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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학습!
소풍이란 말이 언젠가부터 사라지고 현장학습, 체험학습이란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지만 애써 나는 봄소풍, 가을소풍이라고 부르길 좋아한다. 현장학습은 딱딱하고 건조하다. 이에 비해 소풍이 주는 어감은 촉촉하고 부드러우며 예정되지 않은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는 그야말로 빈 자리가 많은 털털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름이 소풍에서 현장학습으로 바뀌었더라도 학생들에게는 교실을 벗어나는 그 자체가 괜한 설렘과 호기심을 준다. 더구나 가방에는 머리를 위한 책과 필기구가 아닌 과자와 김밥과 달콤한 음료가 준비되기 때문에 현장학습을 간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입과 오장육부가 자극되고 심장은 괜한 설렘으로 더욱 콩닥거리게 된다. 그리고 소풍때는 평소에 지키던 식사시간도 파괴된다. 그 파괴 조차 즐거움의 과정이다.
내가 속한 4학년은 예정대로 구봉상 봉수대를 향해 길을 나섰다.
운동장에 나가서 대기하라는 말에는 줄을 서 있으라는 뜻도 포함된 것이었지만, 나의 늦은 출현에 우리 반만 군데 군데 오글조글 모여있는 것이 구심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모양새였다. 하다 못해 솜사탕도 가운데 막대에 꽂혀 있으며 잘 녹아내리는 아이스케키도 얇은 막대기 하나에 꽂혀 있건만 우리 반은 그렇지 못했다. 할 수 없이 가운데 기둥이 되기로 하고 모여라, 줄서라를 소리쳤다.
그러면 후속적인 질문이 나온다.
"선생님, 키대로 서요? 맘대로 서요?"
"알아서들 해"라고 했다.
그래도 시끄럽다.
"키대로 해"라고 했다면?
그래도 시끄럽다.
맨날 서는 줄서기에도 불구하고 줄을 설 때마다 앞자리 뒷자리에 대한 시비와 논의가 한창인 모습은 귀엽다. 그렇지만 그걸 웃어넘길 수만 없어 괜히 얼굴을 엄격하게 보이려고 굳게 하였다. 지금 생각하니 하다도 그럴 필요가 없었던 일인 데도 그때는 그렇게 행동을 했다.
다섯 개 반 중에서 우리 반이 선두로 출발했다.
학생들 중에 목적지를 아는 학생이 있지만, 그래도 앞에는 내가 섰다. 걸음 속도와 중간 중간 쉼자리를 살피는 등을 고려해서다.
"선생님 보다 앞에가면 혼난다."
"앞에 가면 도둑이다. 뒤에가면 경찰이다."
(이렇게 하면 나보고 도둑이라 할 줄 알았는데, 그에 대해 따지지 않는 학생들이었다.)
두 줄로 나란히 길을 걸으니 대략 150여명의 학생이 만드는 줄의 길이가 제법 길다. 두 사람씩 대략 80쌍이 서게 되는데 반과 반 사이의 좀 더 벌어지는 간격을 고려하면 줄잡아 80미터에서 100미터의 긴 행렬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경남고등학교와 동아대학교 예술대학 사이를 지나 작은 체육공원에 도착해서 10분여를 쉬었다. 그러나 그 잠시의 시간에도 많은 학생들이 운동기구에 들러붙었다. 이 모습은 떨어진 음식 부스러기에 달려드는 비둘기 때와도 같고 녹아내리는 사탕에 달려드는 여러 곤충과 같다. 학생들이 여러 가지를 해보느라 정신이 없는 중에, 학생들보다 그 자리에 먼저 도착하셨던 어르신들이 학생들의 운동 기구 조작을 염려하며 불편해 하신다. 쿵쿵 놓는 통에 뭐라도 하나 파손이 될까 싶어 안달하시더니 급기야,
"선상님, 그만큼 쉬었으면 이제 그만 아이들 데리고 가이소." 라고 애원하신다.
한편으로는 어르신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친손주가 저렇게 한다면 싫은 내색을 다 표할까? 아니 싫기도 하실까 싶었다. 괜한 불편함이 생겼다. 그때 내 주머니에는 초콜렛이 3개 있었는데, 드리려던 맘이 싹 달아나버렸다. 그 초콜렛은 모두 내 입을 즐겁게 하고 말았다.
