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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조반니 가차니가가 작곡한 오페라 <돌의 손님>을 위한 주세페 페르타티의 대본(1736년)
대본 로렌초 다 폰테
초연 1787년 프라하 국립극장
배경 16세기 스페인의 어느 마을(전통적으로 세비야로 설정한다)
<2009 스페리스테리오 페스티벌 / 174분 / 한글자막>
레조날레 델레 마르체 오케스트라 & 합창단 연주 / 리카르도 프리차 지휘 / 피에르 루이지 피치 연출
돈 조반니........젊고 호색적인 귀족...............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베이스바리톤)
레포렐로.........돈 조반니의 하인..................안드레아 콘체티(베이스바리톤)
기사장............돈나 안나의 아버지...............엔리코 이오리(베이스)
돈나 안나........기사장의 딸.........................미르토 파파타누슈(소프라노)
돈나 엘비라.....부르고스의 귀부인................카르멜라 레미조(소프라노)
체를리나.........시골 처녀............................마누엘라 비스체글리(소프라노)
돈 오타비오.....돈나 안나의 약혼자인 귀족.....마를린 밀러(테너)
마제토............체를리나의 약혼자인 농부......윌리엄 코로(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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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피치의 관능적인 연출을 통해 표현된 다르칸젤로의 매력적인 돈 조반니
호색한의 상징인 돈 환의 이야기는 17세기 중반부터 유럽에서 큰 인기를 누렸었다. 몰리에르의 희곡 '돈 주앙-석상과의 만찬', 바이런의 서사시 '돈 주앙' 등이 그를 다룬 문학작품들이며, 음악에서도 불세출의 걸작의 주인공이 되었다. 다 폰테의 리브레토를 바탕으로 완성한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모차르트의 대표 오페라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가장 자주 무대에 오르는 인기작의 하나로 사랑받고 있다. 본 공연은 2009년 마체라타의 스페리스테리오 페스티벌에서의 실황을 담은 것으로, 종래의 야외 공연장인 아레나 스페리스테리오가 아닌 일반적인 오페라 극장인 테아트로 라우로 로시에서 있었던 피에르 루이지 피치의 프로덕션을 담은 것이다. 간결한 무대세트를 배경으로 관능적인 측면을 강조한 피치의 연출과 더불어 이 프로덕션에 주목해야할 이유는 세계적인 바리톤 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가 레포렐로가 아닌 돈 조반니로 등장하는 최초의 공연이라는 점이다. 이후 그는 돈 조반니로도 계속 승승장구 중이며, 2014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도 같은 배역으로 화제를 모았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크게 <후궁 탈출>, <마술 피리> 같은 독일어 오페라(징슈필)와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 등 이탈리아어 오페라로 구별되는데 이중 작품성을 더 인정받는 것은 이탈리아어 오페라이다. 또한 언어적인 특징과 더불어 음악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에 입각하고 있다. 전설적인 호색한의 얘기를 다룬 <돈 조반니>는 빈에서 작곡되어 1787년 10월 29일 체코의 프라하에서 모차르트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오페라 부파와 달리 희극적인 요소와 무겁고 교훈적인 내용이 혼재하는 독특한 작품이다. 그래서 드라마 지아코소(Drama Giacoso)로도 불린다.
1969년 이탈리아 중동부 해안도시인 페스카라에서 태어난 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는 1989년과 1991년에 토티 달 몬테 콩쿠르에서 연거푸 입상하면서 이탈리아 성악계의 기대를 받았다. <코지 판 투테>로 데뷔한 이래, 라 스칼라, 빈 슈타츠오퍼, 로얄 오페라 코벤트 가든, 바스티유 국립오페라, 메트 등의 정상급 오페라 무대에서 아바도, 아르농쿠르, 가디너, 정명훈, 샤이, 무티, 게르기예프 등의 최고 거장들과 호흡을 맞춰왔다. 그의 열연을 담은 오페라 영상물들 중에서 2006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돈 조반니>와 <피가로의 결혼>, 네트렙코, 가란차와 호흡을 맞춘 도니제티의 <안나 볼레나> 등이 큰 호평을 받았다.
2008년의 <리날도>를 시작으로 <라 트라비아타>와 <토스카>를 연이어 국내무대에 올리면서 우리 오페라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친숙한 이름인 오페라 연출가 피에르 루이지 피치는 1930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지만, 이내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연극과 오페라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연출뿐만 아니라 무대미술과 의상디자인도 직접 담당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지금까지 라 스칼라, 라 페니체 극장, 메트, 바스티유 등의 최고의 오페라 하우스들에서 500여 편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다. 피치는 2005년부터 마체라타의 스페리스테리오 오페라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 재임 중이다.
=== 작품해설 === <1999 빈 극장 공연 영상물 내지 해설 / 박종호>
돈 조반니
여자를 찾아 방황하는 영원한 구도자
20여개를 헤아리는 모차르트의 오페라들 중에서도 최고 최대의 결작을 하나만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고 <돈 조반니>라고 대답한다. 뉴욕 타임스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오페라로 <돈 조반니>를 선정했던 사실은 이 오페라가 얼마나 뛰어나며 아름답고 그 안에 무궁무진한 인간상과 인생철학을 담고 있는지 웅변해 준다.
<돈 조반니>는 모차르트 작품들 중에서도 '다 폰테 3부작'이라고 부르는 세 개의 오페라 부파 즉 이탈리아풍 희가극(喜歌劇)의 하나로서,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그리고 <코지 판 투테>의 3작품이다.
