대가 교차할 때 근처에 제가 끼어있으면 꼭 날아갈 것 같은 위협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커브길에서는 안전사고 위험도 있어서 국순내내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 중에 하나였습니다
운동화를 꺾어 신고 조금 더 내려가니 지품면사무소 소재지가 나오고 처음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아침을 안먹고 줄창 걸었네요
돌솥비빔밥 하나를 시켜놓고 맥주한병을 먼저 마셨습니다.
아랫목에 얼음 녹듯 몸이 축 퍼지네요.
밥 나올 때까지 방안에 다른 손님도 없겠다 배낭을 베고 누워서 잠시 쉬고있으니 밥이 오네요. 이제 맛에 대해서는 기대를 안 해서 그런지 행진 기간 중 처음으로 먹을만한 음식이었습니다. 밥 먹으니(맥주때문인가^^) 더 늘어지고 롤러 스케이트 하나만 있으면 환상의 슬러프인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남은 거리는 18km! 70여km를 왔는데 설마 가지 못하리요.. 현재시간은 오후2시
양말 세 켤레를 신고..
현실적으로 속도를 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오전부터 그것은 예상을 했었으니까요.
이제부터의 남은 목표는 시간여유가 있으니 오늘 일정을 포기할 정도의 큰 탈 나지 않고 완주하는 것이었습니다
올해는 스프레이물파스를 뿌려도 별로 근육통에 도움이 안되네요.
작년에 쓰던 거라 그런지 약효를 느낄 수가 없네요
최대한 발의 쿠션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발목까지 오는 짧은 등산양말을 신고 그 위에 첫날 신던 탄력 좋은 일반양말을 신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위에 종아리까지 오는 등산양말을 신어 윗부분을 발목까지 접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운동화 끈을 조금 헐겁게 하고 걸으니 발바닥에 쿠션이 생겨 훨씬 낫더군요
영덕군으로 넘어오니 복숭아산지가 엄청 많았습니다. 저는 몰랐는데 전국적으로 복숭아로 유명하다고 하더군요
물론 영덕대게 다음으로요
아주머니들이 짧게는 200m,길게는 500m간격으로 농장직판을 하고 계셨는데 "안녕하세요? 많이 파셨어요? 맛 좀 봐도 될까요" 이 몇 마디면 듬뿍듬뿍 주셨습니다
들고 갈 수가 없어서 그렇지 상처 나거나 벌레 먹은 복숭아는 모두 제것 같았습니다
근데 한집에서 딱 한 개씩만 먹었습니다.
잠깐씩7-8집을 들렸는데 가급적이면 한 개씩이라도 먹으면서 현지 주민들과 대화할 기회를 만들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주머니들과 제가 안동서부터 걸어온 일서부터 아주머니가 영덕으로 시집 온일, 과년한 딸 결혼이야기 등등 여러 집에서 참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도 있고 감동 받은 이야기도 있었는데 기행문에 일일이 소개하기에는 좀 삼천포로 빠질 거 같아 생략하기로 했습니다
한 줄로만 이야기하자면,"人生萬事 塞翁之馬요 轉禍爲福이라"모두들 힘내시고 화이팅하시길 빕니다
왼발의 영광
그렇게 뜨문뜨문 걷고 있는데 국순 간 것을 아는 유일한 친구에게서 문자가 한통오네요
마지막 국순 일정 잘 소화하고 있냐고.. 현실은 "죽겄어!"였지만, 영덕대게 상봉하기 위해 마지막 스퍼트중이라고 답장을 하고 나니 영덕 오십천 이라는 곳까지 왔네요
이제 남은 거리는10km남짓!
한참을 버스 승차장의자에 누워서 쉬다가 일어나니 5시가 되어가고 해는 어느새 등뒤에서 저를 엷은미소로 바라보고 있네요
오른발이 문제였습니다
물집 터트렸던 자리가 쓰리고 무엇보다 발등이 아려서 힘드네요
이번에는 오른쪽 운동화 끈을 아예 빼버리고 운동화를 오른발은 슬리퍼처럼 신고 반대로 왼발은 등산화 신듯이 끈을 단단히 조여 매었습니다
몸의 하중을 상태가 좋은 왼발로 몰아서 걸어보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나뭇가지를 꺾어서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짚으면서 걸으니 한동안 걷기에는 괜잖더군요
자세는 자연스레 절뚝거리는 자세였지만, 좀 전 보다는 오히려 속도가 나더군요
그렇게 1시간 반 정도를 쉬지 않고 걸으니 목적지가 전방 4km!
오른발의 상처를 떠 안은 왼발의 희생정신, 자랑스럽습니다!
어둠이 깔리면 나는 춤을 추리오
목적지가 얼마 안 남으니 정말 걷기 힘드네요. 왼발도 고장이 났습니다.
고장이라기보다는 지친 것이겠지요.. 걷기도 싫고 걸을 수도 없는 상황.
얼마 안 남았으니 힘을 최대한 비축하여 최소의 에너지소비로 가야할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일단 도로에서 벗어나 바닥에 않아 머리를 무릎에 파묻고 한참을 쉬었습니다
간간이 심호흡을 하면서요.
전방이 500m라면 기어서라도 가겠지만 4km라면 두발로 가야하는 상황이었으니요
이제 두발의 상태가 비슷해졌으니 어느 한쪽에 임무를 맡길 수는 없고 양쪽 발에 운동화를 신어 좀 느슨하게 끈을 다시 메었습니다.
