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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부리지 말고 한 자 한 자 천천히
응화스님께서 민족사에서 발행해서 스님들께서 교재로 쓰시는 화엄경 4권의 본문 아래에 깨알같이 한글 번역을 적어오셨다. 큰스님께서 불심(佛心)이라는 글자를 써 주시고 ‘신심이 나면’ 덧붙여주신다는 충만(充滿)이라는 글자도 써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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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동으로 이사도 하고, 다리도 아파서 못오셨다는 비구니스님께서 그동안은 인터넷과 유튜브로 강의를 들었다고 하시면서 3년만에 오셨다고 했다.
“그래요. 유튜브도 열심히 듣고,여기도 한 번씩 오면 좋지.”하고 큰스님께서 환영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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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무거사님이 경전들을 가져오셨다.
“제가 그동안 경전을 무구정광대다라니 금강경, 아미타경, 원각경, 지장경 공부하시는 스님들이 불사용 소장용으로 영인했습니다.”
불상의 복장안에 넣을 때는 책을 맨 끈을 풀어서 경전을 넣는다고 하시면서 스님들의 소장용이나 불상 복장용으로 만든 경전을 보여주셨다.
두루마리로 가져오신 무구정광대다라니는 석가탑에서 발견한 것 그대로 영인한 것이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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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도 10월에도 코로나로 화엄법회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10월 큰스님 생신 때 화엄전에 가서 인사드리고 단체사진을 찍으신 스님들 사진을 여래성님이 인화해서 가져오셨다. 화창한 가을 하늘 아래 지난 번 전법을 받으신 건당제자 스님들이 활짝 웃고 계셨다.
큰스님은 ‘화엄전 단청도 잘나왔다’ 하셨고, 회장스님은 사진사가 사진을 잘 찍었다고 누가 찍었느냐고 물으셔서 여래성보살님이 웃으셨다.
큰스님이 사진들을 성화스님에게 맡기시면서
“스님이 참석한 스님들에게 돌려. 그건 소임자가 해야지, 중간애들이 하는 거 아니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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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반야사 원욱스님이 전날 입적을 하셨다.
“일년정도 앓았다지 아마. 한 번 왔으니 가긴 가는 건데 너무 젊은 스님이라서 나도 뉴스 보고는 충격을 받았어.”
하고 큰스님이 말씀하셨다.
“원력있는 사람들이 오래 살아야 하는데 한창 일 많이 하던 스님이라 너무 안타깝습니다.”
하고 회장스님이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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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가 있기 며칠 전에 큰스님은 영덕군에서 초대를 받아 ‘나옹선자 탄신 700주년 행사’에 다녀오셨는데 집 나선지 꼬박 12시간만에 돌아왔다고 하셨다. 영덕군에서 몇 년 전부터 공을 많이 들여서 초대를 해서 안갈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용학스님도 큰스님처럼 영덕출신이시라서 초대를 받아 가셔서 큰스님이 행사에 참여하시는 모습을 유튜브 <용학스님 tv 木魚>에서 라이브로 방송하신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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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하는 펜으로 쓰시라고 부드럽게 잘 써지는 ‘젤볼펜 10색 세트’를 대중공양해주신 스님이 계셨다. 사경이야기 끝에 큰스님은 “욕심부리지 말고 한 자 한 자 천천히” 써보라고 하셨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본 강의에 들어가기 전에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제76권 점안하고 강의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서문
선남자여, 응당 마음의 성[心城]을 수호할지니
모든 나고 죽는 경계를 탐하지 않음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장엄할지니
일심으로 여래의 열 가지 힘을 구함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깨끗이 다스릴지니
간탐하고 질투하고 아첨하고 속이는 일을
끝까지 끊음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서늘하게 할지니
일체 모든 법의 참된 성품을 생각함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증장케 할지니
도를 돕는 모든 법을 마련함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잘 꾸밀지니
모든 선정과 해탈의 궁전을 지음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밝게 비출지니
일체 모든 부처님의 도량에 두루 들어가서
반야바라밀법을 들음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더 이익하게 할지니
모든 부처님의 방편의 도를 널리 거두어 가짐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견고하게 할지니
보현의 행과 원을 항상 부지런히 닦음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방비하여 보호할지니
나쁜 동무와 마군을 항상 방어함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훤칠하게 통달할지니
모든 부처님의 지혜 광명을 열고 이끌어 들임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잘 보충할지니
모든 부처님의 말씀하신 법을 들음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붙들어 도울지니
모든 부처님의 공덕 바다를 깊이 믿음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넓고 크게 할지니
크게 인자함이 모든 세간에 널리 미침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잘 덮어 보호할지니
여러 가지 착한 법을 모아 그 위에 덮음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넓힐지니
크게 가엾이 여김으로 모든 중생을 불쌍히 여김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문을 열어 놓을지니
가진 것을 모두 버려서
필요로 함을 따라서 알맞게 보시함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세밀하게 보호할지니
모든 나쁜 욕망을 막아서 들어오지 못하게 함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엄숙하게 할지니
모든 나쁜 법을 쫓아버리어 머무르지 못하게 함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결정케 할지니
일체 지혜와 도를 돕는 여러 가지 법을 모으고
항상 물러나지 아니함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편안하게 세울지니
세 세상 일체여래의 가지신 경계를 바르게 생각함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사무치어 맑게 할지니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륜인 경에 있는 법문과
갖가지 연기(緣起)를 밝게 통달함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여러 부분으로 분별할지니
모든 중생에게 널리 밝게 알려서
모두 살바야의 길을 열어 보게 함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에 머물러 유지할지니
모든 세 세상 여래의 큰 서원 바다를 냄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풍부하게 할지니
법계에 가득한 큰 복덕 더미를 모음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밝게 할지니
중생의 근성과 욕망 등의 법을 널리 앎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자유자재하게 할지니
모든 시방 법계를 두루 거둠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을 청정하게 할지니
일체 모든 부처님 여래를 바르게 생각함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의 자체 성품을 알지니
모든 법이 다 제 성품이 없는 줄을 앎입니다.