그러나 이들은 비록 희가극이라는 겉옷을 입고 있지만 인생에서 접할 수 있는 인간의 모든 불완전함과 해학과 관용이 들어있는 가장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작품들이다. 이들은 모두 천의무봉(天依無縫)의 음악으로 차 있고 또한 희가극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더욱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세 작품 모두 성(性)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파격적으로 섹스라는 것을 정면에서 다루는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인간의 끝없는 성적 욕망과 얄팍함과 간교함을 그린 무서운 오페라들이지만, 모두 천상의 멜로디로 포장되어 종종 우리가 그 의미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돈 조반니라면 대부분 천하의 바람둥이로 알고 있다. 물론 그러하다. 하지만 그는 왜 그렇게 끊임없이 여자들을 쫓아다녔으며, 그 많은 여성편력에도 불구하고 늘 눈앞의 여자에게 만족하지 못하였을까? 그는 한 여자를 정복하면 절대로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돈 조반니의 이야기는 연애소설이 아니다. 그의 이야기들은 모두 여자를 정복하기 위한 무용담(武勇談)일뿐, 그 여자와 멋지고 아름다운 시간을 나누는 연애담(戀愛談)이 아니다.
그가 무조건 많은 수(數)의 여자들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이상적(理想的)인 여성상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오페라의 내용대로라면 2천여 명의 여성을 만났는데, 그럼에도 그의 마음은 늘 공허했다. 그래서 그는 진정 자신을 만족시킬 새로운 여성을 찾아서 또 헤매야 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학문에서, 예술에서, 수도원에서, 권력이나 돈 또는 일에서 길을 찾으려 했다면, 돈 조반니는 여성에게서 진리를 찾으려 했다. 아마 그가 진정으로 여성에게 원했던 것은 어쩌면 진실이나 구원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오페라 속에서 보여주는 그의 행각을 볼 때, 그의 언행은 구도자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거짓말과 속임수를 밥 먹듯이 사용하고 술책과 사기에 능하다. 여자를 유혹할 때도 폭력과 강간을 사용하며 심지어는 살인(실수였다고 하더라도)까지 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악당이다. 이 악당이라는 말은 그가 오페라 속에서 여자들로부터 수없이 듣는 그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구도자란 말을 쓸 수 있을까? 악당에게도 인생을 살아가는 목표가 있을 것이며, 그 나름대로의 길은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심중을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분명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계속 가고 있는 사람이다. 멈추지 않는 그의 행로를 범인들의 잣대로 쉽게 속단하는 것을 우리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가 단순한 바람둥이였다면 그 인물이 서양문화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언급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페라뿐 아니라 서양문화사에서 가장 많이 인구에 회자되었던 정형화된 캐릭터들은 파우스트, 카르멘, 그리고 돈 조반니 등일 것이다. 이 인간상들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창작의욕을 고취시켰다. 돈 조반니 역시 큰 영향을 미쳤다. 원래 돈 조반니는 16~17세기에 스페인에 실재했던 인물 돈 후앙 테노리노가 원형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에 그를 그린 수많은 문학 작품들이 그를 거의 새롭게 창작해 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스페인의 티르소 데 몰리나가 쓴 희곡 <세비야의 호색한과 석상 손님>(1630년), 프랑스의 몰리에르가 쓴 <돈 후앙 또는 석상 손님>(1736년) 등이다, 그리고 오페라로도 주세페 베르타티의 대본과 조반니 가차니가가 작곡한 오페라 <돌의 손님>(1736년)이 있었다. 이들 남성 예술가들은 돈 조반니를 단순한 바람둥이나 악당으로만 보지는 않았다. 그들은 자기 대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간 영웅으로서 바라보았다.
그중에서도 다 폰테는 이미 50년 전에 만들어진 베르타니와 가차니가의 오페라 리브레토를 원작으로 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창작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다 폰테의 빼어난 묘사와 플롯 그리고 모차르트의 위대한 음악으로 <돈 조반니>는 최고의 오페라로 다시 태어났다.
이 오페라의 또 한 명의 주인공이며 우리가 주의깊게 바라보아야 할 인물이 돈 조반니의 하인 레포렐로다. 그는 돈 조반니를 따라다니면서 주인의 행적을 해설하고 비평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해설은 절대로 돈 조반니의 모든 것이 아니다. 레포렐로는 자신의 눈높이와 수준에서 주인을 해설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뱁새가 천붕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대표적인 예가 레포렐로의 카탈로그다. 레포렐로는 돈 조반니가 만난 모든 여성들의 인적 사항들을 카탈로그에 기록한다. 그것은 그가 부르는 재미있는 '카탈로그의 노래'에 잘 표현된다. 그러나 그 노래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그는 돈 조반니가 늙은 여자는 오로지 카탈로그의 숫자를 채우기 위해 건드린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틀린 말이다. 늙은 여자를 위하는 돈 조반니는 나름대로의 그녀들만의 장점과 미덕을 찾는 것이며, 그는 숫자의 증가에는 관심조차 없다. 다만 레포렐로가 그것을 열심히 쓰면서 대리만족을 하고 있으니, "오늘은 네 카탈로그에 이름이 몇 개나 더 올라갈까"하고 맞장구쳐줄 뿐이다.
그리고 시종 돈 조반니를 악당으로 비난하는 레포렐로 역시 도덕적인 인물은 아니다. 그에게 돈 조반니 같은 능력과 지위가 주어진다면 그도 돈 조반니와 똑같은 인물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2막 1장에서 그가 돈 조반니와 옷을 바꿔 입고 대신 여자를 유혹하는 장면에서 그는 주인보다도 더욱 그 상황을 즐긴다. 그러므로 관객들이 자신들만의 시각으로 무장하지 않은 채 공연을 보면, 자칫 레포렐로의 시각 - 즉 가장 천박한 인물의 수준 낮은 입장에서 단편적으로 돈 조반니를 평가하는 우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오페라에 나오는 여자들은 사실 2천명이 아니라 단 세 명으로 압축되어 있다. 돈 조반니는 오페라 내내 이 세 명의 여성과 쫓고 쫓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실 성공하는 경우는 단 하나도 없다...... 세 여인들은 모두 다른 출신성분의 여자들이며, 성격도 다르고 인생관도 판이하다. 당연히 이런 것은 돈 조반니의 수많은 여성편력을 다 묘사할 수 없으니, 다 폰테와 모차르트가 압축하여 세 명의 대표적인 여인들로 그려낸 것이다. 세 여인은 각기 귀족, 부르주아, 농부의 세 계급을 대표하며, 그 계급의 가치관을 보여준다. 그녀들의 각기 다른 신분과 각기 다른 개성들은 참으로 흥미롭다.
