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태원(太原)은 중국 산서성(山西省: 서화현 지구급)의 성도(省都)이며 중공업도시이다. 태행산맥(太行山脈)과 여량산맥(呂梁山脈)에 둘러싸인 분지로 분하강(汾河江) 상류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 기자(箕子)가 상(商)나라 때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 받았던 땅으로 춘추시대의 진양(晉陽)에 해당된다.
성씨의 역사
시조는 기자(箕子), 비조(鼻祖)는 선우정(鮮于靖), 중조는 선우협(鮮于浹)으로 구분한다. 기자가 주나라 무왕 때 기자조선(箕子朝鮮)을 세우고 그의 맏아들 기송(箕松)이 2대 장혜왕(莊惠王)으로 즉위하면서 아우인 기중(箕仲)을 우산국(于山國)에 봉하여 나라를 세웠으므로 조선의 선(鮮)자와 우(于)자를 따서 선우씨(鮮于氏)로 삼았다고 하며, 기자가 식읍(食邑)을 하사받은 태원(太原)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기준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남천하여 금마군(金馬郡)에 나라를 세워 마한(馬韓)이라 칭했으나 백제에게 나라를 빼앗겨 8대 원왕(元王)의 아들 기양(箕諒)이 평안남도 용강군 오석산(烏石山)으로 들어가 성을 쌓고 창도(創都)하여 나라를 황룡(黃龍)이라 하며 세계를 이어왔다. 기양의 10세손 기병(箕柄)이 고구려에 나라를 빼앗겨 서민(庶民)으로 세계를 이어왔다. 그러나 상계(上系)를 고증할 문헌이 전하지 않아 세계가 명확하지 못하여 후손들은 고려 고종 때 중서주서(中書注書)를 지낸 선우정(鮮于靖)을 일세조로 받들고 있다. 결국 선우씨는 중국과 조선에 흩어져 중국의 선우씨는 번성했지만, 조선의 선우씨는 나라가 망하는 비운을 맞아 변성(變姓)하면서 씨족의 명맥만을 유지오고 있다고 을축보(乙丑譜)에 기록되어 있다.
분적종 및 분파
파명(派名)을 살펴보면, 태천파(泰川派), 용천파(龍川派)로 나뉘어졌다.
주요 세거지
경상북도 영주시풍기읍
평안남도 대동군 부산면 수산리
평안북도 창성군 대창면 학성동
평안북도 태천군 강동면 송북동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면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태원선우씨는 1,103가구 총 3,560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