응당 마음의 성이 환술과 같음을 알지니
일체 지혜로 모든 법과 성품을 앎입니다.
2017년 12월 1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마음의 성을 잘 관리하라는 내용을 세세하게 이유를 들어서 말씀하고 계신다.
마음의 성을 잘 수호하고, 마음의 성을 장엄하고, 깨끗이 다스리고, 심지어 마음의 성을 서늘하게 하라고 하는 이야기까지 내용이 풍부하다.
우리가 마음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내용이 잘 들어있다.
저는 늘 ‘봉행불교상섭심(奉行佛敎常攝心)’을 이야기한다. 불교를 받들어 행한다고 하는 것, 불교를 믿고 불교를 공부한다 하는 것, 불교와의 모든 인연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항상 마음 관리하는 것이다.
여기에도 마음의 성(城)이라고 하면서, 그 마음의 성을 잘 관리하라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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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코로나라고 하는 초유의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다. 그럴수록 우리 부처님 공부하는 사람들은 마음관리를 잘해야 한다. 스님들은 신도님들을 지도하는 입장이니까 신도님들이 부처님 가르침에 근거해서 마음관리를 잘하도록 지도를 잘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어떤 경계가 나를 침범해도 그 경계를 방어하고 물리칠 수 있는 여러가지 무기가 많다. 불자들은 어마어마하게 여러 가지 종류의 무기를 장착하고 있다.
현대에 전자 무기가 아무리 발달했다 하더라도 부처님이 제공하고 있는 마음의 성(城)을 지키는 무기 숫자만큼은 아닐 것이다.
그 무기는 무엇인가? 첫째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 바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다. 관세음보살만 잘 열심히 부르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도 있고, 화엄성중(華嚴聖衆)도 있다. 경전에 들어가서 낱낱 한 구절 한 구절을 공부하는 것도 있고, 화두도 있고, 진언도 있다.
오늘도 좋은 진언을 소개하는 법공양을 하신 스님이 있다. 참회진언, 광명진언, 약사여래대진언도 한 장의 종이에 다 실어놓았다. 이런 법공양을 해주셔서 고맙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성(城)을 지키는 무기들이다. 부처님께 배워서 평소에 우리가 장착하고 있는 그 무기들을 사정없이 융단폭격하여서라도 바깥 경계, 바깥 상황이 어떻게 우리를 흔들고 요란하게 하더라도 우리들 마음의 성(城)을 잘 지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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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을 쉬다보니까 한 1년쯤 쉰 것 같다. 화엄경 2권(민족사 刊)이 끝나고 3권을 8월에 한 번 공부하고는 코로나19로 인한 휴강이 되었다.
大方廣佛華嚴經 卷第四十
第七會 十一品 等覺妙覺
等覺
十定品 第二十七之一
四.十種大三昧
1.普光明 大三昧
지난 시간에 십종대삼매 중에서 첫 번째 삼매인 보광명대삼매(普光明大三昧)를 공부하다가 마쳤다.
불법수행을 한마디로 표현할 때 정혜쌍수(定慧雙修)라고 해서 선정과 지혜를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다.
또 삼학(三學)인 계(戒) 정(定) 혜(慧)를 말하더라도 거기에 선정이 들어간다. 선정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고 중요한 것이다.
불교는 수행의 종교라고 해서 평소에 마음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을 강조하는데 그것이 선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한 삼매 열 가지를 들어가면서 설명하기 때문에 이 품의 이름이 십정품(十定品)이다. 삼매에 대해 상당히 장황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공부할 보광명대삼매라고 하는 첫 번째 삼매가 끝나면 두 번째로 묘광명대삼매(妙光明 大三昧)가 나온다. 이런 식으로 열 가지 삼매가 나오는데 오늘 공부할 차례는 12페이지(화엄경 제3권 민족사刊) 중간단락 십종입대삼매선교지(十種入大三昧善巧智)다. 열 가지 대삼매에 들어가는 선교의 지혜, 아주 능숙하고 훌륭하고 뛰어난 지혜라는 뜻이다.
(4) 十種入大三昧善巧智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有十種入大三昧善巧智하니 何者가 爲十고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三千大千世界로 爲一蓮華하야 現身遍此蓮華之上하야 結跏趺坐어든 身中에 復現三千大千世界하야 其中에 有百億四天下하며 一一四天下에 現百億身하고 一一身이 入百億百億三千大千世界하야 於彼世界一一四天下에 現百億百億菩薩修行하며 一一菩薩修行에 生百億百億決定解하며 一一決定解에 令百億百億根性圓滿하며 一一根性에 成百億百億菩薩法不退業하나니 然所現身이 非一非多며 入定出定도 無所錯亂이니라 佛子야 如羅睺阿修羅王의 本身長이 七百由旬이어든 化形長十六萬八千由旬하야 於大海中에 出其半身하야 與須彌山으로 而正齊等하나니 佛子야 彼阿修羅王이 雖化其身長十六萬八千由旬이나 然亦不壞本身之相하고 諸蘊界處가 悉皆如本하야 心不錯亂하며 不於變化身에 而作他想하고 於其本身에 生非己想하며 本受生身에 恒受諸樂하고 化身도 常現種種自在神通威力하나니 佛子야 阿修羅王이 有貪恚癡하야 具足憍慢호대 尙能如是變現其身이어든 何況菩薩摩訶薩이 能深了達心法如幻하며 一切世間이 皆悉如夢하며 一切諸佛의 出興於世가 皆如影像하며 一切世界가 猶如變化하며 言語音聲이 悉皆如響하고 見如實法하야 以如實法으로 而爲其身하며 知一切法의 本性淸淨하며 了知身心의 無有實體하며 其身이 普住無量境界하며 以佛智慧廣大光明으로 淨修一切菩提之行가
“불자여, 이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의 삼매에 들어가는 교묘한 지혜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삼천대천세계로써 한 연꽃을 삼고, 이 연꽃 위에 가득하게 몸을 나타내어 가부좌하고 앉으며, 몸속에 다시 삼천대천세계를 나타내고, 그 가운데 백억 사천하가 있느니라.