게다가 세 여성은 음악적으로도 각기 다른 스타일의 소프라노들이 맡는다. 이점 역시 오페라의 뛰어난 특징이며 매력이다. 돈나 안나는 우아하고 유려한 목소리의 리릭 소프라노나 극적인 표현이 가능한 드라마틱 소프라노가 흔히 맡는다. 돈나 엘비라는 보다 강렬한 성격적인 표현이 가능한 역할이 맡는데, 이런 점에서 연기상 가장 까다롭고 또한 음악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여가수가 돈나 엘비라다. 그녀는 돈나 안나와 체를리나의 두 세계 사이의 중간적인 다리의 역할도 하며 레포렐로와 상대역을 이루기도 하는 등 무척이나 바쁘다. 체를리나는 흔히 레제로 소프라노가 맡게 되는데, 하녀 같은 그녀의 캐릭터로 보아서 전형적인 수브레토 역할이다.
반면 돈 조반니와 레포렐로는 베이스바리톤 역할로서 둘 다 거의 같은 성부(聲部)이다. 다시 말해서 두 사람이 역할의 교환도 가능한데, 이 예는 2막 1장에 잘 나타난다. 레포렐로로 성공한 성악가들이 성장하여 나중에 돈 조반니를 부르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점 역시 돈 조반니는 자신이 비난하는 사람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선망하는 대상이라는 점을 무대에서도 입증하는 셈이다. 이 점은 레포렐로뿐 아니라 모든 남자들에게도 해당된다.
당신은 혹은 당신의 그녀는 세 여성 중에 어디에 해당하는가? 세상에는 이런 세 타입의 여자가 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또한 한 여인 안에 세 가지의 속성이 모두 혼재되어 있기도 하다. 같은 여성이라도 상황에 따라서 또는 상대방에 따라서 때로는 돈나 안나가, 때로는 돈나 엘비라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체를리나의 속성도 보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돈 조반니>는 인간의 적나라한 심성을 다 보여주는 무서운 철학극이며, 또한 여성심리를 이해하는 교본이기도 하다.
1786년에 빈에서 올려진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은 큰 성공을 거두어서, 그 해를 넘기지 않고 이웃 프라하에서도 올려졌다. 그런데 프라하 공연은 더 큰 인기를 거두어서, 작곡가 자신도 놀랄 정도의 반향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모차르트는 자기에게 환대해 준 그 도시를 위하여 교향곡 제38번 <프라하>를 작곡하여 연주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프라하 시민들은 자신들을 위한 새로운 오페라를 위촉하였다. 그리하여 모차르트 - 다 폰테 콤비가 새롭게 만든 오페라가 <돈 조반니>다. 다음 해인 1787년 프라하에서의 초연은 예상대로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그것은 <피가로의 결혼>과 반대로 빈으로 역수입되었다. 그리고 당시 유럽 최고의 오페라 무대였던 빈에 포진하고 있던 유럽 정상급의 가수들을 위하여 모차르는 오페라의 아리아들을 일부 개정하거나 새로이 추가하였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감상하는 <돈 조반니>의 모습인 것이다.
물론 우리의 돈 조반니는 세 여성들 중 누구에게도 만족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는 셋 중 적당한 한 명을 골라서 편안하게 안주하는 대신에 또 새로운 고행(苦行)을 택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 행위에 대해 당당하다. 그것은 자유의지로 했던 일들이므로, 그는 누구 앞에서도 떳떳하다. 마지막에 석상(石像)이 나타나서 그에게 회개하라고 위협하여도 굽히지 않는다. 그는 구차하게 목숨을 잇기보다는 지옥불 앞에서도 당당하게 죽음을 택한다.
그러므로 그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자신만의 영웅이다. 이 점이 돈 조반니의 최대의 매력이며, 이것이 오페라를 위대하게 만들었다. 희극으로 시작된 오페라 <돈 조반니>는 이렇게 마지막에 가서는 관객들에게 그들이 인생을 사는 방식을 뒤돌아보도록 하는 무서운 걸작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정홍래 글>
돈 조반니 K.527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대본을 썼던 로렌초 다 폰테(Lorenzo Da Ponte)가 이 작품의 대본도 맡았다. 다 폰테는 1787년 5월 중순에 대본을 완성했으며, 모차르트는 그 해 여름 내내 오페라를 작곡했다. 10월 초, 모차르트는 거의 대부분을 완성한 〈돈 조반니〉 악보를 들고 프라하 여행길을 떠난다. 본래 10월 14일에 상연될 예정이던 초연은 29일로 미뤄졌지만, 프라하에서의 초연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힘겨운 시기에 작곡된 오페라
이 오페라를 작곡할 무렵, 모차르트는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음에도, 주변 상황은 악화되기만 했다. 모차르트가 31세가 되는 1787년 5월,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났다. 콘스탄체와 결혼한 후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그의 삶은 더욱 불행해졌다. 오스트리아가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 사이의 전쟁에 가담하면서 빈 도시 전체가 얼어붙었고, 예술에 대한 황실의 보조금도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모차르트의 음악회를 찾는 관객의 수가 줄었다는 점에서 그의 삶은 더욱 불안했다. 모차르트가 빈에서 가장 부유한 거리에 집을 얻고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것이 불과 7년 전의 일이었던 것에 비하면, 이제 행운의 여신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전보다 수입이 줄어든 모차르트는 빈 외곽으로 이사를 해야 했고, 아내의 병 치료를 위해, 태어나는 아이들을 위해, 원치 않는 일도 해야 했다.
