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 새벽 회동 후에 혹시 의대 정원이야기가 오간 것은 아닐까#
윤석열은 지난 3월 31일 명성에서 모인 부활절 새벽 집회의 축사를 맡았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갈라디아서를 인용하며 ‘자유’를 말했다고 하는데 이승만 이야기도 나왔다는게 전언이다. 동영상이 돌고 있지만 차마 볼 비위가 없어 시청 안했기에 어떤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다. 전제 왕조 시절을 포함해 제 백성을 가장 많이 학살한 사람으로 기록되는 이승만은 최근 ‘건국전쟁’을 통해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가 교회를 중심으로 관람 독려가 있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100만을 조금 넘었다. 다큐멘터리 치고는 의미있는 숫자라고 하나 관객이 모두 개신교인이라고 가정해도 한국 개신교인의 1/7도 안본 셈이다. 2023년 한국 개신교인을 15%로 잡았을 때 언론은 대충 771만명으로 추산했기 때문이다.
이게 현실이다. ‘목사’라는 호칭을 단 자들이 강단에서 아무리 ‘이승만 만세’를 외쳐도 교인들은 귓등으로 듣는다. 그들은 용한 목사의 기도에만 의존하지 그 논리에는 수긍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올해도 윤석열 한동훈은 이승만의 학살극 중 하나인 제주 4.3 추모제에 참석하지 않았다. 4.3의 입장을 묻는 한겨레의 이메일에 대하여 미국무부는 책임을 인정한다기 보다는 그러한 비극이 다시 없어야 겠다는, 다소 전향적이기는 하지만 원론적인 답변을 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나마 한국 정부 보다는 진일보한 입장이다.
4.3을 말하면 언급되는 인물이 한경직이다. 한경직은 영락교회 청년들이 반공운동을 하겠다고 찾아왔다며 생전에 언급한 부분이 있고 그에 관계된 인터뷰도 있다. 4.3 제주에서 광란의 칼춤을 춘 서북청년회를 두고 한 말이다. 이 때문에 한경직은 심지어 ‘수괴’로 까지 불리기도 한다. 이런 평가가 한경직으로서는 억울할 수 있다. 그의 반공 정서가 청년들을 자극한 잘못은 있지만 서북청년단은 기독교에 기반을 둔 단체가 아니다. 4.3은 이승만이 주도하고 미군정이 묵인하고 서북 청년회가 광란의 학살을 자행한 사건이다. .
미군정청 사령관 하지의 부관인 레너드 버치(Leonard Bertsch) 중위는 해방공간에서 극심한 좌우대립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 보았던 사람이다. 그는 이승만을 극도로 싫어하고 김규식과 여운형을 매우 존경했다. 여운형이 암살당하자 그의 장례식에서 어눌한 한국말로 조사를 할 정도였다. 버치의 이러한 보고는 하지 사령관에게 분명히 전달되었을 것이다. 버치에 따르면 미군정은 여운형을 높이 평가했다.
이승만은 이런 흐름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학살도 서슴지 않는 반공으로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다지는 일은 소련을 두려워하는 전후 미국의 강경파 입장과 딱 맞아 떨어졌을 수 있다. '미국보다 더 앞서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 일했던 인물이 이승만'이라는 이승만의 절친 로버트 올리버(Robert Oliver)교수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현재 한국 교회는 기독교인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려 하지만 김규식과 여운형은 더 건실한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버치는 서북청년단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들 일부를 심문했던 버치의 기록에 따르면 서북청년단은 소련이나 김일성으로부터 무엇을 탈취당할 계층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지주들도 아니었고, 평양에서 성공한 중산층도 아니었고, 비판적인 지식인 계층도 아니었다. 심지어 박해받던 기독교인들이 아닌 사람들이나 서북출신이 아닌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의 맹목적인 반공은 그들이 경험한 상실에서 체득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이승만에게 이용당하면서 축적된 것이다.
한경직은 이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할 만한 크기의 인물은 못되었다. 박해받던 기독교인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버치의 분석 아닌가? 오히려 이승만은 서북청년단의 만행에 대해 우려를 표한 버치에게 “내가 그들의 애국적 행위를 금지시켜야 하는가”라고 대답했다. 버치는 학살당한 수많은 사람들은 좌익이 아니었고 그냥 이승만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 뿐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버치의 분석처럼 공산당으로부터 빼앗길 것조차 없는 사람들의 상실감을 이승만이 이용해서 출범한 단체가 서북청년회다.
이글은 한경직을 옹호하는 글이 결코 아니다. 서북청년단과 4.3학살의 실질적 수괴를 추앙하는 자를 그 거룩한 부활주일에 교회라고 알려진 곳에 부르는 이른바 ‘목사’로 불리는 사람들이 더 큰 죄라는 말이다. 차라리 이념 대립의 시기에 월남한 한경직에게는 상대 이념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태파악을 잘못했다는 참작의 여지는 있다.
오늘날 이승만과 윤석열을 옹호하고, 그들과 함께 멸사봉공이라도 할 자세를 보이는 자들의 행태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인가? 한경직의 얼굴에는 자애로움이라도 있었다. 3월 31일에 명성에 모인 '목사'들의 얼굴에는 자애로움으로 포장하려 해도 숨길 수 없는 탐욕이 흘러 넘쳤다. 국민의 65%가 좋아하지 않는 자를 위해 15%의 개신교인들 그나마 그 중 1/7이 보여주는 이 비극적 코미디는 죽어가는 한국교회의 연명치료 가능성까지 닫아 놓았다.
그날 아침 성찬잔을 ‘원샷’하고 ‘은혜’를 받은 윤석열은 줄서기를 좋아하는 목사들과 대화하면서 어떤 자신감을 얻은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기도하고 있으니 자신있게 밀고 나가라는 언질을 받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날 밤 갑자기 대국민 담화를 결정하고 월요일 아침에 51분동안 아무 소득도 없는 이야기를 한 것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아 해 본 상상일 뿐이다.
첫댓글 탐욕스러운 모습들만 가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