낱낱 사천하마다 백억의 몸을 나타내고, 낱낱 몸이 백억씩 백억의 삼천대천세계에 들어가며, 저 세계의 낱낱 사천하에서 백억씩 백억의 보살이 수행함을 나타내느니라.
낱낱 보살의 수행에 백억씩 백억의 결정한 이해를 내고, 낱낱 결정한 이해마다 백억식 백억의 근성을 원만케 하며, 낱낱 근성마다 백억씩 백억의 보살의 법이 물러나지 않는 업을 이루게 하느니라. 그러나 나타내는 몸은 하나도 아니고 여럿도 아니며, 선정에 들고 선정에서 나오는 것도 어수선하지 아니하니라.
불자여, 라후아수라왕의 본 몸의 길이는 칠백 유순이고, 변화한 몸의 길이는 십육만 팔천 유순이니, 큰 바다속에서 그 몸의 반만 드러내도 수미산 높이와 같으니라.
블자여, 저 아수라왕이 비록 몸을 변화하여 길이가 십육만 팔천 유순이 되었지마는 그러나 그 본래 몸의 형상이 변하지 않고, 모든 오온(五蘊)과 십팔계(十八界)와 십이처(十二處)도 모두 본래와 같아서 마음이 어수선하지 아니하니라.
변화한 몸에 대하여 다른 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고, 본래 몸에 대하여 자기가 아니라는 생각도 내지 않으며, 본래 몸은 항상 여러 가지 즐거움을 받으면서 변화한 몸은 항상 여러 가지 자유로운 신통과 위력을 나타내느니라.
불자여, 아수라왕은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있고 교만을 갖추고도 오히려 능히 저렇게 몸을 변화하느니라. 어찌 하물며 보살마하살이 마음의 법이 요술과 같고, 일체 세간이 모두 꿈과 같고, 일체 모든 부처님들이 세상에 출현하시는 것이 그림자와 같고, 일체 세계가 변화한 것과 같고, 말과 음성이 모두 메아리와 같은 줄 깊이 깨달아 아는 것이겠는가.
실상대로의 법을 보았고, 실상대로의 법으로 몸을 삼았으며, 일체 법이 본래 청정한 줄 알고, 몸과 마음이 진실한 자체가 없음을 알아서 그 몸이 한량없는 경계에 널리 있으며, 부처님의 지혜와 광대한 광명으로 일체 보리의 행을 청정하게 닦는 이겠는가.”
*
십종입대삼매선교지(十種入大三昧善巧智) : 삼매에 들어가는 공교한 열 가지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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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차보살마하살(此菩薩摩訶薩)이 : 이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입대삼매선교지(有十種入大三昧善巧智)하니: 십종대삼매에 들어가는 선교지가 있으니
하자(何者)가 : 무엇이
위십(爲十)고 :열 가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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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이삼천대천세계(以三千大千世界)로 : 이 삼천대천세계로써
위일연화(爲一蓮華)하야 : 하나의 연꽃을 삼아서
현신변차연화지상(現身遍此蓮華之上)하야 : 몸을 나타내서 그 연꽃 위에 두루하게 한다. 그 연꽃 위에
결과부좌(結跏趺坐)어든 : 가부좌를 맺고 앉는다. 그런데
신중(身中)에 : 그 몸 가운데는
부현삼천대천세계(復現三千大千世界)하야 : 다시 삼천대천세계를 나타내서
기중(其中)에 : 그 가운데
유백억사천하(有百億四天下)하며 : 백억 사천하가 있고
*
일일사천하(一一四天下)에 : 낱낱 사천하에는
현백억신(現百億身)하고 : 또 백억의 몸을 나타내고
일일신(一一身)이 : 낱낱 몸에는
입백억백억삼천대천세계(入百億百億三千大千世界)하야 : 백억 백억의 삼천대천세계에 들어간다.
낱낱 몸이 백억 백억의 삼천대천세계에 들어간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의 마음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뜻이다. 마음을 거둬들이면 일체 경계가 다 끊어지지만, 마음을 펼쳐서 모든 경계에 내가 들어가기로 하면, 어디든지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다. 그것이 백억 백억삼천대천세계에 들어간다는 소리다. 들어가서
어피세계일일사천하(於彼世界一一四天下)에 : 저 세계 일일사천하에도
현백억백억보살수행(現百億百億菩薩修行)하며 : 또 백억 백억의 보살이 수행함을 나타낸다.
선정의 지혜, 선정의 힘이라고 하는 것은 미세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이에 대해 흔히 예로 드는 이야기가 있다. 보살이 설산에서 삼매에 들었는데 갠지스강에서 코끼리 떼들이 새끼들을 거느리고 강물을 건너가면서 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는 것이다. 설산과 갠지스강이 떨어져 있는 거리는 수 백 km가 된다.
그런데 보살이 설산에서 선정에 들어있는데 갠지스강을 건너는 코끼리 새끼가 몇 마리이고, 어미는 몇 마리이고, 깊은 데를 건너가는지 얕은 데를 건너가는지 그 발소리, 헤엄치는 소리까지 역력하게 듣고는 안다.
선정을 표현할 때 그렇게도 표현한다. 우리 마음의 능력이 그와 같다는 것이다.