프라하에서의 초연
1787년, 모차르트는 대부분의 시간을 오페라를 작곡하는 데 전념했다. 1786년에 발표한 〈피가로의 결혼〉이 성공을 거두면서 프라하로부터 초대를 받았던 모차르트는 이 도시에서 직접 오페라를 지휘하며 빈 공연에서보다 열띤 환호를 받았다. 그리고 빈으로 다시 돌아올 때, 또 다른 오페라를 작곡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 “나의 음악을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사람들은 프라하 시민들 뿐”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프라하에서 받은 따뜻한 관심은 어려운 시기의 모차르트에게 큰 힘을 주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모차르트는 프라하 시민들을 위해 새로운 오페라 작곡에 더욱 전념했음은 물론이다.
스페인의 돈 후안을 오페라로
스페인의 전설적인 인물 ‘돈 후안’을 묘사한 이 오페라의 본래 제목은 〈벌 받은 탕자, 혹은 돈 조반니(Il dissoluto punito, ossia il Don Giovanni)〉이다. 유럽인들에게 바람둥이로 잘 알려진 돈 후안은 16, 17세기 스페인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여인을 유혹하는 그는 신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이 전설적인 남자의 이야기는 전 유럽에 퍼지며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작품에도 남게 되는데, 타고난 극작가였던 모차르트 역시 이 매력적인 이야기를 놓칠 수 없었다.
아버지를 떠오르게 하는 기사장의 석상 장면
모차르트의 오페라 가운데 〈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와 함께 3대 오페라에 꼽히는 이 작품은 모차르트의 탁월한 음악성이 녹아있는 작품으로 유쾌한 음악과 더불어 극적인 전개가 돋보이는 오페라이다. 이 작품은 2막의 피날레인 ‘기사장의 석상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으로 시작되는데, 마지막에 석상으로 등장하는 기사장은 이 오페라가 작곡된 해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모습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줄거리와 주요 음악
1막
웅장하고 긴박한 분위기로 시작되는 서곡은 빠르고 밝은 분위기로 전환된다. 긴 망토를 입은 레포렐로는 언제나 그렇듯이 주위를 살피고 있다. 돈나 안나의 집에 몰래 들어간 주인 돈 조반니가 주변을 지키라고 지시한 것이다. 수많은 여인을 유혹하고 다니는 주인을 위해 매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는 레포렐로는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집에서 나온 돈나 안나의 아버지 코멘다토레는 딸과 집안을 모욕한 이 남자에게 결투신청을 하고, 마지못해 결투에 응한 조반니는 코멘다토레를 쓰러뜨리고 만다. 아버지를 잃은 돈나 안나는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의 약혼자 돈 오타비오도 함께 복수를 결심한다.
또 다른 여인의 등장. 이 여인은 돈 조반니의 거짓 사랑에 속았던 여인 돈나 엘비라이다. 돈 조반니는 이전에 만났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그녀에게 접근하려 하지만, 돈나 엘비라를 기억해내고는 레포렐로에게 맡기고 달아난다. 돈 조반니의 이야기를 레포렐로에게 들은 돈나 엘비라는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 역시도 돈 조반니에게 복수하겠다고 다짐한다.
이어서 세 번째 여인의 등장. 체를리나는 오늘밤 마제토와 결혼하기로 한 어여쁜 시골여인이다. 그녀의 모습을 본 돈 조반니는 자신의 저택에 초대해 초콜릿과 커피, 차, 술을 대접하겠다고 제안하지만, 돈 조반니의 흑심을 알아차린 마제토는 화를 낸다. 그러자 돈 조반니는 마제토에게 칼을 보여주며 그를 위협하고, 망설이던 체를리나 역시 돈 조반니의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그런데 돈 조반니의 집으로 가는 길목에 돈나 엘비라가 서 있었다. 그녀는 체를리나에게 돈 조반니의 실체를 알려주고는, 그에게서 벗어나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이어서 등장하는 돈나 안나와 돈 오타비오는 돈 조반니에게 함께 복수하자고 제안하지만, 돈나 엘비라와 함께 이야기하던 돈나 안나는 돈 조반니가 바로 그녀의 원수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는 이미 도망친 후였다.
약혼자에게 돌아온 체를리나는 화가 난 마제토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노래한다. 하지만 마제토가 기분이 좋아졌을 때 또다시 돈 조반니가 나타나 마제토를 화나게 하고, 돈 조반니는 체를리나를 데리고 간다. 숨어있던 마제토가 두 사람을 당황하게 하고, 때마침 돈나 안나와 돈나 엘비라, 돈 오타비오가 등장한다. 이들은 돈 조반니의 잘못을 밝히기 위해 가면을 쓰고 나타났지만, 돈 조반니는 이들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저택으로 초대한다. 이제 돈 조반니는 자신의 저택에서 체를리나를 유혹한다. 약혼녀를 주시하고 있는 마제토는 레포렐로에게 맡겨두고, 체를리나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간 것이다. 이어서 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돈 조반니는 레포렐로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이 모두 돈 조반니가 꾸민 연극이었음을...
