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 Music 의 殿堂 Arthill
☆ Mary Queen of Scots ☆
( 6. 주여 나를 도우소서…)
제 6 장 주여 나를 도우소서 (Chapter VI. God! Give me Strength!)
한편 보쓰웰 백작은 단리를 더욱 미워하기 시작합니다.
한때는 서로의 이해에 의해 뭉쳤다가 또 다시 서로가 싸우기 마련이지요
보쓰웰은 원래 여왕의 어머니인 Mary de Guise때부터
신임을 받아온 인물입니다.
그는 프랑스대사로 보낸적이 있고 여왕이 단리와 결혼을 하면서
국내로 불러들였습니다.
보쓰웰은 왕족으로 모레이경등과 마찬가지로
궁내의 주요인물중 하나입니다.
보쓰웰 백작을 포함한 당시 국가의 주요 인물들:
리쪼, 보쓰웰, 여왕, 단리, 그리고 여왕의 어머니
보쓰웰이 매우 중요한 인물로 앞으로 등장하기에
먼저 그의 인물 됨됨이를과거를 통해 봐야할것 같네요
그는 1560년 코펜하겐에 갔을때 Anna라는 여자를 만나 약혼을 하고는
안나의 아버지로부터 거대한 지참금을 받습니다.
안나와 보쓰웰은 스코틀란드로 돌아 오지만 후에 이 여인을
홀랜드(지금의 네델란드)에 버린 경력이 있습니다.
이는 그의 인생의 마지막 비참함과 연결이 되는데
이는 이야기 전개에 따라 잠시후 말씀 드리겠어요
리쪼가 살해된 다음해인 1567년 2월 여왕은 단리를 에딘버러의
Kirk o'Field으로 불러들입니다.
단리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여왕이
그에게 매우 자상하게 잘 대해주었답니다.
한편 보쓰웰백작의 집에는 별로 필요치 않아 보일 많큼
많은 량의 화약이 운반 됩니다.
2월 9일밤 여왕은 단리와 밤10시경까지 같이 있다가
Holyrood궁전으로 가면극을 보려가야한다며 갑자기
자리를 비웁니다. 그러며 단리에게 내일 아침에 보자고 하였지요.
그것이 여왕이 두번째 남편을 본 마지막 순간이 되였습니다.
새벽2시 단리가 자고 있던 Kirk o’Field에서는 의문의
대형폭팔 사고가 납니다.
원인은 창고에 누군지 모르게 옮겨논 화약의 폭팔로 인해서였는데
단리의 시체는 가든에서 발견이 됩니다.
더욱 이상한 것들은 그의 옆에 단검 로프 부서진 의자 등 이
발견되었다는 것 입니다.
전날밤 단리는 아침이 되면 일찍5시경에 어딘가 가려고 말을
하인에게 준비해 놓으라고 한 상황이였읍니다.
이 그림은 당시 잉글랜드에서 스코틀란드를 감시하던
William Cecild에게 그의 한 첩자에 의하여 보내진 그림으로,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왕은 이제 두번째 남편조차 잃고 말았지요.
불쌍한 한 여인의 인생…
프랑스의 왕자와 결혼하여 행복을 느끼려는 순간
Francis2세는 떠나고
이제 자신히 모든자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선택한
두번째 남편은 비명에 사망하였습니다.
메리는 이사건을 단순히 단리만을 제거하려는 것으로 보지 않고
자신까지 없애려는 공작으로 느꼈어요.
'Judge and avenge my cause, O Lord!':
어린 왕자인 제임스가 그의 아비 단리의 시체옆에서 기도하는 모습 을
풍자한 삽화; 이는 Mary가 단리 살인에 의혹이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당시 여왕으로 Mary의 공식적 발언은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We believe the matter is so horrible and strange
as we believe the like was never heard of in any other country’
(우리는 이와 같은 일이 다른 나라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끔찍하고 기괘한 일로 생각한다)
단리의 가족들은 보쓰웰을 범인으로 단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재판에 회부시키려 온 갓 노력을 하였어요.
단리의 친척들은 단리의 죽음을 Earl of Bothwell이
연결되있다고 강력히 주장하며 여왕까지 의심을 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단리가 당일날 궁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Bothwell이 그의 뒤를 쫓았으며 또한 Mary여왕에 대한
흑심이 있다는 것 입니다.
메리의 이복오라비인 Moray경은 이 사건에서 자신이
연루되는 것을 회피하여 런던으로 내려갑니다.
보쓰웰은 Maitland와 함께 사건배후인물로 지목받고 있고
여왕의 주위에는 여왕을 도와 사건을 해결한 사람이 사실 아무도 없었지요
보스웰은 증인출석을 요구받으나 100여명의 사병을 데리고
에딘버러에 들어가려 하지만 6명의 동행자만을 허락한다고 하자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결국 판결은 질질끄는 심문과 증인출석이
이루어지지않아 우야무야 끝이나고 보쓰웰은 무협의로 발표됩니다.
