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이어서 전합니다
14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 구체적인 방법은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해야 합니다. 장로들과 모든 주민들이 다 성전으로 나와야 합니다. 교회로 나와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예배장소로 나와야 합니다. 철저하게 파멸되었음에도 금식도 안하고 예배도 안드립니다. 교회의 공예배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도무지 예배에 오지 않습니다.
사실 이 말씀 때문에 요엘서 말씀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이 이렇게 해야 하는 영적 시즌입니다. 가정예배도 회복이 되어야 하고, 교회 공동체 예배도 회복되어야 합니다.
자식들이 다 사탄의 포로가 되고 있습니다. 포로가 된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예배 30분을 못들입니다. 하나님께 하루에 30분을 못드립니다. 그런데 pc보는 시간은 하루에 업무시간을 제외하고도 2-3시간이 넘습니다. 물질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과 같이 시간의 십일조도 한번 드려보세요. 그러면 인생의 시간을 헛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병상에 누워 헛 세월을 보내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병상에서 헛 세월을 보내지 않게 하실 것을 저는 믿습니다.
시간이든 물질이든 정성이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인색하면 하나님도 여러분들에게 인색하게 축복을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헤아리는 헤아림(헬, 메트론)으로 하나님도 헤아릴 것입니다.
[누가복음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이런 영적 시즌에 이제는 신랑, 신부까지도 신방에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15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 슬프다(히, 야하흐)는 “아아, 오호라”의 슬픔의 탄식을 나타내는 감탄사입니다. 여호와의 날 곧 멸망의 날이 가까이 온 것입니다.
가까이 왔다 (히, 카로브)는 원어적으로 가족이 친근하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과 같은 의미이므로, 재앙이 가족처럼 친근하게 가까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재앙이 가족처럼 가까이 턱 달라붙는다는 것입니다. 항사 주변에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엘 선지자가 종말이 가까이 왔다고 하는 것은 먼저는 곧 다가올 이방인들의 침략으로 이스라엘이 망하는 일이고, 멀리는 종말의 시대가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원근통시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까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종말이 더디 오는 것에 대하여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3장에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벧후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여호와의 날이 누구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전능자인 여호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 놀랍게도 전능자 (히, 샷다이)와 멸망(히,쇼드)는 어근이 같습니다.
그러므로 전능자이신 여호와 하나님 만이 멸망, 심판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단어를 통하여 보여줍니다. 창조도 여호와로부터요, 심판을 통한 멸망도 여호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할 분입니다(마 10:28)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분이 믿지 않는 자들을 또한 명망시키시는 것입니다.
16 먹을 것이 우리 눈 앞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다시한번 2절처럼, 의문사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형편을 돌아보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는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없었다는 것이죠? 16절에서는 두 번이나 “먹을 것이 우리 눈 앞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라고 묻는 것입니다.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도, 기쁨과 즐거움도 눈 앞에서 다끊어진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에 이런 모습이 지금 있다면, 멸망의 징조로 보시고 회개하면서 우셔야 합니다. 팥중이 재앙으로 끝이 나야 합니다. 황충 재앙까지 가면 완전한 파멸입니다.
17 씨가 흙덩이 아래에서 썩어졌고 창고가 비었고 곳간이 무너졌으니 이는 곡식이 시들었음이로다
◎ 흙속에 있는 씨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망입니다. 땅에서 씨가 살아서 싹이 나야 곡식에 대한 소망이 있는데 이제 씨까지 흙속에서 썩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창고가 비고 곳간이 무너져 억장이 무너질텐데 이제 소망마저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밖에서의 삶의 열매입니다. 회개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고집피는 자들의 열매인 것입니다.
18 가축이 울부짖고 소 떼가 소란하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 양 떼도 피곤하도다
그래서 사람 뿐만 아니라 ① 가축까지 꼴이 없어, 풀밭이 없어 소란하고 피곤한 것입니다. 원어에는 의문대명사“마”가 있고,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키”가 있어 이렇게 해석됩니다.
“가축이 울부짖고 소 떼가 얼마나 소란한지?” 왜냐하면 이는 꼴이 없음이라, 양 떼도 피곤하도다
피곤하도다 (히, 아샴)는 형벌을 당하다의 뜻입니다. 고통을 당하는 뜻입니다.
가축들이 풀이 없어 울부짖고 당황스러워 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휴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죄로 다른 피조물인 동식물들까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풀, 목장이 없는 이유는 19-20절에 나와 있습니다. 다 불살라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요한계시록 8장에 보면, 수목, 풀이 1/3이 전 세계적으로 다 타버립니다.
[요한계시록 8: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19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불이 목장의 풀을 살랐고 불꽃이 들의 모든 나무를 살랐음이니이다
요엘 선지자가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 부르짖음이 우리들의 부르짖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요엘선지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풀과 나무가 다 불에 살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나무, 풀은 모두 백성들을 상징합니다
[아가 2:3]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
20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내가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
가축 뿐만 아니라 ② 들짐승들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립니다(히, 아라그, 갈망하다, 간절히 바라다). 시내가 말랐고 들의 풀이 다 타버렸기 때문입니다.
불심판이 반드시 다가옵니다.
들짐승들도 하나님께서 그동안 먹이신 것입니다.
[시편 149:8]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9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그러나 인간들이 금식을 선포하고 성회로 모여 회개하면 다시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들의 풀도 다시 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엘 2:22]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맺는 말>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오늘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나와 상관이 없이 여긴다면 요엘서에서 말씀하신 재앙이 언젠가는 다가올 수 있습니다. 울부짖어야 합니다. 재앙이 다가오는 것도 국가적이고 세계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요엘서의 예언은 그런 재앙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부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들으시고, 또 자식들, 후손들에게도 전하시고, 밤이 새도록 울부짖어서 재앙이 축복으로 변화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