2막
레포렐로가 이번에는 단단히 화가 났다. 주인이 자신을 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까지 몰아세운 것에 적잖이 화가 났다. 그러자 돈 조반니는 하인의 손에 금화를 쥐어주고, 레포렐로에게 또 다른 일을 준다. 이번에는 두 사람이 서로 옷을 바꿔 입는 계획. 돈 조반니를 아직도 사랑하고 있던 돈나 엘비라는 창가에서 그녀를 부르는 돈 조반니의 칸초네타를 듣고 기꺼이 내려온다. 물론 그녀를 찾아온 남자는 주인의 옷을 입고 있는 레포렐로였지만 말이다. 그녀는 그를 믿어보기로 하고, 돈 조반니로 분장한 레포렐로는 그녀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그 때 마제토와 마을 사람들이 나타나자, 레포렐로의 옷을 입은 돈 조반니는 마제토만 남겨두고 다른 곳으로 사람들을 안내한다. 그리고는 마제토를 손보며 자신을 방해했던 분을 풀었다. 마제토의 신음소리를 듣고 나타난 체를리나는 그를 정성껏 보살펴준다.
다시 돈나 안나의 집 앞. 돈 오타비오는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돈나 안나를 위로하고 있다. 돈나 엘비라와 함께 이곳까지 온 레포렐로는 그녀가 방심한 틈을 타서 도망가려고 하지만 어느새 마제토와 체를리나에게 발각되고, 돈나 엘비라는 그를 살려달라고 사람들에게 부탁한다. 죽음을 앞둔 레포렐로는 자신이 돈 조반니가 아님을 밝히는 수밖에 없었다. 당장에라도 돈 조반니를 죽이려 했던 사람들은 그가 레포렐로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를 풀어준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레포렐로는 도망친다.
이제 무대는 기마상이 있는 교회의 묘지. 깊은 밤, 묘지 앞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난다. 돈 조반니는 자신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긴 레포렐로 앞에서 또다시 여자 이야기를 꺼내며 큰소리로 웃는다. 그때 기사장의 석상에서 근엄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침 해가 뜨기 전, 너의 웃음소리 또한 잠잠해지리라.” 레포렐로는 겁에 질려 있지만, 태연한 돈 조반니는 하인에게 비명(碑銘)을 읽어보라고 한다. 거기에는 “사악한 살인에 복수하기 위해 여기서 기다리고 있노라.”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자 돈 조반니는 오늘밤 식사에 기사장을 초대하라고 전한다. 기사장은 머리를 끄덕이며 초대에 응하고, 두 사람은 저택으로 돌아간다.
돈 조반니의 저택에는 만찬이 준비되어 있다. 묘지를 다녀온 뒤인데도 돈 조반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식사를 하고, 레포렐로는 시중을 드는 사이를 틈타 맛있는 요리를 몰래 먹고 있다.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돈 조반니와 레포렐로의 장난이 계속되고, 돈 조반니를 찾은 돈나 엘비라는 그에게 회개하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끝까지 뉘우치기를 거부한 돈 조반니는 계속해서 식사를 한다. 그런데 저택에서 나가려던 돈나 엘비라가 비명을 지른다. 기사장의 석상이 정말로 나타난 것이다. 창백한 얼굴에 하얀 모습으로 나타난 기사장은 문을 두드리면서, “그대가 나를 식사에 초대하여 이렇게 왔다”고 외친다. 돈 조반니는 차분한 표정으로 그에게 식사를 권하지만, 기사장은 하늘에서 왔기 때문에 인간의 음식은 먹지 않는다며 거절한다. 그리고는 자신도 돈 조반니를 초대하겠다고 말하며, 마지막 참회를 권한다. 하지만 두려움을 알지 못하는 돈 조반니는 그것을 거부한다. 그러자 밑에서 불꽃이 일어나며 불길에서 복수의 여신들이 나타난다. 끝까지 뉘우치기를 거부했던 돈 조반니는 그들의 손에 이끌려 땅 밑으로 사라지고 만다.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 돈 조반니는 그렇게 죗값을 치르게 되었다.
‘카탈로그의 노래(Madamina, il catalogo è questo)’
돈 조반니의 거짓 사랑에 속았던 돈나 엘비라가 그를 쫓으려 하자, 레포렐로가 부르는 노래이다. “어느 마을, 어느 도시, 어느 나라건 나리께서 사랑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나리께서 정복하신 여인들의 카탈로그, 제가 정성들여 정리해 놓았죠. 이탈리아에서는 640명, 독일에서는 231명, 프랑스에서는 100명, 터키에서는 91명...”이라며, 돈 조반니가 만난 수많은 여인을 노래하는 레포렐로의 아리아이다.
‘우리 두 손을 맞잡고(Là ci darem la mano)’
돈 조반니가 결혼을 앞둔 시골처녀 체를리나를 유혹하며 함께 부르는 이중창이다.
‘오 사랑하는 이여, 창가로 와주오(Deh, vieni alla finestra)’
어두운 밤, 돈 조반니가 돈나 엘비라의 창가에서 만돌린을 연주하며 부르는 2막의 세레나데이다. ‘돈 조반니의 세레나데’로 잘 알려져 있다.
‘사랑하는 이여, 내가 그대에게 준 약이(Vedrai, carino, se se buonino)’
돈 조반니에게 당한 마제토를 보살펴주는 체를리나의 아리아이다. 마제토를 향한 체를리나의 순수한 마음이 담긴 다정한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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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8월 10일자 발행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모차르트, 돈 조반니
바랑둥이의 대명사 '돈 후안'을 다룬 모차르트 예술의 절정
1787년 로렌초 다 폰테의 대본에 의해 작곡, 같은 해 10월 프라하에서 초연
사회는 바람둥이에게 적대적입니다. 우선은 한 여자 또는 한 남자가 다수의 이성을 사로잡는다는 ‘특권’에 대해 배가 아프기 때문이고, 바람둥이를 용인할 경우 일부일처제가 흔들리면서 유산상속에 혼선이 빚어지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혁명적인 변화를 원하기보다는 기존 사회의 틀을 유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사회규범을 침해하는 개인이 나타나면 힘을 모아 응징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차르트 오페라의 주인공 ‘돈 조반니 Don Giovanni’는 바로 그 ‘벌 받는 개인’의 좋은 예가 됩니다.