단리의 죽음에 관한 해결이 제대로 종결되지 않은 이상황은
후에 여왕에게 치명적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보쓰웰은 이제 더욱 당당히 그의 무죄를 과시하듯 에딘버러를 누비고 다니고
Lennox경(단리의 아버지)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요.
주민들은 킥킥대고 웃었고 이를 지켜본 온 유럽은 황당해 할 뿐이였습니다.
Bothwell and his first wife Jean Gordon
이를 두고 많은 역사학자들은 보쓰웰이 주범인이였고
여왕은 단리를 끌어들여 죽게 했다고 하는데
여왕의 개입여부자체는 당시에도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로
이 진실이 밝혀지리라는 것은 좀 희박한일입니다.
여왕은 사건 당시 그리 놀라는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는 말 등
당시 상황에 대한 표현이 많은데, 마지막편에 나오는 잉글랜드에서
이 사건에 대한 재판으로 메어리를 단리살인의 배후인물로
확인시키려는 잉글랜드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이 부분은 여왕이
주도자인 것 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범죄학에서 아무리 무협의 한사람이라 할지라도 모든자들이
한 사람을 의심하고 또 심문하고 당시 상황의 범인쪽으로
몰고가면, 나중엔 당사자도 스스로 자기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착각한다는 말이 있지요
이 역사적 심판은 이 정도로 이야기를 접어야 하고
다음 스토리를 진행 시켜야 할것 같군요.
그 사이 에딘버러에는 이상한 문서가 나돕니다.
4월 국회가 휴정일떄 보쓰웰은 몇 의원들을 흥청거리는 만찬에 초대하고
여기서 그들은 어떤 문서에 싸인을 하는데,
그것은 여왕과 보쓰웰의 결혼을 종용하는 국가 주요인물들
(Morton경, Maitland경 포함)의 싸인이 들어간 문서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싸인을 한듯하지만
공식적으로 보쓰웰을 여왕의 새로운 남편감으로 추천하는 이문서는
그 파급을 더해갑니다.
보쓰웰은 이 문서를 들고 여왕을 찾아가지만 그는 보기좋게 퇴자를 맡습니다.
여왕은 이러한 문서가 나올수 있음에 놀라면서 단리의 죽음을 놓고
말이 많은 상황에서 결혼을 생각할 때가 아니라는것이였지요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단순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편 단리의 죽음 후 얼마지난 4월 메리여왕은 Stirling에 있는
아들을 보고 Edinburgh 로 돌아옵니다.
그것이 아들을 보는 마지막 순간이 되는줄도 모르고…
Mary's son, King James VI & I, as a child by Arnold Bronckorst, c1571.
4월 29일 약간 몸이 좋지 않았기에 일행은 천천히 길에 가던중
에딘버러에서 약 6마일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익명의 군대가
여왕일행을 에워쌉니다.
이는 다름 아닌 보쓰웰일당들로 이 것이 그 유명한
‘던바의 납치 사건’(Abduction in Dunbar)의 시작 입니다
그는 약 600명의 사병을 거늘이고 있었지요
보쓰웰은 여왕에게 지금 에딘버러로 돌아가는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므로 그와 함께 Dunbar Castle로 가자고 하며
연행합니다.
여왕은 이에 Bothwell과 함께Dunbar Castle로 가게되는데,
이 사건이 여왕에게는 치명적 아주 치명적 이였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여왕은 Dunbar Castle에서 보쓰웰과
잠자리를 같이하게 되고, 그리고 보쓰웰은 자신이 여왕의 보호자임을
선언하고는 여왕과 함께 Edinburgh로 돌아옵니다
Bothwell은 다음날 본처와 이혼을 하고 5월 15일 여왕과 결혼함으로
보쓰웰은 오크니공(Duke 0f Orkney)이 됩니다.
Dunbar Castle
‘여왕은 이러한 음모와 그녀를 둘러싼 끌지긴 요청, 위협, 그리고 재촉을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하였음으로…’
Claude Nau (당시 프랑스대사)의 말
*여기서 당시 상황을 자세히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너무나 우리의 주인공 Mary Queen of Scot에게 치명적인 사건이며
당시 상황을 자세히 보아야할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에딘버러에서 6마일 떨어진 곳에서 여왕이 보쓰웰일행과 마주쳤을떄
여왕일행은 보쓰웰의 군대에 대항할 상대가 돼지 못했습니다.
순간 여왕의 수행원들은 저항했으나 여왕은 그러지 말라하였지요
그래봤자 피만 흘릴뿐 결과는 동일하니까요.
