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붉은색이 돋보이는 늦가을의 단풍잎
단풍나무, 궁궐의 다른 이름
조선왕조실록 중 문종 발인 때 올린 애책문(哀冊文)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옛날 살던 풍금(楓禁)은 점점 뒤로 멀어져 가고 깊은 산속 묘역의 아득한 곳으로 향하니, 효자 단종은 하늘에 울부짖으면서 슬퍼하고 애모하였다. “서리를 밟고 슬픈 눈물을 흘리면서 할아버지 세종과 아버지 문종을 일찍 여의었음을 통곡합니다. 성대하게 차린 봉황의 수레를 따라갈 수는 없지만, 그리운 용안을 모시는 듯합니다.”
여기서의 풍금은 단풍나무가 많으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 바로 궁궐을 나타낸다. 또 ‘풍신(楓宸)’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로 궁궐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신(宸)’은 하늘의 중심인 북극성이 거처하는 곳으로 임금이 머무는 곳을 가리키며, 여기에 단풍나무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 외 ‘풍폐(楓陛)’ 역시 단풍나무로 만든 섬돌(돌층계)을 뜻하며 궁궐을 이르는 말이었다. 이렇게 궁궐을 나타내는 말에 단풍나무가 많이 들어가는 이유는 중국의 한나라 때 궁궐 안에 단풍나무를 많이 심은 탓이라고 한다.
창덕궁 애련지 주변의 단풍나무들
우리 궁궐을 물들이는 단풍
우리나라 궁궐에도 단풍나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창덕궁 후원에는 참나무, 때죽나무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나무가 단풍나무다. 단풍나무는 습기가 있거나 햇볕이 바로 쪼이는 곳보다는 큰 나무 밑이나 나무와 나무 사이에 잘 자란다. 후원은 단풍나무의 자람터로서 좋은 조건을 갖추었으므로 자연적으로 자라고 있는 단풍나무도 많았다. 여기에 일부러 심기도 했으므로 단풍나무가 더욱 많아진 것이다.
[일성록 日省錄] 에서 정조 때의 기록을 보면 ‘단풍정’에서 활쏘기 등 여러 행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단풍정의 위치는 [신증동국여지승람 新增東國輿地勝覽] 에 ‘춘당대 곁에 있는데, 단풍나무를 많이 심어서 가을이 되면 난만하게 붉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지었으나 정자는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춘당대는 창덕궁 후원의 연못인 부용지 동쪽 영화당(暎花堂) 앞마당인데, 지금의 이 일대에는 참나무, 느티나무, 음나무 등이 자리잡고 있으며 단풍나무는 거의 없어져 아쉬움을 더한다.
가운데 건물이 창덕궁 영화당이며 오른쪽으로 펼쳐진 마당이 춘당대이다. 이 옆에 단풍정이 있었다고 하나,이름과 달리 주변에 단풍나무가 많지 않다.
11월 중하순 창경궁 월근문 앞의 곱게 물든 단풍나무 숲
창경궁은 80년대 초에 복원할 당시 단풍나무를 일부러 심었다. 특히 월근문 앞 창덕궁관리사무소 뒤쪽에 펼쳐져 있는 단풍나무들은 궁궐 단풍의 백미다. 단풍 드는 시기가 다른 곳보다 조금 늦어 11월 중순을 넘겨야 절정을 이룬다.
붉게 흔들리는 가을의 정취
장승업, [추정유묘도]
19세기 후반, 153.1x38.3cm, 개인소장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은 그의 행적과는 달리 꽃과 나무를 사랑한 조선의 임금이었다. 멀리 보길도에서 동백나무를 산 채로 올려 보내라는 기록을 비롯하여 영산홍 1만 그루를 후원에다 심으라고 지시한 바도 있다. 연산군은 단풍나무도 좋아하여 신하들에게 단풍을 주제로 시를 지어 올리라고 하였으며 자신이 직접 단풍 시를 짓기도 했다. 연산 10년(1504) 9월 7일 임금은 어제시(御製詩) 한 절구를 승정원에 내려 보냈다.
단풍잎 서리에 취해 요란히도 곱고
국화는 이슬 젖어 향기가 난만하네
조화의 말없는 공 알고 싶으면
가을 산 경치 구경하면 되리
이어서 전교하기를, 숙직하는 승지 두 사람은 차운(次韻)하여 올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연산군의 단풍나무 시는 아마 경복궁 후원을 두고 노래한 것 같으나, 지금의 경북궁에는 단풍나무가 많지 않아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옛 선비들은 이른 봄의 기품있는 매화를 만나면서 한 해를 시작하여 은은한 난초 향을 맡으며 피어나는 계절을 맞이하고, 이어서 녹음방초의 여름을 유유자적하게 보낸다. 찬바람이 불면서 국화꽃 감상에 심취할 즈음 바로 단풍이 이어진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단풍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들이 있지만,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임진강 상류의 화석정 에 걸린 단풍시 한 수를 소개하고 싶다. 율곡 선생이 여덟 살 때 지었다는 ‘팔세부시(八歲賦詩)’로, 그 진위 여부를 떠나 깊은 인상으로 남는다.
숲속 정자에 가을이 깊어지니
시인의 시상은 끝이 없구나
멀리 강물은 하늘에 잇달아 푸르고
서리 맞은 단풍은 햇빛을 향해 붉게 물들었구나
오늘날 중국 사람들은 단풍나무를 ‘축(槭)’으로 쓰지만, 본래 단풍을 나타내던 글자 ‘풍(楓)’은 나무(木)와 바람(風)을 합친 것이다. 잠자리 날개처럼 생긴 단풍나무 열매가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 가는 모양을 나타낸 글자가 ‘楓’이다. 붉게 물든 단풍이 떨어지며 바람에 날리는 가을의 정취가 이렇듯 글자 하나에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