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18.수요성령집회 설교
*본문; 요일 1:5~10
*제목; 요한일서(2) 빛 가운데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1. 하나님은 빛이시라!
신앙이란 주님과 깊은 관계를 맺어가는 것입니다. 이를 ‘사도요한’은 “사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주님과 사귐이 있으려면, “코이노니아”(공유)를 해야 하고,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이럴 때 주님의 기쁨의 은혜가 우리 삶에 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아주 분명한 선언이 나옵니다. ‘1절’입니다.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요일 1:5)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빛이시라는 말은 세 가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에게는 전혀 어두움(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그래서 어두움(죄)을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면 모든 어두움을 물러갑니다. 하나님께서 어두움을 물리치시는 것이 아니라, 어두움이 빛 앞에서 스스로 물러갑니다.
하나님의 승리는 이처럼 하나님의 존재와 임재를 통해서 그냥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 또한 하나님으로 인해 무조건 어두움을 이기는 자들입니다.
셋째,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모든 것은 다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죄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이킬 수밖에 없습니다.
죄와 어두움이 물러가지 않고, 그 어두움을 돌이키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안에 “빛”이신 주님이 안계시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것이 바로 ‘6,10절’의 말씀입니다.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일 1:6,10)
주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한 자들 안에는 주님이 좌정하셔서 함께 하신다고 했는데, 우리 안에 아직도 어두움이 있고, 그 어두움이 물러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 없는 즉 믿음 없는 그리고 구원 없는 자들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빛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2. 빛 가운데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그러면 “빛 가운데 살아 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7절’입니다.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7)
빛 가운데 살아간다는 것은 죄 없이 사는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본질 상,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빛 가운데 살아간다는 것은 먼저는 우리의 죄를 그대로 드러내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자백”이라고 합니다. ‘9절’입니다.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그러므로 진짜 그리스도인은 다음과 같은 사람입니다. ‘눅 18:11~14’을 봅시다.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눅 18:11~14)
여기에 보면 ‘바리새인과 세리’가 등장합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자랑합니다. 그러나 세리는 자시는 죄인이라고 가슴을 치며 자백합니다.
예수님은 세리가 의인이 되었다고 선언하십니다. “자백”이 “빛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고, “의인으로 인정받는 길”인 것입니다.
우리는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매일 매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여겨주시고, 결국에는 의로운 사람(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매일 죄짓고 매일 회개하는 것이 지겹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새로워지는 유일한 길입니다. 매일 죄짓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매일 회개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집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 중에 하나가 바로 몸을 씻는 일입니다. 그러나 내일이면 다시 더러워집니다. 그래서 더욱 매일 매일 씻어야 이 정도라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드디어 “양심에 화인 맞은 자”가 되어, 죄를 지어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결국 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구원의 은혜를 잃어버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과 그 뒤를 이은 다윗의 차이점은 무엇이겠습니까? 둘 다 죄를 지었지만, 사울은 범죄한 이후 회개하지 못했고, 다윗은 범죄한 이후에 깊은 회개를 가졌다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의인이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한국 기독교의 성자라고 하시는 한경직목사님은 기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탬플턴상”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상을 받으면서 하신 소감이 더 유명합니다.
그 축하자리에서 그는 “신사참배한 죄인”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같이 부족한 자를 하나님께서 쓰시는 이유는 나 같은 자도 하나님이 쓰신다는 것과 누구든지 주님께 순종하면 하늘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 하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진짜 믿음의 사람이요, 빛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요, 하나님 앞에 의인입니다.
어느 대형교회가 있었습니다.
대형교회인데 그 교회의 믿음의 불길이 타올라, 남자성도들이 모여서 “믿음으로 사는 남자들”(믿사남) 그룹을 만들어서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믿사님’ 회원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입니다. 참여하고 있는 회원들도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사는 것이 너무 어려워 점점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그룹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그룹이 용단을 내렸습니다. 그룹명을 바꾸기로 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남자들’에서 “회개하며 사는 남자들”로 바꾼 것입니다.
이후 이 그룹이 매우 활성화되었다고 합니다. 회개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그래도 이 길만이 의인이 되는 유일한 길, 빛 가운데 살아가는 유일한 길, 천국 백성을 완성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날마다 회개하며 사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래서 그 어떤 어두움(죄)도 용납치 않으십니다. 그 분이 우리 안에 좌정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어두움의 일을 품어서도 그리고 해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죄 가운데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빛 가운데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빛으로 비추어진 죄를 날마다 회개하며(자백) 살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비로소 우리가 의인으로 인침받을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