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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26 이름: 자료실 2009/8/25(화) | |
'역사천문과 창덕궁' 다큐멘터리 촬영 | 상고시대역사 2006.08.29 09:51
일월오봉도. 가운데에 있는 산이 삼각산. 칠월칠석날 저녁의 일월의 위치를 그렸다.
‘역사천문과 창덕궁’ 다큐멘터리 촬영 노중평 2006. 8. 16. 한 여성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하면서, 모 채널에서 북두칠성과 관련이 있는 다큐멘터리를 찍는데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전화였다. <유적에 나타난 북두칠성>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을 1997년에 출간한 이후로 만 9년 만에 TV쪽에서 보내온 첫 반응이었다. 나는 <유적에 나타난 북두칠성>을 출간한 이후에, <고조선의 역사천문>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 상고시대의 우리 역사를 도출해 내는 작업을 시도하면서 <고조선의 역사천문>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역사천문’은 추론의 학문이다. 추론 자체가 전입미답의 학문분야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황당한 작업을 하면서 흥미진진해 질 때가 많았다. 나는 9년 동안 주로 인터넷을 통하여, 우리 조상이 ‘별에 쓴 역사’에 대하여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을 해 왔다. 지금은 나 이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이 분야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어느 분은 내가 쓴 글들을 스크랩하여 <우리 민족의 혼 - 천문의 정체성>이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홈페이지 <청와대 브리핑> 회원게시판에 올려놓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가 시작한 ‘역사천문’이라는 분야가 대중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없게 되었다. 학문으로서의 성공여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앞으로 참여자들이 나오면 성공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내가 전화를 받은 이틀 후에 작가는 촬영하면서 내게 할 질문 항목을 정리하여 e-mail로 보내왔다. 나는 질문에 답할 내용을 정리하여 보내주었다. 촬영은 8. 28. 13시에서부터 창덕궁에서 한다고 하였다. 이날 13시에 PD 한 사람과 촬영 기사 2 사람을 창덕궁의 서쪽문인 금호문金虎門에서 만났다. 창덕궁 직원 한 사람이 우리를 안내하겠다고 따라붙었다. 나는 1970년에 창덕궁에 처음 들어와 보고, 1998년에 두 번째 들어와 보았다. 이번에 들어오니 3번째가 된다. 1970년에는 내가 근무했던 직장에서 윗분이 이곳에 오셨다가 가시는 데에 묻어 들어와서 주마간산으로 한 바퀴 둘러보았고, 1998년에는 별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이곳에 들어와 본 것이다. 그때는 나와 함께 [역사천문학회]를 결성하였던 회원들과 함께 주로 소요정逍遙亭과 삼각산 주변을 천문과의 연관성을 찾으면서 둘려보았다. 나는 PD와 촬영기사와 함께 금천교를 지나서, 인정전 앞을 통과하여, 낙선재를 오른쪽에 두고 동북쪽으로 나 있는 코스를 밟았다. 오늘의 창덕궁은 월요일 쉬는 날이라 너무나 조용하다. 안내를 맡은 분은 평소에 창덕궁이 하루에 3번 매회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받은 50명의 인원에 한하여 공개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궁장을 끼고 걸어가면서 지붕을 떠받히고 있는 석가래에 청구칠성무늬와 연화문 두 무늬가 쓰이고 있음을 설명해 주었다. 청구칠성무늬는 28수 가운데에서 남방주작칠수의 맨 끝 별자리인 진수분야軫宿分野에 속하는 별들인 청구칠성을 벽사의 무늬로 쓴 것이다. 촬영팀은 부영지를 촬영하고, 북쪽에 서있는 어수문魚水門과 그 뒤쪽에 있는 주합루宙合樓를 촬영하였다. 