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언급하였듯이, 정저우의 하남공업대를 거점으로 삼았지만, 하남공업대 법학원과는 교류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저우에서 북쪽 100킬로 정도 떨어져 있는 신향(신샹)의 하남사범대학과는 좋은 교류가 있었습니다.
저희 인하대 로스쿨에 정영진 교수님이 계시는데, 일찍이 미국, 중국에서 유학하시고, 현재 한중 법학교류의 중핵과 같은 분입니다. 그 분 소개로 하남사범대 법학원의 이영신(李永申; 리용선) 교수님을 알게 되어 연락을 취해 보았는데, 뜻밖으로 리용선 교수님이 매우 친절하고 적극적이었습니다. 제가 먼저 신샹에 방문해서 일차 모임을 하였습니다. 리교수님이 정저우까지 와서 태워주겠다고 하였는데, 혼자 여행하는 기분으로 신샹에 가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시골의 작은 도시 정도로 생각했는데, 신샹이 또 하나의 교육 중심이고, 인구도 600만이 넘는 큰 도시였습니다. 중국도 고속철도가 발달하여 정저우 동역으로부터 신샹 역까지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가격도 32(?)위안(6500원 정도)였습니다. 신샹 역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학교 앞에 도착하이 리 교수님이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차를 타고 학교를 둘러 보는데, 학교 캠퍼스가 엄청 컸습니다. 하남공업대보다 더 컸고, 캠퍼스가 동과 서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새로 지은 서 캠퍼스 입구에는 마모쩌둥 동상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리용선 교수님은 첫 인상은 너무 좋았습니다. 중국에서 많은 분을 만나 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순박하고 정확하고 친절하신 교수님은 처음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리 교수님은 한국에서 유학을 하였던 분이었습니다. 국제법 전공이고 제주대학교에서 학위를 하였습니다. 부인께서도 역시 같이 제주대학에서 유학하시고, 또 같이 하남사범대 법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었습니다. 또한 리교수님은 하남사범대 법학원의 국제교류 담당 비서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은 당 우위의 체제입니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당-정 관계에서 당이 우위이고, 학교 차원에서도 당-행정 관계에서 당이 우위입니다. 원장(학장)도 있지만, 당 서기가 최고 책임자가 됩니다. 그래서 당 서기-부서기-비서의 라인으로 정책이 결정됩니다.
위와 같은 1차 모임에서 7월초에 정식 교류 행사를 기획하였습니다. 이후 6월30일에 정영진 교수님도 한국에서 오시고, 저와 같이 신샹에 가서, 저녁 만찬을 하고, 7월1일 오전에는 정영진 교수님, 오후에는 제가 특강을 하고, 7월2일 오전에는 하남사범대 법학원과 인하대 창의글로벌 대학원 AI데이버법학과와의 교류협정도 체결하였습니다. 참고로 인하대 창의글로벌 대학원은 중국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1년 과정의 특수한 석사과정입니다. 그 산하에 AI 데이터법학과, 간호학과, 체육학과 등 열 개의 전공이 있고, 전체 중국 입학생은 현재 500여명에 달합니다.
정영진 교수님은 AI에 대한 발표를 하셨고, 저는 한국의 법학교육제도와 인하대학교의 법학교육 과정에 대하여 발표를 하였습니다. 애초에는 한국의 탄핵제도에 대하여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나중에 하남사범대 측에서 그에 반대하여 주제가 바뀌었습니다. 제가 중국 학생들 상대로 중국어로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중국어 중급도 안되는 실력으로 발표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하겠습니다. AI의 도움으로 발표 준비를 할 수 있었고, 준비된 대본을 읽어내려가는 식으로 발표를 하였습니다. 글자마다 성조를 기억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어, 읽어 내려가는 데에도 애를 먹었습니다.
하남사범대에서는 시종일관 친절하게 호의를 베풀어주었습니다. 6월30일에도 리용선 교수님이 정저우 숙소까지 와서 저희를 태워주었습니다. 기사딸린 관용차를 이용하였습니다. 7월1일 발표 마치고 여유 시간에는 신샹의 '평원 박물원'을 안내해 주었고, 또 하남사범대 역사박물관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신샹의 평원박물관은 규모가 매우 커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도 특별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신샹은 중국 고대 상나라(은나라)에서 주나라도 이행하는 결정적인 전쟁이 벌어진 목야(牧野; 무예) 평야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주 무왕(武王)은 포악했던 은 주왕(紂王)을 정벌하고 주 나라를 개창했습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상(은)나라는 갑골문으로 점을 치고, 또 사람을 희생으로 바치는 제정일치의 체제였고, 주 무왕은 변방에서 상나라에 복속당하여 희생제의에 바쳐질 '사람을 사냥'하는 일을 맡았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주 무왕이 점점 포악해지는 상 나라 주왕을 목야 전쟁에서 제압하고 새로운 인본주의에 기초한 주나라를 열었다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중국은 일찌감치 신정체제를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신정체제에서 인본주의로 이행하고, 이제 종교는 역사로 대체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사제 계급을 사관들이 대체하고, 종교 경전을 역사서가 대체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생각해 봅니다.
또한 하남사범대학교 역사 박물관도 매우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우리 인하대 박물관과는 비교조차할 수 없는 정도였습니다. 알고보니 하남사범대학교는 중국 하남성에서 가장 먼저 건립된 고등 교육기관에 연원을 둔 학교였습니다. 이후 여러 시기를 거치면서 대학들이 분화되었고, 지금 그 주력은 정주대학교, 하남대학교, 하남정법대학교, 하남사범대학교로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박물관 관장과 전문 도슨트가 직접 박물관 전 전시장을 모두 안내해 주어 특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하남사범대 법학원은 매년 제주제와 교류 행사를 한다고 합니다. 학생들을 선발하여 제주대학교에서 연수도 하고 견학도 한다고 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하여 하남사범대 법학원은 우리 인하대와도 교류를 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저희 특강 당시 경청하였던 하남사범대 법학원 대학원생(석사과정)은 한결같이 순박하고 총명해 보였습니다. 또한 제 개인적 인상이지만, 하남성 지역 중국인들의 얼굴 형태가 우리 한국 사람들 얼굴 형태와 매우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최근 인류지리학의 연구에 따르면 한민족은 유전적으로 중국 화북 지역의 한족 및 만주·시베리아의 퉁구스계 집단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고 합니다.
내년에 하남사범대 학생들의 인하대 방문을 고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