백억 백억의 삼천대천세계에 들어가서, 저 세계 일일사천하에도 백억 백억 보살이 수행을 나타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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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보살수행(一一菩薩修行)에 : 낱낱 보살수행에서 또
생백억백억결정해(生百億百億決定解)하며 : 백억 백억의 결정한 지혜, 아주 확실한 지혜를 내며
일일결정해(一一決定解)에 : 낱낱 결정한 이해에 또
영백억백억근성원만(令百億百億根性圓滿)하며 :백억 백억 근성으로 원만하게 하며
일일근성(一一根性)에 : 낱낱 근성에는 또
성백억백억보살법불퇴업(成百億百億菩薩法不退業)하나니: 백억 백억 보살의 법이 퇴전하지 않는 업을 이루나니
연소현신(然所現身)이 : 그러나 나타낸 바의 몸은
비일비다(非一非多)며 : 하나도 아니고 많은 것도 아니며
입정출정(入定出定)도 : 선정에 들고 선정에서 나감도
무소착란(無所錯亂)이니라 : 착란하는 바가 없다.
절에서 무슨 일을 할 때 주지스님쯤 되면 그 행사 전체를 다 알아야 한다. 행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때에 맞추어서 필요한 사람은 누구며,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해야 되는가를 전부 기억하고 관리한다. 행사가 잘 돌아가는지 안 돌아가는지 관장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시킬 것은 시키고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큰 행사를 치르는데 그 행사의 총책임을 맡았다면 그 정도로 마음을 다 쓰는 것이다.
그러나 그 행사에 한 일원으로 참석한 사람은 자기에게 ‘축원문을 읽으라’고 하면 축원문 읽을 생각만 할 뿐이다. 행사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 필요도 없고 잘 알아지지도 않는다. 자기 순서가 되어 호명을 하면 딱 나가서 자기 일만 하면 된다.
전체를 책임진 주지스님쯤 되면 행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다 알아서, 예를 들어 꽃을 올려야 된다면 꽃 올리는 사람이 제대로 선정되어 있는지 그 순서가 알맞은지도 다 체크를 한다.
마음을 이렇게 한 번 작동해서 제대로 쓰기로 하면 무한한 능력이 나온다. 축소해서 줄이면 아주 작은 능력을 발휘하지만, 크게 쓰기로 하면 마음은 또 그렇게 크게 쓰여진다. 입정출정도 무소착란이라. 선정에 들고 선정에서 나오는 것도 착란하는 바가 없음이라.
다음으로 비유를 든다.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라후아수라왕(如羅睺阿修羅王)의 : 예컨데 라후아수라왕의
본신장(本身長)이 : 본래의 신장은
칠백유순(七百由旬)이어든 : 칠백 유순인데
화형장십육만팔천유순(化形長十六萬八千由旬)하야 : 형의 길이가 16만 8천 유순으로 변화를 시킨다.
칠백유순짜리를 16만 8천 유순으로 부풀려서 변화를 시킨다.
어대해중(於大海中)에 : 큰 바다 가운데서
출기반신(出其半身)하야 : 그 몸을 반만 일으켜 내면 그 라후아수라왕의 몸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여수미산(與須彌山)으로 : 수미산하고
이정제등(而正齊等)하나니 : 똑같다. 위에 올라온 수미산 높이와 이 아수라왕의 몸이 올라온 높이가 똑같다는 것이다. 정제등이라 딱 아주 평등하게 되나니
*
불자(佛子)야 : 불자야
피아수라왕(彼阿修羅王)이 : 저 아수라 왕이
수화기신장십육만팔천유순(雖化其身長十六萬八千由旬)이나 : 비록 그 몸길이가 16만 8천 유순으로 변화했으나,
연역불괴본신지상(然亦不壞本身之相)하고 : 그러나 또한 본래 몸의 형상은 무너뜨리지 않는다. 본래 몸의 형상은 그대로 있다는 말이다.
제온계처(諸蘊界處)가 : 모든 5온과 18계와 12처가
실개여본(悉皆如本)하야 : 다 근본과, 본래 것과 똑같다. 그래서
심불착란(心不錯亂)하며 : 마음에 착란이 없으며 착란하지 아니하며, 또
*
불어변화신(不於變化身)에 : 몸을 변화했다고 해서
이작타상(而作他想)하고 : 다른 생각을 짓지도 아니한다. 몸을 바꿨다고 해서 그 바꾼 몸으로 ‘다른 사람이다’ 하는 생각도 아니한다. 그리고 또
어기본신(於其本身)에 : 그 본신에는
생비기상(生非己想)하며 : 자기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 생각도 내지 않는다. 아닐 불(不)자가 여러 곳에 먹힌다.
본수생신(本受生身)에 : 본래 생을 받은 그 몸에
항수제락(恒受諸樂)하고 : 항상 모든 즐거움을 받고
화신(化身)도 : 변화한 몸도
상현종종자재신통위력(常現種種自在神通威力)하나니 : 항상 가지가지 자재신통의 위력을 나타내나니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아수라왕(阿修羅王)이 : 아수라왕이
유탐에치(有貪恚癡)하야 : 탐에치가 있어서, 보통 중생들의 탐진치(貪瞋癡) 3독은 제일 독한 번뇌다. 그것이 있고, 또
구족교만(具足憍慢)호대 : 교만도 구족하게 있다. 교만심도 잔뜩 있다. 그런데도
상능여시변현기신(尙能如是變現其身)이어든 : 오히려 능히 이와 같은 그 몸을 변현한다. 이와 같이 몸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과 신통이 있다.
