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癡呆)환자 간병(看病)
최근 일본 법원은 치매(癡呆ㆍDementia) 환자의 사고로 발생한 손해배상(損害賠償) 책임이
가족에게 있다고 판결(2014년 4월)했다.
즉 나고야고등법원(名古屋高等法院)은 길거리를 배회하다 기차에 치여 사망한 치매 환자(2007년
사고 당시 91세)의 부인(91)에게 철도회사에 359만엔(약 3,652만원)을 배상하라고 최근 판결했다.
철도회사는 당시 사고로 20편의 열차 운행이 중단돼 운임(運賃) 수입 손실이 발생했다며 유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부인은 간병(看病)으로 피곤해 잠깐 잠든 사이 남편이 집 밖으로 나가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부인과 장남에게 공동으로 720만엔을 배상하라고 1심(審) 판결을 2013년 8월에 내렸고
유족은 항소(抗訴)했다.
1심 판결과 달리 2심에서는 장남이 20년간 분가(分家)해 살았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을 면제했다.
법원은 “부인이 남편의 외출을 막지 못한 책임이 인정된다”면서 “부인이 고령(사고 당시 85세)
이라고 해도 남편을 돌볼 민법상 감독 의무를 면제받은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일본 치매환자가족회 등 시민단체는 “법원이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간병(老老看病)의 현실을
무시했다”고 비판하면서, “치매 환자를 아예 감금(監禁)하라는 판결”이라며 탄원서(歎願書)를
제출하며 총력전을 펼쳤지만, 판결을 뒤집지는 못했다.
현재 일본은 65세 이상 노인 4명 중 1명이 치매이거나 치매 예비군이므로 이번 법원 판결은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연간 10만명 이상이 간병 때문에 직장을 떠나고 있다.
간병을 위해 시간적 여유가 있는 직장을 찾지만, 연간 약 7만3000명이 ‘간병 실업자’로 전락하고 있다.
일본 정부 조사에 따르면 간병을 병행하는 직장인이 291만명으로, 전업주부(專業主婦)를 포함해
무직으로 간병하는 266만명보다 많다.
일본 정부는 2005년에 간병휴가(看病休暇) 제도를 도입하여 연간 93일까지 휴가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했다.
하지만 실제 이용하는 비율은 3.2%에 불과하다.
즉 보통 휴가 2주 전에 신청해야 하기 때문에 갑자기 환자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에는 이용하기 어렵다.
또한 회사 분위기가 간병 휴가를 신청할 경우,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에 고령화 시대를 맞은 일본에서 간병 이직과 실업의 불안에서 자유로운 직장인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서비스 이용이용권 관리법’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치매 노인을 돌보는 가족들
에게 연간 6일 정도 휴가를 주는 제도가 2014년 7월부터 도입된다.
치매환자 가족 휴가제는 치매 노인을 24시간 운영하는 단기 보호 시설에 연간 6일 정도 맡기고
가족들이 몇 일 동안이나마 간병 부담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휴가 신청 대상자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두어 ‘노인돌봄종합서비스’를 신청한 사람 중 치매
노인을 돌보는 가족이다.
6일을 한꺼번에 쓸 수도 있고 2〜3일씩 나누어 쓸 수도 있다.
비용은 소득 수준에 따라 무료에서 하루 몇 천 원 정도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우리의 간병 문화(看病文化)는 유별나서 환자 침대 옆에 간병인 보조 침대를 두고 있다.
요즘은 병실 바닥에 온돌을 들인 병원이 꽤 있다.
즉 환자를 돌보는 가족이 환자 곁에서 밤을 지새우며 따뜻한 온돌에서 허리라도 지지고 이튿날
직장으로 출근하라는 배려다.
회진(回診)하는 의사도 병실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환자를 진찰한다.
영국은 1942년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모토로 복지(福祉)제도를 정비했다.
하지만 갈수록 복지 예산이 빠듯해지는 상황에서 ‘가족을 통한 복지’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영국의 65세 이상 인구비율은 16.5%(2010년)이며 10년 내 초고령(超高齡)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한다.
또한 75세 이상 고령 인구는 현재 420만명에서 20년 뒤에는 630만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제레미 헌트 복지부장관은 “나이를 먹은 집안 어른이 요양원(療養院)으로 직행하는 ‘영국식
문화’와는 달리 자손들의 존경을 받으며 가족과 함께 사는 ‘아시아 문화’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령화 문제를 극복하는 열쇠는 가족 간의 존중과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며, 자식들은 부모
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영국인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 가정의 경로사상(敬老思想)을 베워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오는 7월부터 거동에는 큰 불편이 없지만 인지 기능(認知機能)이 떨어진 가벼운 치매
노인 5만명도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게 된다.
