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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꼬부랑 할매배영일의 세상사는 이야기 광양시민신문  |  webmaster@gycitizen.com

승인 2013.02.24  16:00:54

▲ 배영일아름다운가구나라 대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린 아이들에겐 외할머니처럼 살가운 분이 어디 있으랴.

 난 외가엔 워낙 사촌들이 많아서 외할머니 사랑을 독차지 할 순 없었고 대신 삼대독자인 날 당신 목숨보다 중하게 여기셨던 친할머니 다음으로 날 이뻐해 주시던 작은 외노할매가 있었는데 우리 남매들과 외사촌들은 그분을 꼬부랑 할매라 불렀다.

 그분은 내 외증조부 두 번째 부인이셨는데 울 아부지 어무니를 부부로 만드신 분이고, 어릴 때 결혼하셨으나 아이를 낳지 못하자 소박을 맞고 친정인 옥곡에서 외롭게 사시다 외증조부님과 재혼을 하셨는데 역시 후사가 없었고, 대신 성님이 낳은 외할아버지 슬하의 9남매나 되는 손주에게 사랑을 쏟으셨단다.
 
 내 외가가 해방직후까지 학교라고는 초등3학년 까지만 있었던 태인도라 외삼촌들은 옥곡초등학교와 진상중학교를 다니셨는데, 옥곡에 집한 채를 따로 장만해서 그 꼬부랑 할머니가 거처 하시면서 외삼촌들을 뒷바라지 하셨었고 내 대학시절까진 그 집을 물려받은 셋째 외삼촌일가와 함께 사셨다.
 
 우리 집도 산골이었던 묵백리에서 100여년 전에 노할아버지께서 할아버지가 태어나시자 신학문 가르치신다고 신작로 근처 신기 큰골마을로 이사 오셨는데 꼬부랑할머니 친정이 묵백리 시절 이웃 이여서 한 동네 살고 있는 친정동네 오빠의 손자인 내 아버지 딱한 사연을 누구보다 가슴아파했고, 훗날 당신 장손녀 딸을 빨갱이동생이라서 경찰서에 끌려가는 게 다반사인 학생신분의 아버지와 인연이 닿도록 하셨다.

 나의 할아버지는20대에 돌아가시고 아버지 형님이셨던 큰아부지는 열아홉나이에 학살을 피해 입산하셔서 아버진 걸핏하면 경찰서에 조사받아야했다.
 
 빨갱이 가족이면 죽임을 당해도 하소연도 못하던 시절이라 노할아버지는 대가 끊길까 노심초사였었는데 공부 잘하는 학생인 아부지를 이뻐하던 꼬부랑할매가 당신 손녀딸과 혼사를 주선하셨단다.

 울아부지 고2때 엄마랑 결혼하셨고 아부지 2년 후배였던 큰 외삼촌과는 처남매부지간이 되셨는데 외삼촌께서 순천사범학교 입학하실 때 까지 1년간 진상까지 걸어 다니 셨단다.
 
 나이 어린 후배지만 처오빠라 서로 존대하시면서...

 각설하고 그 꼬부랑 할매는 당신 증손주들이 수십 명 이였지만 한동네 사는 큰 손녀딸의 귀한아들인 나를 이뻐해 주셨는데, 돌아가시면서도 나를 살리셨다고 믿는데 그 사연은 이러하다

 울 아부지 천재라고 소문날 정도로 학창시절 날리셨다는 분인데도 소위 벼슬도 못하시고 40대 넘어서 먹고 살기 위해 농협에서 근무하시면서 농사짓고 우리 팔남매 가르치셨다.
 
 난 아부지에 비하면 공부도 못했고 신언서판 어느 것 하나 뛰어난 것도 없는 내가 그나마 주류로 살기위해선 군사독재정권을 끝장내야 한다는 나름의 사명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래서 인천 바닥에서 혁명을 꿈꾸는 열혈 학생운동가로 사는 것을 낙으로 삼던 나는 1학년 입학하자마자 시위중 부상당하고 전두환 사진 찢어서 밟았다고 무기정학 당하기도 하면서 절치부심 기다리던 결정적 시기가 도래했다고 판단되었던 그 꿈같은 87년 6월 항쟁 시기를 거리에서 밤낮이 없이 보냈다.