하황보살마하살(何況菩薩摩訶薩)이 : 그런데 어찌 하물며 보살마하살이겠는가. 보살마하살은
능심요달심법여환(能深了達心法如幻)하며 : 능히 깊이 심법이 환과 같음을 요달한다. 심법은 환과 같다. 마술을 부리는 것과 같고, 요술을 부리는 것과 같다. 우리의 심법이 별별 요술을 다 부리지 않는가? 이 순간에도 지금 열심히 화엄경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떤 중생의 심법은 또 멀리 가서 딴 일을 하기도 한다. 자기 절에서 못다한 일을 생각하기도 하고, 공부 끝나고 만나야 할 사람을 생각하기도 한다. 온갖 환과 같은 마음의 작용이 있다. 보살마하살은 그런 것을 다 요달했으니
일체세간(一切世間)이 : 일체세간이
개실여몽(皆悉如夢)하며 : 다 꿈과 같은 줄을 또 요달했으며
일체제불(一切諸佛)의 : 일체제불이
출흥어세(出興於世)가 : 세상에 출현하는 것이
개여영상(皆如影像)하며 : 마치 영상과 같고, 또
일체세계(一切世界)가 : 일체세계가
유여변화(猶如變化)하며 : 마치 변화와 같은 줄 요달했으며
언어음성(言語音聲)이 : 말과 음성이
실개여향(悉皆如響)하고 : 모두가 다 메아리와 같음을 요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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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여실법(見如實法)하야 : 사실과 같은 법을, 여실한 법을 보아서
이여실법(以如實法)으로 : 여실한 법으로써
이위기신(而爲其身)하며 : 그 몸을 삼으며
지일체법(知一切法)의 : 일체법의
본성청정(本性淸淨)하며 : 본성이 청정함을 알며, 또
요지신심(了知身心)의 : 신심의
무유실체(無有實體)하며 : 실체가 없음을 요지하며
기신(其身)이 : 그 몸이
보주무량경계(普住無量境界)하며 : 널리 무량경계에 머물며
이불지혜광대광명(以佛智慧廣大光明)으로 : 불지혜가 광대한 광명으로써
정수일체보리지행(淨修一切菩提之行)가 : 일체보리의 행을 닦는 것이겠는가, 보살은 이러한 능력이 다 있다. 앞에 라후아수라왕의 능력은, 탐진치 3독도 꽉 있고, 교만도 꽉 찬 몹쓸 번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능력이 있었다.
하물며 보살마하살의 능력은 어떻겠는가?
보살에게는 번뇌가 없다. 탐진치 3독도 없고, 교만도 없고 심법여환(心法如幻)으로 세간이 꿈과 같고, 일체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것이 영상과 같은 이치를 환하게 통달하고 있다.
여기에 보살의 덕에 대한 설명을 상당히 잘해 놓았다. 중요한 부분이다.
(5) 三昧의 利益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住此三昧에 超過世間하고 遠離世間하야 無能惑亂하며 無能暎奪하나니 佛子야 譬如比丘가 觀察內身하야 住不淨觀에 審見其身이 皆是不淨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住此三昧하야 觀察法身에 見諸世間이 普入其身하야 於中에 明見一切世間과 及世間法호대 於諸世間과 及世間法에 皆無所着하나니 佛子야 是名菩薩摩訶薩의 第一普光明大三昧善巧智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에 머무름에 세간을 초월하고 세간을 멀리 떠나서 미혹하고 어지럽게 할 수도 없고 가려 버릴 수도 없느니라.
불자여, 비유컨대 비구가 마치 몸속을 관찰하여 부정하다는 관념[不淨觀]에 머물면 몸이 다 부정한 줄을 보게 되느니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이 삼매에 머물러서 법의 몸[法身]을 관찰하며, 모든 세간이 그 몸에 두루 들어감을 보아 그 가운데서 일체 세간과 세간의 법을 분명히 보지마는 모든 세간과 세간의 법에 모두 집착하지 않느니라. 불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제1 넓은 광명 큰 삼매의 교묘한 지혜[光明大三昧善巧智]라 하느니라.”
*
삼매(三昧)의 이익(利益)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주차삼매(住此三昧)에 : 이 삼매에 머묾에
초과세간(超過世間)하고 : 세간을 초과하고
원리세간(遠離世間)하야 : 세간을 멀리 떠나서
무능혹란(無能惑亂)하며 : 능히 혹란함이 없으며 또
무능영탈(無能暎奪)하나니 : 능히 그를 빼앗을 만한, 능가할만한 것이 없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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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비여비구(譬如比丘)가 :비유하자면 비구가, 이 부분은 특정한 비구를 상대로 해서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비구들은 이러이러한 수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실례로 들고 비유로 삼아서 비구들을 낮게 보는 것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화엄경이 결집 될 당시, 대승불교 운동이 왕성하게 일어나서 비구는 뒷전이고 비구들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것이 역력히 나오는 대목이다. 비구가 무슨 짓을 하는가 하니
관찰내신(觀察內身)하야 : 내신을 관찰해서
주부정관(住不淨觀)에 : 신수심법(身受心法)이라고, 네 가지 관법을 이야기한다. 몸을 송장으로 관한다든지, 송장이 되어서 불어터지는 것을 관한다든지, 벌레 먹는 것을 관한다든지 하는, 그런 것들이 전부 부정관(不淨觀)이다.
화엄경의 안목에서 비구는 그런 것이나 하는 사람이라는 약간 비하하는 의미다. 대승불교가 일어날 때의 그 안목에는 기존의 비구들이 이러한 수행을 하고 앉아 있는 것이 하나의 웃음거리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꼭 소승불교를 배척하고자 하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화엄경은 그런 제한을 넘어서 툭 터진 안목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런 내용들이 사이사이에 있다. 특히 유마경 같은 것이 그러한 내용을 잘 표현했다.
심견기신(審見其身)이 : 그 몸이
개시부정(皆是不淨)인달하야 : 다 부정하다고 하는 사실을 심견(審見) 살펴서 보듯이, 비구가 그렇게 하고 있듯이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여기서 보살마하살이라고 한 것은 출가보살, 재가보살의 차별이 없다.
