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반문화적 행태에 대한
한국작가회의의 입장
최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는 한국작가회의에 2010년 문예진흥기금 집행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의 확인서를 작성해 제출할 것을 통보해 온 바가 있다. 확인서에는 "본 단체는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소속되었으나 실제 불법 시위에는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향후 불법 폭력 시위 사실이 확인될 경우 보조금 반환은 물론 관련된 일체의 책임을 지겠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물론 우리 한국작가회의는 지난 2008년 촛불집회에서 불법 폭력 시위를 한 적이 없다. 불법 폭력 시위를 한 적이 없는 단체에 불법 폭력 시위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라고 요구하거나, 미래의 시점에 불법 폭력 시위 사실이 드러날 경우 이미 지급한 문예진흥기금 보조금을 반환하겠다는 확인서를 쓰라고 강요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짓밟는 반문화적 행정이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소속된 1,800여 개의 제 정당 시민사회단체 모두를 불법 과격 폭력 단체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시대에 역행하는 반민주적 발상이며 정권 위주의 편파적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예술위의 이러한 행태는 자신의 설립목적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예술위는 “예술이 우리 모두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으로 문화예술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모든 이가 창조의 기쁨을 공유하고 가치 있는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 예술위는 예술단체에 대한 검열과 길들이기를 통해 비판적 사유와 창조적 역량을 위축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봉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 나라를 대표하는 수많은 시인·소설가·아동문학가·평론가들이 소속된 한국의 대표적인 문인단체에 대하여 불법·폭력 시위 운운하며 굴욕적인 확인서를 요구하는 것은 그 발상 자체가 예술에 대한 무지이며 창작의 자유에 대한 공공연한 위협이다. 나아가 예술위는 한국작가회의 회원들을 잠재적인 피의자로 간주하는 반인권적 행정폭력을 자행하고 있으며, 헌법상에 보장된 집회와 언론의 자유 자체를 부정하려는 반민주적 발상을 보여주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예술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한 불가결의 토대이다. 위정자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은 이 나라 인문학 역사의 오랜 전통이며 선비정신의 근간이었다. 봉건왕조 시대에도 선비 지식인들은 대의와 정도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직언을 하였으며, 근대 이후에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투옥과 고문과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해 왔다. 그와 같은 선비 지식인의 올곧은 정신이야말로 이 나라를 지켜온 버팀목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 작가들은 2년전 시민들의 촛불을 지켜보았고, 스스로 촛불을 들었으며, 촛불 정국을 바라보는 글을 썼고 민주주의의 확장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예술위에 우리의 입장을 밝히며 공개질의를 하고자 한다.
1. 우리는 예술위의 이름으로 통보된 반문화적 문건의 작성 주체가 누구인지 밝힐 것을 요구한다. 예술위가 스스로 작성한 것인가, 문화부와 문화부 장관의 지시에 따른 것인가, 아니면 청와대와 공안기관에 의해 주도된 것인가.
1. 우리는 예술위가 한국작가회의에 대해 불법 폭력 단체 운운하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문인들의 명예를 유린하고 창작의 자유를 위협한 폭거라고 판단하며, 따라서 이에 대한 예술위 위원장의 사과를 요구한다.
1. 우리는 한국작가회의를 비롯한 시민 사회단체에 명분 없는 확인서를 강요하는 정부의 행태가 민주주의를 위축시키고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부당하게 제약하는 것이라 본다. 따라서 우리는 확인서 제출 요구를 취소할 것을 당국에 요구한다.
1. 우리는 이번 기회에 예술위가 몇 푼의 보조금을 미끼로 문예단체와 활동가들을 길들이려는 물신주의적인 발상에서 벗어나, 당초의 설립목적에 맞는 순수한 지원기구로 거듭날 것을 촉구한다.
만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이번 사태에 대한 해명과 사과를 하지 않은 채 반문화적이고 정권시녀적인 문화예술정책을 고수해 나가고자 한다면, 우리 한국작가회의는 문인과 예술인의 양심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문학적 행동에 당당히 나설 것임을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
2010년 2월 8일
(사) 한국작가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