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48: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은처럼...택하였노라 - 여기 '택하였노라'는 '시험하였노라'가 그 원문적인 뜻이다. 당시 제련 과정에서는 광물들을 용광로에 넣음으로써 그 찌꺼가 가라앉고 순수한 원물질만 남았다. 이와같이 용광로에 광물을 넣는 목적은 순수한 물질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용광로에 광물을 넣는 것과 같은 시련이 많았지만 광물의 경우와는 달리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 본 구절의 의미하는 바이다.
그들의 영적 무지를 깨우치고 죄를 고백케 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저 아무런 효과없이 시련이라는 용광로 속에 넣다 뺐다했을 뿐이라는 의미이다. 건국 이래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것을 입증한다.
[롬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인내는 연단을 - '연단'에 해당하는 헬라어 '도키메'는 '증명하다', '시련을 주다', '시험하다', '분별하다', '택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 동사 '도키마조'에서 유래한 여성 명사로서 '연단' 외에 '인격', '증거', '문서', '자격'등의 의미를 지니며, 일반적으로 '엄격한 시험 또는 혹독한 시련을 통과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용광로에서 금이 여러번 단련됨으로써 정금과 순금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성도는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참고 견딤으로써 그 자신이 정화된다. 여기에는 성령의 사역이 함께하며 이 믿음의 시련을 통과한 성도는 금보다 더 귀한 신앙인으로 증명된다.. 혹자는 '도키메'를 '체험'으로 번역한다. 즉 그는 본절의 '도키메'를 '하나님의 확실한 보호하심에 대한 체험'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도의 삶에 있어서 환난을 당하고 그 가운데서 인내하는 이 모든 과정들이 체험이므로 본절에서는 이와 같은 포괄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바울은 신앙에서 소망의 문제로 접근했다. 신약성경에서 성도의 소망은 일반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하지만 보다 구체적으로는 '부활의 소망'을 의미한다.
바울은 죽은 자가 다시 사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 성도의 신앙도 헛되다고 가르쳤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임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 본절의 '이루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테르가제타이'는 '만들어내다', '행하다', '준비하다', '정복하다', '성취하다'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떤 사건에서 어떤 결과를 '산출해 낸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성도는 불 시험과 같은 연단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으며 이러한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부활에 대한 소망이 구체화되고, 그 소망만을 붙잡게 된다. 또한 본절의 '앎이로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도테스'는 '오이다'의 주격 남성 복수 분사이며, '오이다'는 '에이도'의 제 2 완료 분사이다.
'에이도'는 '기노스코'가 주로 육적인 앎을 의미하는데 반해 영적 체험을 통해 얻어지는 지식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에이도테스'는 분사 형태이므로 체험을 통해 획득한 영적 지식이 부단히 계속됨을 의미한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소망이 물리적 지식이 아니라 부단한 영적 지식을 통해 성도의 삶 속에 확고하게 자리잡게 됨을 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