어수문은 물고기와 물이 드나드는 문이라는 뜻인데, 의미심장한 다른 뜻도 있다. 어魚는 조선朝鮮의 선鮮에 들어 있은 魚이다. 그러므로 조선의 백성이라는 뜻이 있다. 수水는 북극수北極水를 의미한다. 옛날에 단군왕검을 수정水精-북극수라고 하였고, 부루태자를 수정자水精子-북극수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어수문에는 조선의 백성과 단군왕검이 통과하는 문이라는 의미가 있다. 어수문 아래에 있는 부용지芙蓉池는 연꽃연못이라는 뜻이다. 연꽃은 부처님을 상징하는 꽃이 아니라, 마고가 우리의 조상이 되기 이전에, 태평양에 가라앉은 뮤 대륙에 실재했던 뮤 제국의 국화였다. 그러므로 부용지는 사라진 뮤 제국으로 가는 시간의 문이 되는 것이다. 부용지의 한가운데에 원형의 섬이 있는데, 이 섬은 마고가 사는 삼신산이다. 부용지의 남쪽에는 부용정이 있는데, 부용정은 1/3은 연못에 기둥을 내려 연못에 잠겨 있고, 2/3는 땅에 자리 잡고 있다. 지붕은 정丁자형의 지붕과 아亞자형의 지붕이 복합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丁은 머리를 의미하고, 亞는 국란을 당했을 때 최후의 피란처가 되는 십승지十勝地를 의미한다. 어수문을 통과하여 북쪽으로 놓인 계단을 올라가면 장엄하게 주합루가 서있는데, 여기가 우주가 합치는 곳, 즉 우주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조선왕조시대에는 이곳에 선비들을 불러 모아서 나라에서 동량으로 쓸 인재를 뽑는 과거를 치렀다. 우주의 중심에서 선관仙官을 뽑았던 것이다. 나는 우리의 교육현실이 이러한 심오한 의미를 학생들에게 반영하지 못함으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를 설명해 보았자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깊이 있는 설명을 할 수 없었다. 설명해 보았자 대부분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므로 말을 꺼내지 못했던 것이다. 드디어 소요정逍遙亭에 도착하였다. 소요정에서 만은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든 하지 못하든 상관하지 않고 소상하게 설명을 하기로 하였다. 소요정에서, 소逍에는 삼신(小-해· 달· 북두칠성)을 달밤에 제사지내러 간다는 의미가 있다. 요遙에는 저녁에 항아리에 물을 담아 놓고 바가지를 엎어 놓고 두드리는 악사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소요정은 삼신에게 제사지낼 때 악기를 두드리는 장소라는 뜻이다. 소요정 앞으로 옥류천玉流川이 흐른다. 옥류천의 玉는 북두칠성을 의미한다. 북두칠성이 있는 하늘에서 흘러오는 물이 옥류천이라는 뜻이다. 소요정의 왼쪽에는 삼각산 형상의 바위가 있다. 통바위 하나를 무당이 칠성굿 때 쓰는 삼각고깔의 형태로 다듬고, 그 앞을 평평하게 깎고,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사행천蛇行川을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 삼각산을 삼신의 신체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삼신의 신체 왼쪽에는 어정御井이 있다. 창덕궁의 북쪽에서 흘러오는 계곡수와 어정에서 샘솟아 나오는 어정수가 삼각산의 왼쪽 모퉁이에서 합수하여, 북두칠성 형상으로 파놓은 사행천의 물길을 따라 삼각산 앞을 돌아나가며, 북두칠성의 공간 안에 요지瑤池를 만든다. 이는 여기가 북두칠성의 머리가 만들어내는 사각의 공간인 선기옥형璇璣玉衡임을 말하는 것이다. 소요정에서 보면, 삼각산의 뒤쪽에서 계곡수로 흘러 내려오는 옥류천을 사이에 두고 오른편에 와가로 지은 북극정이 있고, 왼편에 초가로 지은 청의정이 있다. 북극정은 임금이 좌정하는 자리이고, 청의정은 백성이 좌정하는 자리이다. 북극정과 옥류천 사이에는 삼각산 앞에서 제사를 지내고 소각물을 태울 수 있도록 만든 8각형상의 조형물이 있는데, 내부를 둥글게 파고, 외부를 돌을 깎아서 8각면체를 만든 것이다. 8이라는 숫자는 우리 조상이 신전을 지을 때의 건축양식을 규정하는 숫자이다. 말하자면 신전의 형상을 8각정의 형상으로 지었던 것이다. 백제의 이성산성에서 발굴된 유구와 신라의 나정에서 발굴된 유구에 8각건물지가 있다. 이들 건물지가 신전의 터이다. 조선왕조시대에는 지금의 조선호텔 자리에 팔각정 형상의 천제단을 짓고 고종 임금이 천제를 올린 후에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위에 올랐다. 