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시인
1950년 대구 달성 출생
시집 : 『오리와 이빨』, 『위대한 사랑은 꽃잎가를 맴돌고』, 『비소리』,『옛집』
대구 수성구 범어1동 유림노르웨이숲 108-1005
자살하려는 친구에게
- 이재윤
삶을 모르면서
감히 죽음까지도 알려고 하다니
옛집
- 이재윤
새벽잠에서 깨어 딸애를 바라보다가
옛시절이 뽀얗게 그려졌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어머니
아비가 늦되는 내게
그때에는 정이 최고였지
구운 옥수수 반쪽 엿 반쪽 콩 반쪽
언제나 네 것으로 남겨 두었었지
추억은 가난했기 때문일까
봉숭아 핀 뒤뜰로 날 부른 어머니
치마 뒤로 감춘 왼손에는 누룽지 한 줌
꽃비가 내렸었지
모과나무 한 잎
- 이재윤
쓸쓸한 것은 가을만이 아니다
제 무게만큼 버티다가
제 만큼의 눈에 쌓여
함께 떨어지게 될 모과나무 한 잎
돌계단에 앉아
가을이 쓸쓸하다는 이야기는
아직 이른 답변을 요구한다고
동짓날 모과나무 한 잎은
달빛에 몸 드러내고 있다
다만 견디어 낼 일이다
몸 지운 자리
순 틔우기까지
인생
- 이재윤
10대 이전에는 부모
10대에는 친구
20대에는 이성
30대에는 자식
40대에는 취미생활
50대에는 여행
60대 이후에는 이빨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은
이빨밖에 없다
할머니
- 이재윤
할머니가 동네 잔칫집 다녀오면 할머니의 손수건에 찌짐이랑 산적이랑 떡이며 밤 대추가 들어있다 여섯 살 된 내 시건으로도 쉽게 삼키지 못하고 할머니나 잡수세요 성을 내 보지만 할머니의 성화에 결국은 다 먹는다
할머니의 작은 아들 풋살림 아직 넉넉하지 못하다고 거절하는 작은며느리의 따가운 눈총 받으면서도 이 손자 위해 치맛자락에 숨겨온다
내가 보은하는 때는 일년에 딱 한번 시월상달에 높은 산에서 묘사 떡 받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