주차삼매(住此三昧)하야 : 이 삼매에 머물러서
관찰법신(觀察法身)에 : 법신을 관찰함에
견제세간(見諸世間)이 : 모든 세간이
보입기신(普入其身)하야 : 그 몸에 널리 들어감을 보아서
어중(於中)에 : 그 가운데서
명견일체세간(明見一切世間)과 : 일체세간과
급세간법(及世間法)호대 :세간의 법을 명견하되, 세간과 세간법이라고 하는 것은 세간에 존재하는 모든 법, 세간에서 생기는 일들이다. 세간과 세간의 일들을 밝게 보되
어제세간(於諸世間)과 : 모든 세간과
급세간법(及世間法)에 : 세간 법에
개무소착(皆無所着)하나니 : 세간과 세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다 집착함이 없나니
불자(佛子)야 : 불자야
시명보살마하살(是名菩薩摩訶薩)의 :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제일보광명대삼매선교지(第一普光明大三昧善巧智)니라 :제1 보광명대삼매 선교지니라.
십정품의 십정 가운데 제1보광명대삼매선교지(第一普光明大三昧善巧智)가 끝났다.
2. 妙光明 大三昧
(1) 三昧의 法
佛子야 云何爲菩薩摩訶薩의 妙光明三昧오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能入三千大千世界微塵數三千大千世界하야 於一一世界에 現三千大千世界微塵數身하며 一一身에 放三千大千世界微塵數光하며 一一光에 現三千大千世界微塵數色하며 一一色에 照三千大千世界微塵數世界하며 一一世界中에 調伏三千大千世界微塵數衆生하야 是諸世界의 種種不同을 菩薩이 悉知하나니 所謂世界雜染과 世界淸淨과 世界所因과 世界建立과 世界同住와 世界光色과 世界來往의 如是一切를 菩薩이 悉知하고 菩薩이 悉入하며 是諸世界도 亦悉來入菩薩之身호대 然諸世界가 無有雜亂하고 種種諸法도 亦不壞滅이니라
“불자여, 무엇을 보살마하살의 묘한 광명[妙光明] 삼매라 하는가. 불자여, 이 보살마하살이 삼천대천세계의 작은 먼지 수같이 많은 삼천대천세계에 능히 들어가며, 낱낱 세계마다 삼천대천세계의 작은 먼지 수같이 많은 몸을 나타내며, 낱낱 몸에서 삼천대천세계의 작은 먼지 수같이 많은 광명을 놓으며, 낱낱 광명에서 삼천대천세계의 작은 먼지 수같이 많은 빛을 나타내며, 낱낱 빛마다 삼천대천세계의 작은 먼지 수같이 많은 세계를 비추어, 낱낱 세계에서 삼천대천세계의 작은 먼지 수같이 많은 중생을 조복케 하느니라. 이러한 모든 세계가 가지각색으로 같지 아니한 것을 보살이 모두 다 아느니라.
이른바 세계가 더러움과, 세계가 깨끗함과, 세계의 원인과, 세계가 건립되는 것과, 세계가 함께 머무르는 것과, 세계의 빛과, 세계가 오고가는 이러한 모든 것을 보살이 다 알고 보살이 다 들어가느니라.
이 모든 세계도 또한 다 와서 보살의 몸에 들어가되 그러나 모든 세계는 복잡하거나 어지럽지 않고, 여러 가지 법도 파괴되지 아니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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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광명 대삼매(妙光明 大三昧)
*
십정 가운데 두 번째 선정이 묘광명 대삼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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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三昧)의 법(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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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운하위보살마하살(云何爲菩薩摩訶薩)의 : 운하위보살마하살의
묘광명삼매(妙光明三昧)오 : 묘광명삼매냐?
불자(佛子)야 : 불자야
차보살마하살(此菩薩摩訶薩)이 : 이 보살마하살이
능입삼천대천세계미진수삼천대천세계(能入三千大千世界微塵數三千大千世界)하야 : 능히 삼천대천세계미진수삼천대천세계에 능히 들어가서, 이것은 무슨 말인고 하니, 삼천대천 세계를 미진으로 만들었을 때 그 숫자와 같은 삼천대천 세계가 있다고 치자, 그 세계에 능히 들어가서
*
어일일세계(於一一世界)에 : 낱낱 세계에
현삼천대천세계미진수신(現三千大千世界微塵數身)하며 : 다시 삼천대천세계 미진수의 몸을 나타낸다. 요즘 허블망원경이 발달해서 인공위성에 허블망원경을 실어서 쏘아 보낸다. 지구상에 지름이 20미터 30미터쯤 되는 성능이 좋은 망원경, 어마어마한 망원경이 많다. 미국이나 하와이, 아프리카의 하늘이 아주 맑게 보이는 곳에 설치되어서 엄청 많이 보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성능 좋은 망원경을 설치해서 많이 보아도 지구상에 있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고 한계가 있다. 그래서 아예 정밀한 망원경을 만들어서 위성에 실어서 멀리 그 위성을 쏘아 보낸다.
여기 부산에서 서울을 보면 한계가 있을 것이 아닌가? 아예 서울까지 보내버려서 서울에서 보면 더욱 서울을 잘 보고 알 것이다.
천체망원경도 그런 식이다.
과학이 대단히 발달하다 보니 위성에 실어서 보낸 허블망원경으로 찍은 사진을 바로 지구상로 보내면, 보낸 그 사진이 화상이 흐려지거나 비틀어지거나 먼지가 묻었거나 하는 것도 없이, 아주 깨끗한 사진으로 이 지구상으로 날아온다. 지구상에서는 그 사진을 받아서 분석을 한다.
우리가 흔히 은하수라고 하는 소위 그 은하계와, 그 옆에 가장 가까이 있는 또 다른 은하계인 안드로메다 은하라고 하는 은하계, 그런 것들이 수천억 개가 있다고 한다.