세 시간이 넘는 긴 공연 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긴장과 경탄을 늦출 수 없는 [돈 조반니]는 모차르트 예술의 절정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을 2년 앞둔 1787년에 프라하에서 초연된 이 오페라에는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재기 넘치는 아리아들이 가득하거든요. 서곡부터 아주 특이합니다. 비극적이고 장중한 음악으로 시작하지만 곧 유쾌하고 활기가 넘치는 멜로디로 넘어갑니다.
2,065명을 유혹한 세비야의 바람둥이
그럼 이 돈 조반니는 대체 누구일까요? ‘돈 Don’은 귀족에게 붙이는 칭호, ‘조반니 Giovanni’는 이탈리아에서 흔한 남자 이름인데, 영어로는 존, 프랑스어로는 쥐앙, 독일어로는 요한 또는 요하네스, 스페인어로는 후안입니다. 바람둥이의 대명사 ‘돈 후안’이 바로 이 남자죠. 영지(領地)를 소유한 봉건귀족이라는 사회적 지위와 매력있는 외모를 무기로 무수한 여자들을 유혹하고, 목적을 달성한 뒤에는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 재빨리 도망가는 남자. 정치 이데올로기나 사회적 성공, 재산 축적, 명예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순간의 쾌락에 모든 것을 거는 남자가 이 오페라의 주인공입니다. [피가로의 결혼]의 천재적인 대본가 로렌초 다 폰테는 에스파냐 극작가 티르소 데 몰리나가 1620년경에 쓴 [세비야의 바람둥이와 석상(石像) 손님]을 토대로 [돈 조반니]의 대본을 썼습니다.
1막에서 돈 조반니는 기사장(騎士長)의 딸인 돈나 안나에게 반해 그녀의 약혼자로 위장하고 밤중에 몰래 안나의 방에 침입합니다. 그를 약혼자 돈 오타비오로 착각했던 안나는 곧 낯선 남자임을 알아차려 완강하게 저항하고, 뜻을 이루지 못하고 쫓겨나오던 돈 조반니는 운 나쁘게 기사장과 맞닥뜨리자 결투 끝에 그를 죽이고 도망칩니다.
두 번째 여주인공 돈나 엘비라는 돈 조반니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헌신하다가 하루 아침에 버림받은 여자입니다. 결혼식까지 올리고 돈 조반니가 홀연히 사라져버리자 엘비라는 “그 인간이 내 품 안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 심장을 꺼내 갈갈이 찢어놓겠다”고 이를 갈며 돈 조반니를 찾으러 다니지만, 사실은 다시 만나 사랑을 되찾고 싶은 미련으로 간절합니다.
하인 레포렐로는 ‘카탈로그의 노래’로 엘비라를 약올리며 자기 주인의 실체를 폭로합니다. 이제까지 돈 조반니가 농락한 여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힌 수첩을 병풍처럼 펼쳐 보이며, “이탈리아 여자가 640명, 독일에선 231명, 프랑스 여자가 100명, 터키 여자는 91명, 홈그라운드인 스페인에서는 천 명 하고도 셋. 온갖 신분, 갖가지 생김새, 별별 연령층의 여자가 다 있죠. 겨울에는 살집 좋은 여자, 여름에는 마른 여자를 고르고, 키 큰 여자보곤 기품 있다고 칭찬, 작은 여자한테는 사랑스럽다고 아첨한답니다. 명단 늘이는 재미에 나이든 여자도 마다 않지만, 주인님이 진짜 좋아하는 건 역시 경험 없는 젊은 처녀죠...” 라고 노래합니다. 레포렐로는 모든 것을 소유한 귀족 주인에 대해 계급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면서도 주인과 같은 삶을 열망하는 이중성을 지닌 인물입니다.
한편 하인에게 엘비라를 떠넘기고 도망친 돈 조반니는 지나가다가 마을 결혼 잔치에서 새 신부를 보고 한눈에 반합니다. 시골처녀지만 대담하고 애교가 넘치는 체를리나입니다. 신랑 마제토를 따돌리고 돈 조반니는 그녀를 유혹해 정사를 치를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려 합니다. 돈 조반니의 유혹에 체를리나는 망설이는 척하며 아리송한 대답으로 줄다리기를 시도합니다. 남자의 진심을 떠보는 영악한 처녀죠. 그러나 역시 희대의 바람둥이는 경험 없는 처녀보다 한 수 위입니다. “내가 그대의 운명을 바꿔주지.” 돈 조반니의 이 한 마디에 체를리나는 즐겁게 무너집니다. 그러나 이 순간에 나타난 엘비라의 폭로로 돈 조반니의 실상을 알고 체를리나는 신랑 마제토에게 돌아갑니다.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주인공의 음악
이제 체를리나는 남편을 붙잡기 위해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아양을 떨며, 빙산이라도 녹일 듯한 아리아 ‘날 때려줘요, 마제토’를 노래합니다. 신혼 첫날 딴 남자랑 도망간 신부 때문에 깡통로봇 꼴이 된 마제토지만 어느새 맘이 풀려 체를리나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전혀 죄책감이 없는 돈 조반니는 엘비라의 하녀를 유혹하려고 레포렐로와 옷을 바꿔 입고 감미로운 ‘세레나데’를 부르기도 하고, 자신이 결투로 죽인 기사장의 무덤 앞에서 장난으로 기사장을 저녁식사에 초대하기도 합니다.
