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나라의 마지막이 되던해, 충분히 막을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등애는 음평 샛길로 나가 한중 덕양정을 지난 뒤 똑바로 성도로 가는 길을 잡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등애는 험한 산을 넘어 결국 촉을 멸망 시킬수 있었다.
촉은 등애의 별동대에 의해 무너졌다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그러나 등애의 이 작전은 제갈량이 죽기전, 예상했다고 한다.
험한 절벽을 넘어 진격하려 하는 순간 거기에는 비석이 하나 있었으며, 아래와 같은 시가 있었다고 한다.
두 볼이 처음 일어날 때
이곳을 넘는 사람이 있다
두 선비가 재주를 다투나
오래잖아 절로 죽으리라
'승상 제갈무후가 썼노라'
더욱 놀라운 것은 더 나아가서 한 영채가 있어 알아보니, "듣기로 제갈무후께서 살아 계실 때에 이 영채에다 2천 군사를 두어 험한 길목을 지키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후주 유선이 여기 있던 군사를 거두어 버려 지금은 비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말을 들은 등애는 간담이 서늘해 져서 후주의 어리석음을 감사했다고 한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다음부터는 등애에게 강유성이 함락되고 부성이 함락되고 유선은 제갈첨을 불러 눈물을 흘리며 모든걸 맡겼다고 한다.
제갈첨은 이에 응해 7만의 병사로 면죽관으로 출진하였다. 제갈상의 용맹에 처음에는 유리하게 전개 됐으나, 험한 절벽에서 살아남았으며, 이기지 않으면 죽음이라는 각오로 싸우는 등애의 정예병과 성도의 평화로운 생활에 나태해진 촉군과의 대결은 원래 부터가 계란으로 바위치기 였던것이다. 싸움이 숫자놀음이 아니라는 사마의의 말처럼 점차 점차 밀려 결국 면죽관에 포위 되었고, 제갈첨은 이에 오에게 구원병을 요청해, 손이 정봉이 이끄는 구원병이 출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제갈첨은 이를 못기달리고 나가 싸우니 그에 부자는 전사하게 된다.
면죽관이 함락됐어도 성도에는 충분한 병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선은 항복을 하게 된다.
그때 당시 건녕에서는 곽준이 항전하고 있었고 검각에서는 촉나라 최후의 정예병들과 강유,요화,장익이 막고 있었고, 오에서는 정봉 손이가 이끄는 원군이 오고있었다.
성도에서 싸울 생각이 조금만 있었어도 유심의 말처럼 충분히 협공해서 등애를 사로 잡고 촉을 지킬수 있었을 것이다.
첫댓글 저도 맨날 생각했죠. 왜 촉이 쉽게 망했을까, 역시 유선의 어리석음이네요.
저두 유선이 어리석기 때문에 멀망했다고 보내여.. ㅋㅋ
황호 썅 ㅡㅡ
유선이 아들보다 못하네
유선은 삼국지 영웅들 중에서도 제사도 안모신다죠....유선 병신....
저도 제일 싫어 하는 사람들 중 하나가 유선이에요
유선은 진짜 등신병신이죠 유비와는 차원이 틀리네
막으문 뭐함니까 황제가 유선인데.........
만약 막아서 황제가 유심이 되었더라면 쩌업.............
열받어 강유요화장익곽준이 불쌍하다 짱나 유선
과연 그전투를 막았다고 촉이 멸망하지 않았을까요... 유선이 왕이었던 이상 촉은 발전을 기대하긴 힘듭니다. 더군다나 겨우 키워논 국력을 강유가 다 말아먹죠-ㅅ-; 위나라의 맹공에는 버틸수 없을겁니다.
강유가 국력을 잡아먹었다고요....? 불쌍하기는.....
유선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연의는 소설입니다.제갈량이 숨겨놓은 군사 5천이란 전부 연의의 지은이가 지어낸 이야기죠....연의는 어디까지나 소설입디닷.. 그리고 그걸 막았다고 하더라도 과연 촉이 재건을 할 수 있었을까요??
재건 가능 할것 입니다. 오와 손을 잡고 4년 만 위와 싸워 달라고 하고 난뒤 남만을 다시 평정하고 돈빨좀 받으면 되겠죠 ㅋㅋ
정말로 제갈량이 2천의 군사를 그곳에 대치해놓고 죽었다고 쳐도 촉은 유선과 황호가 있는 이상 망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아버지를, 나라를 무시하는 놈들한테 뭘바라겠습니까?
다동감
유선이랑 황호 씨발년.씨발놈.싸이코 엿먹어!
간신배 새끼들 떄문이겠죠. 이게 60% 황호,유선 공동책임, 40%가 간신배새끼들 책임이죠.
잠깐, 황호는 씨발놈도 씨발년도 아님. ㅋㅋㅋ
이떄 제갈첨이 면죽관에서 기다리고 남중지방에 곽익이랑 장소(장비 차남) 이런 장수랑 성도에 몇몇 장수 있으면 이길수도 있었을 텐데...
유선은 아무리 제갈량한테 공부를 배웠지만(?)그다지 어릭석고 그럴만한 특기가 얿다고알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