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각을 다투는 절박감이 우릴 덮치고 있다. “의료대란‘ 세삼 수다를 떨 겨를이 없다. 병든 사람이 온전히 구원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마당이 아닌가. 거두절미 짧고 굵직하게 ‘의사선생’ 그대들에게 묻겠다. 이름하여 ‘의사의 란’이란 체면이 일그러진 막무가내 행패를 언제까지 붙들고 버틸 작정인가?
정성스럽게 공부 다하여 국가사법고시를 뚫고 법조(法曹)에 몸담은 판·검·변호사 율사(律士)에게 선비 사(士)자가 붙고 병원 의사에겐 스승 사(師)자가 돋보이는 까닭을 아시는가? 사람의 건강을 챙기고 목숨을 어루만지는 어디에 비할 바 없는 막중대사를 도맡고 있기 때문이다. 8순 노인도 병원을 찾으면 손주뻘 의사에게 깎듯이 ‘선생님’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은 단순한 언어습관 탓일까? 아니다. “의사 ↔ 선생님”은 동전의 양면이다. 사람 목숨 구하는 이에게 바치는 존경의 뜻을 품고 있음이 아닌가.
“한사람의 목숨은 우주의 무게보다 무겁다” 이끼 낀 세월 인본주의(人本主義)를 노래해온 서양(西洋) 쪽에서 건너온 성현의 고전금언(古典金言)이다. 지금 의대생 증원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가 맞붙어 싸우는 모습은 어느 모로 보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기심 탓이라는 시각이 훨씬 많다.
굳이 여론 조사결과를 인용하지 않아도 보다 때묻지 않고 객관적인 종교계의 눈총이 날카롭게 의사 쪽을 정조준하고 있음이 오늘의 현실이다. 속된 말로 밀어붙이자면 알량한 ‘밥그릇 투정’으로 비쳐진다. 90줄 중반의 나이를 유세(有勢) 삼은 ‘심술’로 속단하지 말라. 필자는 감히 산전수전 겪으면서 결코 ‘공밥’ 먹지 않은 인생을 자부한다. 보수진보언론 가림없이 매섭게 그대들을 질첵하는 진의를 가볍게 취급하지 않기를 바란다.
보다 가관인 것은 더불어민주당이 제기한 뜬금없는 배후 음모론이다. 딱히 불난 집 부채질 꼴이다. 정부가 의대생 증원을 발표한데 대해 민주당은 ‘우리가 추구해온 정책과 일치한다’는 성명을 냈다. ‘만시지탄’이란 추임새까지 덧붙였다. 정부 의료계의 갈등이 심각해지자 이재명 대표는 느닷없이 ‘의료대란’은 정부가 꾀한 음모론이란 말을 쏟아냈다. 의료계와 정부간의 마찰이 최악의 상황을 빛을 때 사태 수습을 위한 극적인 반전 술책을 연출함으로써 막바지 총선 분위기를 유리하게 몰고 갈 시나리오에 따른 수순 밟기라는 것이다.
응급실을 돌고 돌다 끝내 숨진 일들이 꼬리물고 보도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29일 시한으로 업무개시 명령을 내렸다. 의료계는 더 거칠게 반발한다. 의대생은 동맹휴학으로 응수한다고 벼르고 있다. 아슬아슬한 ‘고비’가 가시화되고 있다.
‘의사 선생님’ 그대들이 자랑스런 하얀 의사 가운을 걸치고 난생 첫 대면 환자의 가슴에 청진기를 닿았을 때 들려온 심장 맥박 소리를 기억하시는가! “나는 생명이 수태된 순간부터 인간의 명을 최대한 존경하겠습니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새긴 제네바 선언을 읽을 때 마음속 깊이 다짐했던 거룩한 초심을 기억하시는가? 인간의 생명 저당잡은 투쟁은 ‘문명속의 야만(野蠻)’이다. 단호히 배척돼야 한다.
‘행동하는 뚝심’ 대통령 윤석열의 인내심도 비좁은 골목길로 접어든 것으로 읽히는 오늘이다. “사람의 목숨부터 살려놓고 보자” 우리의 주장은 한결같다.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을 터. 정권의 명운을 걸고 나서야 한다.
천상천하유아독족(天上天下唯我獨尊) “하늘과 땅을 통털어 우주 가운데 ‘나’보다 더 존귀한 것은 없다” 동서고금을 넘나든 만고불멸 부처님 설법의 핵심 법어(法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