경남고등학교 뒷길은 평탄했다. 걷기에 좋았다. 중간중간 보이는 우람한 나무들이 근육질 남성의 몸매처럼 울퉁불퉁하여서 내가 약간의 퍼포먼스를 해보였더니 몇몇 학생은 자지러진다. 이런 반응은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민감했다. 남학생들은? 그야말로 떨어질 듯 길 가로 붙어 다녀서 몇 번이고 길 안쪽으로 걸으라고 다그치는 소리만 지르게 했다. 그래도 굳이 아슬아슬한 길가를 택한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여기서도 느껴진다.
대신공원과 만나는 지점에서 화장실을 발견했다. 잠시 머물러 화장실에서 일볼 사람을 일보게 한 뒤에 다시 봉수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우리 보다 뒤에 오는 반들에서 힘들어하여 뒤쳐지는 학생들이 생겼다. 선두였던 우리는 걸음을 일부러 늦추었는 데도 그 모양이었다. 한 두 학생에게서 생긴 문제가 전체적인 진행을 더디게 하였지만, 시간은 많고 정상에 올라가서 딱히 무엇을 한다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기에 여유는 있었다. 봉수대에 올라가면 탁 트인 자리에서 부산의 일부 지역이라도 전체적인 구조와 모양을 내려다보는 것이 오늘 봉수대를 오르는 가장 큰 목적이었다.
결국 낙오자가 생겼다. 한 학생은 예술대학에서 돌아갔다. 또 한 명은 부모님과 연락이 되었지만 아이가 느린 걸음을 걷더라도 끝까지 올라가보겠다 하여 걷기로 했다. 중간 중간 원어민 영어강사 Garret의 도움으로 뒤쳐지는 학생들이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을 향해 걸을 수 있었다.(Garret는 필요한 때 학생을 업어주기도 했다.)
중간에 두 어번 쉼을 갖고 봉수대 바로 아래 체육공원에 도착했다. 거기서 잠시 쉬었다가 드디어 봉수대를 올랐다. 300미터 남은 지점이다.
몇 발짝 옮기자 마자 나는 탄성을 질렀다. 오! 오! 오~ !
그야말로 진달래가 지천이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진달래를 '공중화'로 부른다. 공중에 붕떠 있는 듯 보인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진달래를 보노라니 공중화가 아니라 커다란 누비이불을 펼친 듯했다.
기념촬영을 했다. 그래서 뒷반이 또 기다려야 했다.
봉수대까지 가는 길은 이전까지 걸어오든 길하고는 경사부터 달랐다. 마지막 300 미터를 남겨두고 학생들이 힘들어 했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대부분이 탄성을 자아냈다. 와~
여러 학생들이 정상에까지 올라온 자체에 대해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했다. 이런 보상은 목적을 달성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그 쾌감을 학생들이 느낀 것이다.
학생들은 시키지 않았는 데도 저마다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돗자리를 펴고 앉아 땀을 식혔다. 또 먹거리와 음료를 꺼내 먹었다.
준비한 점심을 먹으면서 앞에 걸릴 것 없는 탁트인 세계를 감상했다. 자연은 그 광대함으로도 인간을 늘상 압도당하는 감동에 몰아넣는다. .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그 아래 세계는 다닥다닥 붙은 조밀한 집들 만큼이나 초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항대교, 영도, 신선대 부두, 멀리 보이는 광안대교를 눈으로 훑으면서 내 곁에 선 몇 학생들에게 부산의 변화 모습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가 선 바로 아래에는 민주공원과 용두산공원이 보였으며 우리 학교 모습도 눈에 잘 들어왔다.
그러다가 한 순간 황조롱이가 눈높이에서 조금 위로 떠 있는 것을 발견했다.황조롱이는. 날개짓을 하면서 공중에서 한 곳에 정지한 듯 있었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한동안 진귀한 날개짓의 쇼를 보여주더니 떠 있던 그 아래 수풀 속으로 사라졌는데 황조롱이의 특이한 비상 모습을 본 Garret은 너무 너무 재미있어 했다.
