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티칼 리미트(Vertical limit)를 보았다.
수직 한계점. 일정시간이 지나면 숨을 쉴 수가 없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된다.
이 영화는 등반을 하는 한 가족의 얘기에서 출발한다.
깍아지른 절벽을 오르는 세 사람.
아버지,아들, 딸..
그들은 능숙한 솜씨로 바위산을 오른다.
크리스 오도넬의 흥얼거림.
그런 노래는 없다고 투정하는 여동생.
오빠가 흥얼거리는 노래는 이글스의 노래.
아버지가 연도와 제목을 말한다.
그들은 게임을 즐기면서 그 험한 산을 오른다.
산뜻한 출발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그들은 위기를 맞는다.
먼저 올라갔던 다른 팀이 떨어지면서 그들의 밧줄과
단란한 이 가족의 밧줄이 엉키면서
그들은 허공으로 떨어질 찰라
아버지는 아들과 딸을 살리기 위해
크리스에게 밧줄을 자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동생은 계속 등반가로 활동하면서
K2 등반을 계획 중이고, 크리스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기자로 활동 중이다.
여동생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아버지가 원하는 길로 갔지만, 오빠는 아버지의 무덤에도 가지 않는다.
컴퓨터의 통계로 가장 안전한 날을 골라 정상 정복에 도전하는 여동생과 그 일행들. 그러나 영화가 재미 있으려면 당연히 위기가 와야하고 또 자신의 욕망때문에 그런 위기 상황을 무시하면서 고집을 부리는 악역이 생기고, 드디어 핼퍼들은 폭풍우에 휩싸여 실종되고, 여동생과 다른 2명은 골짜기로 추락한다. 평상시에는 눈에 덮혀 있지만 잘못 디디면 그 끝을 알 수 없는 틈 속에 빠져버린다. 다행히 세 주인공이 빠진 곳에는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그냥은 빠져 나갈 수 없는 깊은 곳에 통신마져 두절된 채 갇힌 것이다.
해발 26000피트. 인간이 숨 쉴 수 있는 수직한계점의 높이.
각성제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22시간 안에 구조되지 못하면 폐부종으로 죽게 되는 곳.
지금 이글스의 캘리포니아의 드림이 들린다. 1972년에 처음 불렀던 노래라는데 지금 들어도 너무 좋다. 라이브인데도 저렇게 잘 부르다니....놀랍다.
잠깐 이야기가 다른데로 새어버렸다. 너무 산만한 성격인 탈이라니까.쯔쯧... 어째든 잡음만 끌던 무선전화기를 모르스부호를 알고 있는 여동생과 오빠의 교신으로 생존소식을 듣게되는 베이스캠프에서 드디어 구조대를 파견한다.
그 다음 줄거리는 영화를 봐야 실감할 수 있다.
끊임없는 위기가 전개되면서
멋진 설경이 펼쳐진다.
시간과 거리의 싸움. 너무 늦게 도착하면 그들은 이미 죽는다.
우리의 수직 한계점은 어디일까?
우리는 살고 있지만 현실을 살면서 느끼는 고통의 한계.
누구나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그 고통의 크기는 각기 다르지만 개인이 느끼는 고통은 다 크다. 너무 힘들다. 그 고통의 크기는 자신이 닥쳐 봐야만이 알 수 있다.
누군가가 아프다고 얘기하면 그래 이해해 하고 얘기하지만 진짜 그 상황에 빠져 봐야만이 그때 상대방이 했던 얘기가 뭐였는지 이해한다.
그전까지는 그저 짐작할 뿐이다.
세상은 짐작과는 다를 때가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