태극정과 옥류천 사이에 8각의 소각장을 만든 것은 소요정 일대가 야외 신전임을 보여준다. 임금이 밤에 은밀하게 이 곳에서 천제를 지냈을 것으로 추론이 되는 곳이다. 이곳을 촬영하고 몇 가지 질문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나서 인정전仁政殿으로 내려왔다. 임금이 인仁을 정사로 펼치는 전각이 인정전인데, <격암유록>은 앞으로 전 세계가 단일국가로 통일이 되어 선국仙國으로 불리게 되고, 한강 연안에 선국의 도성이 들어서게 되는데, 이 도성을 도부桃符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도부가 <부도지>에서 말하는 해혹복본의 시대에 세우게 될 부도가 된다. 도桃는 도화桃花를 의미한다. 도화가 선국의 국화이다. 인정전의 안에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가 용상의 위편에 있다. 오봉은 이 나라에 있는 오악五嶽을 의미하고, 오악 중에서 가운데 봉우리는 삼각산이다. 하늘에는 왼쪽에 해가 떠 있고, 오른쪽에 달이 떠있다. 해는 태양이고, 달은 태음이다. 칠월칠석날 저녁에 한반도 위에 뜨는 해와 달의 배치를 그린 그림이다. 음양이 넘치고 처짐이 없도록 조정하는 자리인 북극성의 자리에 임금이 앉아 있음을 나타낸다. 임금의 머리 위에 닷집이 솟아 있는데 닷집은 다섯 집 즉 오가五家라는 뜻이다. 오가는 단군조선시대에 조선을 구성했던 다섯 부족인 오가五加를 의미한다. 원래 인정전의 바닥은 흙바닥이었는데, 마루로 바꾸어 놓았다. 대궐의 정전의 바닥을 흙바닥으로 했던 이유는 지기地氣를 차단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용상의 아래 계단 밑에는 검은 전석을 깔아서 그곳이 북극성의 자리임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바닥을 마루로 까는 바람에 인정전이 가지고 있는 북극성-천추성의 의미가 퇴색해 버렸다. 인정전에서 펼치게 될 仁은 조선왕조가 일제에게 멸망하면서 그 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천기와 지기와 수기를 받아서 음양의 차수를 조절하여 균형을 맞추어 주는 것이 인이다. 말하자면 천지인天地人의 중용中庸이 인인 것이다. 지금은 용상에 앉을 사람이 없고, 흙바닥을 마루로 갈아 천지인 기의 소통을 차단해 버렸으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고 본다. <격암유록>에서 선국에서 전 세계의 인류에게 인을 펼치는 것을 정도인鄭道仁이라고 하였는데, 정도인의 원형을 이곳에서 있는 그대로 보존해줄 필요가 있다. 요란하게 전각만을 복원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창덕궁의 의미를 해석하여 우리의 철학과 사상으로 가르쳐야 한다.
창덕궁의 창昌은 해를 말한다는 뜻이고, 덕德은 그렇게 하는 것이 덕이 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미래에 인류통일제국이 나와서 1만 년 전에 사라진 한국桓國의 영화를 재현하게 될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금천교에서 해치를 촬영하였다. 해치는 북두칠성의 건청궁乾靑宮 문을 지키는 문지기 동물이다. 그의 배후에는 도깨비가 있다. 이 해치가 금천교 남쪽 홍예다리 중앙에서 남쪽을 향하여 지키고 있다. 금천교錦川橋는 비단개울다리가 아니라 곰개울다리라는 뜻이다. 공주와 부여를 흐르는 금강이 백제의 국가적 아이콘인 곰의 음차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곰은 한성백제시대 도성의 이름인데 마고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금천은 마고개울이라는 뜻이다. 이 마고개울을 가로지르는 다리에는 마고개울을 남북으로 가르는 경계선이라는 의미가 있다.
북은 감坎이고 남男이라 양陽이고, 남은 이離이고 여女라 음陰이다. 그러므로 금천교는 음과 양의 균형점이 되어주는 다리가 된다. 이 다리가 하늘에서는 은하수를 가로지르는 오작교烏鵲橋일 수 있다. 해치가 이곳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음양의 균형을 잡아주는 균형점을 지켜야 한다는 데에 있다. 그의 배후에는 치우천왕의 아이콘인 도깨비가 버티고 있다. 촬영을 다 하고 나니 16시가 넘었다. PD와 촬영기사가 처음 접해 보았을 생소한 역사천문을 어떻게 작품에 구현하여 금년 추석날 TV에서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