그런 것들을 위성에 실어보낸 허블망원경으로 다 사진으로 찍는 것이다. 그 사진들을 지구로 전송하면 지구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전부 분석해서 일반인에게도 공개를 한다. 요즘 나는 유튜브에서 그런 것을 보기를 참 좋아한다. 신기하고 재미있다.
여기 화엄경에도 삼천대천 세계의 미진수 삼천대천세계에 능히 들어가서 낱낱 세계에 삼천대천세계 미진수의 몸을 나타내며
일일신(一一身)에 : 낱낱 몸에
방삼천대천세계미진수광(放三千大千世界微塵數光)하며 : 삼천대천세계의 미진수의 광명을 놓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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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광(一一光)에 : 낱낱 광명에서
현삼천대천세계미진수색(現三千大千世界微塵數色)하며 : 삼천대천세계 미진수의 색을 나타내고
일일색(一一色)에 : 낱낱 색에
조삼천대천세계미진수세계(照三千大千世界微塵數世界)하며 : 삼천대천세계의 미진수 세계를 비추며
*
일일세계중(一一世界中)에 : 일일 세계 가운데서
조복삼천대천세계미진수중생(調伏三千大千世界微塵數衆生)하야 : 삼천대천세계 미진수 중생을 조복해서
시제세계(是諸世界)의 : 이 모든 세계의
종종부동(種種不同)을 : 종종 부동을
보살(菩薩)이 : 보살은
실지(悉知)하나니 : 전부 다 안다.
요즘 전세계 과학자들이 허블망원경에서 찍어서 전송한 내용을 여기 앉아서 환히 안다.
지금 과학계의 현상과 여기 화엄경의 설명이 똑같다. 나는 이것이 너무나도 같은 이론이라고 봐 진다.
옛날 지혜로써 꿰뚫어 본 이분들은 지금 같은 시대에 망원경으로 보이지 않는 공간에 있는 별들, 은하계 그것도 우리가 밤하늘에 보고 있는 저 은하수와 같은 은하계가 수천억 개가 있다고 하는 것을 실제로 본다.
보살이 실지하나니 이 모든 세계는 종종부동(種種不同)이다. 그 이론이 너무 잘 맞아 떨어져서 놀랍다.
또 어떤 과학자들은 별이 있는 곳으로 쫓아서 보지 않는다. 그런 것은 옛날 공부이고 요즘 공부는 아예 없는 데를 향해서 본다는 것이다.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데, 어지간한 망원경으로는 전혀 보이지 아니하는 캄캄한 데를 향해서 보는 것이다. 망원경을 계속 쏘아서 캄캄한 데서 나타나는 별을 연구한다.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어마어마한 별들이 또 그 캄캄한 곳 속에는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정도로 지금 천체에 대한 과학연구가 발달했다.
나는 재미있어서 그런 것을 찾아보는데 그러면서도 한편 ‘그것이 무슨 이익이 있는가?’ 하는 의심이 든다.
그런 연구에는 엄청난 돈이 들고, 세계에서 제일 머리 좋은 사람들만 투입이 되어서 그런 일을 한다.
그런 머리와 기술과 투자를 가지고 차라리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는 데 투자하면 어떨까? 요즘 특히 코로나 때문에도 고생하고 있는데 짧은 시간에 백신을 개발한다든지 치료제를 개발한다든지 하면 더 좋지 않을까, 그 외 다른 고치지 못한 병들이 부지기수로 많은데, 병을 치료하는 약을 연구하는 데 그런 자원을 좀 쓴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까 싶다.
천문학 연구는 궁금한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이지 그렇게나 돈이 많이 들고, 세계에서 제일 총명한 사람들만 수천 수만 명을 동원해서 연구하는 데 비해 이익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구가 돌든지 태양이 돌든지 사람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는가? 역사상 지구는 가만히 있고 태양이 돈다고 알았다가 나중에 태양은 가만히 있고 지구가 돈다고 알았는데, 그것을 몰랐던 것과 알았던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것은 우리에게 무슨 이익이 있는가? 태양이 돌든지 지구가 돌든지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무한한 미래까지도 늘 같다. 은하계를 아무리 연구해 봐야 궁금한 사람들의 궁금증만 풀어줄 뿐이다.
그 능력과 들어간 돈을 가지고 의학을 보다 더 발전시켰으면 훨씬 더 좋지 않을까?
나는 늘 한쪽에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개인적인 이야기고 종종부동을 보살이 실지하나니
*
소위세계잡염(所謂世界雜染)과 : 소위 세계 잡염과
세계청정(世界淸淨)과 : 세계 청정과
세계소인(世界所因)과 : 세계의 원인된 바와
세계건립(世界建立)과 : 세계의 건립과
세계동주(世界同住)와 : 세계가 함께 머무는 것과
세계광색(世界光色)과 : 세계의 광색과
세계내왕(世界來往)의 : 세계의 내왕의
여시일체(如是一切)를 : 이와 같은 일체를
보살(菩薩)이 : 보살이
실지(悉知)하고 : 다 알고
보살(菩薩)이 :보살이
실입(悉入)하며 : 그 속에 다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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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세계(是諸世界)도 : 모든 세계도
역실내입보살지신(亦悉來入菩薩之身)호대 : 다 보살의 몸에 들어오대, 보살의 몸에 그것이 들어온다는 말은 혼연일체가 된다는 뜻이다. 혼연일체가 되어서 그것을 내 몸을 이해하듯이 다 안다.
연제세계(然諸世界)가 : 그러나 모든 세계가
무유잡란(無有雜亂)하고 : 잡란함이 없고
종종제법(種種諸法)도 : 가지가지의 모든 법도
역불괴멸(亦不壞滅)이니라 : 또한 괴멸하지 아니하느니라.