즉 보건복지부는 경증(輕症) 치매 노인을 위한 ‘치매특별등급’을 만들어 혜택을 제공하기로 확정했다.
현재 65세 이상 치매 노인은 57만6000여명이며, 이들 가운데 약 18만명의 중증(重症) 치매
노인만 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현행 1〜3등급을 1〜4등급으로 세분화하고, 비교적 중증인 3등급에 대한 월 서비스
이용 상한액을 9.8% 인상하는 등 등급별로 한도액도 인상했다.
이에 따라 7월부터 중증 치매는 등급에 따라 월 90만3800〜118만5300원 한도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치매특별등급(45점 이상 51점 미만)을 신청할 때 전문의(專門醫)로부터 치매 진단을 받은 소견서
를 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해야 한다. 치매특별등급을 받은 환자는 매달 최대 76만6600원 상당의
서비스를 약 11만5000원(본인 부담 15%)만 내고 받을 수 있다.
즉 주야간 보호시설을 하루 8〜12시간씩 22일 이용하거나, 요양보호사가 집으로 찾아와 실시하는
‘인지능력(認知能力) 향상 교육’을 하루 2시간씩 26일간 받을 수 있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다.
치매와의 싸움은 장기전이며, 가장 힘든 싸움은 중증(重症) 치매의 치료이다.
치매는 환자의 인격뿐 아니라 가족의 삶도 파괴한다.
우리나라 치매환자는 2030년에 114만명, 2050년에는 21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노동 인구는 급격하게 주는 시기여서 치매의 사회적 고통이 급격히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때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될 세대는 지금의 중ㆍ고등학생, 대학생이므로 이들을 대상으로 치매에
관하여 가르치고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지난 2012년 ‘치매관리법’ 시행에 따라 국가는 5년마다 치매관리 종합계획을 수립하여야 하며
‘국립중앙치매센터’가 치매관리사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얼마 전 개통한 24시간 ‘치매상담콜센터’ 전화번호는 ‘18세의 기억을 99세까지, 99세까지 팔팔
(88)하게 산다’는 뜻을 담아 1899-9988로 정했다.
36석 규모의 콜센터에서는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이 연중무휴로 치매 관련 상담을 해준다.
한국형 치매 사회안전망을 확립하는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 중이며, 진단 인프라는 많이 정착돼
전국의 치매지원센터나 보건소에서 만 60세 이상 노인이면 무료로 치매 1차 선별검사를 받을 수 있다.
또 치매환자를 위한 서비스도 강화되고 있으며, 저소득층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약값의 일정 부분
을 지원하고 있다. 간단한 치매 자가 검진(自家檢診) 도구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ㆍPC버전
‘치매 체크’가 개발되었으며, 누구나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다.
치매는 현재 약으로 진행을 상당히 늦추는 정도까지 진전되고 있다.
치매는 경도(초기), 중등도(중기), 중증(말기)의 3단계로 구분한다.
경도나 중등도일 경우 인지자극 등 비(非)약물 치료, 식이조절, 운동 등과 함께 인지(認知)기능
개선제를 쓴다. 중증 치매 환자는 인지기능 개선제의 고용량 처방, 효과와 약리작용이 다른 두
가지 이상의 약제를 함께 처방하는 병용요법을 사용한다.
인지기능 개선제 병용요법은 치매의 악화 속도를 늦춰 요양병원 입소율을 감소시킨다.
오바마 대통령이 2025년까지 치매 완치법을 찾겠다고 선언한 미국을 위시해 선진국들이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장차 치매의 진행을 멈출 수 있는 약이 개발되어 그 혜택을 받기
위하여 치매를 조기에 관리하여 뇌(腦) 건강을 잘 유지해야 한다.
현대인은 기억(記憶)의 다리가 끊겨 망각(忘却)의 세상으로 넘어가는 치매를 죽음보다 더 두려워한다.
사람을 사람답게 떠받치는 기둥인 기억이 사라지면 사람다움도 함께 사라진다.
현대의학은 아직 치매 완치법을 찾아내진 못했지만, 치매를 제대로 알고 대비하면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하고 상당 부분 관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치매 예방을 위해 일주일에 세 번 정도 30분 이상 운동을 하고, 과음(過飮)은 치매
위험을 높이므로 절주(節酒)하여야 한다.
글/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