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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운에세이] 적막강산(寂寞江山)
"적막강산"은 글자 그대로 주위가 쓸쓸고 고요하다는 의미다. "적막"을 영어로는 'stillness, quietness, tranquility' 등으로 번역할 수가 있다. 이는 어딘가 뉴앙스가 묘한 데가 있는 말이다. '적막(寂寞)'하면 "성불사 깊은 밤에"란 노랫말처럼 고요한 '밤'을 생각하게 되고, 호젓한 깊은 산사(山寺)나 엄숙한 정적(靜寂)의 수도원(修道院)을 연상하게도 된다.
"적막강산근백년(寂寞江山近百年)"이란 말이 있다. 정영규란 사람이 썼다는 책 <천지개벽경(天地開闢經)>에 나오는 말이다. "乾坤不知月長在(건곤부지월장재)하고 寂寞江山近百年(적막강산근백년)"이라. "하늘과 땅이 알지는 못해도 달은 길이 있을 것이요, 이 강산이 막막하고 쓸쓸하기는 백년이 가깝다" 란 뜻이다. 여기서 인용된 말인 듯하다.
아주 옛날 내가 어렸을 적에 나의 할머님으로부터 나는 이 말을 자주 들었다. 오직 나의 할머니로부터만 이 말을 들었다. 나의 이야기에는 할아버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나의 할아버지에 대해 아는 바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나는 할아버지를 뵌 일도 없으려니와 어느 누구로부터 이야기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가끔 외출에서나 어디 이웃에 놀러라도 나갔다 돌아오셨을 때 아무 인기척이 없고 집 안이 조용할 때면 으레 하시던 말씀이다.
"적막강산이 근백년이다." 나는 그땐 그 말의 뜻을 잘 몰랐다.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주 듣게 되다 보니 전후 상황으로 봐서 집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있지 않다거나 바삐 한창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 시간인데 그렇지 못할 경우, 유감 내지 불만의 표명으로 하시는 말씀이구나 하는 정도는 짐작을 했던 것 같다.
나의 할머님은 옛날 어른들이 흔히 그렇듯 글자를 모르시는 분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님은 유식(?)한 말들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득을 하셨는지 많이도 알고 계셨고 또 적재적소에 자주 사용을 하시곤 했다. 할머님의 순발력 내지 응용력은 대단하셨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그때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때로는 재미있고 의미있는 말들을 상당수 기억하고 있고 자주 인용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할머님이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어릴 때 교육이란 게 참 무섭다. 사람은 견문(見聞)이 넓어야 한다. 견문이란 보고 들어서 깨닫고 얻은 지식이다. 견문은 다른 게 아니다. 바로 내가 나의 할머님으로부터 아무 뜻도 모른 채 듣고 보고 했던 많은 것들도 다 나의 견문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의 할머님은 한 마디로 경이, 놀라움, 찬탄 등의 낱말 외엔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분이셨다.
요새 며칠 동안은 우리 집이 적막강산이다. 비산동 임곡(林谷) 절간 같은 집에 온 지가 채 일주일도 안 되는 데도 그야말로 이 집은 온통 '적막강산이 근백년'이다. 처음 하루나 이틀 동안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차라리 전장(戰場)에서 해방된 기분이라 마음이 홀가분하고 정신을 차릴 수 있어 살 만했다. 그러나 며칠이 더 지나다 보니 그게 아니다.
노인네 두 사람이 서로 소 닭 쳐다보듯 각자 방에서 자기 일만 하며 지내다 보니 이건 사람 사는 집이 아니라 절간이다. 도무지 사람 사는 분위기가 아니다. 집 사람이나 나나 이미 그 사이 난장판 분위기에 이력이 난 탓인지 편안하고 좋을 것만 같이 여겨지던 적막강산이 좋지가 않다. 차라리 시끌벅적한 도떼기시장 생각이 간절하다. 사람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다. 우리는 나이가 들만큼 든 사람인 데도 그렇다. 이런 것도 인지상정(人之常情)이란 말로 치부하고 스스로 위로를 해도 될까.
요즘 우리 내외가 머무는 송도 아이들 집은 눈만 떴다하면 전쟁터다. 세 살배기 개구쟁이가 밤낮으로 쿵쿵거리고 노래하며 뛰어다니고 축구하고 그러다 자빠지고 엎어지고 넘어지고 박치기 하고, 때로는 울고 불고, 조선 저지레란 저지레는 다하고, 흘리고 쏟고 엎지르고, 동생 때리다 어미에게 야단을 맞기가 일쑤다. 거기다 세상 모르는 그야말로 천진난만한 9개월짜리 손녀까지 쌍나팔이 터질 때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던 주인공들이 며칠째 집을 비우고 없다.
지난 주말 대구에 잔치도 있고 해서 솔군해서 내려갔다가 우리는 다음날 상경을 했고, 나머지 세 식구, 며느리, 손자, 손녀는 지금 경주 외가에 가 있는 중이다. 지금 외가는 살 판도 났겠지만 보나마나 전쟁 중이다. 오늘 정오쯤 해서 전화가 왔다. 아니나 다를까 개구쟁이가 할아비한테 건 전화다. 전화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 "할아버지!" 한 마디에 이 할아비는 순간 혼이 뺐기고 만다. 녀석과 전화할 때면 그저 싱글벙글이다. 평소 부처처럼 가만 있다가도 녀석 이야기만 나오면 목소리가 달라진다. 그건 두 사람이 다 마찬가지다.
이제 그와는 전화로 어렵잖게 대화가 된다. 말하는 실력이 대단하다. 녀석은 오늘, 12월 8일로서 생후 만 33개월이다. 세 살짜리가 말하는 걸 보고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다. 내 손자라 하는 소리가 아니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렇다. 하기야 나의 이 말을 교주고슬(膠柱鼓瑟) 그렇다고 들어줄 이가 누가 있겠는가. 굳이 우기지는 않겠다. 나도 그들과 함께 있으면 영락없이 행복한 착각에 빠져버리는 할아비다.
녀석은 못하는 말이 없다. 한번 가르쳐 준 말은 잊지 않는다. 완전 이해를 하고 척척 응용을 한다. 오늘 어미 말에 의하면, 거기 할아버지가 휴지를 사용하시는 걸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인데, 녀석이 그때 하는 말이 "할아버지, 휴지 낭비하면 안 되요" 하더란다. 이것은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 이 정도는 약과다. 그가 이미 터득한 추상명사의 수만도 상당하다.
집 사람과 내가 적막강산 신세를 면하는 길은 그들과 함께 하는 것뿐이다. 때로는 귀찮고 힘도 든다. 그래도 그것이 우리의 행복이다. 노년의 행복도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행복을 그들이 언제까지 보장해 줄지는 알 수 없다. 그건 그때 일이고 앞으로 일을 지레 걱저할 필요는 없다.
"Life is worth living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 라는 영어 문구(文句)가 또 생각 난다. 나의 현재의 인생은 충분히 살 만하다. 뉴욕 브롱스(Bronx)쪽에서 허드슨 강을 건너는 제일 긴 다리, 내가 수십 번이나 이용했던 87번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다리이기도 한 타판 지 브릿지(Tappan Zee Bridge) 교각에 자살 예방 표어로 이 말이 붙어있는 것을 등산 길에 건너 다니며 수차례 본 기억이 난다. 인생은 살 가치가 있는데 왜 자살을 하려 드느냐고 당국에서 고육지책으로 이 말을 써 붙여놓지는 않았을까. 강물을 내려다 보는 그런 사람들도 적막강산의 처지를 못 면하기 때문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2011. 12. 08. 林谷齋/草雲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