하지만 여왕의 태도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여왕이 자신이 던바에 있음을 에딘버러에 알리는 편지에서
그녀는 아무런 구조요청이 없었고 당시 여왕은 너무 자연스레
보쓰웰을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이 던바의 납치사건은 마치 보쓰웰과 여왕은 그들의 사랑을 위해서 꾸며낸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자작극으로 비취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하게 우리가 인식해야 하는 점은 보쓰웰은 많은 귀족들로부터
여왕의 남편으로 추천을 받은자 (그것이 위조이건 아니건) 이고
당시에 절대로 여왕은 자신의 의지여부와 상관없이 빠져 나갈수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실로 이는 상황의 판단에 달려있는 미묘한 문제로 여왕이 보쓰웰과
이미 사랑에 빠졌는지 여부와 여왕이 보쓰웰에 의해 그날 밤 강간을
당한것인지의 여부는 사실 알수가 없습니다.
여왕의 고문관의 증언에 의하면 여왕은 보쓰웰에 의해 옷이 볏겨졌고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보쓰웰은 여왕을 침대에 뉘였다 합니다
여왕이 후에 비샵(종교지도자)에게 한말은 ‘그의 행동은무뢰하였으나
그의 언사는 부드러웠다’라는 것이였습니다
아무리 여왕이 사랑에 굶주린 여자라 하더라도 정식적인 결혼을 기다리지 못해
이런 행동을 했다고 판단은 돼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쓰웰은 정치적이유건 음욕에 의한것이건 가만히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였습니다.
어쩌면 여왕은 자신의 수치심을 없애고 명예를 보존하려
그와 결혼하였는지도 모릅니다.
'The Mermaid and the Hare'
이 그림은 당시 1567년 봄 에딘버러에 많이 결려있었다 합니다
시민들의 입에 여왕이 보쓰웰과 불순한 사이라는 루머가 단리의 죽음후
수개월만에 이들의 결혼으로 이어졌어요.
인어는 창녀를 나타내는데 인어의 머리는 여왕이죠?
토끼는 보쓰웰의 문장을 그리고 IH는 그의 이름 James Hepburn을 나타내며
MR은 Maria Regina 즉 ‘메어리 여왕’이라는 뜻이지요.
여왕의 명예는 이후로 회복불능이였습니다.
이제 여왕과 보쓰웰의 결혼식 장면을 보도록 합시다
두 주인공인 여왕과 보쓰웰…
여왕은 옷을 매우 잘입었던 평상시와는 다르게
결혼식에 나온 그녀의 옷은 허겁지겁 아무렇게나 입은 듯한
분위기였고 두사람간에는 적지 않은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신랑인 보쓰웰은 모든자로부터 여왕의 전남편인 단리를 죽인자로
인식되고 있었고 또 그는 언젠가 말하기를 ;
‘Mary Stuart(메리 여왕)와 Elizabeth Tudor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쓰1세 여왕)을 뭉처 섞는다 하여도 제대로 된
여자하나 나오기 힘들다’라는 말을 하기도 한 자이지요.
여왕의 우울함은 결혼후 계속되였고 전에 보여주었던
활기참과 명랑함은 볼수가 없었습니다.
신하들은 여왕의 알현이 보쓰웰의 허락을 요함과
허락을 한다 하더라도 보쓰웰이 동석해야만 함에
불만을 표시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여왕은 감옥의 죄수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민심은 보쓰웰과 여왕을 떠났습니다.
아니 여왕에게서 떠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최소한 보쓰웰과 같이 있는
한 여자에게 지지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6월 에딘버러의 분위기는 전쟁 그 자체였지요.
많은 귀족들은 불길한 예감에 에딘버러를 떠났습니다.
여왕과 보쓰웰은 Borthwick Castle 로 6월 6일 거처를 옮깁니다.
Borthwick Castle
Borthwick성은 보쓰웰파가 자리잡고 있던 곳으로
보쓰웰은 이곳을 선택하였으나 그해 여름은
스코틀란드 그 어디도 이들에게 안전 하지는 않았습니다
여왕의 운명은 어디로 흐르고 있는것일까요?
Wagner 탄호이저 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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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늦은 밤 들어온 기쁨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수고하신 님의 수고에 비한다면 이 작은 꼬리글이 미약하지만...그래도 인사드리는 것이 나으리라...감사드립니다!^^*
목이 빠질 뻔 했습니다...잘못했으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의 주인공이 될뻔도 ㅎㅎ 넘 넘 감사드립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여러 분이서 아마도 기다리고 있었을 겁니다...잘 감상하겠습니다....사랑해요~~~!
덕분에 아트힐의 교양이 넓혀짐을 느끼면서 저 또한 ㅎㅎ.. 좋은 음악과 함께 정성어린 자료 감사히 받아 보았습니다..늘 건강하시구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아~~ 불쌍한 메리... 평범한 삶이 행복한 삶이라는 진리를 다시한번 기억하게 되는군요. 왕자를 왜 못보게 되는지가 무척 궁금해 집니다. 감사드리며..... 다음편을 기대할게요.*^^*
정말 좋은 글과 음악 감사합니다. 영국의 역사 공부도 감사합니다.
이제 남은 횟수도 2회정도밖에 남지 않았군요..너무 슬픈 마지막을 어덯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중입니다. 사진이 잘 보이지 않는것은 계속 수정해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목아지가 길은 슬픈 짐승은 시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