돈 조반니에게 당한 안나, 오타비오, 엘비라, 체를리나, 마제토는 다 함께 보복을 하려고 기회를 노리지만, 기사장의 석상, 그러니까 ‘기사장 귀신’이 한발 앞서 복수를 하러 옵니다. 기분 좋은 저녁식사 자리에 말을 타고 들어온 석상은 돈 조반니에게 거짓과 사기로 점철된 바람둥이의 삶을 회개하라고 명하지만, 돈 조반니는 끝까지 회개를 거부하고 당당하게 버티다가 결국 지옥불로 떨어집니다.
돈 조반니는 음악적으로 볼 때도 대단히 특이한 주인공입니다. 중년의 호색한이 아닌 젊은 바람둥이(원작의 나이는 27세)지만 모차르트는 그를 테너가 아닌 바리톤 배역으로 설정했고, 주역인데도 제대로 된 아리아를 작곡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통해 이 주인공을 느긋한 유혹자가 아닌 신경질적이고 조급증 가득한 ‘환자’로 표현했습니다. 돈 조반니가 부르는 ‘포도주의 노래’나 ‘세레나데’는 쫓기는 듯하거나 너무 빨리 끝나버리며, 끝까지 그는 독자적인 스타일을 부여받지 못합니다. 대신, 돈 조반니는 자신이 상대하는 나머지 인물들의 음악적 스타일에 매번 자신을 맞추어 변신하는 카멜레온입니다.
독일 연출가 페터 콘비츄니가 현대적으로 연출한 [돈 조반니]에서는 금빛 실내복 가운을 입고 맨발로 돌아다니는 돈 조반니와 항상 반듯한 정장이나 제복 차림으로 등장하는 그 밖의 인물들을 대비시켰습니다. 사회규범과 질서를 거부하고 ‘쾌락의 원칙’에 따라 살아가는 주인공과 어떻게든 그를 길들이려는 시민사회 구성원들의 대립을 상징한 것이죠. 이 공연에서 돈 조반니는 지옥에 떨어지는 대신, 정신병원에 실려가 희극적인 방식으로 거세된 뒤 양복 정장 차림의 평범한 남자로 변신하는,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말 끔찍한 벌’을 받았습니다. 건전한 상식을 지닌 사회와 그 틀의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개인. 어느 쪽이 더 폭력적인가를 판단하는 일은 관객의 몫입니다.
추천 음반과 영상물
돈 조반니-레포렐로-돈나 엘비라-돈나 안나-돈 오타비오-체를리나 순
[음반] 에버하르트 베히터, 주세페 타데이,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존 서덜랜드, 루이지 알바, 그라치엘라 슈티 등,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1961년 녹음, EMI
[음반] 요하네스 바이써, 로렌초 레가초, 알렉산드라 펜다찬스카, 올가 파시츄니크, 케네스 타버, 임선혜 등, 르네 야콥스 지휘,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및 RIAS 캄머합창단, 2007년 녹음, 아르모니아 문디
[DVD] 로드니 길프리, 라즐로 폴가, 체칠리아 바르톨리, 이자벨 레이, 로베르토 사카, 릴리아나 니키테아누 등,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지휘,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위르겐 플림 연출, 2001년 실황, 아트하우스
[DVD] 토머스 햄프슨, 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 멜라니 디너, 크리스티네 쉐퍼, 피오트르 베찰라, 이자벨 바이락다리안 등, 다니엘 하딩 지휘,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빈 국립오페라 합창단, 마틴 쿠셰이 연출, 2006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Decca(한글자막)
[네이버 지식백과] 모차르트, 돈 조반니 [Mozart, Don Giovanni] (클래식 명곡 명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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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1월 21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카탈로그의 노래
모차르트 <돈 조반니>
희.비극을 아울러 갖춘 주인공의 엽색 행각
[돈 죠반니(돈 조반니, Don Giovanni)]는 모짜르트(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의 전 2막의 ‘드람마 지오코소’이다. 희극과 비극을 아울러 갖춘 오페라를 뜻한다. 대본은 다 폰테(Lorenzo da Ponte)가 썼으며 그의 재치와 시가 모짜르트의 눈부신 작품을 만들게 했다. 돈 죠반니와 하인 레포렐로가 갖가지 엽색 행각을 벌이는 것과 달리, 마지막에 자기 집에 기사장의 석상이 나타나 회유해도 굽힐 줄 모르는 대담한 언행은 특유의 매력을 나타낸다.
레포렐로가 주인이 건드린 뭇 여성의 숫자를 공개
17세기, 스페인의 어느 거리이다. 호색한(好色漢) 귀족인 돈 죠반니가 밤에 돈나 안나의 방에 침입했다가 나온 뒤 여자의 아버지인 기사장(騎士長)과 결투하여 찔러 죽인다. 안나는 약혼자 돈 오타비오와 함께 아버지의 원수를 찾아 갚겠다고 맹세한다. 돈 죠반니가 다음에 만난 여자는 과거에 버린 돈나 엘비라이다. 궁지에 몰린 그는 하인 레포렐로에게 떠맡기고 줄행랑을 친다. 골치 아픈 짐을 떠맡은 레포렐로는 수첩을 꺼내 주인이 유럽 전역에서 지금까지 놀아난 여자의 숫자를 엘비라에게 줄줄이 읊어 보인다. 읽는 도중에 그만 마치 자기가 그랬다는 듯이 신바람이 난다.
'카탈로그의 노래'
‘마님, 이게 내 주인님이
사랑한 미인들의 명단입니다,
바로 내가 만든 명단이지요.
보십시오, 읽어 보실까요, 함께.
이탈리아에서 640명,
독일에선 231명이고,
불란서가 100명, 터키는 91명,
허나 스페인은 벌써 1000하고도 세 명이나 되요,
천 하고도 셋,
그 중에는 시골 아가씨,
하녀에 도시 처녀,
백작 따님에 남작 딸,
후작 따님에 공주님까지
모든 계급의 부인네들,
온갖 나이와 모습들입죠.