일어서니 어깨 밑으로 모든 근육이 틀어지는 듯한 느낌이네요
걷기 위해서 제가 개발한 방법은 이러했습니다
일단 온몸의 근육에 힘을 빼고 마치 잠잘 때처럼 눈을 살짝만 뜹니다
걷기는 걷되 잠자는 것처럼 최면을 거는 거지요
그리고 발목에 힘을 주거나 움직이지 않고 무릅 위에 있는 관절만 춤을 추듯이 살랑살랑 움직이면서 앞으로 춤추듯이 리듬에 맞추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통증은 있었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면 화장실 급한 사람이 엄청 참았다가 거시기가 나올까봐 무릅을 살짝굽히고 충격과 진동을 최소화하여 조심스럽게 천천히 걷는 자세 아시지요
한마디로 '나오기 직전인넘 조심스레 떵싸러가는 자세!'거기에다 캬바레 춤만 접합시키면 완성되는 자세입니다.
정신도 내가 지금 편안한 곳에서 춤을 추고있다고 최면을 걸었습니다
주변은 어둡고 인적이 없어 창피할 일도 없고, 속도는 아주 느렸지만 당시에는 제가 목표지점까지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렇게 영덕읍내까지 들어서며 이제 영덕터미널까지 포복으로도 갈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안도감이 들면서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이 자꾸 나오네요 "흐흐흐,커크큭","하하하 꺽~" 누가 보면 미쳤거나 술 취한 놈이 영덕에 나타났구나 했을 겁니다
목적지였던 영덕 터미널 입성~~!!!
그렇게 또다시 계획 없이 진행했던 저의 행진은 끝을 냈습니다
도착이후..그리고 또 다른 출발
영덕에서 하루 밤을 보내며...
셋째 날 당일아침에 생각하기에는 저녁쯤 영덕에 도착하여 대게탕에 최소한 밥한공기 따듯하게 먹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시간은 이미11시가 넘었네요
마지막 4km가 2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시간이 많이 지난 것은 당연한데 밥이고 뭐고 빨리 쓰러질 자리 찾는 게 우선이었습니다
터미널 근처 여관에 방을 잡고 따듯한 물이 흐르는 샤워기 밑에 쭈그리고 앉아 주섬주섬 샤워를 하니 갑자기 오한이 드네요
몸이 자꾸 떨리는데 어찌할 도리도 없고 배낭에 가지고 온 옷은 모두 꺼내어 입고 양말도 새것으로 갈아 신었습니다.
그리곤 침대에 이불 뒤집어쓰고 누었습니다
설사 끼도 있고 온몸의 근육들이 후끈거리며 통증이 왔습니다
식사도 할 수 없는데다가 잠도 이룰 수 없고 그 날밤은 응급실을 찾아 주사를 맞을까 심각하게 고민 했더랬습니다
결국 침대 밑으로 떨어질 정도로 구르면서 앓다가 새벽녘에 잠이 들어 낮 12시가 다되어 일어났습니다
다행히 몸의 오한이 가라앉고 어제보다는 기분이 훨씬 나아졌습니다
아무래도 감기기운이 있는 상태에서의 극한 피로감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꿈에 그리던 바다 그리고 영덕대게! 드디어 만나다
출발 시 계획대로 영덕 강구항과 삼사해상공원을 둘러보기 위해 짐을 정리해 나왔습니다. 일단 영덕터미널에서 4시40분에 출발하는 서울행 버스표를 사놓고 터미널과 강구항을 왕복하는 택시를 탔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하루종일 내리네요. 피서철이 끝난 데다가 평일이라 항구는 무척 한산하더군요 바다를 좋아하는지라 항구 선착장에서 바다를 한참 바라보다가 2km정도 떨어진 해상공원으로 올라갔습니다
전시장과 간단한 홍보영화를 관람하고 해상공원 내 영덕대게 전문점에서 영덕대게매운탕과 소주한잔을 곁들이며 그리운 사람들과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떠올리며 영덕을 종착역으로 하는 "AGAIN 2008 국토순례대행진"을 마침할 수 있었습니다
글을 맺으며..
서울에 올라오니 밤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친구가 조촐한 환영식을 해주네요
혼자 떠났다고 중간에 걱정스런 전화를 해준 병인이를 비롯하여 어설프게 떠난 국순을 뜨겁게 지지해주고 응원해 주신 분 들게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서두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몇 일간의 국토순례가 저자신의 무엇을 바꾸거나 변화시키기는 힘들겠지만 후에라도 제가 좀더 성숙할 수 있는 자양분이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습니다. 어려운 시절이지만 모두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PS) 2년 동안 어찌 보면 충동적이고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사전정보나 준비된 것이 거의 없었기에 지나면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생기기도 하지만, 어려운 점도 많았습니다. 내년에는 기회가 된다면 텐트나 담요 등의 기본적인 준비는 하고 떠나볼 생각입니다
아울러 가능하다면 한두 명이라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분이 있다면 함께 해보고 싶습니다. 내년에 예상되는 코스는 영덕에서 출발하여 해변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후포항에서 배를 타고 울릉도를 한바퀴 돌고 독도를 경유해서 다시 후포항에 귀항 후 울진 까지 도보로 갈 계획입니다
도보거리 100여km이고 뱃길 포함 600km정도의 거리입니다
첫댓글 두유야 많이 힘들었겠지만 너의 말대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것 같다. 한편으로는 해보고싶으면서도 하지못하는 용기 없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이정도의 용기라면 무엇이든 잘 될꺼야~~~울 두유 홧팅!!
ㅎㅎ 재밌다. 내년 계획이 그래 빡세지 않으면 나도 함 해볼끼고마....하는 생각이 그냥 슬쩍 들기는 한다. 내 시간과 생활을 지배할 수 있는 삶이 되야 할낀데... 완주를 축하한다. 대게매운탕 그거 솔찬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