 그런데 당시 울어머니께서 데모만 하고 다니는 귀한 아들 잘못 될까봐 노심초사하시다 몇군데 점을 보셨는데 그해 여름에 거리에서 비명횡사할 운이라며 빨리 내려갔다 가라고 성화셨다.

 그래서 나도 인천 용현동에서 용한 점집을 찾아 점을 봤더니 비슷한 점괘가 나오는게 아닌가.

 매일 가두시위에 나갈때 마다 오늘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에 시달렸으나 대의를 외면할 수 없었는데 6월 24일 꼬부랑할매가 위독하시다고 임종은 지켜보라며 급한 연락이 와서 선후배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하루만 다녀오마고 25일 옥곡으로 내려오는 고속버스에 오르니 외사촌누나도 있었고 도착했을 땐 꼬부랑할매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6월 26일 전국적으로 가장 대규모 시위가 있었고 28일에는 인천에서 유혈충돌이 발생 했었는데 장례를 치르느라 현장에 함께 할 수 없었고 7,8월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으나 난 시골에 붙잡혀 지내야했다.
 
 8월 인천에 올라가 다시 점을 보니 용한 점쟁이가 가까운 할머니가 돌아가신 덕분에 젊은이 목숨 건진 줄 알라고 하는 게 아닌가 !

 꼬부랑 할매.

 당신이 맺어준 손주사위 빼어난 재능 펴보지도 못하고 시골에서 살고, 이쁜 장손녀 팔남매 먹이고 입히고 가르친다고 남자보다 더 많이 바닷일에 농사일 하며 사는것 한동네에서 지켜봐야 했는데~.

 그 손녀딸이 어렵게 얻은 외아들인 내가 꼬부랑할매 한테 가끔 들르면 갈때마다 내 손을 붙잡고 "백년천년 명 긴 것이 최고다. 영일이는 오래오래 살거라"하고 "우리 우~리 영일~이 천년만~년 오~래 오~래" 하시며 노래 불렀는데 당신 돌아가시면서 나를 살리신 것이라 믿고 있다.

 열성 기독교인인 내 아내는 살고 죽는건 하나님 뜻 이제 조상의 음덕이나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하겠지만 말이다.

 설사 아내 주장이 맞다 하더라도 난 지금까지도 내 친할머니의 손주사랑과 꼬부랑할매의 비원이 모이고 모여 하나님을 감동시켜서 날 지켜 주신 것이라 믿는다.

 해방이후 사람의 목숨이 짐승보다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생각이 다르다고 죽이고 죽임을 당하던 더러운 시절 말이다.

 그 시절을 견디며 자식 손주 지키기 위해 살다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우리 할머니들이, 군사독재자들이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고한 시민을 고문하고 학살하던 시절을 견뎌낸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듯 하다.

 "사람 목숨보다 중한 것 없다. 누구들이 사는 세상은 이제 서로 죽이지 말고 사이좋게 살거라"

 그러나 난 아직도 두렵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유족들에게 사과한마디 없이 두개의 판결 운운하던 분께서 대통령이 되셨고 새 정권의 요직에 계신 분들이 하나같이 그 개 같은 시절 독재자들에게 부역했던 자들이고, 용산의 억울한 죽음과 쌍용차 해고자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가슴 아파하고 위무 하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은 북한을 지구상에서 없애 버리려 하고 북한은 그런 미국에 맞서 핵무기를 개발하고 수차례 핵 실험을 단행 하는 지금 전쟁의 무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우리 대한민국의 소위 보수우익과 집권세력은 북한을 선제 타격하겠다고 오히려 전의를 불태운다.
 
 하긴 그분들이나 그분들의 귀하디귀한 아들이나 손자들은 하나같이 군면제에다 미국에서 유학중이거나 이중국적자이시니 뭔 걱정이실까만 군에 있는 내 조카들과 예비군으로 소집되어야 하는 주변 동생들을 생각하면 난 전쟁은 생각하기도 싫다.

 오늘 다시 꼬부랑 할매가 나에게 말씀하시는 듯하다.

 이 할미는 "그 징글징글한 전쟁, 아까운 목숨 많이 죽인 더러운 세상 생각도 하기 싫다" "개똥밭에 뒹굴어도 저승보다 이승이 좋단다 오래오래 살다가 오거라!"