언제나 판에 박은 칭찬 방법은
금발의 여인은 얌전하다고.
갈색 머리는 정조가 굳고.
백발은 친절하다고요.
겨울에는 통통한 여자가 좋고,
여름에는 야윈 여자.
덩치가 크면 위엄(威嚴)이 있고
작으면 애교가 있다나요.
나이 든 여자를 만나는 건
순전히 명단에 올리는 재미일 뿐,
허나 늘 열중하는 상대는
젊고 순진한 아가씨죠.
고집을 부리는 일이란 없어요,
돈이나 품위 따위 있든 없든 아랑곳 않고
스커트를 걸친 여자들이니까
그 분이 무슨 짓을 할지는 짐작이 갈 겁니다.
돈 죠반니의 쾌락의 말로
겉으로는 단순하고 즐거운 노래이나 그의 속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주인을 뒷바라지하고 때로는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하는 괴로움까지 거기에는 있다. 레포렐로가 자랑스레 뇌까리는 동안 그의 주인은 농부와 시골 처녀가 결혼식을 올리는 자리와 마주친다. 곧 새 색시 쩨를리나에게 다가가 유혹의 손길을 뻗는다. 그러나 레포렐로의 수첩 명단 공개로 모욕을 느끼고 분노한 엘비라의 방해가 돈 죠반니의 시도를 무산시킨다. 기사장의 유가족 일행에 쫓기다가 우연히 묘지에 들어간 돈 죠반니는 죽은 기사장의 석상(石像)을 만난다. 그러나 놀라기는커녕 그를 만찬에 초대한다. 스산한 분위기를 느낀 엘비라와 레포렐로가 아무리 말려도 굽히지 않는 돈 죠반니. 석상은 약속대로 나타나 “회개하라!”고 다그치지만 고집을 꺾지 않는 그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간다.
추천할 만한 음반과 DVD
[CD] 클렘페러 지휘, 뉴 휠하모니 관현악단/합창단(1966) 기어로프(Bs) 크라스(Bs) EMI
처음 서곡의 합주부터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속에 높은 정신성을 요구한다. 지휘자의 이 작품에 대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주인공 기어로프(Nicolai Ghiaurov)와 크라스(Franz Crass)는 지휘자가 요구하는 인물에 알 맞는다. 주인공과 석상의 대결인 제2막 클라이막스의 심연(深淵)을 향해 모든 것이 홍수처럼 흘러들어 불굴의 사나이는 양식(良識)과 신의 힘 앞에 그만 무너진다. 이 ‘지옥에 떨어지는 장면’으로 끝내는 지휘자들이 많지만 클렘페러는 남은 가수 전원이 후가를 불러 뭔가 시원치 않은 불길한 분위기 속에 끝낸다.
[CD] 카라얀 지휘, 베를린 휠하모니 관현악단/합창단(1986) 래미(Bs) 후를라네토(Bs) DG
카라얀이 만년에 이르러 녹음한 [돈 죠반니]는 대형 가수가 없는 이 시기에 바랄 수 있는 최상의 배역과 수준 높은 연주로, 후르트벵글러(푸르트벵글러)나 클렘페러에 육박하는 명연주를 펼치고 있다. 석상이 나타나는 장면이며 돈 죠반니가 지옥에 떨어지는 마지막 부분 등에서도 필요 이상으로 과대하게 요란스럽거나 무겁지 않다. 기사장이 죽는 장면에서의 메짜 보체의 3중창과 현의 피찌카토(피치카토)의 대담한 강조는 다른 데서는 느낄 수 없었던 깊은 슬픔을 맛보게 해준다. 돈나 엘비라를 이 드라마의 주축으로 삼아 그녀의 집념과 사랑을 긴장감 있게 강조하고 있는 점도 색다르다.
[DVD] 후르트뱅글러 지휘, 빈 휠하모니 관현악단/빈 국립 오페라단 합창단 (1954) 시에피(Bs) 에델만(Bs) DG
잘쯔부르크 음악제 때 촬영한 영상이다. 녹음은 모노이나 영상은 컬러이어서 낭만파 음악으로 착각하기 쉬운 색조(色調)를 담은 후르트벵글러의 모짜르트를 애호가라면 꼭 한번 보아두어야 한다. 시에피(Cesare Siepi, Bs)의 돈 죠반니, 그륌머(Elisabeth Grummer)의 돈나 안나, 델라-카자(Lisa Dell Casa)의 돈나 엘비라, 베르거(Erna Berger)의 쩨를리나, 에델만(Otto Edelmann)의 레포렐로 등 더 이상의 호화로운 캐스트는 바랄 수 없다.
[DVD] 카라얀 지휘, 빈 휠하모니 관현악단/빈 국립오페라 합창단(1987) 래미(Bs) 후를라네토(Bs) SONY
CD(1985년 녹음)에서의 베를린 휠하모니가 훨씬 유연한 빈 휠하모니로 바뀌어 카라얀이 아름다운 음향과 부드러운 표현력을 명쾌하게 살려 뛰어난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가수진은 CD 때와 마찬가지로 충실하다. 래미의 돈 죠반니는 다소 무뚝뚝하지만 그에 비해 지나치게 강렬한 개성을 내세우지 않는 후를라네토(Ferruccio Furlanetro)의 레포렐로와 좋은 짝을 이루고 있고 특히 그 목소리와 노래가 매력적이다. 토모바-신토부의 능숙하고 깊은 맛이 있는 표현력도 훌륭하고 바라디(Julia Varady)는 CD의 발차 못지않은 정확한 노래를 들려준다. 함페(Michael Hampe)의 연출은 잘쯔부르크 축제극장의 커다란 무대를 효과있게 살려 선명한 인상을 준다.
[네이버 지식백과] 카탈로그의 노래 - 모차르트, [돈 조반니]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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