일반적으로 ‘해가 떴다, 졌다’ 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살아온 사람들이 지금도 수없이 많다. 그것하고 지구가 태양의 주변을 돈다고 아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지구가 도나 태양이 도나 그것은 ‘몰랐다, 알았다’ 하는 차이지 거기에 쌀 한 톨이 더 생기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생각하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혹시 다른 생각이 있고 과학적인 지식이 있는 분들은 저에게 알려 주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이와 같이 현대과학이 밝혀내는 천체물리학의 이론과 실제로 보는 것과, 화엄경에 펼쳐져 있는 내용이 너무나 유사해서 이런 말씀을 드린다.
2600년 전에 어찌 이러한 사실을 알았고, 이렇게 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었겠는가? 거기에 탄복하는 바다.
(2) 日出의 譬喩
佛子야 譬如日出에 遶須彌山하야 照七寶山하면 其七寶山과 及寶山間에 皆有光影이 分明顯現하야 其寶山上에 所有日影이 莫不顯現山間影中하며 其七山間에 所有日影도 亦悉影現山上影中하야 如是展轉更相影現이어든 或說日影이 出七寶山하고 或說日影이 出七山間하며 或說日影이 入七寶山하고 或說日影이 入七山間이라하나니 但此日影이 更相照現하야 無有邊際언정 體性非有며 亦復非無라 不住於山하고 不離於山하며 不住於水하고 亦不離水인달하니라
“불자여, 비유하자면 마치 해가 떠서 수미산을 돌면서 칠보산(七寶山)을 비추면 그 칠보산과 보산(寶山) 사이에는 모두 그림자가 있어서 분명하게 나타나느니라. 그 보배 산 위에 있는 해의 그림자가 산 사이의 그림자에 모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없고, 그 일곱 개의 산 사이에 있는 해의 그림자도 또한 산 위에 있는 그림자 속에 다 타나나서 이와 같이 서로서로 겹겹으로 나타나느니라.
혹은 해의 그림자가 칠보산(七寶山)에서 나온다 하고, 혹은 해의 그림자가 일곱 산 사이에서 나온다고 하고, 혹은 해의 그림자가 칠보산(七寶山)에 들어간다 하고, 혹은 해의 그림자가 일곱 산 사이에 들어간다 하느니라.
다만 이 해의 그림자는 서로 비치고 서로 나타내어서 끝이 없느니라.
자체 성품은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없는 것도 아니며, 산에 머물지도 않고 산을 떠나지도 않으며, 물에 머물지도 않고 또한 물을 떠나지도 않느니라.”
*
일출(日出)의 비유(譬喩)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비여일출(譬如日出)에 : 비유하면 해가 뜨는데
요수미산(遶須彌山)하야 : 수미산을 돌면서
조칠보산(照七寶山)하면 : 칠보산을 비추면, 해가 수미산 중턱을 돈다.
지금 티베트에 있는 카일라스산을 수미산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히말라야산을 수미산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히말라야산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말이지만 경전에서 수미산은 바다 위에 있는 산이라고 나오는데 딱 부러지게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아무튼 티베트에 있는 카일라스산은 수미산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다녀오곤 한다. 생긴 것은 아주 근사하게 잘 생겼다. 티베트 본교의 성지도 되고 힌두교의 성지도 되고 불교의 성지도 된다. 주변에 돌아가면서 있는 여러 종교의 근본되는 성지가 카일라스라고 하는 그 산에 있다. 그래서 카일라스산을 수미산이라고도 하는데 경전상의 수미산이 그 산인지 어쩐지는 알 수가 없다.
해가 칠보산을 비추면
기칠보산(其七寶山)과 :그 칠보산과
급보산문(及寶山間)에 : 그리고 칠보산 사이에
개유광영(皆有光影)이 : 다 빛이
분명현현(分明顯現)하야 : 분명하게 현현해서
*
기보산상(其寶山上)에 : 그 보산 위에
소유일영(所有日影)이 : 있는 바 해 그림자가
막불현현산간영중(莫不顯現山間影中)하며 : 산간에 있는 그림자 가운데 나타나지 아니함이 없다. 그리고
기칠산간(其七山間)에 : 그 칠보산 산간에
소유일영(所有日影)도 :있는 바 그 해도
역실영현산상영중(亦悉影現山上影中)하야 : 또 다시 산중의 그림자 가운데 나타나서
여시전전갱상영현(如是展轉更相影現)이어든 : 이와같이 전전이 서로서로 그림자가 나타나거든
*
혹설일영(或說日影)이 : 혹 말하기를 해그림자가
출칠보산(出七寶山)하고 : 칠보산을 냈다. 해그림자가 칠보산에서 나왔다 그렇게 말하고
혹설일영(或說日影)이 : 혹은 해그림자가
출칠산문(出七山間)하며 : 칠보산 사이에서 나왔다 이렇게도 말하고
혹설일영(或說日影)이 : 해 그림자가
입칠보산(入七寶山)하고 : 칠보산으로 들어갔다고도 말하고
혹설일영(或說日影)이 : 해그림자가
입칠산간(入七山間)이라하나니 : 칠보산간에 들어갔다고도 설하나니
*
단차일영(但此日影)이 : 다만 이 일영이
갱상조현(更相照現)하야 : 다시 서로 비추고 나타내어서
무유변제(無有邊際)언정 : 변제가 있음이 없을지언정
*
체성비유(體性非有)며 : 체성은 있는 것이 아니며
역부비무(亦復非無)라 : 또한 없는 것도 아니라
부주어산(不住於山)하고 : 산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불리어산(不離於山)하며 : 산을 떠난 것도 아니며
부주어수(不住於水)하고 : 물에 머문 것도 아니고
역불리수(亦不離水)인달하니라 : 또한 물을 떠난 것도 아닌 듯 하니라. 이것이 어떤 경우인지 선명하게,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런데 해가 산을 비추었을 때 그 산 그림자가 여기저기서 다 보는 방향에 따라서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 ‘혹설(或說)’이라고 한 말은 다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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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고맙습니다. _()()()_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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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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