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덕(四德)과 사단(四端)에서
유학(儒學)에서는 인간 본성의 주체를 사덕(四德) 즉 인(仁)·의(義)·예(禮)·지(智)라고 본다.
인(仁)이란 천지가 만물을 생성하는 마음으로 사덕(四德) 중 으뜸으로 삼는 덕(德)이다. 인(仁)이 개인의 수양과 결부되어서 마땅히 지켜야 할 인간적인 도리(道理)라면, 의(義)는 국가나 사회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공적인 도리이다. 의(義)가 도덕적 실천에 있어 내면적이고 실질적인 측면이라면, 예(禮)는 외면적이고 형식적인 것이다. 예의 본질적인 의의(意義)는 인간생활에 있어서의 외부적 형식(外部的 形式)과 내면적 규범(內面的 規範)으로 나타난다. 지(智)는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는 슬기, 즉 지적(知的)인 능력을 의미한다. 진리의 탐구도 이 같은 지적 능력을 기반으로 하여 가능하며 올바른 가치관의 형성과 사물에 대한 통찰력(洞察力)도 이런 지적 능력을 기반으로 가능하다.
한편 유학에서 말하는 사단(四端)은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의 네 가지 마음으로서 각각 사덕(四德) 즉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본성(德)에서 발로(發露)되어 나오는 감정이다. 측은지심은 타인의 불행을 아파하는 마음이며, 수오지심은 부끄럽게 여기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마음이며, 사양지심은 타인에게 양보하는 마음이며, 시비지심은 선악시비를 판별하는 마음이다.
맹자에 의하면 이 사단은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일종의 선천적인 도덕적 능력이다. 예를 들면, 측은지심의 경우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할 때 누구나 아무 조건 없이 그 아이를 끌어안고 구하려는 마음이 순수하게 발로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맹자는 이 사단을 확충함으로써 인·의·예·지의 덕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위의 유학(儒學)에서 말하는 사덕과 사단에서 깊이 생각해보건대, 이 사덕과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한 인간이 지켜야할 두 가지 큰 계명(誡命)에 그 의도하는 바가 총체적으로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이 지켜야할 두 가지 가장 큰 계명(誡命)을 말하였으니, 이는 “첫째는 이것이니 들으라 주(主)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마가복음 12장 29-31절)”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모든 이웃을 내 몸처럼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한다면, 자연적으로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덕(德)을 두루 갖춘 사람이 되어,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의 마음을 품고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 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아가페(Agape)의 사랑은 사덕과 사단의 마음이 모두 포함된 하나님의 성품과 같은 완전한 인간의 품성이기 때문이다.
다만 유의할 바는, 위에서 말한 예수 그리스도의 두 가지 큰 계명을 구체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할 때에는 반드시 유학에서 말하는 사덕과 사단의 개념을 모두 포괄하고 부분적으로도 뒤틀림 없이 부합되게 해석하여서 이단(異端)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사덕과 사단의 개념 역시 수천 년간의 검증기간을 극복해낸 살아있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2026. 4.23.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