점심을 먹은 학생들은 별 간섭을 하지 않아도 저들끼리 알아서들 놀이를 만들어 놀았다. 나는 아이들의 그러한 천성이 너무 좋다. 그들은 자연에 놓여지면 놀이를 저절로 만들어 낸다. 비디오게임, PC게임이 아니라도 놀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다. 그렇게 보면 상업적 목적을 굳이 숨기면서 아이들을 놀게하는 놀이문화에 대해 어른들의 냉철한 판단과 반성, 친자연적인 놀이를 위한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한 데 모여 놀이하는 학급이 많아졌다. 반별로 각기 둥글게 원을 만들었다. 동그라미는 절대 평등을 보여준다. 놀이에서 원형 대형이 등장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평등하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했기 때문일까?
다들 모여서 원을 만들어 노는 것을 본 나는 다른 방법으로 놀고 싶다는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그래서 원을 만들지 않는 선형적 놀이, 경쟁적 놀이를 학생들에게 제시했다.
학생들은 각각의 놀이들을 금방 익혔다. 그런데 이내 싫증을 냈다. 그러면 다른 것으로 바꿔 주었다.
놀이를 하다 보면 반칙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그 반칙 조차도 놀이세계에서는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학생들의 놀이는 이질적인 것도 쉽게 동화해버리는 화학작용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진을 찍었다. 왜 기념하려고 할까? 괜히 그런다!
이것도 어쩌면 카메라에 종속된 사람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기억하고픈 것이 그리 많을 필요도 없는데, 괜히 어딜가면 사진을 남기려 든다. 사진을 찍기 전에 줄맞추고, 자세 잡고, 약속하고, 고함을 친다.
찰칵!
그 한 순간을 위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모되어 버린다. 그래도 나중에는 그 사진이 끈이 되어 어렴풋하던 기억히 확연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사진의 가치는 기억을 위한 것이다.
산을 내려올 때는 오를 때보다 훨씬 빨랐다. 봉수대에서 내려오던 중에 한 번은 아직 꽃잎을 가득 담고 있는 벚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봤다. 파란 하늘이 그 아래 놓여진 흰 벚꽃에 가려 있었는데 흰 꽃잎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은 특별한 감흥을 주었다. 학생들은 나와 같이 목을 뒤로 젖혀 하늘을 봤다. 모두 아! 오! 하는 소리를 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감탄의 소리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들렸다.
봉수대에 오르던 길과 달리, 내려올 때는 대신공원에서 저수지를 거쳐 동아대학교 쪽으로 빠져나왔는데 거기서도 연녹색 단풍나무 잎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보려고 고개를 뒤로 젖혀 바라 보았다. 연두색과 파란색의 조화가 또다른 색의 향연을 만들어냈다. 그런 감동 속에 나를 있게한 그 시간이 참으로 귀하게 느껴졌다.
동아대쪽으로 들어갔다. 우리 반을 뒤이어 4학년 1반이 따라왔는데 4학년 1반이 따라붙는 것을 보고 경남고등학교쪽으로 이어지는 길목, 옛 동아대학교 박물관이 있던 곳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2, 3, 4반은 동아대학교 병원쪽으로 내려가 버렸다. 이 사실을 모르고 우리 반과 4-1반은 10여분 이상을 기다렸다가 내려왔는데, 동아대학교에서 늦게 출발한 우리는 구덕운동장 육교 근처에 오자 4- 4반의 끝머리가 보였다. 4반은 제일 나중에 따라오던 학급이었다.
별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하산하고, 학생들은 집 또는 다른 곳으로 갔다.
즐거웠다.
산과 하나가 되진 못했지만 봄산의 변화 속에서 빈 구석을 마련했던 하루였다.
첫댓글 추운날 산행하신다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어릴적 소풍때는 아주 많이 걷고 또 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버스도 있었지만 괴정에서 에덴공원까지 걷고 또는 승학산 갈대밭까지 걸었었는데.. 지금은 즐거웠던 추억만 남아 있고 힘들었던 기억은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친구들과 함께 산을 올랐던 즐거운 추억이 남을 듯 하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