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지하상가 폭행이 드러낸 데이트폭력의 현주소… "더 잔혹해졌다"
조선비즈 김민정 기자
입력 2020.11.11 16:58 | 수정 2020.11.11 17:12
부산 덕천 지하상가에서 발생한 폭행 영상이 온라인상에 퍼지며 데이트 폭력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데이트 폭력 사건의 신고 건수는 매년 늘어나고 있지만, 검거 비율은 여전히 전체 신고 건수의 절반 이하에 머물러 있다.
11일 부산경찰청과 북부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폭행 사건 당사자인 남성 A씨는 지난 10일 오후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에 자진출석했고 피해여성 B씨도 이날 조사를 받았다.
두 사람은 덕천 지하상가에서 서로 주먹을 휘두르며 다퉜고 이 과정에서 A씨가 심한 폭행을 가해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A씨는 쓰러진 B씨를 주먹과 발로 때리는가 하면 휴대전화로 머리를 수차례 가격하고 발로 얼굴을 차기도 했다. 두 사람은 연인 사이였고 경찰 조사 결과 휴대전화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싸움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북구 덕천동 덕천지하상가에서 젊은 남성이 쓰러진 여성을 발로 때리는 장면이 찍힌 영상. /CCTV 캡처
데이트 폭력 신고 건수는 최근 들어 더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9월 통계청 통계플러스(KOSTAT) 가을호에 실린 ‘데이트 폭력의 현실, 새롭게 읽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청 전국자료로 집계된 데이트 폭력 신고 건수는 1만9940건이었다. 이는 2017년(1만4136건)보다 41.1% 증가한 수치다.
범죄 유형별로 보면 폭행·상해가 7003건(71.0%)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범 등 기타가 1669명(16.9%), 체포·감금·협박이 1067명(10.8%), 성폭력이 84명(0.8%) 등 순이었다. 데이트 폭력 끝에 살인을 저지른 경우도 35건(0.3%) 있었다.
데이트 폭력 범죄 연간 신고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검거 비율과 구속 비율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89.4%였던 데이트 폭력 검거 비율은 2019년 49.4%로 줄었다. 구속 비율도 같은 기간 5.4%에서 5.1%로 감소했다.
신고가 접수된 이후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도 데이트 폭력이 제대로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아 근절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부산 덕천지하상가 폭행 당사자인 여자친구 B씨 역시 휴대전화로 머리를 수차례 맞아 의식을 잃었는데도 폭행을 가한 남자친구에 대해 처벌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피해자가 폭행을 당했는데도 신고를 안 하는 것은 상대가 자신을 좋아해 한 행동이라고 동화하는 ‘스톡홀름증후군’의 일종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보복이 두려워서일 수도 있다"며 "피해자가 보복 피해를 우려하지 않도록 철저한 수사와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정다운
최근 데이트 폭력이 더욱 흉폭해지고 범행 수법도 다양해지면서 우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헤어진 여자친구의 집 앞에 나체 사진 등을 붙이고 협박한 10대 남성이 경찰에 입건됐고, 9월에는 여자친구의 이별 통보에 격분한 20대 남성이 여자친구의 반려견을 벽돌로 수차례 내려치고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지난달 경남 양산에서도 여자친구에게 무차별적인 폭행을 가해 전치 8주의 상해를 입힌 데이트 폭력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의 가해자인 남자친구 C(31)씨는 사건 발생 이후 약 한 달 만에 경찰에 구속됐다. C씨는 검거 이후 불구속 상태로 조사를 받으면서 피해자인 여자친구 D씨에게 문자메시지나 모바일 메신저로 연락을 하고 거주지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에 양산여성회를 포함한 경남여성단체는 11일 경남지방경찰청 앞에서 데이트 폭력에 대해 처벌 강도를 높여달라고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피해자는 경찰 신고 후에도 심각한 2차 피해를 당했다"며 "가해자에 대한 구속수사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구속 수사가 이어지면서 피해자는 불안감과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고 주장했다.
공정식 교수는 "근본적으로 데이트 폭력은 연인의 문제나 부부 사이의 사랑 다툼이라는 잘못된 관념이 있다"면서 "데이트 폭력은 중대 범죄로 갈 수 있는 전조현상이고, 살인사건의 가장 많은 동기가 치정 살인이기 때문에 사건을 무겁게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지하상가폭행 #데이트폭력 #폭행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11/11/20201111024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